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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온통 전쟁중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피티기는
실제적 죽이고 죽는 잔혹한 전쟁도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더 매서운 눈총을 서로에게 들이다대고
서로 죽이고 죽는
정치적 전쟁도 그에 못지않게 잔혹하다.
세상은 이제
총 칼로 나라가 흥망성세
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로 인해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
그래서 개인이나
단체나 나라나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
어찌 그뿐이랴
종교, 인종, 문화, 사상, 철학, 교육...
모두가 양편으로 나누어
모두가 치열한 전쟁 중이다.
성경의 여러 논쟁들 중에
가장 대립되는 쟁점중의 하나가
아사셀 염소에 대한 것이다.
어떻게 똑 같은 성경을 보고
똑 같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똑 같은 한 존재를 보고
어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사탄, 마귀”라고 한다.
어떻게 똑 같은 존재를 보고
바라보는 눈이 이렇게도 차이가 날까?
어찌보면
이것이야 말로 “내가 진리다.”
큰 소리 치는 우리의 자만의 콧대를
낮추게 하는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닐까?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 14:12)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이도
차별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사랑하고 포용하는 법을 배워야할 것이다.
성경암송을 잘 하는 일은 좋은 일이고,
권장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누가 더 많이 외우느냐가 싸움거리가 되어서
더 많이 외우는 자를 화가 난다고
때려 눕히면 그것이야 말로 사탄이 기뻐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결코 논쟁이 아닌 진리를 향한 몸부림이다.
깊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연구해 보자.
성경전체의 뿌리와 중심은 모세5경에 있다.
그 모세 5경속의 복음의 원리, 구원의 도리가 선명히 나타나 있다.
모세5경의 중심은 레위기이다.
유대인들은 카이아즘이라 하여 아카시아 잎사귀의 모양처럼
좌우대칭 구조를 이루게 하고
가장 중요한 것을 가운데 놓는 문학적 구조를 좋아한다.
레위기의 중심은
레위기 16장이다. 대속죄일이 레위기의 중심이다.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의 최대의 논쟁점은
아사셀염소이다. 매일 매일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7월 10일 대속죄일을 통하여 드디어 1년의 최종적 정결을 경험하는 날이다.
이날은 1년중 에 가장 중요한 날로 온 유대인들이 금식하며 자신을 살피며 이날을 보낸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예식 중의 하나가 염소를 취하여 하나는 여호와를 위하여, 또 하나는 아사셀을 위하여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는 것이다.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레 16:8-10)
대속죄일의 전체 행사를 살펴보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라 핵심인 아사셀 염소의 문제만으로 관심들을 집중해 보자.
◈ 먼저 아사셀을 그리스도를 표상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주장을 살펴보자.
⑴ 첫 번째 증거: 속죄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염소 두 마리를 선택했다. 속죄제물로 삼기 위한 택한 것이니 당연히 속죄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것이 아닌가?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염소 두 마리와 번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양 한 마리를 가져갈지니라”(레 16:5)
⑵ 두 번째 증거: 두 염소를 다 “여호와 앞”에 두고 라고 표현하는데, 레위기에서 “여호와 앞”이라는 관용어구는 60회 사용되었는데, 단 한 번도 사탄에게 드린 적이 없다.
“또 그 두 염소를 가지고 회막 문 여호와 앞에 두고”(레 16:7)
⑶ 세 번째 증거: 아사셀도 속죄한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느냐?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레 16:10)
⑷ 네 번째 증거: 제비를 뽑는다.
성경에 여러 번 제비를 뽑는 일이 나온다. 그것은 대부분 하나님의 선택을 의미했다. 모든 경우를 다 찾아보면 선과 악 사이에 제비를 뽑은 적이 없다. 선악사이의 제비뽑는 일은 있을 수 없다.
⑸ 다섯 번째 증거: 드리되, 라는 히브리어는 “카라브”인데, 드린 다면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 아닌가? 받는 대상이 하나님이시기에 높여서 드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 살아 있는 염소를 드리되(카라브)”(레 16:20)
⑹ 여섯 번째: 아사셀 염소가 “모든 불의를 지고 가지” 않았느냐? 사탄은 절대 인간의 죄를 지고 가지 않았다. 세상 죄 지고 가는 어린 양을 보라. 침례요한도 외치지 않았느냐? 모든 불의를 지고 간다는 것은 대속의 개념이 분명히 들어 있는 것이다.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레 16:22)
⑺ 일곱 번째 증거: 아사셀을 위한 염소를 광야로 보냈다. 그 광야는 희망적 의미로 가득하다.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레 16:22)
현재 광야의 이미지는 죽음과 멸망의 땅이지만, 성경에서 미래의 광야는 언제나 희망적이었다.
이사야 35장, 노래할 땅. 미래 이미지는 다 긍정적이다. 광야는 회복과 영광을 상징한다. 이 아사셀 염소는 회복과 영광을 가져올 메시야의 표상이다.
“[1]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2]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7]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사 35:1,2,6,7)
⑻ 여덟 번째 증거: 아사셀의 원어를 살펴보면 “아사즈”+“엘”이다.
아사즈의 의미는 이긴다이고, 엘은 하나님이다. 아사즈는 승리의 하나님을 가리킨다.
죽는 염소가 십자가의 예수를 가리킨다면, 아사셀은 죽음에서 부활하여 승리하는 예수를 보여준다. 죽은 염소를 통해 십자가의 예수를 보여준다면, 광야로 간 산 염소는 부활의 구주이시다. 완벽한 구원의 모양이 다 보여졌다고 해석한다.
⑼ 아홉 번째 증거: 나병환자의 정결을 위한 예식에 쓰여졌던 두 새가 주는 교훈을 살펴보라. 이것과 유사하지 않은가?
레위기 14:1-9에 보면 나병환자의 정결을 위한 예식에서 두 마리 새 의식이 있다. 하나는 흐르는 물위에서 잡고, 다른 한 마리의 새는 피를 뿌리고 날려 보낸다. 죽은 새는 십자가의 예수를, 하늘로 날아가는 새는 승리와 부활의 예수를 가르치는 것처럼, 대속죄일에서도 두 마리의 염소중 하나는 십자가의 예수를, 광야로 내어보내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부활의 예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이 정도면 누구든 수긍할만한 탄탄한 성경적 기반의 논리이지 않은가?
누가 이에 대해서 항변을 제기할 수 있겠는가?
유투브에 검색해보면 아사셀을 예수님께 적용하고 은혜받고 감동받는 많은 내용들을 만날 수 있다.
그렇다면 “또 기록되었으되”하시는 예수님의 답변처럼,
성경의 진정한 의미와 뜻을 무엇일까?
우리가 이제껏 성경으로 아사셀 염소에 대해서 살펴본 것이 아닌가?
또 다른 성경의 답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베뢰아 사람들의 신앙적 태도처럼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받되,
이것이 정말 성경적인지? 문맥에서, 성경전체의 흐름에서 다시 한번 살펴보며 검토해 봐야 한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 17:11)
아사셀 염소의 논증을 위한 바른 성경적 이해를 살펴보자.
⑴ 첫 번째 증거는: 속죄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염소 두 마리를 선택했다. 속죄제물로 삼기 위한 택한 것이니 당연히 속죄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것이 아닌가?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염소 두 마리와 번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양 한 마리를 가져갈지니라”(레 16:5)
▶⑴레16장 5절을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그곳에 답이 있다.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염소 두 마리”를 가져갔다. 이 두 마리는 속죄제물로 가져간 것은 제비를 뽑기 전이다. 제비를 뽑는 일은 16:8에서 일어난다.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염소 두 마리와 번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양 한 마리를 가져갈지니라”(레 16:5)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레 16:8)
속죄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염소 두 마리를 가져간 것이다. “제비 뽑기 전이다.”라는 말은 “어떤 염소가 여호와께 드려질 염소가 될 지 모르기 때문에” 두 마리 모두를 속죄제물을 여호와를 위하여 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 마치 왕자의 아내를 뽑는 후보자들을 모집할 때에 “왕자의 아내를 뽑기 위하여 규수감들을 모집합니다.”라는 말과 같다. 그 안에 속죄제물이 있다는 의미이다.
⑵ 두 번째 증거: 두 염소를 다 “여호와 앞”에 두고 라고 표현하는데, 레위기에서 “여호와 앞”이라는 관용어구는 60회 사용되었는데, 단 한 번도 사탄에게 드린 적이 없다.
“또 그 두 염소를 가지고 회막 문 여호와 앞에 두고”(레 16:7)
▶⑵ 두 번째 증거에 대한 답변:
“또 그 두 염소를 가지고 회막 문 여호와 앞에 두고”(레 16:7)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레 16:10)
여호와 앞에 두었다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레위기에서 단 한 번도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사탄에게 드린 적이 없다.” 라고 하지만
레16장의 내용들이 다 대단히 독특하다. 레위기 전체에서 제비뽑기는 얘기도 여기만 나오고, 아사셀의 내용도 성경전체에서 여기만 나오는 다 특이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레 16:8)
제비는 여호앞에서 뽑아야 되라는 의미이다.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레 16:10)
여호와 앞이라는 표현은 제기뽑기 하나님의 철저한 주권아래 있음을 의미한다.
“여호수아가 그들을 위하여 실로의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고 그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의 분파대로 그 땅을 분배하였더라”(수 18:10)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고/ 제비 뽑는 것과 여호와와 결합되면 제비뽑는 것에 대한 여호와의 주권을 말한다.
결론의 정당성이 아니라 과정의 정당성을 말한다.
과정의 정당성을 결론의 성질로 설명하면 안 된다.
우리는 성경속에서 여호와 앞에 있던 악인들의 모습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창 10:9)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창 13:13)
⑶ 세 번째 증거: 아사셀도 속죄한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느냐?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레 16:10)
▶⑶ 세 번째 증거에 대한 답변:
속죄의 의미는 1가지만이 아니다. 레 16장에서
레16:10을 풀어서 설명해 놓은 구절이 있다. 그것이 바로 레16:21절이다. 두 구절을 유심히 비교하며 읽어보라.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레 16:10)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레 16:21)
공통점: 산채로/속죄하고(모든 죄를 아뢰고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광야로 보낼지니
레16:10에서의 속죄의 의미는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는 것,” 머리에 안수하여 두는 것을 말하고 있다.
⑷ 네 번째 증거: 제비를 뽑는다.
성경에 여러 번 제비를 뽑는 일이 나온다. 그것은 대부분 하나님의 선택을 의미했다. 모든 경우를 다 찾아보면 선과 악 사이에 제비를 뽑은 적이 없다. 선악사이의 제비뽑는 일은 있을 수 없다.
▶⑷ 네 번째 증거에 대한 답변:
제비뽑기: 요나서에 보면 이방인들이 제비뽑기한 것을 통해서 요나가 뽑힌다.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욘 1:1)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욘 1:2)
이방인들이 뽑은 제비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주권이 나타난다.
이방인들이 해서 무효하다가 아니라 요나가 나온 것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이 주관하셨음을 보여준다.
만약에 아사셀을 위한 염소가 그리스도를 나타낸다면 둘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같은 존재의 다른 역할을 위한 선택이다. 성경에서 동일한 대상을 가지고, 역할 분담을 위한 제비 뽑기는 없다. 제비뽑기는 언제나 한 존재에 대한 선택, 대조되는 다른 실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여호수아 7:14절에는 아간이 제비뽑히고, 여호수아 14장에는 제비를 뽑아 지파의 땅을 분배하고, 사도행전1장에는 맛디아를 12사도중의 하나로 선정한다.
⑸ 다섯 번째 증거: 드리되, 라는 히브리어는 “카라브”인데, 드린 다면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 아닌가? 받는 대상이 하나님이시기에 높여서 드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 ⑸ 다섯 번째 증거에 대한 답변:
“그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 살아 있는 염소를 드리되”(레 16:20)
드리되: 존칭어이다.
우리말 번역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의미를 보여주지만 “여호와께”, “하나님께”란 단어가 있는가?
카라브- 드리다. 끌고 온다는 의미이다.
16:20절을 다른 역본으로 읽으면 공동, 현대인, 쉬운 말, 우리말, 짐승을 끌고 온다는 의미이다.
드리되라는 히브리어 “카라브”라는 단어는 가까이 데리고 온다는 뜻이다. 많은 현대어 역들, 곧 공동, 우리말번역성경에서 “끌고 왔다”고 번역한다. 바른 성경 가져왔다라고 표현한다. “드리되”하면 하나님께 드린다고 되나, 끌고 왔다고 하면 하나님께 드린다고 이해할 근거가 없어진다.
“이렇게 하여, 아론은 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성결하게 하는 예식을 마치게 된다. 다음에 아론은 살려 둔 숫염소를 끌고 와서,”(레 16:20, 새번역)
“그는 성소와 만남의 장막과 제단을 정하게 하는 예식을 다 마치고는 살려둔 숫염소를 끌고 와야 한다.”(레 16:20, 공동)
“"그는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는 것을 마친 후에 살아 있는 숫염소를 가져오고,”(레 16:20, 바른)
“아론은 지성소와 성막 전체와 단을 정결하게 한 다음에 산 염소를 끌어다가”(레 16:20, 현대인)
“이렇게 지성소와 회막과 번제단을 위해 속죄 의식을 마치고 나면, 아론은 살아 있는 숫염소를 끌고 와야 한다.”(레 16:20, 쉬운말)
“아론은 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깨끗하게 하는 예식을 한 뒤에 살아 있는 숫염소를 여호와께 가져오너라.”(레 16:20, 쉬운)
“아론은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에 대한 속죄의식을 마친 후에 살아 있는 염소를 끌고 와라.”(레 16:20, 우리말)
⑹ 여섯 번째: 아사셀 염소가 “모든 불의를 지고 가지” 않았느냐? 사탄은 절대 인간의 죄를 지고 가지 않았다. 세상 죄 지고 가는 어린 양을 보라. 침례요한도 외치지 않았느냐? 모든 불의를 지고 간다는 것은 대속의 개념이 분명히 들어 있는 것이다.
▶⑹ 여섯 번째에 대한 답변:
지고의 의미 히)나사 – 나르다, 가지고 가다의 의미이다.
지고 히브리어 문장은 아주 독특하다. 전치사 알이 있다. 어떤 경우에 있는지 성경절을 찾아보자.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레 19:17)
“너희가 그 중 아름다운 것을 받들어 드린즉 이로 말미암아 죄를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성물을 더럽히지 말라 그리하여야 죽지 아니하리라”(민 18:32)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나사)가 너무 무거우니이다”(창 4:13)
레16:22 =창4:13 남의 죄를 대신 지고의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죄의 책임을 지고, 형벌의 책임지고의 의미이지 대속의 의미가 아니다.
⑺ 일곱 번째 증거: 아사셀을 위한 염소를 광야로 보냈다. 그 광야는 희망적 의미로 가득하다.
▶⑺ 일곱 번째 증거에 대한 답변:
광야의 긍정적 의미, 표상적 의미로 다 그 당시의 염소로 다 적용하는데, 왜 광야만 미래 이미지를 끌어당기는 것은 해석의 적용원칙에서 빗나간다.
광야에 놓여진다는 것은 광야에 가서 잘 살아라가 아니다.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죽는 사탄의 모습을 묘사하기에 적절한 것이다. 특히 광야에서 죽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는 회귀본능이 있어서 죽지 않고 돌아오는 염소들이 있어서 나중에는 아사셀염소를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져 죽게 하지 않았는가?
⑻ 여덟 번째 증거: 아사셀의 원어를 살펴보면 “아사즈”+“엘”이다.
아사즈의 의미는 이긴다이고, 엘은 하나님이다. 아사즈는 승리의 하나님을 가리킨다.
▶⑻ 여덟 번째 증거에 대한 답변:
아자즈엘은 어원적 분석은 다분히 상상이다. 우리 나라 말로는 아사셀이라 표기하지만 영어식 표기는 아자젤(Azazel)이다. 첫 번째 해석은 그것은 동물 자체의 성격을 보여 주는데, 즉 이탈하는 염소(escape goat)를 의미한다. 이것은 70인역 성경, 시마쿠스역, 그리고 불가타역 성경의 견해이다. 이 단어의 변화형은 <추방하다> <제거하다>란 뜻의 azala와 관련 지운다. 비록 그 당시 이러한 형태가 별로 없었을 것이지만 그렇게 관련 지운다.
두 번째 해석은 <아사셀>의 명칭은 동물이 도달하는 장소의 명칭이라고 보는 것이 랍비 주석가들의 해석이다. 랍비 주석가들은 <아사셀>을 <험악한 절벽>이라고 해석하였다. 어떤 학자들은 이 견해를 입증하기 위하여 이 이름을 <험악한>이란 뜻의 아랍어 azza와 관련 지우고 그것을 속죄 염소의 운명으로서 레16:21에 관련한 성경구절과 관련하여 <뽀쪽한 장소>란 뜻의 <벧 히두도>와 동일시한다. 따라서 이것을 구약 외경의 에녹서 10:4에서 아사셀 염소가 바쳐지는 곳으로 사막의 두다엘로 보는 견해이다.
사탄종교의 사탄의 가장 강력한 상징물 중의 하나가 염소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히 알려진 사실 중의 하나이다.
⑼ 아홉 번째 증거: 나병환자의 정결을 위한 예식에 쓰여졌던 두 새가 주는 교훈을 살펴보라. 이것과 유사하지 않은가?
▶⑼ 아홉 번째 증거에 대한 답변:
나병에서 새2마리 의식이 아사셀을 해석해주는 근거로 말한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아무 상관이 없다.
1) 염소 2마리는 그중 1마리가 속죄제로 드려진다. 그 자체가 정결케 한다.
레 14장에서는 새 2마리는 정결하게 하기 위해 드리는 게 아니라 다 정결이 끝난, 다 정결하다고 진단된 문둥병환자에게 적용되는 의식이다. 정결케 하는 일에 새의 역할이 없다.
2) 새의 1마리를 드리는데 이 의식은 성소에서 하는 의식이 아니라 나가서 한다.
3) 무엇보다도 새는 제비뽑기가 없다. 무슨 역할을 한다는 하나님의 주권의 역할이 없다.
4) 이 새는 레위기 희생제사에서 드려지는 새가 아니다.
5) 새 의식은 그 의식이 끝난 후에도 그 사람이 성소에도, 지경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기다려야 한다.
6) 새는 창공을 날지만 염소는 광야 무인지경으로 보내진다. 새는 자유를 얻지만, 염소는 죽도록 방임되는 것이다. 죽지 않을 때 절벽에 굴러떨어져 죽게 했다. 두 새와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아사셀 염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1> 레위기 16장은 어떤 짐승이 속죄제일 경우에는 한 번도 예외 없이 그 짐승 자체 앞에다가 속죄제라고 붙인다.
대조적으로 산염소를 보자. 속죄제라는 표현이 전혀없다.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레 16:15)
① “속죄제물의 기름을 제단에서 불사를 것이요”(레 16:25)
② “속죄제 수송아지와 속죄제 염소의 피를 성소로 들여다가 속죄하였은즉 그 가죽과 고기와 똥을 밖으로 내다가 불사를 것이요”(레 16:27)
③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하고 자기를 위한 그 속죄제 수송아지를 잡고”(레 16:11)
④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레 16:9) ...
하지만 아사셀 염소는 속죄제라는 표현이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레 16:10)
제비뽑은 속죄제 염소가 아니라 그냥 제비뽑은 염소이다.
② “그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 살아 있는 염소를 드리되”(레 16:20)
③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레 16:21)
레16장은 습관적으로 속죄제인 경우에는 반드시 속죄제 염소, 붙인 데 반해 제비뽑은 나머지 한마리는 한번도 붙이지 않는다. 본문이 구분하기 위해 명백한 장치로 구분한다.
2> 답2. 보내니: 억지로 보내는 것이다. 샬라흐 히) 추방이다.
H7971 שָׁלַח 샬라흐 shalach 보내다, 뻗치다, 쫓아내다, 내보내다
샬라흐(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보내다, (손을) 뻗치다, 쫓아내다, 내보내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850회 나온다.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레 16:21)
“그 성읍의 장로들이 물이 항상 흐르고 갈지도 않고 씨를 뿌린 일도 없는 골짜기로 그 송아지를 끌고 가서 그 골짜기에서 그 송아지의 목을 꺾을 것이요”(신 21:4)
3> 답3. 모든 불의의 최종적 책임이 있는 사탄을 상징한다.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레 16:21)
레16:16 부정 레16:21 모든 불의 (히) 아울노트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창 4:13)
가인의 경우, 죄벌=불의와 같은 명사이다.
죄벌을 지고 , 가인이 자기가 범한 죄의 벌을 지고,
4> 답 4 두 손으로 안수하고: 안수는 죄의 전가- 최종적인 죄책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레 16:21)
두 손으로 안수하는 의미: 아론이 아사셀에게 두 손으로 하는 것, 인간이 범한 고의적인 죄와 비고의적인 죄, 죄의 양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다.
머리에 안수하여
일반 하타트에서는 머리에 안수한다는 말이 많았다. 레16장은 여호와를 위한 염소에서는 머리에 안수의 의미가 없었다.
머리에 무엇을 한다는 의미의 성경의 예를 살펴보자)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나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니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왕상 2:37)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시 7:16)
누군가가 범한 죄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는 것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들의 행위대로 그들의 머리에 갚으리라 하시더라”(겔 9:10)
“그러나 미운 것과 가증한 것을 마음으로 따르는 자는 내가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 11:21)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레 16:21)
답3.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레 16:21)
레16:16 부정 레16:21 모든 불의 (히) 아울노트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창 4:13)
가인의 경우, 죄벌=불의와 같은 명사이다.
죄벌을 지고 , 가인이 자기가 범한 죄의 벌을 지고, 아울로트도
답 4 두 손으로 안수하고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레 16:21)
두 손으로 안수하는 의미: 아론이 아사셀에게 두 손으로 하는 것, 인간이 범한 고의적인 죄와 비고의적인 죄, 죄의 양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다.
머리에 안수하여
일반 하타트에서는 머리에 안수한다는 말이 많았다. 레16장은 여호와를 위한 염소에서는 머리에 안수의 의미가 없었다.
머리에 무엇을 한다는 의미의 성경의 예)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나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니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왕상 2:37)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시 7:16)
누군가가 범한 죄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는 것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들의 행위대로 그들의 머리에 갚으리라 하시더라”(겔 9:10)
“그러나 미운 것과 가증한 것을 마음으로 따르는 자는 내가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 11:21)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레 16:21)
혼혈인이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의 어머니가 이스라엘 여인이요 그의 아버지는 애굽 사람인 어떤 사람이 나가서 한 이스라엘 사람과 진영 중에서 싸우다가”(레 24:10)
“그 저주한 사람을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 그것을 들은 모든 사람이 그들의 손을 그의 머리에 얹게 하고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지니라”(레 24:14)
광야 진영 밖+ 손+ 머리에 얹음
죄벌을 확인시켜 주는 안수이다.
안수의 개념이 많다.
1) 권능, 지도력의 전가
2) 레24장 두 손 안수: 진영밖 – 죄의 근원에 대한 확인, 죄벌의 부여
신성모독자에 의해 생겨난 부정을 생산자에게 옮겨놓음으로 죄벌을 지고 돌에 맞아 심판받는 것이 아사셀 염소에게 병행된다.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레 16:21)
아사셀 염소: 마침내 책벌을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으로 간다.
속죄예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은 정결함을 얻고, 구원에 들어간다.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레 16:30)
양과 염소의 비유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마 25:31)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마 25:34)
나라는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마 25:41)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영원한 심판은 마귀를 위해 준비했다. 인간이 심판의 불에 들어가는 것은 구원의 길을 스스로 버리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아사셀염소는 이 사실을 우리에게 말한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살리고 마침내 사탄을 죽이고 살려내는 이야기이다. 대쟁투 사관은 십자가 이후에 십자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십자가가 완전하기에 심판이 있다. 모든 부정을 정결케 하고, 모든 죄의 근원이 사라지게 된다. 레 16장 본문에서 말해주고 있다. 우리의 기별대로 확실하게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사실을 온 세상에 전하자.
“의인들의 죄는 사단에게 옮겨진다. 그는 자기 자신의 반역의 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범하게 했던 모든 죄 때문에서도 고통을 받는다. 사단의 형벌은 그에게 속은 자들이 받는 형벌보다 훨씬 더 크다. 그의 기만으로 타락한 자들이 모두 멸망당한 후에도 그는 여전히 죽지 않고 계속하여 고통을 받는다. 정결케 하는 그 불로써 악인들은 뿌리와 가지, 곧 뿌리가 되는 사단과 가지가 되는 그를 따르는 자들이 마침내 완전히 멸망당한다. 율법의 형벌이 완전히 집행되고, 공의의 요구가 충족되면 하늘과 땅은 여호와의 의를 바라보고 찬송하게 된다.”(쟁투, 673)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 21:1). 악인을 태우는 불은 땅을 정결케 한다. 모든 저주의 흔적은 일소된다.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죄의 무서운 결과를 언제나 생각나게 해줄 영원히 불타는 지옥은 없다.
오직 한 가지 기념물은 남게 된다. 우리 구주께서는 십자가의 표를 영원히 언제나 간직하실 것이다. 그분의 상하신 머리와 옆구리와 손발에는 죄가 빚어놓은 잔인한 유일의 흔적이 남게 된다.”(쟁투, 673-674)
“대쟁투는 끝났다. 죄와 죄인들은 없어졌다. 온 우주는 깨끗해졌다. 오직 조화와 기쁨의 맥박만이 온 우주의 만물을 통하여 고동(鼓動)한다. 생명과 빛과 환희가 만물을 창조하신 분에게서 끝없이 넓은 우주로 퍼져나간다. 가장 작은 원자(原子)로부터 가장 큰 세계에 이르기까지, 만물은 생물계와 무생물계를 막론하고 조금도 흠이 없는 아름다움과 완전한 기쁨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선포한다.”(쟁투, 678)
https://youtu.be/bkfLkSKm-cI?list=PLkDm9k3-yeTjgLjRd_aYh40sv1Btir4s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