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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있다 실천 수행이 있다<1>천영필만번 무명의 깨달음[무明智]도실천 수행이 따르지 않으면한번 깨달음의 수행 [行佛] 만 못하다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갓데 갓데 바라갓데 바라상갓데 보디 스바하갓데 갓데 바라갓데 바라상갓데 보디 스바하갓데 갓데 바라갓데 바라상갓데 보디 스바하있다 있다 모두 있다 바로 지금여기 모두 있다앗싸~ 아~ 만세 만세 만만세실천궁행( 實踐窮行)행불 (行佛)사성제 팔정도
悟道 <2>천영필*천상천하유아독존세상이 따로 있고 내가 따로 있는게 아니다내안에 세상이 있는 거다내가 곧 세상이요내가 전부요내가 없는 세상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렇게 통찰할 때 중도요자등명 법등명 으로 존재 합니다세상의 중심에 나를 두고 통찰해야사성제가 팔정도가 수련 됩니다이게 *中道論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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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가 니까야』, 『맛지마 니까야』 등
초기 경전에 의하면,
붓다는 마야 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나자마자
북쪽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나서
곧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다.
다시 태어남은 없다.”
(DN14경, MN123경).또 한역 『장아함경(長阿含經)』을 보면
붓다는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은 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천상천하 유아위존 요도중생 생로병사
[天上天下 唯我爲尊 要度衆生 生老病死]”
(대정장 T1, 4중).
이는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내가 존귀하다.
요컨대 나는 중생들을 생로병사에서 건질 것이다.’
라는 뜻이다.“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은
인도 부파 중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문헌과
현장(玄奘)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도 나온다.
이는 앞의 초기 경전에
연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부처의 이 탄생게는
선종의 공안의 하나로 정착되었으며,
고려시대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의
『선문염송(禪門拈頌)』에는
두 번째 공안으로 제시되어 있다.선문염송 2칙
세존주행(世尊周行)은 다음과 같다.
“세존께서 태어나셨을 때 일곱 걸음 두루 걷고서
사방을 둘러본 후,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오직 나만이 존귀할 뿐이다.’
〈운문문언(雲門文偃)의 염
‘내가 당시에 그 광경을 보았다면,
한 방에 때려죽이고
개에게 먹이로 주어서
천하의 태평을 도모했을 것이다.’〉
”(『정선 공안집』 1).
간화라는 수행법을 세운 후
선종에서는 붓다의 탄생게도
화두로 삼아 자신의 깨달음의
소재로 삼았다는 점을
혜심은 선문염송 편집에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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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선 | 2016/10/13 11:27>
전남대학교 이중표 교수-중도와 십이입처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높게 평가받고 있는 책이용수의 중론이라고 생각한다.내가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은 책이용수의 중론이다.처음에는 읽으면서 너무 어려워왜 그런 평가를 받는지 이해하지 못 했다.
하지만 계속 읽으면서 사유하다 보니
정말 제2의 부처로칭송받아도 손색이 없다는생각을 하게 됐다.
오늘은 중론에서‘열반과 세간은 조금도분별한 것이 없다’는 것을가지고 이야기 하겠다.
불교의 목적은 열반이다.
중론의 열반품은우리의 목적인열반을 어떻게 이해하고어떤 게 바른 이해인가를 말한다.
여기서 열반과 세간은조금도 분별할 것이 없다.그리고 세간과 열반도 또한조금도 분별한 것이 없다.
이것은 동일한 말을 하는 것이다.
A=B이고 B=A라는 것이다.하지만 여기서는 분별되지 않는다고 말한다.다르긴 한데 분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론에는 이에 대해“열반의 실상과 세간의 실상은호리의 차별도 없다”는 것이다.우리는 어떻게 열반을 추구할 것인가.
의상대사의 법성게에생사열반상공화라는 말이 나온다.이것은 생사의 자리에서 깨달음 얻어올바른 실천을 하게 되면열반을 증득하게 될 것이지만현실에서의 생사와 열반은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종교는 현실에서 이상을 추구한다.
이상을 어디에 두느냐는 중요한데사람들은 이상을 추구할 때자기가 있는 자리를 떠나고 싶어 한다.
딴 세상에 가고 싶어 한다.천당이나 극락을 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론에서는 서있는 자리를 떠나서열반을 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달라져야 옳은 것처럼 생각하는데그러지 말라는 것이다.
실제 실상을 보면생사로서 느끼는 그 자리가 열반의 자리인데인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불자들은 신세를 바꾸려 하지 말라.생사는 항상 함께하고 있어,그 자리가 열반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깨달음을 통해 나오는 세계로인식의 변화이고,의식의 전환이다.
불교는 존재론적으로수행 목적이 열반에 있는데고통스런 현실 속에서 열반을 얻으면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런 생각이 든다면 부처님을 생각하라.부처님은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거기서 열반을 발견한다.
무엇이 문제인가.우리 의식이 문제다.
현실 존재를 변화시키자는 것이 아니라우리 의식을 변화시키자는 것이다.
의식은 변한다.삶을 통해 변한다.선한과보가 열반이다.
열반도 업을 통해 성취하는 것이다.수행도 업이다.
선업이다.이런 것을 알고 공부해야겠다."
고(苦)<3>천영필고통[苦]이 나를 잡고 있는(苦執) 게
<내가 고통 속에 있는게>아니라
내가 *고통[苦]을 잡고 있는 것[我執]
<내 속에 고통을 품고 있는 것> 이다
놓아버려라
품지마라
내려 놓아라 [放下着]
방출해 버려라
그러면 저절로 해방 [自由] 되리라
바로 지금 여기서 解脫하리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고집멸도 사성제(四聖諦)
이는 불교의 네 가지 높은 깨우침이란 뜻이다.1. 고 (苦). 인간의 현실적 존재는곧 괴로움이다.고(苦)에는사람이 겪는생고(生苦)와 노고(老苦)병고(病苦) 사고(死苦)의 괴로움 생로병사의 4고(四苦)와,미워하는 것을 만나야 하는원증회고(怨憎會苦) 의 괴로움과사랑하는 것과 헤어져야 하는애별리고(愛別離苦) 의 괴로움과구하는 바를 다 얻지 못하는구부득고(求不得苦) 의 괴로움과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에 집착하는육체적인 본능에 의한오음성고(五陰盛苦)의 괴로움인4고 (四苦)가 있다.2. 집(集). 탐욕과 욕망과 갈애와 열망이결합하여 일어나는괴로움의 원인인집착을 말한다.3. 멸(滅). 번뇌와 고통이 모두 없어진해탈 및 열반의 경지 즉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해탈하고생사를 초월하여불생불멸의 진리를 체득한경지를 말한다.4. 도(道).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을 말하며,이는 곧 종교의 생명이며실천수행 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道의 구체적인 항목으로는깨달음에 이르는여덟 가지의 성스러운 길즉 8정도(八正道)가 있다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8정도(八正道)“지혜로운 사람은 ‘올바른 집중’을 실천”정념(正念),
즉 올바르게 마음을 챙기고 알아차리는 수행은
다른 곳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어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이는 깨달음으로 가는
직접적 길이며
이 보다 더 중요한 실천은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사성제와 연기법을 터득함으로써
정견을 확립하여
지혜로워진 사람은
정정(正定),
즉 올바른 삼매 즉 올바른 집중을 실천한다.
초기불교의 실천을 집대성한 <청정도론>에서는
이를 실천하고 성취하는 방법을
40가지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팔정도 수행하면 탐진치 극복 가능개인뿐 아니라 세계의 행복과 연결올바른 집중의 첫 번째 단계에서는
관능적 욕구, 악의, 무기력, 근심, 불안 및 회의적 의심 등을 버림으로써
즐거움과 행복의 감정을 유지한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일체의 지적인 활동을 그침으로써
‘마음의 평정한 집중(心一境性)’을 유지한다.
즐거움과 행복의 감정 역시 그대로이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활동적 감각과 즐거움의 느낌을 그침으로써,
행복감이 마음의 평정한 집중과 더불어 남는다.
네 번째 단계에서는
행복과 불행, 즐거움과 슬픔 등 모든 감정을 그침으로써
오로지 순수한 평정과 깨달음만 남는다.
올바른 집중이란
한 곳에 온전하게 몰입돼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평정을 지속하는 실천을 의미한다.한편, 올바른 집중의 의의는 이것이 불교적 실천의 핵심, 즉 바르게 보기의 힘이 된다는 점이며 궁극적으로는 깨달음으로 인도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올바른 집중의 연장선 그 끝에서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깨달음 이후 첫 제자들에게 베푼 첫 설법이 팔정도였고, 입멸직전 마지막 제자 수밧다(Subhadda)에게 설한 내용도 팔정도이다. 붓다는 이 팔정도만이 우리를 온전한 행복으로 인도한다고 하신다.어떠한 중요한 길이 있어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여 … 출가 수행자의 목적을 이루게 되었는가? 이른바 여덟 가지 올바른 길이 그것이다. 여덟 가지 바른 길이란,
바르게 보기,
마음 가지기,
말하기,
행동하기,
생활하기,
노력하기,
마음 챙기기,
집중하기이니,
이것이 ‘완전한 행복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길이다.나는 이것으로써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여 … 출가 수행자의 목적을 이루어
완전한 행복(涅槃)에 이르렀느니라.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이처럼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상적 가르침의 요점이
연기법에 있다면
실천적 가르침의 요점은
팔정도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붓다의 제자이고자 한다면
팔정도를 정확하게 이해하여 간직하고,
삶의 모든 순간에서 실천하는 것이 필수다.
불자는 팔정도를 실천 수행함으로써
일체 고통의 원인인
탐진치 삼독(三毒)을 극복하고
완전한 행복인
열반을 성취한다.한편, 팔정도의 실천은
개인의 행복뿐만 아니라
세계의 행복과도 무관하지 않다.
팔정도 중에서
바른 말.바른 행동.바른 생활은
‘윤리적 실천(戒)’에 속하고,
바른 노력.바른 마음챙김.바른 집중은
‘마음집중의 실천(定)’에 속하며,
바른 견해.바른 생각은
통찰의 실천(慧)에 속한다.
이 가운데서 윤리적 실천은
나의 행복뿐만 아니라
타자의 행복,
즉 세상의 행복을 지향한다.
따라서 팔정도는
나와 남이 함께 행복으로 가는
완전한 길인 것이다.윤영해/ 동국대 불교문화대학 불교학과 교수[불교신문 2355호/ 8월29일자]
공 (空 [순야타])<4>천영필부처[觀自在菩薩]는나라고 여길 만한다섯 덩어리오온(五蘊)이 다 비어 있[空]으며환(幻)이고자성이 없다고자신 스스로 관찰할[觀自在] 때일체고액에서 해방된다중생은오취온하에 묶여*오온에 집착하면서윤회전생에 빠진다五蘊을 **五取蘊이라고 한 것은붓다의 혁명적인 발견이다.괴로움을 극복하고 싶다,해탈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五蘊에 대한 애착을 버리는 것이다따라서 윤회전생을 벗고구경열반에 든다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오온 ㅡ나라고 여기는 다섯 덩어리색수상행식색온, 수온, 상온, 행온, 식온은모두 공한 것이므로집착을 버리면해탈이다**五蘊은 집착할 가치가 없는 無常(무상)인 것이다. 순간순간 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하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타인 탓으로 돌리는 것은 기분이 좋은 것이다. 불교는 이 상태를 무명(무지)이라고 말한다.‘無明(무명)에 의해서 괴로운 것이다. 마음이 오염된 것이다.’라는 것이불교의 이야기이다. 無常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五蘊에 집착한다. 그래서 마음이 오염되고, 번뇌가 나타나고, 괴로움이 계속한다. 죽음을 맞이하고도하고 싶은 일이 많이 남아 있으므로, 아직 죽고 싶지 않으므로, 좀 더 살고 싶으므로(行取蘊) 다시 어딘가에 태어나게 된다. 또 다시 五蘊에 집착해서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이것을 輪廻(윤회)轉生(전생)이라 한다. 輪廻轉生의 원인은 五蘊에 집착하는 것[五取蘊]이다. 집착하고 있다고 해도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가라고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인간이 천국, 영원의 낙원, 극락정토에대하여 집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직 천계, 영원의 낙원 등의 개념(想)에집착하고 있는 것이다.신에 대한 사랑은 불가능하다. 불완전하고, 아무것도 뜻대로 되지 않는인생이며, 또한 괴로움에 빠져서살아가고 있기 때문에그러한 특색이 아무것도 없는전지전능한 神을 망상한다. 그 개념(상온)에 집착하는 것을 ‘사랑(愛)’이라고 말한다. 神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남을 사랑하기란 어렵다. 연인이나 애완동물을 사랑하고 있다고말하지만실은 자신을 사랑하고 있을 뿐이다. 想蘊(상온)이다. 그 즐거운 추억을 계속하고싶은 것(行蘊)이다. 그 결과 다시 마음에 애착이생겨난다. 그것을 남을 사랑하는 것이라고오해하고 있다. 자신의 생각(想)에 애착하는새로운 생각(想)이 더해졌을 뿐이다.
환멸문 ( 還滅門 ) <5>
환멸문천영필*연기를 역관으로 관찰하신 부처님無자 통찰의 지혜연기를 끊어 해탈에 이르는환멸문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
무고집멸도 무지 역무득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무명도 없고,또한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늙음/죽음도 없으며,또한 늙음/죽음이 다하는 것도 없다.
12연기법의 역관으로 수행[참구]하여
중생들의 고통은
제① 원인인
'무명(無明)'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무지(無智)가 없는 곳
[① ~ ⑫의
모든 실체를 아는_明]에서는
업력과 인상도 있을 수 없으니,
윤회고(輪廻苦)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즉, 해탈에 이르는
해탈문이환멸문이다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역관(逆觀):
⑫노사(老死)에서 출발 →
①무명(無明)의 방향으로
관찰하는 것으로
추리적 사색의 방향이며,
수행(참구)의 방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십이연기설의 '역관(逆觀)'의 내용은,
석존이 스스로 깨달아 가신 내용,
즉'직관순수자증내용
(直觀純粹自證內容)의
방법(방향)이라 할 것입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석가모니 부처님은 ;(참구하기를)_⑫ 죽음이란 무엇인가 ? -!- 태어났기 때문에 '노·병·사'를
하게되는 것이다._⑪ 태어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 -!-
무언가 태어나고자 하는
힘(의지)가 있어서 태어나는 것이다._⑩ 그 의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 -!-
그 어떤 집착에서 생기는 것이다._⑨ 이 집착은 무엇에 기인하는 것일까 ? -!-
이러한 집착은 대상에 대한 갈
애가 있기 때문이다._⑧ 그러면 갈애는 왜 일어나는가 ? -!-
축척된 경험에서 일어난다._⑦ 이러한 경험은 왜, 어떻게 가능한가 ? -!-
감각적경험은 대상이 있기 때문이며, 또한 그것은 감각기관과
대상의 접촉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다._⑥ 접촉이란 ? 또 어떻게 일어나는가 ? -!-
접촉은 대상에 대한 여섯 가지의 감각기관 (육근)과 이에 뒤따르는 마음
(내적 감각기관: 육처)에
의해 일어난다._⑤ 그러면 이러한 것들은 또 어디에
의존하여 일어나는가 ? -!- 태내의 심적(정신적),
육체적 유기체에 의존한다._④ 그러면 이것들은 또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 -!- 모태적 유기체는
이전의 그 어떤 원초적인 의식으로부터 일어난다._③ 이러한 원초적 의식은 어떻게 생겼는가 ? -!- 원초적 의식은,
과거 경험의 잔재(果)로 생겨난 것이다._② 이것은 -!- 업력(行: 축척되고 집착된)에
기인한다. 그리고 -!-_① 이것들은 -!- 무명(무지)에서
출발한 것이다. 라는 '인연생기(因緣生起)'의
법칙을 확철히 깨달으신 것입니다.위 ①~⑫까지를 다르게
(공부입장에서 이해를 위해 풀어서)
보면_과거생에 관련>: ① 무명 · ② 행_현재생에 관련>: ③ 식 · ④ 명색 ·
⑤ 육처 · ⑥ 촉 · ⑦ 수 · ⑧ 애 · ⑨ 취 · ⑩ 유
_내來생에 관련>: ⑪ 생 · ⑫ 노사 _의
내용으로 풀이(이해) 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 중생들의 고통은
제① 원인인 '무명(無明)'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무지(無智)가 없는 곳[① ~ ⑫의
모든 실체를 아는_明]에서는
업력과 인상도 있을 수 없으니,
윤회고(輪廻苦)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
삼법인(三法印) 등의
모든 가르침은
이 연기설(12연기설)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됩니다.
따라서 연기(緣起)의 도리(道理)를 바르게 알아
지혜의 세계가 열리면
여래(진리: 明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라는 석존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삼계(三界)에 있는 것은
오직 일심(一心) 뿐인데, 여래가
이것을 분별하여 열 두가지 라 하였으나,
모두 一心에 의지하여 이렇게 세운 것이다."
-<十地品. 第6現前地> 연기(緣起)의 설명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진리란 개념적으로 이해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
현실 속 진리(相依相關性)에 들어가
진리의 한 부분이 되어 살아가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열반이나 해탈의 의미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자그리하 칼란다카 대나무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인연법(因緣法)과
연생법(緣生法)을 말하리라.
어떤 것을 인연법이라 말하느가.
이른 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다는 것이니,
곧 무명(無明)을 인연하여 행(行)이 있고,
행을 인연하여 식(識)이 있으며,
식(識)을 인연하여 명색(名色)이 있고,
명색을 인연하여 육입(六入)이 있고, 육입을 인연하여 닿음(觸)이 있고,
닿음을 인연하여 느김(受)이 있고,
느낌을 인연하여 애착(愛)이 있고,
애착을 인연하여 취함(取)이 있고,
취함을 인연하여 존재(有)가 있고,
존재를 인연하여 태어남(生)이 있고,
태어남을 인연하여 늙음(老) 죽음(死)
그리고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이는 것이다. 어떤 것을 연생법
[緣生法:인연을 무생(無生)의 입장에서 설한 법]
이라 하는가.
이른 바 무명과 행은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거나
세상에 나오시지 않거나
이 법은 항상 머물러 있는
법의 머무름이요,
법의 세계로서
그것이 여래가 스스로 깨닫고 알아
올바른 깨달음을 이루어 사람들을 위해
연설하시어 열어 보이시고
나타내어 드날리신 바이니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나아가서는 태어남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거나
세상에 나오시지 않으시거나,
이 법은 항상 머물러 있는
법의 머무름이요,
법의 세계로서
여래가 스스로 깨닫고 알아
올바른 깨달음을 이루어
사람들을 위해 연설하시어
열어 보이시고 나타내어
드날리시는 바이니, '태어남을 인연하기 때문에
늙음 · 병 · 죽음 · 근심 · 슬픔
· 번민 · 괴로움이 있다'
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법은
법의 머무름(法住) ·
법의 공함(法空) ·
법의 한결같음(法如) ·
법의 그러함(法爾)이다.
법은 한결같음(如)을
떠나지 않고
법은 한결같음과
다르지 않으며,
분명하고 진실하여
뒤바뀜이 없이 연기(緣起)를
그대로 따르나니
이것을 연생법이라 한다. 곧 무명 · 행 · 식 · 명색 · 육입 ·
닿음 · 느낌 · 애착 · 취함 · 존재 ·
남과 늙음 · 병 · 죽음 · 근심 ·
슬픔 · 번민 · 괴로움이니
이것을 연생법 (緣生法)이라 한다.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는
이 인연법과
연생법을 바르게 알고
잘 보아 과거를 구하여
'내 과거 세상은 있었던가
혹은 없었던가.내 과거 세상은 어떤 종류였던가.
내 과거 세상은 어떠하였던가'라고
말하지 않고,
미래를 구하여
'내 미래 세상은 있을 것인가.
혹은 없을 것인가.
어떤 종류일까.어떠할까라고 마음으로
의심하지 않으며,이것은 어떤 종류인가.
어떻게 이것이 있는가.장래를 위해
누가 마침내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 중생은 어디에서 왔는가.
여기서 사라지면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라고
마음으로 망설이지도 않는다.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범속한 견해를 일으키어
얽매이며,
이른 바 나라는 견해를 말하고
중생이라는 견해를 말하여
얽매이며,
수명(壽命)이라는 견해를 말하여
얽매이며,
꺼리고 싫어하며
즐겁다는 견해를 말하여
얽매이면,그 때에 거룩한 제자는
그 모든 것을 다 끊고
다 알아, 그 근본을 끊기를
타라나무 줄기를 끊는 것과
같이 하여
미래 세상에 있어서
나지 않는 법(不生法)을 이룬다.
이것을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가
인연법과
연생법에 대하여
실답게 바로 알아
잘 보고
잘 깨닫고
잘 들어가는 것]
이라 한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잡아함경 권 12, 인연경(因緣經) 2002.03.28.공부방(1)/M :[근본교설◇목차]: 다음▶내용⑤
*무명
인간의 괴로움 또는 근본 번뇌를 의미하는 불교교리.무명은 무지를 뜻하는 것으로,
불교의 여러 경전에서 갖가지 심오한 해설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일체 사물에 대한 도리를 밝게 알지 못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거나
진리에 대한 무지로 통용되고 있다.인간 생사의 근원을 밝히는
12연기(緣起)의 첫머리에 나오는
무명은 ‘나’가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요
‘나’를 범부이게끔 하는 근원이며,
모든 번뇌의 근본이요
일체 악업(惡業)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또 ≪본업경 本業經≫에서는
“무명은 일체법(一切法)을
밝게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고,
≪대승의장 大乘義章≫에서는
“진리를 요달하지 못하는 것을
무명이라고 한다.
무명은 어리석고 어두운 마음이다.
그 본체에는 지혜도 밝음도 없다.”
고 하였다.≪구사론≫에서는
“무명의 모습은 사제(四諦)와
삼보(三寶) 및 업(業)의
원인과 결과를 모르는 데 있다.”고 하였으며,
≪유식론 唯識論≫에서는
“무명은 모든 사물과 이치에 대하여
미혹되고 어리석은 것을 본성으로 삼고,
능히 지혜를 결박하여
일체를 잡되고 물들게 하는 것으로서
그 업을 삼는다.”
고 하였다.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이 채택하고 있는 것은
≪기신론 起信論≫에서의 무명에 대한 해설이다.
≪기신론≫에서는
무명을 두 가지로 나누었는데,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최초의 한 생각을
근본 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그 근본 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게 또는 거칠게 일어나는
모든 허망한 생각들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고 하였다.무명은
불교의 기본 교리로서
불교가 여러 부파(部派)로 나누어진 뒤에도
인간의 괴로움을 설명하는
근본 교설로 채택되었고,
2종무명·
5종무명·
15종무명 등으로
무명을 세분하여 해석하였다.그러나 석가모니 당시부터
무명은 원래 실체가 없는 것으로 설명되었고,
선종에서는 독자적인 개체로서가 아니라
세계의 본성을 뜻하는
법성(法性)과의 일체로 파악되었다.무명법성일체설에서 볼 때
법성과 무명은
마치 얼음과 물의 관계와 같다.
무명이라는 얼음의 본성은 원래가 물이다.
얼음이라고 하지만
물의 성품을 벗어 버리지 못한다.
사람의 심성은 본래 얼음이 아니나
법성의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된 것일 뿐,
어느덧 홀연히 생겨난 무명은
곧 근본 깨달음인
본각(本覺)의 법성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이 무명법성일체설은
우리 나라 선종에서도
뿌리를 내려 무심선(無心禪)을
정립하기에 이르렀고,
번뇌와 고통을 피하려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생활하라는 실천적 규범을
낳기도 하였다.신라의 원효(元曉)는
≪대승기신론소≫에서
일심(一心)을 설명하면서,
일심 이외에 별다른 법이 없으나
무명으로 말미암아 일심을 미하게 되어
갖가지 번뇌를 일으키고
육도(六道)를 윤회하게 된다고 하였다.원효는 이 무명을
잠재적인 충동력이라고 보았다.
곧 이 충동력 때문에
어리석은 마음이 동요하게 되지만,
무명 자체는 아직 주관과 객관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라고 하였다.
즉, 무명은 일심을 동요하게 하는
원초적인 힘으로 파악하였고,
이 무명의 충동력이
계속해서 일심의 바다에
물결을 일으키게 될 때
고통스러운 결과를
낳게 된다고 보았다.따라서 무명은
모든 고통스러운 결과의
가장 원초적인 원인이 되며,
이 무명을 없앨 때
일심의 원천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참고문헌『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원효)『원효사상』-세계관-(이기영, 홍법원, 1967)집필자 김선근"
*아함경/니까야/청정도론에서도
명확하게 나와 있듯이
해탈의 문이
바로 空입니다.
空 그 자체에는
늙음도 없고,죽음도 없으며,
늙고 죽음이 다하는 것도역시 없기 때문에,이 空은 모든 것을 벗어난해탈의 문인 것이죠.하지만 중생은 반대로 해탈을해석합니다.
뭔 실체가 있어서 그게 영원한 기쁨인해탈을 얻는다.....라고여기는 것입니다.
반야바라밀은 그와는정반대입니다.완전히 거꾸로 입니다.그래서 불교는 세속의 종교나철학이나, 세속의 도 닦는 것과는차원이 다른 것 입니다.
팔불 *중관 <6>천영필손바닥이 마주 쳐야 박수가 되듯혼자로서는 짝소리를 내지 못한다인연생기로 완성되고 흘러가는 것이다“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항상 하지도 않고 단멸하지도 않는다.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능히 이 인연을 말해서모든 희론을 없애니모든 설법자 중 제일이신 부처님께머리 숙여 예배드립니다.”
(不生亦不滅 不常亦不斷 不一亦
不異 不來亦不去 能說是因緣
善滅諸戱論 我稽首禮佛 諸說中第一)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오온개공 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무색성향미촉법따라서 제법이 공하니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도 없고더럽혀지는 것도 깨끗해지는 것도 없고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 또한 없다나라고 할만 한 다섯 덩어리 오온도 없고내 몸이랄 것도 내 감각이랄 만한**육입도 육처도 없으니연기에 들지 않으면 해탈이다ㅎ ㅎㅎ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불교사상 가운데,언어를 가장 비판하면서도언어를 잘 활용해깨달음에 이르게 한 학파(종파)가중국의 선[선종]과 인도의 중관사상[불교]이다.선과 중관에서 언어의 기능은 이중적이다.선과 중관에 의하면언어를 통해깨달음[열반]을 획득할 수도 있고,고통[윤회]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인간은 언어를 통하여개념을 형성하며 모든 판단을 한다.한 마디로 인간은 언어를 통해일체를 분별하는 것이다.인간은 분별을 통해옳고 그름을 따지며좋고 나쁨을 구별하고아름다움과 추함을 논하는 등일체의 사유 판단을 한다.선과 중관에서는이러한 일체의 사유 판단,즉 분별을 모든 고통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그래서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해서는분별하는 마음[분별심]을여윌 것을 강조한다.그런데 모든 고통의 원인이 되는분별심의 주체가 언어라면,고통의 뿌리가 되는언어를 제거해야 한다.다시 말해 모든 괴로움을 소멸시킨열반, 즉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분별심을 조장하는 언어로부터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이다.이 글은 이와 같은 언어의 이중성을철저하게 파악하였던선과 중관에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언어를 어떻게 방편적으로활용하는지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선과 중관은언어를 깨달음을 위한필수불가결한 방편으로 활용하지만,그 방법은 서로 다르다.선과 중관 모두모든 고통의 원인이 되는언어(개념, 분별심)의 해체를목표로 하지만,중관은 사구부정(四句否定)과희론적멸(戱論寂滅),그리고 선은선문답(禪問答)과언어도단(言語道斷)을 통해언어를 해체함으로써분별심을 타파한다.중관의 사구부정은인간이 논할 수 있는사유의 모든 형식체계를네 가지 범주(catuṣkoṭi)로 나누어,이 모두가 성립할 수 없음을보여줌으로써무분별지를 획득하고자 하는체계이다.그 결과 대립과 분별을 초월함으로써공성을 획득하게 된다.이른바 희론적멸로써열반적정을 성취하는 것이다.선불교는 언어를 사용하여언어의 길을 끊어버림으로써분별의식을 끊고,분별의식이 끊어짐으로써본래의 마음을 보는 것이다.따라서 언어도단은언어로부터의 해탈이며,언어로부터의 해탈은분별의식 혹은 관념[개념]으로부터의해탈이다.선과 중관에서언어의 기능은고통(윤회)과 깨달음(열반)의두 측면을 모두 갖고 있다.언어의 최고 기능과한계를 끝까지 몰아 부친 그 결과선과 중관은인간의 모든 고통과 평안의 근거가언어에 있음을 간파하여언어의 역기능을 제거하고순기능을 최대한 살리고자 하였다.따라서 선과 중관의 수행은신체적인 측면보다는인식론적 전환이 더욱 중요하다.그러한 의미에서선과 중관에서의 깨달음이란언어를 통해인식론적인 비약 또는체험을 의미하는 것이다.그것이 선(禪)이고 공(空)이다.Among Buddhist ideologies, the schoolsthat criticize language the most anduse language to lead to enlightenment arethe Chinese Zen and the IndianMādhyamika. Language has dualfunctions Zen and Mādhyamika.You either attain enlightenmentthrough language or fall into the abyssof pain[samsara].Humans form concepts and makeall judgments through language.In a word, humans identify everythingthrough language. Men make all kindsof judgments, such as right and wrong,by distinguishing between good and bad,and by discussing beauty andugly things.Humans form concepts and makeall judgments through language.The Zen and Mādhyamika use languageas an indispensable means ofenlightenment, but the methods aredifferent.Both Zen and Mādhyamika aim todismantle the language(concept,discernment) that is the cause ofall suffering.By Mādhyamika breaks throughdiscrimination by deconstructinglanguage through catuṣkoṭi andextinction of prapañca, and Zenthrough Zen's question andanswer and unspeakable.The catuṣkoṭi negation ofMādhyamika divides all the formalsystems of human arguable intofour categories,and attempts to attain enlightenment by denying them all.As a result, Śūnyatā is obtained by transcending
opposition and discrimination.To achieve so-called Nirvana by theextinction of prapañca.Zen Buddhism uses language to cut off the path
of language, thereby breaking the consciousness
of discernment, andseeing the original mind by breakingthe consciousness of discernment.Therefore, unspeakable is liberation from language,
and liberation from language is liberation
from discernment or idea [concept].In Zen and Mādhyamika, the function of language
has both aspects: suffering (reincarnation) and
enlightenment (nirvana). As a result of pushing the highest
function and limit of language to the end,Zen and Mādhyamika understood thatthe basis of all human suffering andpeace lies in language, so they tried to eliminate
the dysfunction of language and maximize its good function.
Therefore,in the practice of Zen and Mādhyamika,the epistemological transformation is more important than
the physical aspect.In that sense, enlightenment in Zen and Mādhyamika
means an epistemologicalleap or experience through language.That is Zen and Śūnya.공한 본질의 이치에서일어나는 연기현상이 있을 때이는 가(假)가 된다.실체가 없기 때문에임시로 있는거짓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그러나 공(空)과 가(假)가서로 분리되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연기하면서 공한 것이고공하면서 연기하는 것이므로공이 곧 가고가가 곧 공이 되는 것이다.<반야심경>의 색불이공(色不異空)공불이색(空不異色)이란 말처럼공이 가이고가가 공이면서더 나아가 공도 아니고가도 아니면서공이고 가인 것을중도(中道)라 하는 것이다.또 중도에 의해서 보면삼제(三諦)가 원융하다는삼제원융설이 나오기도 했다.용수는 먼저 <중론> 초품에서팔불중도(八不中道)를 말한다.“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항상 하지도 않고 단멸하지도 않는다.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능히 이 인연을 말해서모든 희론을 없애니모든 설법자 중 제일이신 부처님께머리 숙여 예배드립니다.”(不生亦不滅 不常亦不斷 不一亦不異 不來亦不去 能說是因緣善滅諸戱論 我稽首禮佛 諸說中第一)여덟 가지 부정(八不)을 통해그릇된 유(有)의 견해를 척파한 이 말은<중론>의 근본 대의라 할 수 있는 내용이다.**안이비설신의색성향미촉법이근(耳根)+이식(耳識)이 이처(耳處)이고,비근+비식이 비처이고, 설근+설식이 설처이고,신근+신식이 신처이고,의근+의식이 의처였습니다.기능이 파괴된 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 의근은육입의 ‘처(處)’를 구성할 수 없었습니다.그리고 살아가면서 보거나 듣거나 냄새 맡거나맛보거나 감촉하거나 법을 인식하는 것은대상을 감각하는 것이므로,감각하려면 주관과 객관이 있어야 합니다.그래서 ‘안이비설신의’는 감각주관이 되어육내입처라 하고,‘색성향미촉법’은 객관이 되어육외입처라고 했습니다.결국 육입이 있다(일어났다)는 것은‘안이비설신의’로 ‘색성향및촉법’을감각했다는 말과 통했습니다.그러면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이라는출산된 식(識)이 일어나고,‘안처+색처+안식’이 화합하면(눈으로 색을 보면 이 셋이 동시에 일어남)촉(觸)이라 했습니다.
해탈문,空 <7>천영필12연기법에서뭘 박살내야만해탈(탈윤회전생)할 수 있을까요?바로 무명입니다.무명을 박살내야행이 사라지고나머지 것들도 사라지게 됩니다.무명이란존재를 포함한만물의 존재방식을 모르는 것이며,그 존재방식을 설명한 것이바로 연기법이고,연기법이란인과 연이 서로 상호의존해서법이 생기므로써그 법에는 스스로의 성품이 없어서空한 것이니그 空을 알지 못하는게바로 무지/어리석음입니다.그러므로 무명을 박살내야 합니다.그 무명을 박살내는게바로 *空입니다.그러므로 空함을 아는 것이지혜..즉 반야이며통찰지입니다.그렇기 때문에 대승이고 소승이고 할 것없이空이 곧해탈문입니다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공성(空性) 공 그 자체.
공의 진리. 공의 자성. 부정성. 상대성.부따구햐의 풀이에 따르면
소취ㆍ능취의 자성이 없어
허공과 같음을 이른다.출처:
https://studybuddha.tistory.com/entry/공성
두번째 화살을 맞지 마라 <8>천영필*고통에서 벗어나라아무 생각 말고 벗어라'나는 왜 이리 고통스러울까' 하면서,'고통'에 다시 '고통'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이것을 석가모니는'두번째 화살'이라고 비유했다.예를 들면,12연기를 통해서'지식과 욕망이 생성되고 사라지는 원리'를이해 [覺] 한다면,'삶이 고통스럽다고진리를 이리저리 찾아다니는 것'을하지 않을 것이다.즉, '명확한 진리를 찾아다니 것'이또다른 고통으로 작용한다는 것을통찰했기 때문에'두번째 화살'에서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불교 이야기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고타마 붓다는이 현실세계는 모두 고(苦)라고 하는일체개고(一切皆苦)의현실인식에서 출발하여,고(苦)의 원인이인간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자기모순에 있다고 하였다.일체개고의 현실인식은현실 또는 존재(existence)그 자체에 고(苦)라고 하는고정된 성질 또는 실체가 있다는의미가 아니며또한 고(苦)의 원인이현실 또는 존재그 자체에 있다는의미가 아니다.즉,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시시각각 흘러가고 변화하고 있어고정되어 있는 것이 없는데(제행무상)인간은 항상 불변을 바라고,또 모든 것은 무엇 하나고정적 실체인 것은 없는데도(제법무아)그것을 실체라고고집하려 하는 데에고(苦)의 원인이 있다고고타마 붓다는 말하였다.따라서 올바른 지혜(반야 · 보리)를 통해서,이러한 자기모순에 빠진자기 자신을 반성하며욕망을 버리고집착에서 벗어날 때야말로아무것에도 어지럽혀지지 않은이상적인 涅槃寂靜의 경지를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이를 바로 삼법인 또는사법인이라는교의 속에서 나타나는불교의 기본적 입장이다.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일체개고제행무상제법무아열반적정
아, 맞다. 이걸 몰랐네 [무명 無明] <9>
알아차림[無無明]
천영필아, 맞다. 이걸몰랐네. 이제야 알았다.머리가 환해지며대명천지가 확 달려 들어 왔다깨닫는 순간이다아주 찰나다부처님은 활등 처럼 말씀 하시고조사는 활줄 처럼 말씀하신다짧지 않은 시간 반야심경을사경하면서 느껴 본 거다불교란 해탈을 목표하는 가르킴,나를,내 내면을 관찰[洞察]하면서지혜를 끌어내고 넓히는실용, 실천덕목을 수행[般若波羅蜜多]해야 한다중생도 보살도 조사도 부처도나와 같은 수행일 수 밖에 없다어차피 부처ㆍ보살ㆍ조사ㆍ중생이런 것이 중요한가?행불(行佛)보다 중한게 있나?반야바라밀다 수행 보다...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반야심경은 다음과 같다1최고 지혜의 완성에[阿 耨多羅三藐三菩提아누따라삼약삼보디(anuttara-samyak-sambodhi) ]부처의 어머니 [般若夫人]같은꼬갱이 속이랄 수 있는 핵심경[心經]이다2나 자신을 통찰하는데는 수행실천덕목[ 반야바라밀다 ]을깊이 수행[行深]해야 힌다3나라고 여길 만한다섯 덩어리 [오온 五蘊]를모두 다 고정된 실체[영원하고, 항구하고,무변한]가 아니다 라고 바라 보아야 한다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오온개공 도일체고액고정된 '나'는 존재하지 않고색수상행식의 오온이무상하게 끊임 없이 변한다.'무아'라고 하는 한문식 번역을 보면'나'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라는단멸론적인 시각을 가지기 쉬운데,원래의 팔리/산스크리트어로는anatta/anatman이라고 하여'아트만'이라고 불리는힌두교 교리의'절대적/고정적, 영원한/불변하는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알고 보면 받아들이기훨씬 더 쉬운 내용이다.하지만 의외로 우리가 가지고 사는'아상'은 뿌리가 깊어'나'가 존재한다는 상견이나'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단견에 빠지기 쉽다.이 두 사견을 초월하는 것이중도(中道).이렇게 계속 변하는 것이세상의 이치이기에,'이것이 항상 고정되어 같았으면좋겠어'라거나'인과에 의해어쩔 수 없는 것이어도겪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좋고 싫음으로매달리거나 집착하면고통이 생긴다는 것이일체개고의 의미다.사실 이 '고(苦)' 또한팔리어로는 dukkha(두카)라고불리는 것으로,더 정확한 의미는'불만족스러움'이다4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불증불감공한 본질의 이치에서일어나는 연기현상이 있을 때이는 가(假)가 된다.실체가 없기 때문에임시로 있는거짓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그러나 공(空)과 가(假)가서로 분리되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연기하면서 공한 것이고공하면서 연기하는 것이므로공이 곧 가고가가 곧 공이 되는 것이다.<반야심경>의 색불이공(色不異空)공불이색(空不異色)이란 말처럼공이 가이고가가 공이면서더 나아가 공도 아니고가도 아니면서공이고 가인 것을중도(中道)라 하는 것이다.또 중도에 의해서 보면삼제(三諦)가 원융하다는삼제원융설이 나오기도 했다.용수는 먼저 <중론> 초품에서팔불중도(八不中道)를 말한다.“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항상 하지도 않고 단멸하지도 않는다.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능히 이 인연을 말해서모든 희론을 없애니모든 설법자 중 제일이신 부처님께머리 숙여 예배드립니다.”(不生亦不滅 不常亦不斷 不一亦不異 不來亦不去 能說是因緣善滅諸戱論 我稽首禮佛 諸說中第一)여덟 가지 부정(八不)을 통해그릇된 유(有)의 견해를 척파한 이 말은<중론>의 근본 대의라 할 수 있는 내용이다.5나 라고 할만한 다섯덩어리 [몸뚱이는 색,마음에 수ㆍ상ㆍ행ㆍ식 ,4온]5온이다동일한 나무에서 돋아난나뭇잎도 저마다 모양이 다르고,계절에 따라 색깔이 다르다.이렇듯 '나'라는 것에도,주변에서 보는 물체에도 불변의실체는 없다.이것이 오온개공(五蘊皆空)의 이치다6<반야심경>의 핵심은 영원히 소멸되는‘영멸(永滅)’인데, 이를 감추고구라마집, 현장법사가‘영생(永生)’하려는대중 욕구에 부응하려건너갈 피안이 있는 것 처럼[度一體苦厄]오번역 또는 추가하였다7연기 윤회 無明을 파괴해야 고[苦]가 소멸 된다환멸문 해탈문 연기의 역관이다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반야심경에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 촉법이란
경구가 있다.안이비설신의는
인간이 가진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의미한다.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서
경험하고 느껴지는 것을
색성향미촉법이라 한다.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6근으로 표현하고,
6근을 통해 인식되어진 대상을
6경이라 한다.6근이 각각의 감각 대상인 6경을 만날 때,각각의 감각 장소인 6근을 통해
각각의 인식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인식을 6식이라 한다.즉, 안식‧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 의식의 6식이다.
초기 불교에는 6식까지만 있는 것으로 봤다.이상과 같이 6근이 6경을 만났을 때를
조건으로 해서 일어나는 것이 6식이다.이와 같이 모든 존재 속의 인식작용이
18가지 범주로 나누어졌음을 알게 되는데,이것을 모두 합쳐 18계라고 한다.즉 6근 ‧ 6경 ‧ 6식을 합한 것이다.좀 더 자세하게는눈‧ 귀 ‧ 코 ‧ 혀 ‧ 몸뚱이(피부) ‧ 마음(뜻)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즉 6근과 그 대상인물질 ‧ 소리 ‧냄새 ‧ 맛 ‧ 촉감 ‧ 사물
혹은 현상의 6경, 그리고 이 6근 ‧ 6경을
연으로 해서 생기는여섯 가지 마음의 활동,즉 6식을 합한 것이
18계이다.5식은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을 말하며,
제6식인 의식과 구분해서 앞에 있는
다섯 가지 식이란 점에서
전5식이란 이름이 붙었으며,의식은 전5식 다음의 제 여섯 번째 식이라는 의미에서
제6식이라 칭한다.이처럼 5근이 5경을 만나 일어나는 식을전5식이라 부르는데,이 전5식은 매우 현재적 이어서
당장 느끼는 대로 생겨나는 인식이다.이와 같이 식 가운데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등 전5식은안 ·이 · 비· 설 · 신 등 5근이라는육체의 다섯 부분에 의지해활동하는 심식들이다.여섯 가지 식으로 초기불교가
심식에 대한 설명을 하였지만,
대승불교 유식에서는 8식설즉 여덟 가지의 심식으로 정리하게 된다.그 중에 기본적으로 6식이
그대로 유식에 받아들여지고,
여기에 제7식과 제8식을 포함해서
여덟 가지의 식으로 나누는 것이정리된 유식의 특징 중의 한 가지다.이렇게 해서 작게는
여덟 가지의 식으로 나눌 수 있으며,
크게는 전5식과 제6식을 하나로 묶고,
제7식과 제8식을 더하여
세 가지의 식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이들 심식은 능히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는
의미로 능변식이라 한다.
가장 근원이 되고 발생순서가 앞서는
제8식이 초능변식, 또는 제1능변식이 되고,
제7식이 제2능변식이 되며,
전5식과 제6식이 합하여
제3능변식이라 불린다.불교에서는 존재의 인식방법을
외부세계에서 출발점을 삼지 않는다.
철저하게 존재의 근원인
‘나’의 감각기관에서 출발하여존재를 인식하는 것이타 종교와의 차이점이다.불교는 존재의 출발점인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허망한 ‘나’와 망상된 ‘세계’에집착하지 않는다.깨달음을 얻고 나면 6근은‘나’라고 착각하지 않고,대상인 6경을 ‘세계’라고 집착하지 않는다.그 모든 것이 인연 따라 생겨났다가인연이 다하면 사라지는허망한 것임을 가르친다.특히 유식학은
대상인 물질 자체를 부정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대상보다
오히려 인간의 인식을 중시하고자 하는 입장이다.인간의 인식작용이 무한하듯이
또한 물질적인 대상도 다양한 각도로 보여 질 수 있다.물질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물질을 바라보는 인식의 문제로인간의 인식범위가 넓어진다면물질에 대한 생각도 변하고물질적인 풍요에 의하여인간성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오히려 인간의 가치를 높이고,삶을 풍요롭게 할 수도있다.이를 위해서는 물질의 개발과 함께인간의 내면적인 수행과 노력으로바른 인식을 얻고자 노력해야하며이를 통하여 바른 행위를 하게 되고,그 행위를 통해서 행복을 달성하고자 하는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과도일치하는 것이다.8무안계 내지 무의식계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 역무득
이무소득고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심무가애 무가애고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9삼세제불의반야바라밀다고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고지반야바라밀다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반야심경’ 핵심은 기복의 주문이 아니라‘관찰과 수행’경이다있다 있다 모두 있다 바로 지금 여기 모두 있다얼씨구나 절씨구나 지화자 좋구다나 만만세ㅡ엣
천영필 해설본@2023 <10>
Edward Conze(1957) : The Heart Sutra 참조
*대바라밀 수행 실천 덕목으로의 핵심경Avalokita, The Holy Lord and Bodhisattva,was moving in the deep course ofthe Wisdom which has gone beyond.He looked down from on high,He behold but five heaps,and he saw that in their own-beingthey were empty.āryāvalokiteśvaro bodhisattvogaṃbhīrāyāṃ prajñāpāramitāyāṃ caryāṃ caramāṇo vyavalokayati sma:pañca skandhās,tāṃś ca svabhāvaśūnyān paśyati sma.스스로가수행실천덕목을 실천궁행시나라고 할만한 오온의 자성이무한함을 통찰하니곧 불성을 보니라 [견불성]{수행자 = 보살 =부처이뭣고?*한 생각[통찰]을 일으켜 부처가 된다[見佛性]《곧 오온개공은 부처님의 깨달음 》나라고 할만 한*다섯 덩어리*색수상행식은자성이 무한《0으로 비어있어》하고업만 이어가더라}*<도일체고액범어 반야심경에는 없음현장법사가 중생의 위로를 주고자 추가 서술했다>Here, O Sariputra, all dharmas are markedwith emptiness; they are not producedor stopped, not defiled or immaculate,not deficient or complete.iha Śāriputra rūpaṃ śūnyatā, śūnyataiva rūpam. rūpān na pṛthak śūnyatā, śūnyatāyā na pṛthak rūpaṃ. yad rūpaṃ sā śūnyatā,yā śūnyatā tad rūpam. evam eva vedanā saṃjñā saṃskāra vijñānāni*불이문《다르지 않다》나라고 여기는 덩어리가가假와 다르지 않고가假가 공空과 다르지 않아곧 공空이 나라고 여기는한 덩어리 색(色)이더라이밖에 네 덩어리,수상행식수(受想行識)도마찬가지다Therefore, O Sariputra, in emptiness thereis no form, nor feeling, nor perception,nor impulse, nor consciousness;No eye, ear, nose, tongue, body, mind;No forms, sounds, smells, tastes,touchables or objects of mind;No sight-organ element, and so forth,until we come to:No mind-consciousness element;There is no ignorance, no extinctionof ignorance, and so forth,until we come to:There is no decay and death,no extinction of decay and death.There is no suffering, no origination,no stopping, no path.There is no cognition, no attainmentand no non-attainment.*관찰자=관리자=부처가통찰해보니사리자여제법이 환상《공관ㆍ0ㆍ 공성》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이치도서로 거울에 비친 환상이라생겨나는것도 사라지는 것도더러워지지도 깨끗해지지도늘지도 줄지도 아니 하니*無字 《 환멸문 》연기의 박살내야만해방 되고 해탈하고열반에 이른다아울러 중도가 함께 한다이러하니 [ 是故 ]나라고 할만한오온 《색 forms》도《수 feeling,상 perception,행 impulse,식 consciousness》도사라진다Therefore, O Sariputra, in emptiness there is no form, nor feeling, nor perception, nor impulse, nor consciousness; No eye, ear, nose, tongue, body, mind; No forms, sounds, smells, tastes, touchables or objects of mind; No sight-organ element, and so forth, until we come to: No mind-consciousness element; There is no ignorance, no extinction of ignorance, and so forth, until we come to: There is no decay and death, no extinction of decay and death. There is no suffering, no origination, no stopping, no path. There is no cognition, no attainment and nonon-attainment.iha Śāriputra sarvadharmāḥ śūnyatālakṣaṇā anutpannā aniruddhā amalāvimalā nonā na paripūrṇāḥ. tasmāc chāriputra śūnyatāyāṃ na rūpaṃ na vedanā na saṃjñā na saṃskārā na vijñānaṃ. na cakṣuḥśrotraghrāṇajihvākāyamanāṃsi,na rūpaśabdagandharasaspraṣṭavyadharmāḥ,na cakṣurdhātur yāvan na manovijñānadhātuḥ.육입 《안이비설신의 》도육처《색성향및촉법 》 도눈으로 보이는 영역으로 부터마음으로 생각하지 않는 영역까지무명의 깨달음,무명의 깨달음이 다하는 것부터*내지늙고 죽음,늙고 죽음이 다하는 것까지도끊어진다사성제《고집멸도》도지혜도또한 얻음도 사라지니이렇게 얻는 것도 사라지니중생=보살=부처의 수행실천덕목 인바라밀다을 실천궁행 하자 마자동시 동작 부대 상황으로마음에 걸림이 없고걸림이 없으므로두려움이 사라지고그릇된 환상이 멀어지고열반의 경지에 이러렀구나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도수행 실천 덕목인반야바라밀다로최상의 깨달음《보리》을 얻는구나Therefore, O Sariputra, it is because of his non-attainmentness that a Bodhisattva, through having relied on the perfection of wisdom, dwells without thought-coverings. In the absence of thought-coverings he has not been made to tremble, he has overcome what can upset, and in the end he attains to Nirvana.tasmād aprāptitvād bodhisattvānāṃ prajñāpāramitāṃ āśritya viharaty acittā varaṇaḥ. cittāvaraṇanāstitvād atrasto viparyāsātikrānto niṣṭhanirvāṇaḥ. tryadhvavyavasthitāḥ sarvabuddhāḥ prajñāpāramitām āśrityānuttarāṃ saṃyaksambodhiṃ abhisambuddhāḥ.tasmāj jñātavyaṃ prajñāpāramitāmahāmantro mahāvidyāmantro ‘nuttaramantro ‘samasamamantraḥ, sarvaduḥkhapraśamanaḥ. satyam amithyatvāt prajñāpāramitāyām ukto mantraḥ,tad yathā:그러하니 수행실천덕목인반야바라밀다《스스로의 관찰지》는신비하고, 밝으며, 위없고,Therefore one should know the prajnaparamita as the great spell, the spell of great knowledge, the utmost spell, the unequalled spell, allayer of all suffering, in truth - for what could go wrong?By the prajnaparamita has this spell been delivered. It runs like this:Gone, gone, gone beyond, gone altogether beyond, O what an awakening, all-hail! - This completes the Heart of perfect wisdom.견줄만한 게 없으므로12연기[一體]의 사슬을 능히 끊고진실되어 허황되지 아니 하느니라고로 반야바라밀다 주문을아래와 같이 선포하시느니라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있다 있다 모두 있다 바로 지금 여기 있다 얼씨구나절씨구나 만세 만세 만만세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있다 있다 모두 있다 바로 지금 여기 있다 얼씨구나절씨구나 만세 만세 만만세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Gone, gone, gone beyond, gone altogether beyond,O what an awakening, all-hail! -This completes the Heartof perfect wisdom.있다 있다 모두 있다 바로 지금 여기 있다 얼씨구나절씨구나 만세 만세 만만세ㅡ엣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천영필 번역 @2023
수행실천덕목 ㅡ무주상보시 <11>천영필*마음에 머무는 바없이 베풀라부처님 말씀의 소중한 당부의 바라밀이다.수행실천덕목의 으뜸이다자만심 내지말고 온전한 자비심으로 하라.허공처럼 맑은 마음으로 하라.내가 베풀었다는 의식은집착만을 남기게 되고궁극적으로 깨달음의 상태에 까지이끌 수 있는 보시가 아닌 것이므로,나와 남이 둘이 아닌한 몸이라고 보는 데서부터무주상보시가 이루어져야 하고,이 보시를 위해서는맨손으로 왔다가 맨손으로 가는 것이우리 인생의 살림살이라는 것을알아야 편안하게 베풀수 있다고.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일을 말한다.이 무주상보시는 ≪금강경≫에 의해서천명된 것으로서,원래의 뜻은 법(法)에머무르지 않는 보시로표현되었다.이 보시는‘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내가 남을 위하여 베풀었다.’는생각이 있는 보시는진정한 보시라고볼 수 없다.내가 베풀었다는의식은 집착만을 남기게 되고궁극적으로 깨달음의 상태에까지이끌 수 있는 보시가될 수 없는 것이므로,허공처럼 맑은 마음으로 보시하는무주상보시를강조하게 된 것이다.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중기의보조국사(普照國師)가≪금강경≫을 중요시한 뒤부터이 무주상보시가일반화되었다.그리고 조선 중기의휴정(休靜)은나와 남이 둘이 아닌한몸이라고 보는 데서부터무주상보시가 이루어져야 하고,이 보시를 위해서는맨손으로 왔다가 맨손으로 가는 것이우리 인생의 살림살이라는 것을알아야 한다고전제하였다.그리고 가난한 이에게는분수대로 나누어주고,진리의 말로써마음이 빈곤한 자에게용기와 올바른 길을제시해주며,모든 중생들이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게끔하는 것이 참된보시라고 보았다."
지혜와 자비로 수행실천 <12>上求菩堤 下化衆生천영필보살도[실천 수행 목표]를 가는이自利利他를 근기로,위로는 보리를 구하고아래로는 중생을지혜와 자비로교화한다.自他不二의 마음이보리살타로 이끈다지금까지의聲聞, 緣覺에서탈피하여지금부터 보리살타로새롭게 수행하자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위로 보리를 추구하고아래로 중생을 교화한다는 뜻으로,보살의 수행 목표를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측면으로 표현한 불교교리.대승불교의 흥기와 더불어불교의 이상적 수행자상 역시변모되었다. 대승불교도들은기존의 불교 수행자를성문(聲聞) 및 연각(緣覺)으로지칭하고,자신들을 보살로칭하였다.보살은,범어로는 bodhi-sattva이고팔리어로는 bodhi-satta이며,이를 한역해서보리살타(菩提薩埵)라고 한다.이 중 보리는지혜, 깨달음, 도(道) 등을 의미하고,살타는 중생을 뜻한다.그리고 보리살타를 줄여보살이라고 한다.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은바로 이 보살 수행자가발심해서 수행하는목적을 상(上) · 하(下)라는방향성에 근거하여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즉 보살은 위로는불교의 지혜인 보리를 추구하고,아래로는 고통 받는 다양한 중생을교화하는 것을 수행의 목적으로삼는다는 것이다.이 두 가지는 불교에서 말하는두 가지 이익,곧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에각각 대응된다.대승불교에서는성문 · 연각 · 보살을 삼승(三乘),곧 불교를 수행하는세 부류의 수행자로 보았는데,이 가운데 성문 · 연각을이승(二乘)으로 칭한다.반면 보살은 앞의 두 부류와결정적으로 다른 수행자로 분류되는데,그 이유는 바로 하화중생에 있다.앞의 두 부류가자신의 깨달음만을 추구하는 반면,보살은 깨달음과 더불어중생을 교화하는 일을 함께목적으로 삼기 때문이다.위로 보리를 추구하기 위해서필요한 덕목은 지혜이고,아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필요한 덕목은자비이다.성문 · 연각은지혜 하나만 갖춘 반면,보살은지혜와 자비의두 가지를모두 갖춘 이를 가리킨다.대승불교에서는이런 점에 의거하여성문 · 연각보다보살을더욱 훌륭한 수행자로간주한다.문구의 측면에서 보면,동아시아에서상구보리하화중생이라는 표현이정형화된 것은9세기 이후로 보인다.그 이전의 한문 불전에서는이와 관련하여뜻은 같지만 표현이조금씩 다른 문구들이다양하게 나타난다.우리나라 불교는대부분 대승불교를 표방해왔다.따라서 대승불교의이상적인 수행자상인보살이 매우 중시되었고,보살의 수행 목표인상구보리하화중생역시 우리나라의 불교도들에게필수적인 것이 되었다.신라의 원효는『기신론소(起信論疏)』에서『대승기신론』을지은 대의가보살의 두 가지 목표인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을벗어나지 않는다고평했을 만큼이 두 가지 목표는중요성을 가진다.두 가지 가운데 특히하화중생은불교가사회의 대중 속에서실현되어야 함을강조함으로써불교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유도하는 계기를제공해주었다.
배워서 남 주자 <13>천영필지혜와 자비로수행실천 하는보살도를 걷자*성문을 하고*연각을 하고만족에 그치지 말고보시바라밀무주상보시로복을 짓자아는 만큼 전하고가진 대로 베풀자배우고 남주자실천궁행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성문 불경을 듣는다곧 수행실천덕목을배운 자* 연각 연기법을 깨달음곧 12연기법을 깨달아윤회전생을 끊고 해탈하는득을 얻은자 감사하고수행실천덕목을체득한 자
ver.2반야심경(Heart Sutra)The Maha Prajns Paramita Hridaya SutraAvalokitesvara Bodhisattva when practicing deeply the Prajna Paramita Perceives that all five skandhas are empty and is saved from all suffering and distress Sariputra, Form does not differ from Emptiness, Emptiness does not differ from Form.That which is Form is emptiness, that which is emptiness form. The same is true of feelings, perceptions, impulses and consciousness. Sariputra, all dharmas are marked with Emptiness, they do not appear or disappear,are not tainted or pure, do not increase or decrease. Therefore, in emptiness no form, no feelings, perceptions, impulses, consciousness.No eyes, no ears, no nose, no tongue, no body, no mind; no color, no sound, no smell, no taste, no touch, no object of mind, no realm of eyes... and so forth until no realm of mind consciousness.No ignorance and also no extinction of it... and so forth until no old age and death and also no extinction of them.No suffering, no origination, no stopping, no path, no cognition, also no attainment with nothing to attain.The Bodhisattvas depends on Prajna Paramita and the mind is no hindrance; without any hindrance no fears exist.Far apart from every perverted view one dwells in Nirvana. In the three worlds all Buddhas depend onPrajna Paramita and attain Anuttara Samyak Sambodhi.Therefore know that Prajna Paramita is the great transcendent mantra, is the great bright mantra,is the utmost mantra, is the supreme mantra which is able to relieve all suffering and is true, not false.So proclain the Prajna Paramita mantra, proclaim the mantra which says: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bodhi svaha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화계사 English Class
ver.1반야심경(Heart Sutra) <14>觀自在菩薩
行深 般若波羅蜜多 時
照見 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Avalokita Bodhisattva]이
오묘한 반야바라밀다
[the Perfection of Wisdom]를 닦으실 때
오온
[He looked down from on high
and saw but five skandhas which,
in their own being, were empty
몸과 마음의 욕망이 모두 비어 있음을 비추어 보시고]
온갖 괴로움과 재앙의 바다를 건너셨느니라.
Homage to the Perfection of Wisdom,
the lovely, the Holy!Avalokita Bodhisattva was moving
in the deep course of the wisdom
which has gone beyond.He looked down from on high
and saw but five skandhas which,
in their own being, were empty.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Sariputra]여,
삼라만상은 빈 것이며
공한 그 모습이 삼라만상이니,
수상행식
감정이나 생각 욕망 의식
[The same is true of 감정feelings,생각perceptions,욕망impulses and consciousness ] 등
마음의 작용도 또한 빈 것이니라.
-"Here, O Sariputra, Form is Emptiness,
Emptiness is Form;Form does not differ from Emptiness,
Emptiness does not differ from Form;whatever is Empty, that is Form,
whatever is Form that is Empty.The same is true of feelings,
perceptions, impulses and consciousness.
---------------------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Sariputra] 여,
이 모든 비어 있는 모습[dharmas]에는
나고, 없어지는 것[no beginning,no end]도 없으며
더러웁거나, 깨끗함[imperfect nor perfect]도 없으며
늘어나거나, 줄어 듬[deficient nor complete]도 없느니라.
O Sariputra, all dharmas are marked with
Emptiness, they have
no beginning and no end,they are neither imperfect nor perfect,
neither deficient nor complete.
--------------------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그러므로 비어있는 세계에는
[in emptiness]
이렇다 할 실체도 없고
[no form]
감정도 생각도 욕망도 의식도 없고,
[no feeling, no perception, no concepts, no knowledg],
감각의 주체인 안이비설신의도 없으며
[No eye, no ear, no nose, no tongue, no body, no mind],
빛깔이나 소리나 냄새나 맛이나 촉감의 관념도 없으며그러한 것들의 모든 상대 또한 없느니라
[no forms, no sounds, no smells, no tastes, no touchables or no objects of the mind].
그러므로 미혹된 어리석음도 없고
[no mind consciousness element]
어리석음을 벗어나는 것도 없으며,
[extinction of ignorance,]
늙고 죽음도 없으며,
[no decay and death]
끝내 늙고 죽음을 벗어나는 것도 없나니
[no extinction of decay and death]
-Therefore, O Sariputra, in emptiness there is
no form, no feeling, no perception, no name,no concepts, no knowledge. No eye, no ear,
no nose, no tongue, no body, no mind;no forms, no sounds, smells, tastes, touchables
or objects of the mind, no sight organ,no hearing organ and so forth to no
mind consciousness element; no ignorance
orextinction of ignorance or extinction
of ignorance, no decay and death,
no extinction of decay and death.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菩提薩타 依般若波羅蜜多
故 心無가無 가애고
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괴로움도 없고
[no suffering ]
괴로움의 원인도 없고
[no origination]
괴로움을 없애는 일도 없으며
no stopping,
팔정도의 길도 없느니라.
no path,지혜가 따로 있을 수 없으며
no cognition,
아무런 얻음과
no attainment, nor anything to attain.
잃을 것이 없으므로
There is nothing to accomplish
모든 보살은 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닦아가나니
[ and so Bodhisattvas can rely on the
Perfection of Wisdom]마음에 걸림이 없고
without trouble.
마음에 걸림이 없으므로
[Being without trouble,]
두려움이 없어
[they are not afraid]
잘못된 망상을 떠나
[ having overcome anything ]
upsetting
마침내 열반에 이르느니라.
[they attain Nirvana]
There is no suffering, no origination,
no stopping, no path, no cognition,
no attainment, nor anything to attain.There is nothing to accomplish and
so Bodhisattvas can rely on the
Perfection of Wisdom without trouble.Being without trouble, they are
not afraid, having overcome anything
upsetting, they attain Nirvana.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 故 得阿多羅三막三菩提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All Buddhas who appear in the three periods, ]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여
[because they have relied on the Perfection
of Wisdom.]
최고의 올바른 깨달음을 얻었으니
[fully Awake to the utmost, right and perfect
enlightenment]
All Buddhas who appear in the three periods,
fully Awake to the utmost, right and perfect
enlightenmentbecause they have relied on the Perfection
of Wisdom.
------------------------故知 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이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한 진언이고, 가장 밝은 진언이고,
가장 뛰어난 진언이며, 비길데 없는 진언이니,능히 모든 괴로움을 없애고
참으로 진실하여 허망함이 없느니라.
Therefore, one should know the Perfection
of Wisdom is the great mantra, is the unequaled
mantra, the destroyer of suffering.
-----------------------
故說 般若波羅蜜多 呪 卽說呪曰,
이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설하노라.
Because of this Truth, listen to the mantra: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있다 있다 모두 있다 지금 바로 여기 모두 있다
앗싸아 만만세
Gate, Gate, Paragate, Para Samgate Bohisvaha
Gone, Gone, Gone beyond, Gone utterly beyond
Oh, what an Awakening!.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아라 <15>
<자등명>
천영필
불교에서는
인간 행위의 의지 처로서의 법을
세우기도 한다.
석가모니의 최후 설법 가운데에는
“자기 자신 말고는
어느 누구도 아닌,
오직 자기에게 의지하라.
법에 의지하라.
자기를 등불로 삼아라.
법을 등불로 삼아라.”
라는 말이 있다.
즉 인간이 자신의 이법(理法)을
실천하는 곳에
참다운 자기가 구현 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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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삼관(兜率三關) - 도솔종열화상 화두자비, 삶과 죽음으로부터 해탈하는 유일한 방법갓등과 연료 인연 다하면등불이 그냥 사라지듯이육신이 사대로 흩어지면우리 또한 그냥 사라질 뿐자비의 수고로움을감당하지 않은 사람은결코 삶과 죽음에서자유로울 수가 없다도솔(兜率) 종열(從悅) 화상(1044~1091) 은
세 가지 관문을 설치해서 배우려는 사람에게 물었다.
“깨달은 사람을 찾아 수행하는 것은
단지 자신의 불성을 보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지금 그대의 불성은 어디에 있는가?
자신의 불성을 알았다면
삶과 죽음으로부터 해탈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죽음에 이르렀을 때
어떻게 그대는 삶과 죽음으로부터 해탈하겠는가?
삶과 죽음으로부터 해탈할 수 있다면
바로 가는 곳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육신을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가 흩어질 때,
그대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제1관문 탐구
등불을 켜 들고 있는 사람을
찾아간 것은그가 들고 있는 불로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함입니다.자신의 몸이 등갓이자
원료라는 사실을,그리고 마음이 그것들로 켜지는등불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우리는 자신의 불성을 본 겁니다.한 마디로 견성(見性)한 것이지요.이럴 때 자신의 불성에
불을 밝히는 순간,우리는 자신도 스승과 마찬가지로자신과 세상을 비추는 당당한 등불이 됩니다.마침내 우리는 부처가 된 거죠.정말 부처가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종열 스님은 물어봅니다.“그대의 불성은 어디에 있는가?”자신에게도 있다고 해도 되고,세상에 있다고 해도 됩니다.등불이 켜지는 순간,그 불은 자신뿐만 아니라세상도 모두 환하게 밝히니까 말입니다.제2관문 탐구
등불은 세상을 비추는 도구입니다.그것은 얼마나 힘든 삶인가요.자신을 모두 소진해서
세상을 밝히는 일이니까요.
자신을 비추고남을 비추는
자비를 실천하고 있는사람은 삶을 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비의 삶이 얼마나 수고스러운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누군가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는 것,제자를 깨달음에 이끄는 것,어느 하나 힘들지 않은 일은 없으니까요.결국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에게죽음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안식(安息)으로 다가오는 법이지요.그러니 정말로 죽음에 이르렀을 때,깨달은 사람은 희미한 미소를 보이거나
박장대소하게 되는 겁니다.불교에서 열반(涅槃, Nirvāṇa)이깨달음을 의미하면서동시에 죽음을 의미하는 것도이런 이유에서입니다.제3관문탐구
세상을 비추던 등불이 꺼지는 순간,등불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어디로도 가지 않습니다.그냥 그대로 꺼질 뿐입니다.갓등이 헤어져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견디지 못하고 꺼진 것일 수도 있고,아니면 연료가 다 떨어져꺼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그렇지만 세상을 환하게 비추던그 등불은 어디에도 가지 않습니다.그냥 꺼질 뿐입니다.갓등이나 연료 사이의 인연이 다하는 순간,등불도 사라집니다.이런 연기(緣起)의 법칙을 모르는 사람들은종열 스님의 마지막 질문에우물쭈물하게 될 겁니다.
地水火風,
불교에서 사대(四大, Catvāri mahābhūtāni)라고
말하는 것이지요.이 네 가지 요소가 인연에 의해 결합되어 지속할 때,
우리의 삶도 그리고 우리의 정신도 있는 겁니다.
반면 이 네 가지 요소들이 인연이 다해 흩어질 때,
우리의 삶도 그리고 정신도 사라지는 겁니다. 마치 겨울내내 꽁꽁 얼어있던 얼음도날씨가 풀리면 녹아서 사라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고 얼음이 어디론가 갔다고슬퍼하지는 마세요.천국으로 간 것도 아니고지옥으로 간 것도 아닙니다.그저 풀려서 사라진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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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숫타니파타 중<광효 2016. 7. 22. 17:44>불교 최초의 경전 '숫타니파타' 법정스님 옮김 (26p~35P)1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
폭력을 쓰지 말고,
살아 있는 그 어느 것도
괴롭히지 말며,또 자녀를 갖고자 하지도 말라.
하물며 친구이랴.
무소의 뿔처럼 혼가서 가라.
만남이 깊어지면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고통이 따르는 법,사랑으로부터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친구를 좋아한 나머지
마음이 거기 얽매이게 되면
본래의 뜻을 잃는다.가까이 사귀면
그렇게 될 것을 미리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식이나 아내에 대한 집착은
마치 가지가 무성한 대나무가
서로 엉켜있는 것과 같다.죽순이 다른 것에 달라붙지 않도록,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묶여 있지 않는 사슴이
숲속에서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동행이 있으면
쉬거나 가거나 섰거나 또는
여행하는 데도
항상 간섭을 받게 된다.남들이 원치 않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동행이 있으면
유희와 환락이 따른다.
또 그들에 대한 애정은 깊어만 간다.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싫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사방으로 돌아다니지 말고,
남을 해치려 들지 말고,
무엇이든 얻은 것으로
만족하고,온갖 고난을 이겨
두려움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출가한 처지에
아직도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또한 출가하지 않고
집에서 수행하는 재가자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흔히 있다.남의 자녀에 집착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잎이 진 코빌라라 나무처럼,
재가 수행자의 표적을 없애 버리고집안의 굴레를 벗어나
용기 있는 이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만일 그대가
지혜롭고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현명한 동반자를 얻었다면어떠한 난관도 극복하리니,
기쁜 마음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그와 함께 가라.그러나 만일 그대가
지혜롭고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현명한 동반자를
얻지 못했다면마치 왕이 정복했던 나라를 버리고 가듯,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우리는 친구를 얻는 행복을 바란다.자기보다 뛰어나거나
대등한 친구는 가까이 친해야 한다.그러나 이런 친구를 만나지 못할 때는
허물을 짓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금세공이 잘 만들어 낸
두 개의 황금 팔찌가 한 팔에서
서로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와 같이,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잔소리와 말다툼이 일어나리라,언젠가는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미리 살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욕망은 실로
그 빛깔이 곱고
감미로우며
우리를 즐겁게 한다.그러나 한편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마음을 어지럽힌다.욕망의 대상에는
이러한 근심 걱정이 있는것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것이 내게는 재앙이고
종기이고 화이며,
질병이고 화살이고 공포이다.
이렇듯 모든 욕망의 대상에는
그와 같은 두려움이 있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추위와 더위,
굶주림, 갈증,
바람, 그리고 뜨거운 햇볕과
쇠파리와 뱀,이러한 모든 것을 이겨 내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마치 어깨가 떡 벌어진
얼룩 코끼리가 그 무리를 떠나
자유로이 숲속을 거닐듯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연회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잠시 동안의 해탈에 이를
겨를도 없다.태양의 후예가 한 이 말을 명심하여,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서로 다투는 철학자들의 논쟁을 초월하여
진정한 깨달음의 도를 얻은 사람은,
나는 지혜를 얻었으니
이제는 남의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알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
갈망하지 말고,
남의 덕을 가리지도 말며,
혼탁과 미혹을 버리고,세상의 온갖 집착에서 벗어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그릇되게 굽은 것에 사로잡힌
나쁜 친구를 멀리 하라.탐욕에 빠져 게으른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널리 배워 진리를 아는,
생각이 깊고 현명한 친구를
가까이 하라.그것이 이익이 됨을 알고
의심을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세상의 유희나 오락
또는 쾌락에 젖지 말고
관심도 갖지 말라.꾸밈없이 진실을 말하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아내도 자식도
부모도 재산도 곡식도
친척이나 모든 욕망까지도
다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것은 집착이구나.
이곳에는 즐거움도 상쾌함도 적고
괴로움뿐이다.이것은 고기를 낚는 낚시이구나' 이와 같이
깨닫고,지혜로운 자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물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한번 불타 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눈을 아래로 두고,
두리번거리거나 헤매지 말고,
모든 감각을 억제하여
마음을 지키라.번뇌에 휩쓸리지 말고
번뇌에 불타지도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잎이 져버린 파리찻타 나무처럼,
재가자의 모든 표적을 버리고
출가하여 가사를 걸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여러 가지 맛에 빠져들지 말고
요구하지도 말며
남을 부양하지도 말라.누구에게나 밥을 빌어먹고
어느 집에도 집착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마음속의 다섯 가지 장애물을
벗어 던지고
온갖 번뇌를 버리고,어느 것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욕망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전에 경험했던 즐거움과 괴로움을
모두 던져 버리고,또 쾌락과 근심을
떨쳐버리고
맑은 고요와 안식을 얻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최고의 목표에 이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마음의 안일함을 물리치고
수행에 게으르지 말며,부지런히 정진하며
몸의 힘과 지혜의 힘을
갖추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홀로 앉아 명상하고
모든 일에 항상 이치와 법도에 맞도록
행동하며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이 근심인지 똑똑히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집착을 없애는 일에
게으르지 말고,
벙어리도 되지 말라.학문을 닦고 마음을 안정시켜
이치를 분명히 알며,자제하고 노력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빨이 억세며
뭇 짐승의 왕인
사자가 다른 짐승을
제압하듯이,궁핍하고 외딴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비와 고요와 동정과 해탈과 기쁨을
적당한 때를 따라 익히고, 모든 세상을 저버림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욕과 혐오와 어리석음을 버리고,
속박을 끊고, 목숨을 잃어도
두려워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사귀고,
또한 남에게 봉사한다.오늘 당장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그런 사람은 보기 드물다.자신의 이익만을 아는 사람은
추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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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통일불교성전 본
(재단법인 대한불교진흥원 펴냄)
숫타니파타(經集) 179쪽 부터 183쪽 까지
모든 중생에 대하여 폭력을 쓰지 말고,
모든 중생의 어느 하나도 괴롭히지 말며,또 자녀를 두려고 원하지도 말고,
친구를 두기를 원하지 말라.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기고,
사랑과 그리움으로 인하여
괴로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서
우환이 생기는 것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벗을 측은히 생각하여 마음이 흔들리면
자기에게 이로움이 없다.친밀한 속에는
이런 우려가 있음을 알고,
무소의 불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자식이나 아내에 대한 애착은
마치 가지가 무성한 대나무가 서로
엉켜있는 것과 같다.죽순(竹筍)이 다른 것에 달라 붙지 않도록,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숲속에 묶여 있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 저기 다니듯이,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동반자와 함께 있으면,
몸을 쉬거나 일어서거나
걸어가거나 여행하는 데
언제나 참견하게 된다.
남들이 원치 않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동반자와 함께 있으면
유희와 환락이 있고
자녀에 대한 애정은 더욱 커진다.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기 싫더라도,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갖지 말고,
무엇이든 가진 것으로
만족하며,
온갖 고난을 견디며,
두려움을 갖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출가한 몸으로 여전히 불만을 갖는
사람이 있다.
이는 또한 재가자도
마찬가지다.남의 자녀에게 마음을 두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잎이 떨어진 코오빌리아라 나무처럼,
재가자의 표적을 없애버리고
집안의 굴레를 벗어나,
용기 있는 이는,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만일 그대가 현명하고,
잘 협조하고, 행실이 올바르고 영민한
동반자를 얻게 되면,모든 재난을 극복하여
기쁜 마음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그와 함께 걸어가라.그러나 만일 그대가
현명하고 잘 협조하며 행실이 올바르고 영민한
동반자를 얻지 못하면마치 왕이 정복한 나라를
버리듯이,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우리는 참으로 친구 얻는
행운을 찬양한다.
자기보다 뛰어나거나 동등한 친구와는
가까이 지내야 한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벗을 얻을 수 없으면
허물을 짓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금공(金工)이 잘 만들어낸
두 개의 황금 팔찌가 한 팔에서
서로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두 사람이 서로 가까이 있으면
말썽과 갈등이 일어날 것이다.앞으로 이런 우려가 있음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실로 욕망은 화려하고 감미로우며 유쾌하여
여러가지로 마음을 교란시킨다.
욕망의 대상에는 이런 우환이 있음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이것이 나에게는 재앙이요,
종기요, 화근이요, 질병이요,
화살이요, 공포다.
모든 욕망의 대상에는
이런 두려움이 있음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추위와 더위, 굶주림, 갈증, 바람,
그리고 뜨거운 햇볕과 쇠파리와 뱀,
이러한 모든 것을 이겨 내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마치 어깨가 잘 발달하고 반점이 있는
큰 코끼리가 그 무리를 떠나서
마음대로 숲속을 돌아다니듯이,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모임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한때의 해탈에도 이를 겨를이 없다.
태양의 후예 불타가 한
말씀을 명심하여,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서로 논쟁을 일삼는
철학적 이론을 초월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결론에 도달하여
도를 얻은 자는,
'나는 지혜를 깨쳤으니
이제는 남의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
갈망하지 말고, 남의 덕을 덮어두지 말라.
혼탁과 미망을 버리고
세상에서 일체의 애착을 버린자가 되어,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그릇되고 굽은 것에 사로잡힌
나쁜 벗을 멀리 하라. 탐욕에 빠져 게으른 사람에게
가까이 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널리 배워 진리를 아는,
고매하고 총명한 친구를 사귀라.온갖 이로운 일을 알고 의혹을 떠나,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세상의 유희나 오락, 쾌락에 만족하지 말고,
이에 끌리는 일 없이 겉치레를 떠나
진실을 말하며,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처자나 부모 친척,
그리고 재산이나 곡식,
그 밖의 욕망까지도 다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이것은 집착이구나,
여기에는 즐거움과 유쾌함이 적은 반면에
괴로움이 많다.
따라서 이것은 물고기를 낚는 낚시다'라고
깨닫고 현명한 자는,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물속의 물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또한 이미 불이 다 탄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우러러 보거나 해매지 말고,
모든 감관(感官)을 막아 마음을 지켜
번뇌가 일어나는 일 없이,
번뇌의 불에 타지도 말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잎이 진 파아리찻타나무처럼,
재가자의 여러 가지 증표를 버리고
집을 나와 법의(法衣)을 걸치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여러 가지 맛에 탐닉하지 말고,
욕구하지 말며, 남을 부양하지 말고,
문전마다 걸식하며,
어느 집에도 집착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마음의 다섯 가지 덮개를 벗겨 버리고,
모든 수번뇌(隨煩惱)를 잘라 버려
의지하지 않으며,
애욕의 허물을 끊어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일찍이 경험한 즐거움과 괴로움,
그리고 기쁨과 두려움을 버리고,
맑고 고요한 마음으로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최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힘쓰며,
마음을 늦추지 말고
행동을 게을리 하지 말며,힘차게 할동하여
체력과 지력을 갖추어,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홀로 앉아 선정을 버리지 말고,
모든 행동을 항상
참된 이법(理法)에 좇아서 하며,
여러 가지 삶에
우환이 있음을 분명히 알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애착을 없애기 위해 꾸준히 힘쓰고,
벙어리도 되지 말고,
학식이 있는 마음을 안정시켜
이법을 확실히 알며,
자제하고 노력해서,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큰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또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더렵혀 지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이빨이 억세고
뭇짐승의 왕이 된 사자가
다른 짐승을 제압하듯이,
종벽한 곳에 살기를 힘쓰라.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자비와 평정과 연민,
그리고 해탈과 즐거움을
때에 따라 잘 다스려,
세상을 등지는 일 없이,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탐욕과 증오와 미망을 버리고,
집착의 매듭을 끊어,
목숨을 바치는 일이 있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며,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사람들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사귀며 또 남을 섬긴다.
오늘날 이익을 구하지 않는 친구는
찾아 볼 수 없다.
자기 이익만을 아는 사람은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니,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
3
<작자 미상>본-----------------------------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연정에서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숲속에서 묶여 있지 않은 사슴이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욕망은 실로 그 빛깔이 곱고
감미로우며우리를 즐겁게 한다.그러나 한편 여러 가지 모양으로우리 마음을 산산이 흩쳐 놓는다.욕망의 대상에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서로 다투는
철학적 견해를 초월하고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도달하여도를 얻은 사람은'나는 지혜를 얻었으니이제는 남의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알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갈망하지 말고,
남의 덕을 가리지 말고,혼탁과 미혹을 버리고세상의 온갖 애착에서 벗어나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세상의 유희나 오락혹은 쾌락에 젖지 말고관심도 가지지 말라.꾸밈 없이 진실을 말하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물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이한번 불타버린 곳에는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마음속의 다섯 가지 덮개를 벗기고온갖 번뇌를 제거하여
의지하지 않으며애욕의 허물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최고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 정진하고마음의 안일을 물리치고수행에 게으르지 말며용맹 정진하여 몸의 힘과 지혜의 힘을 갖추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애착을 없애는 일에 게으르지 말며,벙어리도 되지 말라.학문을 닦고 마음을 안정시켜이치를 분명히 알며 자제하고 노력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빨이 억세고 뭇짐승의 왕인 사자가다른 짐승을 제압하듯이궁벽한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비와 고요와 동정과 해탈과 기쁨을적당한 때에 따라 익히고모든 세상을 저버림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욕과 혐오와 헤맴을 버리고속박을 끊어 목숨을 잃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수타니파타 (Sutta-nipāta)수타니파타는
불경 가운데 가장 먼저 이루어진 경으로
초기 경전을 대표하는 경이다.
수타(sutta)는 팔리어로 경(經)이란 말이고
니파타(nipāta)는 모음[集]이란 뜻으로
부처님 말씀을 모아놓은 것이란 뜻이다.
길고 짧은 갖가지 시를 담은 시집인데,
때에 따라서는 산문도 섞여 있다.
사품(蛇品), 소품(小品), 대품(大品),
의품(義品), 피안도품(彼岸道品)의
5장(章)으로 되어 있다.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가라'고
설하는 유명한 시는
사품 제3경에 수록되어 있다.이 경은 ≪법구경≫ 등과 같이 성립된 시기를
인도의 아소카 왕 (마우리야 왕조 3대 왕,
재위 BC 268∼BC 232) 이전으로 보고 있다.
모두 5품(5장)으로 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제4장 <의품(義品)> 속에 들어 있는
8편의 게송과 제5장 <피안도품(彼岸道品)>이
먼저 이루어진 것으로
5품의 내용이 별도로 유통되다가
어느 시기에 함께 모아져 합집된 것으로 본다.
원래 이 ≪수타니파타≫는
팔리어로 된 남전(南傳) 장경에 속한 경이다.
그러나 한역 장경 속에도
이 경의 제4장 <의품>에 해당되는
≪불설의족경(佛說義足經≫ 2권이 번역, 포함되어 있다.
이는 서북 인도 출신의 지겸(支謙)이
중국으로 와 오(吳)나라 때 3세기 중엽에
번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수타니파타≫는 무엇보다도 석가모니 부처님을
역사적 인물로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경이다.
물론 ≪아함경≫ 등에도 부처님의 역사적 행적을
찾아볼 수 있는 점이 많이 있으나 ≪아함경≫보다
이 경이 먼저 이루어진 경이므로 부처님의 육성이
제일 먼저, 그리고 더 생생하게 담겨 있는 경이라
할 수 있다.이 경은 불교의 종교적 신앙 색채를
거의 띠고 있지 않으면서 단순하고 소박한 말씀으로
수행의 길을 간명하게 밝히고 있다.
한 말씀 한 말씀에
부처님의 자상한 인간미가 배어 있으며,
지혜롭고 자비로운 부처님의 이미지가
경문을 통하여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원래 ≪수타니파타≫의 경문은 운문인
시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제자들이 부처님 말씀을 읊으면서
기억하도록 했던 것이다.
마치 우리가 시를 외우고 읊으면서
시를 감상하는 것처럼 부처님 말씀을 읊으면서
음미하도록 했다는 말이다.
물론 중간 중간에 산문체의 긴 글귀가 나온다.
같은 말이 반복해서 설해지고 있는 곳도 꽤 많다.제1장 <사품(蛇品)>이라는 뱀의 장에서는
뱀이 허물을 벗는 이야기를 비유로 들어
수행자는 이 세상 저세상을 다 버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는 모두 세속적 경계를 버리는 수행자의 근본정신에 대해
설해놓은 이야기다.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후렴이 붙어 있는
말들이 계속해 나오는 대목도 있다.이러한 말들은
출가수행자가 어떠한 정신에서
출가수행자가 되는가를 밝혀주는 말들이다.
오직 스스로의 독립과 자유를 찾아
어디에도 매이는
인연을 만들지 말라 했다.
사람에게 그리움을 가져서도 안 된다 했다.
연정에서
우환이 생긴다는 것을
일깨워 사람을 사귀어
정을 붙이지 말 것도 강조했다.제2장 <소품>에는
‘진리에 의해 행복하여라’는
부처님의 축복이 나오는 대목이 있다.
수행하여 얻은 진리가
이 세상의 보배며
이 보배에 의해
모두가 행복해지라는
축원의 말씀이
자상하게 설해진다.
그리고 과거 부처님으로 등장하는
가섭불의 가르침이라 알려진
‘비린 것’ 이야기가 있다.
비린 것이란,
살생 등 악업을 짓거나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을
비린 냄새에 비유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소품>의 뒷부분에는
수행자의 편력(遍歷)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또 여덟 가지 계율에 관한 것을
설하는 대목도 있다.제3장 <대품>에는
먼저 출가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이 대목에서 마가다국의 왕이었던
빔비사라 왕과 대화 나누는 장면이 있다.
≪불본행집경≫에는
빔비사라 왕(漢譯, 洴沙王)이
출가 수행하는
고타마 태자를 영토의 절반을 줄 테니 환속하여
임금이 되라고 권하는 장면이 있으나
<대품>에서는 왕사성에 탁발 나온 부처님을
누각에 있던 빔비사라 왕이 보고
점잖은 거동에 마음이 끌려
신하를 보내
그가 가는 곳이 어딘지 알아오라 한다.
고타마가 판다바 산에 사는 수행자임을 알고는
왕이 수레를 타고 판다바 산으로 가
고타마를 만나 태생을 묻는 등
대화를 나눈다.<대품> 중간에
‘바라문이 아님을 알아라’,
‘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라는 말이
후구(後句)로 붙어 있는
가르침의 말들이 상당 부분 나온다.“여기서 바라문이란 용어의 사용에 대해
주의할 점이 있다.
원래 바라문이란 인도의 사성 계급
가운데 최상위 신분인
바라문교의 전권을 가지고 있는
사제(司祭)를 지칭하는 말이나
불교의 초기 경전에는
이 용어가 수행의 완성자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수타니파타≫에서는 이 바라문이
위의 <대품>의 후송에는
수행의 완성 자를
뜻하는 말로 쓰였지만,
다른 곳에서는 외도 수행자
범지(梵志)로
등장하는 대목이 있다.
바라문과 부처님이 문답을 주고받는 장면도 나온다.<대품>에서는 사람의 행위를 중시한다는
말이 여러 차례 나온다.
이는 불교의 기본 교의라 할 수 있는
업(業, Karma)을 강조하는 대목이다.제4장 <의품 (義品)>은
‘욕망’, ‘동굴’, ‘분노’ 등
여덟 편의 게(偈),
곧 시구가 설해져 있다.
이 이상 이 가운데 ‘동굴’ 장(章)은
인간의 육체를 동굴에 비유하여 설한
유명한 이야기로 사람이 집착을 벗어나기
어려움을 설하고 있다.제5장 <피안도품 (彼岸道品)>에는
바라문의 제자 16명으로부터
차례로 질문을 받고 답해주는 내용이
설해져 있다.≪수타니파타≫에는
부처님을 눈 뜬 사람이라고
표현한 말이 자주 나온다. ≪수타니파타≫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해 본 것이다.
부처님 설법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이 경은
계(戒)ㆍ정(定)ㆍ혜(慧) 삼학과
4성제,
12인연 등의 불교의 근본교리도
사변적인 이론을 내세우지 않은 채
소박하게 설해져 있다.
8자를 고쳐야지<16>
천영필
팔자 고칠 일이 벌어졌다끝도 없이 이어 8자로 써지는삶에 이골이 났다남 탓 남 탓하다가이리 저리 팔려 다니는내 꼬락서니모든 걸 내 안에서 원인을 찾아 보니근본의 문제는 남이 아닌내가 바로 문제로다내가 주인인데 뭐가 문제인가?십중팔구의 팔이 적잖긴 하지만내가 맘대로 할 수 없는 건내게 아니다주어진 팔자로이리 저리 팔려 사느니적극적으로온전한 내 것으로 살아보자8자를 세우는 일 그만하고발로 한번 걷어차서넘겨 보자무한대가 되지 않는 가이제는 나의 역량을 무한대( ∞ )로발휘해 보는 거다만세! 만세! 만만세!내가 주인 되니 어찌 이리 좋을 수 가!
<번야심경>
산스크리트어 본 번역 연구옴. 존경스러운 거룩한 반야바라밀다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관자재보살께서는 심원한 반야바라밀행을 하시며 조견(照見)하셨다.오온들과 그들의 자성의 공(空)함을 보았다.여기 사리불이여,
색은 공이며, 공이야 말로 색이며,
색은 공과 다르지 않으며 색인 것이 바로 공이며
공인 것이 바로 색이다.
수 상 행 식 도 이와 같다.여기 사리불이여,
모든 법들은 공상(空相)이며, 생기(生起)하지도 않고
소멸(消滅)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고
감소도 없고 증가도 없다.
그러므로 사리불이여,
공(空)에는
색(色)이 없고
수(受)가 없고
상(想)이 없고
행(行)이 없고
식(識)이 없으며
안 이 비 설 신 의(眼 耳 鼻 舌 身 意)도 없으며,
색 성 향 미 촉 법 (色 聲香 味 觸 法)도 없으며,
안계 (眼界)도 없으며
내지
의식계 (意識界)도 없으며,
무명 (無明)도 없으며,
무명(無明)의 소멸도 없으며
내지
노사 (老死)도 없으며
노사 (老死)의 소멸도 없으며,
지혜도 없으며,
얻음도 없으며
얻지 못함도 없다.그러므로 사리불이여
얻어야 할 바가 없으므로
보살은 반야바라밀에 의존해서
마음의 장애가 없이 머문다.마음의 장애가 없는 까닭에
두려워하지 않으며
전도 (顚倒)를 뛰어 넘어
구경 (究竟)에는 열반을 얻는다.
삼세(三世)에 머물고 있는 모든 부처님들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존해서
무상(無上)의 정등각(正等覺)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알아야한다
반야바라밀다는
위대한 진언(眞言)이며,
무상(無上)의 진언(眞言)이며,
견줄 수 없는 진언이며
모든 괴로움을 제거하는 것이니,
진실로 잘못된 점이 없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에 관해서 설해진 진언은
다음과 같다.
가서 가서 피안으로 가서 피안으로 완전히 갔을 때에 깨달음이여!
쓰바하(축복의 소리)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다심경은 끝났다.
隨處作主 <17>
수행으로 내 인생, 내가 주인으로천영필내 인생, 내 삶이내 작품[隨處作主]이라고확신해야내가 고칠 수 있다.부처님 작품이거나신의 작품이라고 한다면,나는 감히 고칠 수 없을 것이다.다만 할 수 있는 것은고쳐달라고 구걸 하는 것 뿐!하지만 내 작품이므로내가 고칠 수 있다.고정된 실체로서의‘나’는 없기 때문에어떠한 ‘나’도만들 수 있고,텅 비었기 때문에무엇으로 든 채울 수 있다.항상 천변만화 [無常]하는내가 있는바로 지금 여기가 다 진리[立處皆眞]이다.결국 성품은 디지털식으로단박에메타버스 기상 현실 세계로보아[覺]야 하며,몸과 마음은 아날로그 식으로반야바라밀다 [수행방식] 로꾸준히 실천궁행해야 한다.
나는 나를 벗 한다 <18>천영필나[吾]는 친구가 많지만제일 좋은 친구[友]는바로 지금 여기 나[我] 말이다예전의 나도 아니고미래의 나도 아닌바로 지금 여기의 나 말이다여전의 내가 무얼할껄후회하는 내가 아니라내일의 태양 아래 웃음지리란무얼 바라는 내가 아닌충만과 행복과 열반의 나 말이다사경 기도를 하면 함께 하고책을 읽으면 함께 듣고 호응하면서취음을 하면 함께 즐기며노래하면 듣고 받아치며 말이다*오우아거사 말이다*이덕무(1741~1793 영조~정조대)
사가 시인, 규장각 검서관,궁내출판 편집인,실사구시 지향 작가로
문체반정에 곤혹을 치름
전남대학교 이중표 교수-중도와 십이입처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높게 평가받고 있는 책이
용수의 중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은 책이
용수의 중론이다.
처음에는 읽으면서 너무 어려워
왜 그런 평가를 받는지
이해하지 못했다.하지만 계속 읽으면서
사유하다 보니
정말 제2의 부처로
칭송받아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오늘은 중론에서
‘열반과 세간은 조금도
분별한 것이 없다’는 것을
가지고 이야기 하겠다.불교의 목적은 열반이다.
중론의 열반품은
우리의 목적인
열반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게 바른 이해인가를 말한다.
여기서 열반과 세간은
조금도 분별할 것이 없다.
그리고 세간과 열반도 또한
조금도 분별한 것이 없다.이것은 동일한 말을 하는 것이다.
A=B이고 B=A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분별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르긴 한데
분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론에는 이에 대해
“열반의 실상과 세간의 실상은
호리의 차별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열반을 추구할 것인가.
의상대사의 법성게에
생사열반상공화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은 생사의 자리에서 깨달음 얻어
올바른 실천을 하게 되면
열반을 증득하게 될 것이지만
현실에서의 생사와 열반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종교는 현실에서 이상을 추구한다.
이상을 어디에 두느냐는 중요한데
사람들은 이상을 추구할 때
자기가 있는 자리를 떠나고 싶어 한다.
딴 세상에 가고 싶어 한다.
천당이나 극락을 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론에서는 서있는 자리를 떠나서
열반을 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달라져야 옳은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러지 말라는 것이다.
실제 실상을 보면
생사로서 느끼는 그 자리가 열반의 자리인데
인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불자들은 신세를 바꾸려 하지 말라.
생사는 항상 함께하고 있어,
그 자리가 열반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깨달음을 통해 나오는 세계로
인식의 변화이고,
의식의 전환이다.
불교는 존재론적으로
수행 목적이
열반에 있는데
고통스런 현실 속에서
열반을 얻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런 생각이 든다면
부처님을 생각하라.
부처님은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거기서 열반을 발견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 의식이 문제다.현실 존재를 변화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의식을 변화시키자는 것이다.
의식은 변한다.
삶을 통해 변한다.
선한과보가 열반이다.
열반도 업을 통해 성취하는 것이다.
수행도 업이다. 선업이다.
이런 것을 알고 공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