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경남 의령에서 태어남. 아호 수하下.
마산고등학교, 진주교육대학교,
국립창원대학교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1985년 「시조문학」 천료.
1997년 월간 『 문학 』, 『 시문학 』,
문학평론 발표.
시조집 『 인과율 』, 『 비상을 위하여 』,
『 클릭! 텃새 한 마리 』,
『 는개, 몸속을 지나가다 』,
『 새들의 생존법칙 』,
『 비포리매화 』,
논저 『 노산시조론 』, 『 생태주의 시조론』,
평론집 『언어의 정수, 그 주술력 』,
『 평화 저 아득한 미로 찾기 』 ,
동시집 『 손이 큰 아이괘관문집 』,
『 바람을 안고 살다』,
산문집 『별나게 부는 바람』,
번역집 『 김기호 시 묵묵옹집』,
시조에세이집 『 시조의 진경 톺아보기』,
교육도서 창조하는 힘을길러주는 방법 등 펴냄.
한국시조문학상, 성파시조문학상,
경상남도문화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2015 세종도서문학나눔,
2019 아르코문학나눔 선정.
의령충혼탑 헌시, 헌사 헌정(2013).
경상남도문인협 회장, 경남문학관이사장,
한국시조시인협회 부이사장,
오늘의시조시인회의부의장,
노산탄신100주년기념사업회장,
「화중련」 주간,
창원대학교, 진주교육대학교 강사,
경남거제교육청교육장 등 지냄.
현재 국립국어사전박물관건추위 공동대표,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문학인신문 논설위원.
시인의 말
시조는 정제된 언어로 빚어져
고졸古拙한 멋과 맛이 있는 언어 예술이다.
‘파자’ 연작 시조는
언어의 아름다움을 찾아내기 위해
해학과 풍자를 동반하여
우리말 우리글을 새롭게 해석한 작업이다.
표음, 형성, 회의, 불립문자를 보면서
느린 걸음으로
나의 삶과 사유방식에 터하여
의미를 유추하고 풀이하고자 했다.
이런저런 연유로 오랫동안 묵혔다.
기다려준 시조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자연은 사람처럼 꼼수를 부리지 않는다.
내가 바로 자연임을 음미하며 살아간다.
영오재 悟齋에서
수하水下 김복근
들을 청聽
-파자破 2
사람의 모가지를 칼날로 내리치듯
눈 뜨고 귀를 세워 마음 닦은 임금처럼
아귀를 찍어 누르며 되새기는 돋을무늬
틈 2
-파자破字 24
금간 바위처럼 사람 사이 틈이 있다
그 틈을 메우려고 어리숙한 내가 섰다
갈라진 오장 사이로 바람이 지나간다
혈관을 타고 도는 피치유의 강이 되어
비워야 새살 차듯 통증을 삭혀낸다
굳은살 경락을 풀며 솔씨 한 알 살려낸다
아버지 부父
-파자破37
아버지 돌아가시자
내가 나를 책임져야 했다
크고 작은 일들이 해일처럼 몰려왔다
아버지, 나직이 부르며 목메는 단근질
뒷산이 무너지는 아픔이 몰려왔다
도처가 어둠이라 걷기도 어려웠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
막막해진
떠돌이별
마음 허할 특忑
-파자破56
바람 부는 벌판에 몰려온 허물들이
다리를 절뚝이며 흔들리는 별빛들이
마침내 벽을 허문 채 주리를 틀고 앉아
지나온 길 아득하여 주름진 바람처럼
연결고리 비켜서는 얼킨 머리 타래처럼
등고선 가로지르며 들피 가슴 조여 온다
눈물 젖은 어둠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붉은 눈 부라리며 목이 타는 올가미
내 마음 나도 모르게 온몸이 저려온다
추천사
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 시인의 인생관과 삶의 태도를 엿보는 것이다. 나는 파자시조를 읽으면서 김복근 시인의 삶에 대한 태도의 한 면을 엿보았다. 오랫동안 정형시에 몸담아 왔고 정형시의 법고창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김복근 시인이 이번 시집을 통해 "감돌아 풀물 든 사람[人]/ 휘갑치듯 사노라네 라는 표현에서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의 삶의 태도를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 산은 그 높이에 있지 않고 신선이 깃들어야만 명산이 된다는 선인의 마음을 설핏 엿보았다. "나비가 꽃을 그리듯 마음이 휘는 시간을 인忍파자 23)"이었다. 나는 김복근 시인이 "감돌아 풀물 든 사람[ㅅ](신선 선仙파자破 7)"으로서 앞으로도 “산부재고 유선즉명山不在高 有仙崱名" 이라는 선인의 삶을 계속 이어 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성선경(시인)
김복근 시조집 밥 먹고 싶은 사람은 파자시로 전개되고 있는데, 「꽃 화花」를 살펴보았습니다. 여든여덟 음절로 하나의 세계를 피워낸, 화엄 세계로까지 '꽃'의 의미를 궁구하기 위하여 '작두날 딛고 서'는 아픔까지 감내하는 '꽃'의 모습은 강렬한 인상으로 남습니다.
-공영해(시조시인)
교황 방한 후 ‘죄’는 더 무거워졌다. 낮고 아픈 이들에게 온 사랑을 쏟으며 용서와 화해를 전파한 그분의 뒤가 참으로 길다. 그런데 손톱만치도 따르지 못한 채 우리는 또 일상 속의 죄를 짓고 산다. "꽃을 무잡하게 희롱하"(「허물 죄罪)는 것도, "망어를 퍼뜨리"(앞의 시)는 것도, 어쩌다 '야차'가 되는 것도, 죄라면 다 죄다. 하지만 소소한 죄야 엎드려 빌면 용서할 수 있는 것, 문제는 큰 죄다. 물어야 할 죄는 태산인데 '내죄요' 가슴 치는 자 하나 없이 발뺌에만 급급하니 더 막막하다. 나라 망친 큰 죄들을 거르기는커녕 법망이 길을 터줄 때도 많아 또 암담하다. 그때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엎드려 비는 것은 애꿎은 풀들이었던가.
-정수자(시조시인)
해설
감돌아 풀물 든 사람 - 김복근 파자(破字) 시조집에 대하여
성선경(시인)
시는 늘 새로움을 추구한다. 새로운 이미지, 새로운 발상, 새로운 형식이 시적 존재의 한 축이다. 그러나 간혹 시인들이 이 새로움에 너무 취해 자신의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래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 필요하다 하겠다. 다소 진부한 표현이지만 늘 새로움을 추구하되 법고法古의 정신을 잃지 않아 길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시력 40년의 김복근 시인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이 길을 가장 충실히 지켜온 시인이다. 이번 파자(破字) 시조집에서도 이 점은 돌올하다. 파자시破字詩의 전통을 이어받아 시조에 새로움을 더하였지만, 시조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정형성을 하나도 흩트리지 않았음을 눈여겨볼 만하다.
물처럼 살아온 날, 내가 나를 돌아본다.
종종걸음 멈추고 중심을 잡아본다.
혼자서 맴을 돌다가 헛발질 돌을 차고
사는 일이 아파서 돌아보지 않으려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내가 나를 돌아보며
어둠을 밝히는 불빛
맑은 쉼표 찾아내어
나를 본 내〔王〕가 머리에 등〔?〕을 달고
저만치 빛을 보며 가슴을 쓸어보면
내 속〔主〕에 나를 그리는 바람도 숨죽인다. - 주인 주主(파자破字 41)
위 시조는 ‘주인 주主’ 자字를 파자한 시조다. ‘주인 주主’ 자字란 본래 의미가 자신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려니와 이 시조는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와 인생관을 담고 있어 그 의미를 더한다.
단일한 파자破字의 설문 유형設問 類型 표현방식에는 첫째 형상形象으로 나타난 것, 둘째 한자漢字의 분합分合으로 나타낸 것, 셋째 음音의 상이相似를 이용利用한 것, 넷째 의미면意味面으로 나타낸 것, 다섯째 대유법代喩法으로 상징적象徵的으로 나타낸 것, 여섯째 기타 파자화破字化 표현 등으로 볼 수 있는 데, 위의 시조는 한자漢字의 분합分合으로 나타낸 것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조는 한자의 분합을 넘어 자신의 삶 전체를 되돌아보며 자신의 삶의 주인에 대하여 성찰하고 있어 그 의미를 더한다. 삶의 주인이 ‘나’ 라고 했을 때 이 주인을 돌아다본다는 것은 곧 나를 되돌아보고 반추하여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나는 이렇게 살았구나 하고 정의한다면 이는 나는 이런 인생관으로 살아왔구나, 하는 성찰로 이어지는 것이라 하겠다. 주인主人이란 “내〔王〕가 머리에 등〔?〕을” 단 것이란 표현은 얼마나 참신한가? 또 한 편을 보자.
산山은 여름 불러
진초록 덧칠하고
별을 품고 내려오는
피친토드 맑은 공기
감돌아 풀물 든 사람〔人〕
휘갑치듯 사노라네. -신선 선仙(파자破字 7)
신선神仙은 산에 든 사람이란 의미의 파자시 이다. 이 시를 보면 김삿갓의 탁자시坼字詩를 생각나게 한다. 김삿갓의 다음 탁자시坼字詩를 한 번 보자.
신선은 산 사람이나 부처는 사람 아니요 仙是山人佛弗人 (선시산인불불인)
기러기는 강 새지만 닭이 어찌 새이리오 鴻惟江鳥鷄奚鳥 (홍유강조계해조)
얼음이 한 점 녹자 다시금 물이 되고 氷消一點還爲水 (빙소일점환위수)
두 나무 마주 서니 어느새 숲이 되네 兩木相對便成林 (양목상대편성림)
김삿갓의 탁자시坼字詩를 보면 '선仙'은 '인人'과 '산山'이 합한 글자 파자하면 '산인山人'이다. '불佛'은 '불인弗人' '홍鴻'은 '강江', '조鳥' '계鷄'는 '해奚', '조鳥' 이 네 글자를 파자하여 의미로 쓴 것이 1.2구 '빙氷'이 점 하나 녹으면 '수水' '목木'이 두 개 나란히 하면 '림林'이 되는 문자의 유희이다.
김복근 시인은 김삿갓의 탁자시坼字詩를 뛰어넘어 현대 시조로 재탄생시켰다. 김삿갓의 탁자시坼字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신선神仙을 “감돌아 풀물 든 사람〔人〕”이라니!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당나라의 시인 유우석劉禹錫이 쓴 ‘누실명陋室銘’에 나오는 내용의 “산부재고 유선즉명(山不在高 有仙則名)” 즉 “산은 높은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산에 신선이 살아야 명산이다”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는 표현이다. 참 빼어나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 시인의 인생관과 삶의 태도를 엿보는 것이다. 나는 이번 파자 시편을 읽으면서 김복근 시인의 삶에 대한 태도의 한 면을 엿보았다. 오랫동안 정형시에 몸담아 왔고 정형시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김복근 시인이 이번 시집을 통해 “감돌아 풀물 든 사람〔人〕/ 휘갑치듯 사노라네 라는 표현에서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의 삶의 태도를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 산은 그 높이에 있지 않고 신선이 깃들어야만 명산이 된다는 선인의 마음을 설핏 엿보았다. “나비가 꽃을 그리듯 마음이 휘는 시간[참을 인忍(파자破字 23)]”이었다. 나는 김복근 시인이 “감돌아 풀물 든 사람〔人〕[신선 선仙(파자破字 7)]”으로서 앞으로도 “산부재고 유선즉명(山不在高 有仙則名)”이라는 선인仙人의 삶을 계속 이어 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