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서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축구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이 무엇인지 히딩크 감독의 훈련방법을 토대로 짚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2002년 이후 한국축구는 왜 그렇게 몰락을 했을까요. 이에 앞서 우리는 먼저 한국축구의 본질적인 문제를 짚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90년대 초반 부천 SK 감독을 맡았던 니폼니시 감독의 일화는 우리 축구의 본질적인 문제를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니폼니시 감독은 처음 부임해 SK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고 깜짝 놀랐답니다. 코치진과 구단 프런트에게 "개개인의 기량이 저 정도면 우승도 가능하다"고 자신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 연습경기를 지켜보면서 또 한번 놀랐다고 합니다. 그는 "한국 선수들이 혼자 공을 가지고 연습할 때는 무엇하나 나무랄 것 없는 데 어떻게 실전에서는 기본기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선수로 돌변하는가"라고 한탄했답니다.
그렇지만 니폼니시 감독은 스타 하나 변변히 없었던 약체 SK를 강팀으로 끌어 올렸고 2002년 대표팀 스타가 된 이을용 같은 무명 선수를 훌륭하게 키워냅니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난 뒤 나는 한국축구를 보는 니폼니시와 히딩크의 통찰력은 거의 비슷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 자체로 볼 때는 축구선수로서 나름대로의 자질을 갖추고 있지만 경기에 임했을 때는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한국 선수들의 맹점을 그들은 정확히 보고 있었던 것이고, 이를 토대로 나름대로의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한국 선수들의 이러한 맹점은 어떤 이유에서 생기는 것일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어려서부터 잘못된 축구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우리 선수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성적을 내야합니다.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체력훈련에 중점을 두어야 하고, 뛰어난 선수 한두 명에 의존하는 플레이에 주력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선수들은 축구의 개인전술과 부분전술, 전체전술을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생각하는 축구를 할 수 없게 돼버리는 거죠.
축구는 옆에 있는 사람을 이용하는 경기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자신이 공을 드리블하기도 하지만 옆에 있는 사람을 이용해 패스하거나 공간을 만들어내고, 골이라는 목적을 위해 11명이 협동을 해야 하는 경기입니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은 이러한 기본기를 배우지 못하고 성인축구에 입문하게 됩니다.
히딩크는 바로 이러한 맹점을 비록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지난 칼럼에서 썼듯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선수들에게 패스와 포지션별 임무를 명확히 했습니다. 한마디로 패스할 때, 수비할 때, 공격할 때 등 거의 모든 상황에서 선수들 간에 약속된 플레이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한테 설명할 때 히딩크의 축구는 공식축구라는 말을 잘 합니다. 마치 수학공식처럼 약속된 플레이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2002년 이후 우리 선수들은 이러한 공식을 잊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2002년 이후 한국 대표팀을 맡았던 코엘류와 본프레레 감독이 우리 축구의 맹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3_4_3시스템을 기본으로 했습니다. 우리 수비수들이 전반적으로 느려 역습을 잘 허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히딩크는 3백을 기본으로 하고, 수비형 미드필더 김남일 유상철에게 거친 몸싸움으로 상대를 1차적으로 봉쇄하라고 지시합니다. 물론 다른 선수들도 자신의 임무를 벗어난 행동을 하면 당장 조치(?)를 받았습니다. 김병지 고종수 등이 중도 탈락하고 이영표가 초창기에 히딩크로 외면을 받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월드컵 때 역습으로 골을 먹는 상황은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코엘류나 본프레레 감독 때는 약팀에게도 어처구니 없는 역습을 허용, 골을 먹곤 합니다(물론 히딩크도 초창기 때는 역습에 의한 골을 많이 허용했습니다). 바로 선수들간의 약속된 플레이를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감독 개인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코엘류 시절 대표팀 주변에선 코치들이 선수들의 해이해진 정신력을 다잡으려고 하면 코엘류 감독이 직접 말렸다고 합니다. 아마 최고의 선수들만 지도해왔던 그로선 선수들에게 자유로운 분위기를 제공하면서 컨디션 조절훈련에만 주력하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그는 선수 장악에 실패했고 카리스마 없는 '물감독'이란 오명을 쓴 채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합숙훈련이 20여 일밖에 안됐다는 그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만약 그가 더욱 많은 합숙훈련을 했어도 한국축구의 이러한 단면을 이해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부임 초창기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던 본프레레 감독의 경우도 한국 축구에 적응력이 떨어진다는 말이 나돌고 있습니다. 아직 초창기라 지적하기 어렵지만 그가 상황대처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이미 경기와 훈련을 통해 나타나고 있어 우려됩니다. 그가 한국 축구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한국축구의 추락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지금 한국축구의 쇠락원인을 이야기하자면 수도 없이 많을 것입니다. 기술적인 것은 물론 선수들에게 2002년 월드컵 때만큼 동기부여가 안되고 있다는 점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비디오분석관에서 체력담당 전문트레이너, 언론 담당관까지 10명 이상의 보좌진을 거느린 히딩크 때처럼 전폭적인 지원이 따르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마디로 말해 우리 대표팀은 히딩크 축구의 공식을 잊었고 결국 그것이 우리축구를 2002년 이전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만약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에 오른 한국축구가 정말 말 그대로 세계 4강정도의 실력이라면 유럽의 명문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우리 선수들이 왜 한 명도 없겠습니까. 이천수가 입단테스트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막상 경기에 투입되고 난 뒤에는 코칭스태프로부터 왜 외면을 당할까요. 이것은 곧 우리 선수들이 기본자질은 있지만 역시 경기를 하는 데 전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한국축구가 창의력 없는 축구, 뻥축구라는 오명을 듣는 이유와 같을 것입니다.
본프레레 감독이 성적을 내려면 우선 이러한 한국 축구의 맹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리 축구가 2002년의 영화를 되찾기 위해서는 유소년축구부터 교육시스템을 바꿔야 할 것입니다. 지도자들은 이기는 축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축구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성적 지상주의인 현 학원축구 시스템부터 바꿔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표팀을 성적으로만 평가하려는 우리 팬들의 마음자세도 바꿔야 할 것입니다.
첫댓글 2002월드컵의 한국팀으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