설국 / 가와바타 야스나리 / 유숙자 / 민음사
집을 떠나면 집과 타지를 구분하는 경계를 지나기 마련이다. 어디까지가 집이고 어디부터 타지인지 지리적으로 정확하게 구별할 수 없으나, 나는 그 지점을 지나면 마음이 살짝 변하는 것을 경험한다. 집과 타지뿐만 아니라 일터, 만남의 장소 등등 구분하는 경계가 나름 존재한다.
나에게 그 지점 가운데 하나가 '장성터널'이다.
이곳을 지나면서 나는 다소 다른 사람이 되곤 했다.
대학 졸업 후에 고향을 떠나 타지에 살면서 나는 많은 부분을 감추고 또는 가두고 지냈다. 자의든 타의든 상관없이 객이 된 나는, 나의 삶을 부분적으로 열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고 생각했으므로, 카멜레온은 아니라 할지라도 서울이라는 환경에 한때 적응하려 노력했다.
서울행 버스를 타고 이곳을 지날 때면, 알지 못하는 긴장이 몰려오고 전투에 임하는 병사처럼 몸과 마음을 무장하는 것과는 다르게 휴가를 얻거나 명절을 맞이하여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나의 많은 부분이 동면에서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굳고 경직되었던 몸과 마음은 무장해제가 되고 입술이 풀리면서 꽁꽁 얼어붙어 나오지 못했던 전라도 사투리가 봇물 터진 것처럼 쏟아져 나오곤 했으니까.
어떤 계기를 통해 사람은 달라진다. 그 계기가 지리적일 수도, 맡겨진 자리일 수도 있겠고, 결혼이나 자녀 또는 가족을 통해 다른 삶을 살 수도 있다. 물론 독서도 큰 계기가 된다. 그 계기라는 것이 밖에서 주어진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으며, 잠깐 환경이 바뀌는 경우나 돌이킬 수 없는 경우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세계에 발을 디뎠다는 것만으로 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곳은 언제나처럼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겠지만, 변하는 것은 언제나 한 사람 한 사람이고, 그 개개인이 자연과 어우러져, 한 사람에게 세상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제목과 소설의 첫 몇 페이지로 인하여 형성된 선입관은 소설을 덮을 때까지 떠나지 않는다. 설국(雪國) 눈의 나라인데 이 소설에 언급된 환경은 내가 기대하는 것과 같지 않다. 설국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 소설에 눈에 대한 에피소드는 그다지 나의 눈에 띄지 않는다. 내가 놓쳤을까?
닿을 듯 말 듯, 알 듯 말 듯 한 등장인물과 그들 사이의 대화, 관계 설정이 답답하다. 어떤 분의 말씀대로 줄거리에 익숙해서일까. 특별하게 무슨 관계가 지어지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아닌데 하는 생각이다. 기차 안에서 보았던 남녀처럼, 단 몇 분을 만나도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데 전체적으로 뿌옇기만 한 내용이 계속된다.
소설의 말미로 가면서 시마무라가 방문한 지지미 마을을 통해, 작가는 100년이 지나도 사람 관계는 늘 새로운(신선한) 관계를 유지 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을 아닐까? 씨줄과 날줄로 얽힌 직물을 통해 인간관계를 논하고, 슬며시 직녀를 등장시킨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니 불을 내고, 사람을 희생시키면서 가르치려 든다. 고마코는 유코를 향해 뛰어들고, 시마무라는 마침내 고개를 들고 은하수를 받아들인다. 아마도 처음 하늘을 본 것은 아닐까?
그는 깨달은 것일까? 메마르고 텅 빈 그의 마음에 은하수가 흘러 들어간다. 그는 견우가 되어 누구를 찾아 나서야 할까?
소설의 큰 맥과 함께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에게 남는 말 또는 문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걸 죽어가는 사람이 어떻게 말릴 수 있다는 거죠?" 64, 101
이와 같은 형식으로 쓰인 소설이 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