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240331(전주 온고을교회) -박찬수 목사
제목: 나 있는 곳에 그 사람도 거기 있으리니
본문: 요한복음 12:26
(요 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서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흥민 선수가 뛰는 팀에 들어가서 손흥민 선수와 같이 있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서울대 간 친구와 서울대에 같이 있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대통령과 청와대에 함께 있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여러분 답을 한번 해 보시죠. 어떻게 하면 되죠?
손흥민 선수는 뭐라고 할까요? 손흥민 선수는 자기처럼 세계적인 축구선수들과 함께 있으려면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줄까요? 본인이 한 것처럼 혹은 본인이 한 것보다 더 열심히 매일 어떤 것들을 하며 지내라고 가르쳐줄 것입니다. 누구든 기본적으로 자기가 했던 방식을 소개하며 가르쳐주려고 할 것입니다.
한 가지 공통점은 돈을 어떻게 써서 이런 자리에 있을 수 있었는지보다는 그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를 어떻게 써서 그 자리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말해주려고 할 것입니다. 물론 돈을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사람이 어떤 자리에 있을 수 있느냐도 분명 맞지만, 돈보다 확실한 원인은 그 사람이 사용한 시간일 것입니다.
돈은 서로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지만, 시간은 누구 할 것 없이 공평하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백만장자 아들에게도 고등학교 생활은 3년 주어지고요, 그렇지 못한 자녀에게도 고등학교 수험생활은 3년이 똑같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나이를 먹는 속도도 모든 사람에게 일반입니다. 같은 시간이 흘렀지만 서로 다른 자리에 있게 되는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공평한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썼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제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3년 뒤에 서울대에 가 있고 싶은 학생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먼저 서울대 재학생들이 고등학교 때 했던 것을 그들이 쏟은 시간만큼 따라 써야 기본은 할 것입니다. 손흥민 선수가 있는 곳에 자기도 가 있고 싶다면 손흥민 선수가 학창 시절에 했던 것들을 그에 비교할 만큼 따라 해야 할 것입니다. 정말 단순한 이치입니다. 그 사람이 있는 곳에 나도 함께 있고 싶거든 그 사람이 쓰는 시간을 똑같이 사용하려고 모방해야 할 것입니다.
또 간단한 질문 하나 해 볼까요? 자기 친구가 지금 서울에 있다고 합니다. 나도 그 친구가 있는 서울에 함께 있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네 맞습니다. 차를 몰고 그 친구가 서울로 간 그 길을 나도 달리면 됩니다. 네비게이션이 아마 그렇게 다른 길을 알려주지 않을 것입니다. 길이 같으면 도착지도 같은 것입니다. 서울로 가는 표지판을 보고 서울로 가는 도로를 타고 가면 서울에 도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 같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핵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길입니다. 같은 길을 따라가면 같은 목표지점이 나옵니다. 서울로 가는 사람이 서울로 가는 상행선을 타지 않고 하행선을 타고는 서울에 갈 방법은 없습니다. 그 길에서 나와서 맞는 길을 타야 합니다. 핵심은 길입니다. 같은 길이 같은 목표에 이르게 해줍니다. 같은 길, 같은 방법이 같은 목적지에 이르게 해줍니다.
(본론)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이와 같은 말씀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도 길을 가셨습니다. 그 길의 끝에는 천국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삶의 네비게이션을 켜서 그 목적지를 천국으로 설정해 놓고 가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천국행 네비게이션은 예수님 당신이니 예수님이 가신 길을 그대로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제 문제는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갈 거냐 말 거냐의 선택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예수님 계시는 곳에 함께 있을 수 있는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종착지는 천국입니다. 아버지가 계신 곳입니다.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이 살아있는 신호등이요, 살아있는 네비게이션이셨습니다. 천국행 네비게이션. 예수님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예수님이 늘 이렇게 말씀해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 천국으로 인도하는 오직 한 길. 예수님.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오면 나 있는 곳에 함께 있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목적지를 천국으로 동일 고정한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살길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같은 말을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천국이 목적지야? 나를 따라오너라. 나를 따라 하거라. 섬기는 자가 섬김을 받는 자와 함께 있게 된다.
serve me? = follow me! 예수님이 세워놓으신 천국 네비게이션 코딩은 이렇게 간단합니다. 섬기는 것과 따르는 것을 같은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액션은 같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모두 천국에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이 사람은 나 있는 곳에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가 그런 사람을 귀하게 여기신다.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말씀 한 구절 소개합니다.
(잠 3:4)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하나님과 사람 모두 귀중히 여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말씀은 이렇게 답을 합니다.
(잠 3: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잠 3:2)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잠 3:3)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여러분, 한 번씩 고민하지 않으십니까? 그냥 떠날까? 이런 삶에서 이젠 좀 떠나볼까? 무언가 삶이 마음처럼 풀리지 않을 때, 이런 생각 한 번씩 하게 됩니다. 보통 떠나고 싶은 상황을 이런 말들로 표현하더군요. ‘00은 개나 줘버려라’ ‘00한들 무슨 소용이야?’ ‘00해서 뭐 밥이 나와 뭐가 나와?’ 어떤 목사님은 자기네 교인 가족들이 자꾸 ‘교회 가면 밥이 나와 뭐가 나와?’라는 말을 자꾸 해서 그 소리 듣기 싫어 교회에서 밥을 주기 시작했다고 하지요.
신앙 양심 그거 개나 줘버려라. 착하게 살면 밥이 나와 뭐가 나와? 정직하게 산들 무슨 소용이야? 등등.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듣는 말들이기도 합니다. 남 안 속이고, 우직하고, 의리 지키면서 착하고 남을 잘 믿으면서 살면 ‘호구’ 또는 ‘호갱’이란 말을 듣게 되는 것이 요즘 세상살이입니다. 호구 같은 고객을 일컬어 호갱이라고 하더라구요.
호구(虎口), 범의 아가리라는 뜻으로, 매우 위험한 지경이나 경우를 이르는 말입니다. 바둑에서 자주 쓰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비슷한 말로, 단수가 있지요. 죽기 전 한 수. 때로 우리 삶의 모양이기도 합니다. 죽기 일보 전. 호구. 그런데 재밌게도 우리 세상에 호구가 없으면 정말 살기 힘들다는 것 아십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나에게 호구 잡혀 주는 친구가 없다면 내가 살 수 있을까? 내 자녀들이 밖에 가서 기 펴고 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집에서 자기에게 호구 잡혀 주는 부모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게 호구 잡혀 주는 친구가 없다면 여러분 숨이나 제대로 쉬며 살 수 있겠습니까? 특출난 재주가 없어도 이 세상에 때로 살아지는 것은 내게 호구 잡혀 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호구 고마운 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집 안에 있는 호구에게 잘해야 합니다. 평생 나에게 호구 잡혀 주는 아내나 남편이 있기에 지금까지 같이 사는 것 맞잖아요.
(결론)
여러분 한 가지 비밀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호구 잡혀 주십니다. ‘하나님 이렇게만 해주신다면 제가 이렇게 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고, 정말 기도가 이루어져도 약속한 대로 잘 안 사는 것이 우리입니다. 대부분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연약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심판이 바로 임하지 않고 잘 살아갑니다. 죄짓고 회개하고 또 같은 죄짓고 또 회개하고를 반복해도 하나님이 우리의 회개를 들어주시잖아요. 우리 같으면 바로, 내가 호구인 줄 아나? 감히 내게 이렇게 해? 라고 하며 멱살부터 잡았을 것입니다.
바둑을 두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바둑은 한 번의 단수로 끝나지 않습니다. 단수를 여러 번 외치면서 호구를 만들어 놓으면 또 피해 나가고, 또 단수로 위협을 가하면 또 피해 나가는 수를 반복하면서 자기 집을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호구를 피해가면서 두 집을 만들면 이제 확실히 산 집이 되는 것이 바둑입니다.
호구와 단수의 연속에서 두 집을 만들지 못한 상태를 ‘미생’이라고 합니다. 아직 살아 있지만 확실하게 산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호구의 위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인생이 꼭 이와 같다고 생각됩니다. 세상이 부르는 단수 앞에 죽지 않고 또 한 수 살아서 나가는 인생. 위태위태하면서도 꼭 한 번에 한 수밖에 놓을 수 없는 바둑.
우리 크리스천 인생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위태해 보이고 이해가 되지 않아도 예수님이 놓으신 수를 그대로 따라 놓는 것. 아무리 급해도 한 번에 바둑돌을 여러 개 놓을 수 없는 것. 매일 하루하루를 신중하게 바둑돌 하나 놓듯이 놓다가 예수님이 그려 놓으신 집을 짓게 되는 것. 매일 예수님을 따라 섬기는 삶의 돌을 놓다 보면 어느새 이긴 게임을 하고 악한 마귀 사탄의 항복을 받아내게 되는 것. 우리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악한 사탄이 매일 우리에게 윽박지릅니다. 단수!! 한 수만 잘못 놓으면 죽을 수도 있는 위태로운 바둑판처럼 우리 삶이 단수에 몰려있다면, 예수님의 훈수를 따라 내 삶의 돌을 놓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 내 삶의 단수 위기에서 계속 살아나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 끝에 가보면 승리의 기쁨을 맛보는 일이 반드시 생겨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바로 섬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삶의 정석을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힘과 지혜로는 이길 수 없는 인생 바둑을 두고 있습니다. 사탄을 상대로 바둑을 두려면 예수님이 두신 길을 나도 따라 두는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주일을 맞아 매일 한 걸음씩 예수님 따라가다가 십자가를 지나 부활하신 주님 계신 곳에 우리 모두 함께 있게 되기를,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