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이거 올라갈 순 있는 거야?” 지난겨울. 조명탑에서 고공농성중인 김인철 지회장의 건강상태를 확인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토요일 낮에 진료장비들을 챙겨서 터미널에 도착을 했을 때 솔직히 겁이 났다. 나를 조명탑으로 옮겨줄 사다리차의 크레인이 겨울바람에 좌우로 흔들거렸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지면위에 선 크레인은 무게중심을 잡지 못하고 마치 거대한 나무가 바람에 휘청거리듯이 흔들렸다. 두려웠다. 그래서 119 대원이 ‘크레인으로는 더 이상 다가가기가 힘들다. 조명탑에 올라가 김인철 지회장을 진료하고 오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고 했을 때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론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조명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김인철씨를 생각하면 그냥 돌아갈 수가 없었다. 조명탑 밑의 뾰족탑 본체 양쪽에 걸어놓은 발걸이를 타고 올라가보는 방법을 고민도 했다. 하지만 그 조명탑 밑바닥의 구멍으로 들어가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해보였다. 그것은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허공에 몸을 매단 채 팔 힘에 의지해서 그 구멍 안으로 들어가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팔에 힘이 조금만 풀리거나 발을 잘못 디디면 아스팔트 바닥에 그대로 머리가 내리 꽂히는 것이었다. 그제야 나는 김인철 지회장이, 영하 15도를 넘나드는 조명탑에서 87일간을 버틴 일 뿐만 아니라, 그곳에 올라가는 과정 자체가 목숨을 건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87일간의 고공농성에도 협상이 결렬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맨 먼저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이 세상은 목숨을 걸어도 안 되는 일이 있구나.’
며칠 후 다행히 협상은 타결되었다. 김인철 지회장에 대한 징계를 최소화한다는 것에 대해 사측이 합의한 후였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지금, 김 지회장은 다시 진흥고속 사측과 싸우고 있다. 사측에서 해고 통지를 했기 때문이다. 징계를 최소화 한다는 약속이 어떻게 해고와 동의어가 될 수 있는지... 하지만 이 어이없는 조치에 대해 당사자들 외에는 아무런 사회적 관심이 없다. 조명탑에 올라가 있는 지회장의 안부에 가슴 졸이며 영하 15도로 내려가는 날씨가 되면 맨 먼저 조명탑을 바라보던 시민들도 모두 흩어졌다. 그 빈터에서 김 지회장은 언제 끝날지 모를 싸움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 끝나지 않은 전쟁. (과격한 표현일수도 있겠지만 목숨을 걸고 했던 일이란 점에서 달리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지만 시민들의 싸움은 끝나버린 것 같다. 사측에서 원했던 것도 아마 이런 상황일 것이다. 지난 해 천막농성중인 진흥고속 조합원들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하루 평균 15시간씩 운전을 하고 어쩔 땐 잠도 못자고 바로 새벽차에 배치가 될 때도 있어서 운전 중에 뇌경색이 온 분,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가 난 분, 가정생활이 안 되어 이혼을 한 분도 있었다. 그런 분들이 운전을 하는 버스를 우리가 타고 있는 거였다. 우리들의 안전도 그분들의 삶도 위태로운 상황에서 김인철씨와 몇몇 조합원들이 그런 버스는 멈춰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해야 되는 일은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이 되기 마련인 세상에서 그 일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얼마 전 밀양 송전탑 반대 1인 시위를 남춘천역에서 한 적이 있다.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을 서 있었지만 옆에 아내라도 없었다면 참 외로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무심한 시선을 느낄 때면 내가 왜 여기 서있는 건가하는 생각도 솔직히 들었다. 단 몇 분도 길게 느껴지던 그 시간을 삶 자체가 1인 시위가 되어버린 김인철씨는 어떻게 견뎌내고 있을까. 해고 기간이 길어지면서 식당일에 나선 아내를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의 외로움을 생각하면 차라리 그가 그의 선택을 후회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라도 그의 싸움이 빨리 끝났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한 사람의 희생을 바라보느니 차라리 세상의 퇴보가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저 무심히 지나가는 시민들도 당분간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다시 질문은 나에게로 돌아왔다. 너는 뭐냐고. 저 무심히 지나는 시민들의 발걸음 속에 묻혀 있는 너는 도대체 뭐냐고. (양창모. 춘천녹색당원. 강원 희망신문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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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탑에 올라가야만 했던 이유가, 조명탑을 내려오고 난 이후에도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김인철 지회장은 지난 겨울의 조명탑에서 아직 내려온게 아닌지도 모릅니다.
김인철 지회장과 진흥고속 조합원들만의 외로운 전쟁이 아니라
시민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는 작은 신호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춘천 녹색당에서 김인철 지부장을 모시고 얘기 들어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함께 해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