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218/0820]실제 상황입니다
일반국도 17번, 전주에서 임실 가는 길, 관촌역 앞 병암지하차도가 있습니다. 아마 500m쯤 될 것인데, 지하차도 오르막길에서 기신기신하던 저의‘발’인 2009년산 대우 라세티차가 모든 기능이 정지된 채 서버렸습니다. 깜박이도 켜지지 않고 문조차 열리지 않아 탈출하다시피 나와 100여m를 뒷걸음쳐 지하벽에 바짝 붙어 2차선으로 달리던 차들을 1차선으로 가라고 손짓을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임실이 코 앞인데, 3km정도만 더 가다 도로옆에 섰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하필이면 폭염주의보가 내린 오후 5시쯤, 한복 윗도리는 이미 땀으로 후줄근해졌습니다. 옷이 문제가 아니라 자칫 도로에 ‘쥐포’(제 표현으로는 ‘깨구락지’라고 합니다만 언어순화했습니다)가 될 지도 모르는 실제상황이었습니다. 해결사 친구에게 SOS를 친 덕분에 30여분 후 견인차가 달려오고, 누군가 경찰서에 신고했는지 경찰차가 뒤에서 호위해 주는 가운데, 레카차에 실렸습니다. 휴우-, 위급상황은 끝났습니다.
차가 서버린 사연을 말씀드립니다. ‘이놈의 차’와 악몽惡夢같은 악연惡緣은 지난해 3월초에 시작됐습니다. 귀향歸鄕을 앞두고, 더구나 구순의 아버지를 모시고 살 것인데, 아무래도 병원도 다녀야 하고, 오일장 출입도 잦을 터이니 ‘발’이 필요할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 중고차를 사려고 직장 동료에게 얘기하니, 곧바로 인터넷 중고시장에 나온 아반테 2016년산 450만원을 보여줍니다. 여타 조건이 없다기에 ‘왔다다’ 싶어 곧장 송내중고차시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상담은 일사천리 진행, 모든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승용차를 인수하려 갔는데, 그때서야 깜짝 놀랄 옵션(몇 년간인가 한 달에 35만원씩 내야 한다는) 표를 보여주더군요. 그럴려면 차라리 새 차를 사지 중고차를 왜 사겠냐며 거세게 항의했으나, 이미 물 건너간 계약. 무효로 하려면 150만원을 그 자리에서 손해를 봐야 하는 상황. 완전히 낚시밥에 걸린 것이죠. 아아, 무엇이든 알아야 면장을 하는 법이거늘. 이제껏 살면서 뭐 하나 내 마음대로 결정해 본 게 하나도 없는데, 무슨 용기로 혼자 중고차를 산다며 그 먼 송내까지 갔을까요? 귀신에 씌였다는 말밖에 설명이 안되었습니다. 차선책으로 추천하는 중고차 시세가 740만원. 단종된 2009년산 대우 라세티.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완벽한 중고차 사기를 당했다는 걸. 차라리 그때 150만원 손해를 보고 말았어야 했습니다. 울며겨자먹기로 사서 끌고 오는 캄캄한 밤중, 후회로 땅을 치고 울고 싶어도 제 꾀에 제가 걸린 것을 어이 할까요. 참말로 다행인 것은 온통 걱정으로 지하주차장에서 나와 차를 기다리던 사랑하는 아내의 ‘칭찬’. “어! 차 멋있는데. 잘했어”그때처럼 고마운 때가 몇 번이나 있었을까.
아무튼 그때부터 1년 5개월 동안 바테리를 두 번 바꾸고, 또 뭣뭣을 바꾸며 들어간 수리비만 200만원이 넘습니다. 걸핏하면 방전이 되고, 시동이 꺼지고, 에어컨이 안되고. 자동차 매니저 그 젊은 넘이 얼마나 원망스럽던지요. 그 친구는 제가 떠난 후 흐흐 웃었을까요? 제 큰아들과 동갑이고 아들이 100일 됐다던 그 친구, 경력이 7년, 능구렁이가 따로 없겠지요. 유난히 송내중고차시장에 그런 사기가 많다더군요. 지난해 보험사 무료출동도 6번 모두 채웠으니 알쪼겠지요. 알량한 자존심과 미련 때문에 폐차를 하루하루 미루고 미루다 어제 진짜로 ‘죽을 뻔’한 특이한 체험을 했습니다.
전주에‘장수長壽사진’을 찍으러 그 ‘썩을넘’의 차를 돌돌 몰고 가는데 계기판에 바테리 방전 표시가 뜨더군요. 하여 전주의 쉐보레 AS센터로 곧장 갔는데, 수리비가 또 100에서 150 들어간다고 하더군요. 그 자리에서 폐차를 결정하고 오수 우리집까지는 가겠냐니까 갈 수 있다기에 몰고 조심조심 2차선으로 50km도 안되게 엉금엉금 기어오다 결국, 그것도 지하차도 안에서 덜커덩. 숨을 내려놓더군요. 마치 늙은 소가 거친 숨을 몰아쉬다 헷까닥하는 것처럼. 미웠지만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하더군요. 판교 우리집에도 두세 번 몰고가기도 했고, 고창이고, 목포고 제법 다닌 셈이지요. 그래서 상황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혹시라도 운전중 도로에서 자동차 고장으로 손짓발짓하는 사람을 보시거든, 저를 본 듯 안타깝고 안쓰럽게 생각해 인근 경찰서에 위급상황이라고 신고 좀 해주세요.
그 망할넘의 차를 사고 나니까 여기저기서 친구들이 ‘나한테 말하지’ ‘내 차 바꿨는데’ ‘사고 좋은 중고차 얼마든지 있는지’ 이구동성, 사람 복장을 뒤집어놓더군요. 그래서 ‘되는 집안은 도련님이 우물에 빠져도 붕어를 입에 물고 나오고, 안되는 집구석은 며느리가 집을 나가 씨도 모르는 애를 배고 온다’는 속담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 골머리만 아프게 하다 끝내 폐차장에 두고 오는데, 그제서야 뜯어보지도 않은 ‘장사익 CD’ 9장을 발견했습니다. 까마득히 잊어먹고 있었는데, 호주의 효자아들이 지 애비가 장사익 좋아한다니까, 중복된 노래도 많건만 장사익CD를 몽땅 사 보낸 것입니다. 사람을 또 울립니다. 아무튼, 죽다 살아났대도 과언이 아니었던, 어제의 ‘개같은 사건’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문제는 앞으로 ‘발’이 없어서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인데, 당분간 어디 좋은 ‘공짜차’가 생기지 않은 한, 악착같이 장만할 생각은 없습니다. 정나미가 떨어질 대로 떨어졌거든요. 그리고 막상 없다해도 크게 불편할 것은 없습니다. 군내버스가 바로 우리집 대문앞에서 쉬는데, 하루에 3번 왕복하고, 인근 면소재지에 가도 그냥 걸어오면 됩니다. 4km야 운동 삼아서도 걷는데, 차라리 잘 되었다 생각하기로 했지요. 세상살이, 뭐이거나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어요.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한도끝도 없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세상이 행복한 것인데. 행복이 뭐 별 것인가요? 참깨농사를 동네에서 제일 가게 기똥차게 지었지요. 그넘의 긴 장마 때문에 흰가루병이 생기고 밑둥이 썩어 농사를 망치고 영농비도 안나온다고 늙은 아버지는 푸념하지만, 그래도 털어보니 한 말은 더 나오고, 기름을 짜면 10병쯤 나온다는데, 여동생들 두 병도 더 주겠다며 그러지 마시라고 조언을 드렸습니다. 이번 자동차도 그렇지만, 초보농사꾼이 하늘이 방해하는 것을 어떻게 하겠냐고, 이것도 경험 아니냐며 프로농사꾼을 위로했지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흐흐.
그나저나 우리 친구들, 어디 노는 승용차 없나요? 아니면 ‘불쌍한’ 시골친구를 위하여 이번 기회에 차 바꾸실 친구 안계신가요? 흐흐. 참, 갑자기 시인친구가 수년 전 정색을 하고 묻던 게 생각납니다. "우천이 진짜 운전을 할 줄 안다는 말이야?" "왜? 내가 운전 못할 줄 알았냐? 하기야 외우기 잘하는 내가 필기시험를 두 번이나 떨어졌다야. 글고 앞으로는 잘 가는디 주차를 잘 못해" 흐흐.
첫댓글 정말 큰일 날뻔했네요.
평소에 착하게 살아온 보람을 느끼는 날이었네요.
친구들 혹시나 나이가 들었어도 믿을수있는
똘똘한 중고차있으면 영록이에게 소개시킵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