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가 1994년부터 시작한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이 20주년을 맞았다.
도시공동체와 농촌공동체가 함께 생명 가치관을 확립하고, 도시와 농촌의 공생 실현, 생태적 생활과 생산양식을 통한 공동체적 삶의 실천 등을 목표로 시작된 우리농운동은 그동안 가톨릭농민회와 도시생활공동체를 두 축으로 교회 내 생태 운동을 이끌어 왔다.
“우리는 농업, 농촌, 농민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인식하면서 이로부터 새로운 삶의 길을 찾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도시와 농촌의 생명, 생활공동체운동만이 ‘함께 살고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창조질서를 보전하고 생명의 먹거리를 제대로 나누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이야말로 우리의 믿음과 생활을 일치시키는 ‘참 공동체’를 실천하고 지향하는 ‘믿는 이들의 삶의 자세’라고 고백합니다.” (1994년 6월 29일,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전국본부 창립 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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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농매장은 단지 농산물을 팔고 사는 곳이 아니라, 1차 농산물을 매개로 도시와 농촌의 공동체가 만나는 곳이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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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공동체에서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유기순환 농법을 찾아 농사를 짓고, 도시공동체에서는 이들과 함께 연대하면서, 생명의 밥상으로부터 창조질서를 보전하기 위해 걸어온 20년이다.
2014년 현재 도시생활공동체는 8개 교구 196개 본당에 생활공동체를 꾸려 1900여 명의 활동가들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농촌공동체는 대구와 서울을 제외한 13개 교구에 73개 분회, 현재 1050여 명의 농민이 생명농업을 선택했다.
그러나 지난 20년의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우리농운동은 여전히 교회 안 많은 이에게 낯설다. 도시생활공동체와 농촌공동체에 참여하는 이들이 늘어나지만, 아직 많은 교회 구성원들이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자체를 모르거나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수적으로도 전국의 도시생활공동체가 196개 인데, 서울대교구 본당 수만 200여 개인 것을 생각하면 갈 길이 멀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사무국장으로 도시생활공동체를 지원하고 있는 김현정 국장은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은 어려운 농촌을 도시 사람들이 도와주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기 위한 운동이며, 안전한 음식을 먹기 위함이 아니라 도시와 농촌 공동체를 살리는 것에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식량자급률이 20퍼센트 수준으로 떨어지고 다국적기업의 공격으로 식량 주권이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농촌 공동체를 살리는 것은 곧 우리 사회 전체가 사는 길이며, 생명의 가치를 추구하는 가운데 공동체가 서로를 살리는 선순환은 최근 발표된 ‘생태 회칙’의 정신과 목적에도 온전히 부합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농운동의 정신과 본질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우리농 매장 운영이 전부인 것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각 본당에서 힘들게 만든 활동가 공동체나 매장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어지고 결국 공동체가 없어지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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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정 사무국장은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이 지속되기 위해서, 교회가 불편함을 선택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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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국장은 우리농운동의 핵심은 대면 관계에 있고, 서로 만나 관계를 맺으면서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 속에서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있어야 한다면서, “관계의 형성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상품만 오고 가는 것이라면, 이 운동이나 활동가 공동체 존재 의미를 의심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우리농운동의 접근 방향은 관계 맺음, 관계의 회복에서 찾아야 한다는 김현정 국장은 “이 운동은 결과적으로 내가 살기위한 운동이며, 교회가 우리 모두, 이 사회를 살리기 위한 실천의 한 방법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은 사는 문제, 먹는 문제, 생명 문제다. 그리고 사는 문제는 곧 신앙의 문제다.”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농운동을 시작하면서, “사제들의 밥상부터 바꿔라"며 교회의 밥상이 바뀌면 세상의 밥상이 바뀔 것이라는 뜻을 전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김 국장이 강조하는 것이 교회의 선택과 모범적 실천이다.
그는 우리농운동이 성공적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교회가 구성원들에게 이 운동의 영성적 의미를 계속 확인시켜주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 속에서 성찰하고 실천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농운동은 다른 NGO활동과 다를 바 없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중요한 종교의 책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을 시작해야 할까
김현정 국장은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위해 교회의 근본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무엇보다 사목자들이 이 운동을 자선이나, 물품 판매가 아닌 ‘생명 살림’의 길로 바라볼 수 있도록 신학교 교육과 사목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 일반 신자들의 의식전환을 위한 교리 교육은 물론, 구체적으로 교회의 밥상을 생명농산물로 차릴 수 있는 구체적 실천 방법 제시, 즐거운불편운동 확산 등에 힘써 줄 것을 당부했다. 일례로 ‘우리농 쌀 약정운동’을 확산시켜 식량자급률 문제를 공유하고 대안이 되는 실천을 촉구하는 방법도 제안했다.
김 국장은 이런 제안과 관련해 교회에서 일어나는 운동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목자들의 관심과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 사목구조 상, 신자들이 사목자의 관심과 의지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이는 장점인 동시에 경우에 따라 장애가 될 때도 있다면서, “우리농운동을 제대로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는 사목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신학교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국장은 올해 6년 만에 신학생 농활 프로그램이 다시 시작됐고, 반응도 아주 좋다면서, 신학생들이 직접 농민들을 만나는 체험이 중요하고, 교육 과정에도 생태 신학 등을 반영할 것을 제안했다.
또 김 국장은 생명의 가치, 생태적 관점을 중심에 두고 모든 사목 분야가 유기적 협력을 할 수 있는 구조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각 사목부서에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환경사목위원회와 함께 만들 수 있고, 주일학교 교리나 캠프 프로그램은 교사연합회와 공동 개발해 각 본당에 제공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 하다. 실제로 그런 작업이 이뤄지기도 했다. 교회 전체 차원, 통합적 사목 관점에서 바라보면, 소모적인 부분을 줄일 수 있다는 그는, 기본 교육 과정을 공동 커리큘럼으로 진행하되, 사목별 전문 영역은 별도로 개발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생태 지정 본당을 만들어, 생태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제를 파견하고 장기적으로 생태 운동의 새로운 사례와 전문성을 만들 수 있도록 제안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교리와 사회교리를 구분하듯, 환경, 정의, 생명 등 사목 분야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통합적, 통섭적으로 인식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그것이 결국 믿음을 살아가는 길이며, 신앙과 삶이 분리되는 신앙인을 만들지 않는 길”이라고 말했다.
우리농운동 내부의 노력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도시공동체와 농촌공동체 모두 핵심 활동가를 양성하고, 신자들의 신앙적 각성과 성찰을 얻기 위한 피정,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 등이다.
우리농 매장 운영 측면에서도 다른 유기농산물 매장과 달리 가공품이 아닌 1차 농산물 중심으로 관계 안에서 소비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궁극적으로는 도시공동체와 농촌공동체 사이에 직거래가 이뤄지는 것이 가장 좋은 형태”라고 방향을 제시했다.
교회, 세상 거스르는 불편함 받아들여야
김현정 국장은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은 결국 “천지의 창조주를 믿는다”는 신앙고백을 살고, “보시니 참 좋았다”는 창조질서를 보전하는 것이라면서, 이를 지키기 위해서 교회 역시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이 강조하는 불편함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교회가 가진 것을 모두 팔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의 말에 갈등하고 결국 포기하는 부자의 모습이어서는 안된다”면서, “최신형 냉장고를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인식하는 세상을 거스르는 것은 불편하고 힘든 일이지만, 그 불편함을 선택했을 때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농운동의 핵심은 자기 성찰이지만 그 성찰에 머무르는 것은 운동이 아니며, 성찰 이후에 ‘연대’로 나갈 수 있어야 한다면서, “성찰과 연대를 위해서는 결국 개인의 관심사가 아니라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본질을 통합적으로 살필 수 있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김현정 국장은 우리농운동의 현재 과제는 교회 안에서 온전히 정착해 확산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면서, 이는 도시공동체만 또는 농촌공동체만 노력한다고 해서 가능하지 않고, 함께 순환의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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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농민회와 도시 본당공동체가 진행하는 '소입식 운동'. 유기순환 농법을 위한 자급퇴비 마련을 위해 시작됐다. 가능하지 않을 것 같던 일이 벌써 10년을 넘기고 있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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