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독살(獨)이를 보라! 법정스님 《부처님 전상서》-3
■이 독살이를 보라 ▷독살이-“법정스님 부처님 전 상서”에서 “독살이” 표현을 필자는 “혼자 사는 것” 독(獨)살이로 해석한다. 또 독살(毒殺)이라 설명할 수도 있다 여기서 “독(獨)”은 탐욕(貪慾), 분노(忿怒), 어리석음(愚昧)과 같은 마음의 독(心之毒)을 의미한다고 본다. 이러한 혼자 다 해먹으려는독(獨→毒)은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결국에는 자신(自身) 스스로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농월 생각)
사원(寺院절)이란 그 어느 특정인의 소유거나 개인의 저택일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상식입니다. 오직 수도자가 도업(道業)을 이루기 위해, 한데 모여 서로 탁마(琢磨)해 가면서 정진해야할 청정(淸淨)한 도량(道場)임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탁마(琢磨)-옥(玉)이나 돌들을 쪼고 갊. 학문(學問)이나 덕행(德行) 종교의 바른길을 닦음을 비유적(比喩的)으로 이르는 말.
이러한 사원(寺院)이 소수의 특정인에 의해 수도장(修道場) 으로서 빛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이제는 하나의 유행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자기네 <패거리>의 식성에 맞는 몇몇이서만 도사리고 앉아 굳게 문을 걸어 닫고 외부와의 교통을 차단한 채 거대(巨大)해져 가고 있습니다.
전체수도자의 광장(廣場)이어야 할 이 수도장(修道場)이-. 따라서 엄연하게 대중이 모인 회상임에도 대중의 의사가 무시되기 다반사(茶飯事)이며 결코 건전한 것일 수 없는 개인의 협착(狹窄)한 소견이 전체 대중의 이름을 사취(詐取) 하여 제멋대로 행사되는 수가 많습니다.
종래로 우리의 청백가풍(淸白家風)인 <대중공사법(大衆公事法)> 이 날이 갈수록 그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으니 이것은 곧 화합과 청백성(淸白性)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어디를 가나 구역질이 나는 것은 <권속관념(眷屬觀念)>이라는 그 세속적인 너무나 세속적인 악취-. ※권속관념(眷屬觀念)-한집에 거느리고 있는 식구라는 생각
그래서 원융(圓融)한 회중(會衆)이어야 할 대중처소가 <독살이>로 전락되어 버렸습니다. ※원융(圓融)-원만(圓滿)하여 막히는 데가 없이 같이 통(通)하여 아무 구별(區別) 없음.
이른바 세속(世俗)을 떠났다는 이 출세간(出世間)에서 까지 튼튼한 빽이 없이는 방부(防腐)조차 내밀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부처님! 운수를 벗하여 훌훌 단신 수도에만 전념하던 납자(衲子)들이 늙고 병든 몸을 이끌고 정착할 곳이 없어 여기저기 방황하고 있는 것을 보십시오. 소위 독신 수도한다는 이 비구승단의 회상에서 정화이전이나 다름없는 냉대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사원은 마땅히 수행하는 이의 집이어야 할 것임에도-. 개인과 직위의 한계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법(法)이 선 사회의 질서입니다.
그런데 어떤 부류들은 이 한계마저 무시하고 개인이 의자의 힘을 빌려 권력 같은 것을 신경질적으로 휘두르기가 예사입니다. 생각해보면 저녁노을만치도 못한 하잘 것 없는 명예라는 것을. 더구나 제행무상(諸行無常)을 뇌이고 하는 이 출세간에서-. 그래서 대중이 모인 회상에서 공부해 보겠다고 마음 내어 모처럼 찾아갔던 초학인 들도 발붙일 곳이 없어 되돌아가서는 생각을 고쳐먹고 저마다 <독살이>인 자기영토를 마련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하여 구도의 빛은 바래져 가고 사명감도 내동댕이 치게 된 것입니다. 그 길이 가야 할 길이 아닌 줄 알면서도, 아닌 줄 분명히 알면서도-. 부처님! 이런 시시한 일들에 탐착하자고 저희들이 불문에 들어선 것이겠습니까? 머리의 크기와는 당치도 않은 감투나 뒤집어쓰고 우쭐거리자고 출가한 것이겠습니까?
농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