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발걸음을 기억했기에이기수 신부(수원교구 둘다섯해누리 시설장, 주교회의 사회복지위 총무)
이기수 신부
외출하고 돌아온 저에게 수녀님이 급히 보자고 하십니다. 어떤 젊은 어머님이 어린 장애 자녀를 맡기러 왔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중한 암에 걸렸고, 오래 살 것 같지 않아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빈자리가 없어 되돌아갔다는 사연을 전하는 수녀님은 울고 계십니다. 저 역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예수님 같았으면 어떻게 하셨을까? 누구도 되돌려 보내지 않고 모든 이를 치유시켰던 그분의 기적을 행하는 건 저에게는 불가능했습니다.
당시 저는 교구에서 직영하는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중증발달장애인 시설에 있었습니다. 심혈을 기울여서 잘 지어졌다는 소문은 소문을 낳고, 여기저기서 몰려오는 부모님들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때였습니다. 솔직히 피하고 싶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처지가 어려운 분의 소식을 들으면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더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증발달장애인 시설에서 아쉬움이 많았지만 특수사목을 끝내고 저는 본당신부로 돌아왔습니다. 사회복지를 전공했기에 남다른 관심을 사회복지분과에 매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발달장애인 어머님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분들은 또 다른 시설을 지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고민했습니다. 기도가 필요했고 몇 주의 시간을 보내면서 이것이 내가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라는 것을 어머님들에게 알려드렸습니다. 최종 결심을 한 이유는 과거에 저를 만나지 못하고 죽음을 앞둔 익명의 어머님이 그려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를 찾아온 어머님들도 그만큼 간절했습니다. 그들의 외침에 더 이상 침묵한다는 것은 직무유기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주교님께 저의 결심을 알려드렸습니다.
“주교님, 제가 가야 할 길은 본당신부가 아닌 것 같습니다.” 주교님은 저의 결심을 매우 존중해 주셨고 어머님들의 뜻이 잘 이뤄지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기수(수원교구 둘다섯해누리 시설장,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총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