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상 변호사가 《월간천관》에 '이청준문학관 건립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故 이청준 작가의 인물과 문학세계를 심층적 소개 중이다.
2022년 8월호를 시작으로 9월호, 10월호, 11월호, 12월호, 2023년 1월호, 2월호, 3월, 4월호이다. 이번 4월호가 아홉 번째 연재기고이다. (편집자 주)
이청준, 그리고 섬, 섬, 섬 -이청준 문학관을 위하여(9)
고향, '진목리, 참나무골'
이청준 선생의 고향 '진리'는 예전엔 가히 '섬' 같은 '해중산골'로 대덕면소도 회령포구도 꽤 멀었다. 주변 간척사업이 시행되면서 막오지 마을의 고립을 벗어난 셈이다. 그래도 바닷가에 가까운 마을인지라, 그 소설에는 '바닷가, 섬, 수평선, 배' 등이 등장하며, 육지에 대비된 '섬'들의 모습이 나온다. <바닷가사람들, 1966>, <석화촌, 1968>, <침몰선, 1968>, <거인의 마을, 1971>, <이어도, 1974>, <당신들의 천국, 1975>, <섬, 1986>, <인문주의자무소작씨 종생기, 2000>, <신화를 삼킨 섬, 2003>, <천년의 돛배, 2006> 등이 있다. 그렇다면 이청준이 등장시킨 '섬'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가 초기에 그려낸 '섬'은 대부분 고립과 단절의 음지 공간이었다. 폐쇄적 상황에서 지배와 복종, 실종, 가난이 거듭되는 곳이다. 눈바람 심하고 파도가 거친 황지의 섬'이었다. 바깥세상을 전해주는 외지인은 더디게 오가고, 그곳 '섬'에 사는 여자들의 고단한 운명은 변함이 없었다. 이청준은 작품 <섬>에서 "내게 있어서 '섬'은 어떤 의미인가, 내가 '섬'을 떠날수는 없는가?"라자문하고 있다.
<이어도, 1974>
소설은 겉으로는 해군의 '파랑도 수색작전을 언급하고 있지만, 죽어야만 갈 수 있다는 저승의 섬 '이어도'의 실존 여부를 탐색하면서 현실과 허구의 관념적 갈등을 대비한다. 그리하여 제주도 사람들에게는 '이어도'는 오래 전부터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는 사정을 독자들에게 전달해준다. 그 '이어도' 신화이면에는 결코 살아서는 '섬'을 벗어나지 못하는, '섬' 여자의 숙명적 불행과 체념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 저승의 복락세계 '이어도'로 출발하게 될, 이쪽 이승의 '섬' 사람들 실상을 확인하는 순서로 전개된다. 아버지와 남편 즉, '섬' 남자들의 실종과 죽음 그리고 '집'을 지키지 못하는 무능은 대를 이어 거듭되고 어머니와 아내, 즉 '섬' 여자들은 구원과 피안의 '이어도'를 노래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어도'는 구원의 섬이면 서, 또한 저주의 섬이었고, 누구라도 홀리게 되는 마술의 섬이었다. 저 요동하는 수평선을 마저 넘어갈 때라야 '이어도'에 도착할 수 있다. 소설 속 제주도 남자, '천남석 기자'의 실종은 과연 자살인가? 그에겐 '파랑도'가곧 '이어도'이었다. 이제 이승의 '섬'에 남겨진 여자에겐 어떤 선택이 있을 터인가?
<당신들의 천국, 1975>
장흥회진바다 건너편, 고흥 녹동 '소록도 섬'에 위치한 '나환자 병원'이라는 폐쇄적 고립지대에 대한 지배와 질서에 관한 이야기이다. 197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을 지탱하던 정치적 독재에 관한 고발소설일 수 있다. '소록도'는 질병과 단절 상태에 직면하여 서로에게 '가족의 집'이 쉽게 될 수 없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외지인 강자'에 복종해야 편히 살 수 있는 '섬'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당신들의 타율적 천국이면 족한가, 우리들의 자율적 천국은 가능한가?
<섬, 1986>
'독도'를 소재로 삼아 '섬'의 실체를 탐구하였다. 단편이지만, 어찌보면 <이어도>와 <당신들의 천국>을 극복한 주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당시 잠 자리에서 '섬'의 환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섬'이 내게로 오는 사연은 무엇인가? '홀섬 독도'는 마치 죽은 자형(兄)의 상여가 향하는, 죽음의 '집'처럼 보이는가 하면, 죽음의 영혼들의 슬픈 비상처럼 흰갈매기 떼가 '섬' 하늘로 떠오른다고 했다. 독도 사진전문가가 찍은 현장사진이라는 것도 기실현상과 실체의 경계를 온전히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 누구인들 저 '홀섬'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이청준은 일상적 존재론적 차원에서 <섬>의 이중적 일체성을 정리하였다. '섬'의 실체는 '카메라로 포착한 사진, 개인적 상상과 환상, 현장사람들의 삶' 등을 총체적으로 합할 때라야 가능할 수 있다는 것. 그는 동해 일몰을 보면서 '섬'의 권역에서 비로소 벗어났다.
<인문주의자무소작씨 종생기, 2000>
'섬'이 등장하지 않지만, '배'가 떠도는 바다와 '수평 선'이 언급되고 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연이 끊어지 듯 참나무골을 떠나 도회생활은 물론이고, 5대양 6대주를 편력하다가 노년에 되돌아온, '떠돌이꾼 무소작씨'의 회고담이다. 마침 고향참나무골이 '섬' 같은 곳이기에 그 답답함을 벗어나 수평선이 활달한 세상을 마음껏 접하고자 했을까? 고향 '이타카섬에 돌아온 '오디세우스'처럼, 그 '이야기꾼무소작씨'는 돌아와, <이야기꾼 생기>를 남기게 되었다. 태어난 '섬'을 탈출하여 바깥 세상을 떠돌았지만, 결국엔 '인문주의자'가 되어 유년의 고향 '섬'으로 되돌아 왔다.
<신화를 삼킨 섬, 2003>
제주도 4.3사태를 소재로 삼았다. 역사와 신화와 무속신앙의 상호관계를 성찰해보게 한다. 여기서도 외부세력에 취약한 '제주도 섬'이 숙명적으로 부딪 쳐온 역사적 신화적 갈등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천년의 돛배, 2006>
'천년의 돌배'로 비견될만한 '돌섬'을 노래하였다. 간결한 사연이다. "고향바다 수평선 너머에 모녀가 함께 사는 듯한, 작은 갯바위 섬이 있다"는 것. 육지 총각과 혼인하여 '섬' 바깥으로 나간 딸을 '섬' 어미가그리워하는 사연이지만, 시집가서 자식을 낳고서 죽은 딸과 친정 모친과의 재회는 없었다. 흐르는 세월속에 '섬'을 오가는 원망의 수단으로 바꾸어진 '바윗돌돛배'는 돛대 돛폭도 없이 그 자리에서 늘 새로워지며 머물고 있다는 것.
<조물주 그림, 2006>
어떤 '섬' 시(詩)가 등장한다. 회진포 부근, 밤바다에서 낚시질하던 '이청준'이 메모에 남겼다. "밤바다 가운데로 나가 있으면 섬들이 사방에서 나를 에워 싸고 다가든다. /섬들이 어찌 나를 에워싸랴 섬들은 저희끼리 밤 이야기 위해 서로 둥글게 다가앉는 것 뿐이다. / 섬들 가운데에 나는 없다." '이청준'의 <소설>을 읽다보면, '섬' 하나에 고향, '섬' 하나에 어머니와 누님, '섬' 하나에 '이청준'이 있어 보인다. '섬'은 이청준 소설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적 코드로 여겨진다. 때론 '섬 속의 섬'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
<덧붙임>
1.이청준 소설에 '약산도'와 '약산댁, 약산 아저씨'가 등장한다. 강진 마량에서 '고금대교를 건너 가는 고금도와 연륙되어 있는데, 이제 '약산도'는 선생님 유택을 포근하게 외호하는 안산(案山)역할을 떠맡고 있다.
2, 이청준 선생은 <해변아리랑, 해변육자배기, 해조음(海潮音) 이해조(李海鳥)>를 따로 언급하였는데, '섬'에 가까운, 남쪽 끝 바닷가 사람들 애환과 숙명, 그리고 이청준의 가족사를 드러낸 것으로도 여겨진다.
3, <당신들의 천국>의 작중인물 '조 병원장'은 나중엔 강원도 탄광촌 산재병원으로 옮겨 근무하였다. 그 모델 인물로부터 탄광촌 유화전시회 연락을 받게 된 이청준 선생은 얼마간 착잡하고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다.
4, <이어도, 1974> 창작에 관련한, 제주도 현장답사는 따로 없었다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