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류의 스승 베로키오
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전기를 읽다가 그의 스승이자 당대의 최고의 거장이었던 베로키오가, 레오나르도가 천사의 그림을 그렸을 때, 그만 그의 붓을 꺾어버렸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이해하게 되었고, 몇 날, 며칠 동안을 그 신선한 충격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했던 경험을 간직하고 있다. 아직도 나는 그 신선한 충격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있고, 산책을 하거나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에, 그 사제지간의 아름다운 명장면을 떠올려 보게 된다. 베로키오에게 있어서 레오나르도의 출현은 그의 사망선고 이상이며, 레오나르도에게 있어서 그의 스승 베로키오는 그가 짓밟고 넘어가야 할 ‘인식론적 장애물’에 불과하다. 레오나르도가 천사의 그림을 그렸을 때, 붓을 꺾어야만 했던 베로키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나는 틀렸다, 나는 화가로서 더 이상 존재할 가치조차도 없다’라고 탄식했을까? 아니면, 물에 빠진 어린 녀석을 구해주었더니, 이제는 내 생명마저도 빼앗아간다라고, 벌컥 부아가 치밀어 올랐을까? 또, 그것도 아니라면, 이 세상의 진정한 그림은 레오나르도라는 천재에 의해서만 그려질 수 있는 것이라고 기뻐했을까? 나는 베로키오도 인간인 이상, 그 탄식, 부아, 기쁨이 중층적으로 겹쳐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스승으로서의 베로키오는 그 탄식, 부아, 기쁨 중에서, 그 기쁨을 선택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훌륭한 화가, 즉 레오나르드 다 빈치의 탄생을 아주 감동적으로 맞이하게 된다. “천재란 레오나르도를 두고 하는 말이로구나! 다시는 내 손에 물감을 묻히지 않겠노라!”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화가로서의 베로키오는 죽었지만, 진정한 스승으로서 그는 인류의 문화사 전체 속에 영원히 살아 남아 있다. 니체와 그의 스승, 리츨 교수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고전문헌학자로서의 리츨 교수는 니체의 논문이 마치, 프랑스 소설처럼 재미 있으면서도 깊이가 있다고 극찬을 하고, 이제 겨우 24살 짜리를 스위스 바젤대학교의 교수로 천거를 해 준 것은 물론, 어떤 박사 학위 과정이나 논문을 쓴 적도 없는 니체에게 무상으로서 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파격적인 은전을 베풀어 주었다. 베로키오--레오나르도, 리츨--니체의 관계 이외에도 또다른 차원의 진정한 사제의 관계도 있다.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알렉산더, 바슐라르--캉기옘--미셸 푸코, 후서를--하이덱거 등의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스승이나 제자가 모두가 한결같이 세계적인 대 사상가가 되었거나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인물들이긴 하지만,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스승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아무래도 베로키오와도 같은 커다란 감동을 던져주지 못한다.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항상 갈고 닦지 않으면, 우리 학자들은 결코, 진정한 스승의 위치로 자기 자신을 높이 높이 끌어올릴 수가 없다.
우리 학자들은 인간적으로는 더없이 교활하고, 학문적으로는 더없이 고루하다. 그들은 돈, 명예, 권력----, 이를테면 대학제도, 학회, 언론, 문학상, 출판제도를 이용하여, 훌륭한 제자의 출현을 가로막고, 그 제자들의 영광의 무대를 빼앗아버린다. 또한, 그의 못난 제자는 ‘아버지 살해’가, 프로이트가 역설한 대로, 모든 문화를 움직여 가는 근본적인 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스승의 권위가 두려워, 어떠한 홀로서기도 시도하지를 않는다. 그 극단적인 예가 김현과 정과리의 관계이며, 그들의 관계는 전 근대적인 부자세습의 나쁜 선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진정으로 위대한 천재는 ‘아버지(스승)’를 살해하고 매우 어렵고 힘들지만 가시밭길의 형극 속을 헤매다니다가, 그의 말년이나 사후에 평가를 받는 것이 보통이다. 思無邪의 경지는 스승으로서의 선행조건이고, 모태이며, 토양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좋은 생활의 태도와 좋은 학습의 태도가 思無邪의 전제조건임은 두 말할 필요조차도 없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위대한 스승으로서의 베로키오의 인간 승리가 레오나르도의 [모나리자]나 [최후의 만찬}보다도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만일, 베로키오가 없었더라면, 레오나르도의 천사의 그림이 존재할 리가 없었고,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훌륭한 스승으로서의 전범이 영원히 사라져 갔을는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레오나르도의 천재성과 그의 예술작품만을 부각시키고, 위대한 스승 베로키오에 대해서는 그 관심조차도 보이지를 않는다. 그 역사가--호사가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쫓아다니는 판단의 어릿광대들이며,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진실은 이해하지도 못하는 눈 뜬 봉사들이다. 베로키오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 아름다운 사제 관계를 생각해볼 때, 우리가 미처 갖추지 못한 덕목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두 말할 필요조차도 없이, 아름다운 사제의 관계이며, 그 아름다운 사제의 관계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는 것을 뜻한다.
----[강준만 비판]({비판, 비판, 그리고 또 비판 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