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둣가 식당 한구석에 패각이 쌓여 있다 너는 패각 하나를 줍는다 패각 안쪽에 무지개 띠가 넓게 펴져 있다 습한 바람이 불어온다 패각의 겉면은 단단하다 패각을 가진 것들의 속살은 말랑말랑하고 미끄럽다 어둠이 거느린 패각에는 수평선이 새겨져 있다 짠내가 끼쳐온다 글피에는 태풍이 온다고 했다 고삐가 풀린 거지, 바다가 사람을 부르는 거지, 무사태평 속에서 고르고 고른 이야기는 울퉁불퉁하다 파도 소리가 일정하게 반복된다 바다가 깍아놓은 뼈대는 무르고 성기다 너는 내게 마지막으로 운 것이 언제냐고 묻는다 가로수 그늘과 나뭇잎이 충돌하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속으로 열을 세고 너는 마지못해 내 등을 두드린다 식당에서 나오던 사람들은 얼마 전 앞바다에서 고래떼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우리를 지나쳐 간다 슬기로운 사람은 고래떼가 쏘아올린 음파를 해석하려 하지 않아, 지붕 낮은 민박들 사이로 고양이들이 지나간다 무늬가 같은 무리였다 그중 한 마리는 웅덩이에 고인 물을 핥다가 이쪽을 한번 쳐다보고 돌담을 넘어 사라진다 이렇게 바다가 잔잔한데 비가 온대, 콘크리트 블록들 사이에 구겨진 전단지가 버려져 있다 수면 위에서 물결이 밀려올 때마다 앞뒤로 흔들린다 너그러운 사람은 주인공의 잠꼬대를 받아 적는 인물의 미래를 헤아리지, 그가 사실은 악당의 하수인이라고 할지라도 그의 안위를 걱정하지, 빈 화분과 초록색 그물망 사이로 벌레 한 마리가 기어간다 너는 갈고리에 꿰여 올라온 새끼 돔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 새끼 돔은 풀어주어도 잘 살지 못한다고, 숙제를 하지 못해 학교에 가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한다 저 별이 거짓이라도 좋다 이 섬은 상공에서 보면 사람의 귀를 닮아 있대, 구름이 서서히 흩어진다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을 구하지 못한 시기가 있을 테니까, 패각 속에서, 밑창을 드러낸 운동화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사람, 혓바닥에 설태가 낀다 옷깃을 여민다 가로등이 켜진다 미워하는 마음에도 리듬이 있어 너는 옷깃으로 패각을 닦는다 이 믿음이 가짜여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