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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사랑맑고고운글 스크랩 2013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논시밭에 망옷 추천 0 조회 110 13.02.02 12: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알립니다] 신춘문예 ‘시’ 당선 취소합니다
‘삼거리 점방’ 표절로

2013년 01월 11일(금) 00:00

 

   2013년 본보 신춘문예 시 부문 김승필씨의 ‘삼거리 점방’ 당선을 취소합니다. 이 작품은 이덕규 시인의 ‘논두렁’ 작품 표절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중복 응모나 작품의 표절이 밝혀질 경우에 당선이 취소됩니다’라는 본사 신춘문예 응모 요강에 따라 해당 작품의 당선을 취소합니다.

   해당 작품 응모자도 ‘당선취소결정’을 수용했습니다. 광주일보 시 부문 신춘문예 심사를 맡았던 박남준·김정란 시인도 “당선 취소 결정에 이견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두 심사위원의 판단은 광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리며,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신춘문예 응모작을 더욱 철저히 검증하겠습니다.

 

   2013년 1월 11일

     광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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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두렁 / 이덕규

 

 

  

찰방찰방 물을 넣고

간들간들 어린모를 넣고 바글바글 올챙이 우렁이 소금쟁이 물거미 미꾸라지 풀뱀을 넣고

온갖 잡초를 넣고 푸드덕, 물닭이며 논병아리며 뜸부기 알을 넣고

햇빛과 바람도 열댓 마씩 너울너울 끊어 넣고

무뚝뚝이 아버지를 넣고 올망졸망 온 동네 어른 아이 모다 복닥복닥 밀어 넣고

 

첨벙첨벙 휘휘 저어서 마시면,

 

맨땅에 절하듯

누대에 걸쳐 넙죽넙죽 무릎 꿇고 낮게 엎드린 생각들 길게 이어 붙인

저 순하게 굽은 등짝에 걸터앉아

미끈유월, 그 물텀벙이 한 대접씩 후르륵 뚝딱 들이켜면

허옇게 부르튼 맨발들 갈퀴손가락들 건더기째 꿀떡꿀떡 넘어가겠다

 

 

                       시집 『밥그릇 경전』(실천문학사, 2009)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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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 점방  /  김승필

 

 

 

감실감실 화랑 성냥 양초 넣고

 

시오리 길 전봇대 돌아 발쪽발쪽 막걸리 주전자 딱지 쫀득이 파리채 넣고

 

귀신같이 동네 사람 죽은 걸 척척 알아맞힌 칠복이 아재 담상담상 검정 고무신 허리띠 넣고

 

머리빡 기계독 오른 동네 아이 밀어 넣고

 

오다마 삼양라면 박카스 크라운산도 브라보콘 농심새우깡 크라운 조리퐁 뽀빠이 맛동산 회똑회똑 넣고

 

넙죽넙죽 상둣도가 지나갈 때 눈 한번 꿈적하고

 

무뚝뚝이 아버지 악다구니 밀어 넣고

 

알금알금 파리똥 범벅 밀레 만종 액자 춘길 아재 이발소 면도 거품 집어넣고

 

쑥부쟁이 구절초 애기똥풀 쇠비름 고들빼기 똘똘 말아넣고

 

후루룩후루룩 뚝딱 마시면 배부르겠다.

                  

 

                                   [2013  광주일보 신춘문예  詩  당선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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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신춘문예 ‘시’ 표절 의견-김정란 시인

2013년 01월 10일(목) 19:45
 
   이런 일은 곤혹스럽다. 확신을 가지고 당선작으로 망설임 없이 선택했는데, 표절 의혹이 제기되다니…. 우선 사과부터 전한다. 심사위원이 세상에 발표되는 모든 작품들을 꿰고 있지 못한 다음에야 어쩔 수 없이 실수도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실수는 실수이니, 다른 핑계를 어찌 늘어놓겠는가. 민망하고 참담하다.

   김승필의 작품 ‘삼거리 점방’과 이덕규의 ‘논두렁’을 꼼꼼히 비교한 결과,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표절이라는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표절이란 자구를 그대로 가져다 베끼는 것만이 표절이 아니다. 두 작품 사이에 완벽하게 일치하는 대목은 동사 “밀어넣고”와 “넣고”, “마시면”과 명사 “무뜩뚝이 아버지”, “후르르 뚝딱”이라는 의성어뿐이지만, 몇 자가 원작과 표절 의혹 작품에서 일치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자구를 베끼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창작 아이디어를 베끼는 것이다. 두 작품은 시적 발상이 완전히 똑같다. ‘시적 발상이 완전한 무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비슷할 수 있지 않은가’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문제가 되는 시적 발상은 비슷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소외되고 못난 것들을 한데 비벼 한끼 물텀벙 먹듯이 먹는다’라는 발상도 똑같을 뿐 아니라, 그 안에 사람들을 밀어넣어 마신다는 설정까지 똑같다. 특히 “무뚝뚝이 아버지”를 밀어넣는다는 발상, 극복하지 못한 아버지의 고집을 “먹어버림”으로써 오이디푸스적 상처를 극복한다는 심리적·시적 전략이 똑같다. 사람을 음식처럼 먹는다는 것은 매우 독특한 상상력이다. 그것이 우연히 겹쳐질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더욱이 두 작품은 의태어와 의성어를 특유의 토속적 호흡에 섞어 시의 리듬을 구성지게 만드는 외적 특징마저 똑같다. 역시 우연의 일치로 보기 힘들다.

   의도적인 표절이 아니라고 해도, 표절은 표절이다. 나로서는 두 작품의 유사성이 전적인 우연의 결과라고 보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매우 유감스럽다.

 

 

2013 신춘문예 ‘시’ 표절 의견-박남준 시인

2013년 01월 10일(목) 19:45

 

   등단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시절, 두어 번 아주 당혹스러운 문제에 부딪혔었다. 문득 영감처럼 떠오른 시의 한 구절이 어디선가 보았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구의 시였지? 밤새 시집을 들춰보며 찾아보았다. 그런 문장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어느 누구의 시에 그와 같은 표현이 발견되었다면 일찌감치 그 문장을 포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며칠을 끙끙거리며 안절부절 시집들을 뒤졌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 문장이 들어간 시마저도 포기해버린 경우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 문장으로 인해 살이 돋고 옷을 입혔기 때문이다.

   어떤 강력한 인상이 뇌리에 박혀 무의식 속에 자리 잡히기도 한다. 진실로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있는 것이 비슷한 조건이 주어지면 반사 신경처럼 뛰쳐나올 수도 있다. 모든 예술가, 시인이나 창작자들이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느낌에 취하지 않겠는가.

   올해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 또한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심사위원의 한 사람으로 미리 점검해보지 못한 좁은 안목으로 인해 독자 여러분과 당선자에게 심려를 끼쳤음을 사과한다. 또한, 광주일보사에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린다.



 


 

2013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삼거리 점방 / 김승필

 

 

감실감실 화랑 성냥 양초 넣고

시오리 길 전봇대 돌아 발쪽발쪽 막걸리 주전자 딱지 쫀득이 파리채 넣고

귀신같이 동네 사람 죽은 걸 척척 알아맞힌 칠복이 아재 담상담상 검정 고무신 허리띠 넣고

머리빡 기계독 오른 동네 아이 밀어 넣고

오다마 삼양라면 박카스 크라운산도 브라보콘 농심새우깡 크라운 조리퐁 뽀빠이 맛동산 회똑회똑 넣고

넙죽넙죽 상둣도가 지나갈 때 눈 한번 꿈적하고

무뚝뚝이 아버지 악다구니 밀어 넣고

알금알금 파리똥 범벅 밀레 만종 액자 춘길 아재 이발소 면도 거품 집어넣고

쑥부쟁이 구절초 애기똥풀 쇠비름 고들빼기 똘똘 말아넣고

후루룩후루룩 뚝딱 마시면 배부르겠다.



 

 

[신춘문예 당선작-시 당선소감] “아름답되 허약하지 않은 시 쓸 것”

 

“진지하되 너무 엄숙하지 않은, 치열하되 거칠지 않은, 아름답되 허약하지 않은 시를 쓰고 싶습니다”

한동안 실꾸리처럼 풀려 나오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 살았습니다. 비포장 시골길을 지나 골짝 깊숙이 숨은 마을을 훑고 다녔습니다. 동구 밖에서부터 설레는 기대가 수없이 다리품을 팔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시인은 누구나 내면에 저를 시인으로 키운 천형(天刑)을 안고 있습니다. 그 천형들은 대개 치명적 결핍입니다. “새도 깃털이 자라지 않으면 높이 날 수 없고, 절망도 극한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 뚜껑을 밀어 올리지 못하리.” 고통은 주어지는 것이지만 고난은 선택하는 것이다. “모든 고결한 혼들은 자신의 고통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다.(알베르 카뮈)”그간 아침마다 배달되어 온 신문에서 매일 한편의 시를 읽는 재미로 살았습니다. 더러 시마(詩魔)를 앓다 그것을 노트에 차곡차곡 모아두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핑계 삼아 낳아 길러 키워주신 부모님께 큰절 올립니다. 또한 학부 시절 준엄한 가르침을 주신 임철호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간 현실 인식과 대응 방식을 걷어 올려 모국어의 향연을 잊지 않게 해 주었던 재선·병덕 형과 숫눈처럼 맑은 결 고운 시를 애첩 삼아 살고 있는 제자 경오와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항상 마음의 빚을 지고 살아갈(?), 사랑하는 아내의 아낌없는 정성과 아들 상욱, 딸 초예의 웃음 또한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참으로 가족에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늘 관심으로 지켜봐 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형제·누이들과도 오늘의 이 영광을 나누고 싶습니다. 부족하고 서툰 작품에 따듯한 격려의 손을 얹어 주신 두 심사위원 김정란·박남준 시인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의역지(以意逆之)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라’는 도저한 가르침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앞으로 진지하되 너무 엄숙하지 않은, 치열하되 거칠지 않은, 아름답되 허약하지 않은 시간을 녹여 숙성을 견뎌 낸 푹 곰삭은, 달랑게가 뱉어 놓은 모래알 같은 시들을 쓰고 싶습니다. 깊이와 여백, 그리고 미의식으로 중무장한 사유의 바다! 그 끝점에 ‘말로 하는 절집’(詩)을 찾아 공양주에게 누룽지나 한 덩어리 얻어먹으러 가고 싶습니다.

고향 두봉산(斗峰山)을 돌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 길을 걷고 싶습니다. 그저 기쁘고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김승필
▲1968년 신안 출생 ▲전주대 국어국문과 졸업, 목포대 국어국문학 석사 ▲광주 정광고 교사 ▲우리 고전 캐릭터의 모든 것(공저), 국어 선생님의 시배달(공저)

 

[신춘문예 당선작-시 심사평] “토속적 사투리 신명 돋운다”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이 응모되었지만, 나는 김승필씨의 ‘삼거리 점방’ 외 세 작품을 당선작으로 정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우선, 말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다. 능숙하게 이어지는 가락에 의성어와 의태어를 적절하게 배치하며 정겨운 그림을 그려나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토속적 사투리가 구수하게 녹아들어 신명을 돋운다.

그러나 김씨의 작품들은 토속적이기만 하지 않다. 그 안에는 강렬한 메시지가 숨어있다. 사라진 정다운 것들, 변방으로 밀린 타자의 경험. ‘친구’에서 죽은 매미의 말라버린 눈구녁에 대한 두 개의 해석이 충돌한다.

등나무 씨 안에 들어있는 노란 그 무엇을 두고도 충돌이 나타난다. 한 사람은 노란 배추라고 하고, 한 사람은 천마총 금제 관식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인은 고생대 삼엽충이라고 말한다. 한 사람에게 노란 그 무엇은 자연의 일부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세속적 영광의 상징인 금이다. 그것은 보다 근원적인 생명의 기원. 현,미,경, 즉, 툭툭 끊어지는 불연속적 시간의 원칙을 들,이,대,면, 보이지 않는 연속적인 그 무엇. 현,미,경,으로는 미망의 어두움만을 드리울 뿐인 신성한 미지(未知).

김승필씨는 이미 하나의 시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가 건강하고 힘찬 시적 세계를 만들어 갈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조금더 규모있는 작품에 도전해 보았으면 한다는 희망을 덧붙여둔다.

김정란
▲서울 출생 ▲197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2000년 소월시문학상 대상 ▲상지대 교수



[신춘문예 시 심사평] “잘 익어 맛있는 동치미 같았다”

 

늦게 씨를 뿌리기는 했지만 텃밭에서 자란 무가 제법 통통하게 자랐다. 뽑아놓은 무를 쓱쓱 씻어서 한입 베어 무니 입안에서 퍼지는 아삭거리는 소리는 소리대로 귀가 즐겁지만 그 맛도 참 달다.

한나절 소금 간을 해놓고 물을 부었다. 오늘 아침 항아리 뚜껑을 열고 맛을 보았다. 아직 함께 넣은 마늘, 생강이며 대파 등의 양념 맛이나 무엇보다 붉은 갓 빛이 제대로 우러나지 않아서 조금 더 시간을 기다려야겠지만 짜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안심을 했다.

김승필의 ‘삼거리 점방’은 잘 익어 맛있는 동치미와 같았다. 언어를 다루는 그 맛이 아삭아삭 거리며 그 안에 곰삭은 젓갈 맛이 감돌았다. 함께 심사를 맡은 김정란 시인과 나는 두말하면 잔소리라는 듯 ‘삼거리 점방’을 당선작으로 결정을 했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의 수준은 결코 지역신문의 신춘문예 투고 작품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작품성들이 높았다. 그러나 대부분이 너무나 잘 다듬어진 시적기교로 무장되어있었다. 아예 신춘문예용 판박이들이라고 해도 과장되지 않았다.

조유희의 ‘어제와 오늘 사이’, 정지윤의 ‘블랙아웃’이 눈에 띄었지만 그런 면에서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삼거리 점방은 참 신선했다. 전통리듬에 바탕을 둔 그의 시들이 조금 더 뒷심을 기른다면 한국 시단에 활기를 불어 일으킬 것이라 믿는다.


박남준
▲영광 출생 ▲1984년 시 ‘할메는 꽃신 신고 사랑노래 부르다가’로 등단 ▲제13회 천상병 시문학상 수상.

2013 전북도민 신춘문예 시 당선작]


그 여자, 마네킹 / 강봉덕


때론, 패션도 종교가 된다

묵언수행 하는 그 여자

침묵으로 한 종파를 완성시킨다

그 종파의 교리는 계절을 앞질러 가는 것

한 계절 똑같은 웃음이나 빛깔

표정을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계절에 이르기 전

그 여자의 설법은 고요하고 은밀하다

이 거리에 들어온 사람들은 주술에 걸리듯

그 여자의 짝퉁이 되기 시작한다

포교는 항상 중심에서 변방으로 퍼진다

짧은 치마처럼 간단명료한 표정

미끈한 팔다리로 사람들을 전염시키며

파격적인 노출도 교리가 된다

패션이 변할 때 마다

사람들은 새로운 표정을 만들며 순종적으로 바뀐다

경기불황이 몰려오면

그녀는 더 화려하고 빠르게 변신한다

사라진 추종자를 다시 불러들인다는 것은

침침한 눈으로 바늘귀에 실 꿰듯 힘겨운 일이지만

손바닥 뒤집듯 가벼울 수 있다는 듯

투명한 벽 앞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그 여자, 화려한 변신을 시작한다

나를 버린 사람들이 몰려든다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 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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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강봉덕 당선소감 ‘착하게 시를 쓰겠습니다’

 

올 겨울은 추운 날이 많습니다.
유난히 추운 날, 마음이 따뜻해지는 당선소식을 받았습니다.
몸도 마음도 따뜻해지는 그런 시를 쓰고 싶습니다.
아직 내 글이 많이 서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더 치열하게 글을 쓰라는 격려라 생각합니다.
시를 쓰는 일은 사람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아직도 부족한 글에 이렇게 큰 상을 주신 것은 사랑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라 생각하며 천천히 쉬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겠습니다.

전북도민일보사와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리며 착하게 시를 쓰겠습니다.
‘시는 별 것 아닌 삶을 별 것인 삶으로 만든다’ 고 가르쳐 주신 동리목월 김성춘 선생님과 ‘치열하게 글을 쓰라’고 지도해 주시며
힘들 때 마다 격려해 주신 구광렬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함께 공부한 동리목월문예대학 문우들, 사랑하는 아내와 딸에게도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전합니다.
 



<시>심사평­-세상을 대하는 폭이 넓고 진솔하여

 

책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응모한 것에 놀랐다. 글을 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희망적이다. 역시 정서적 궁핍의 탈출은 예술일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485편 가까이 되는 작품을 들떠 읽었다. 대부분의 작품이 신춘문예 스타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또한 신춘문예에 등장하는 소재에서 딱히 벗어나는 작품을 만나기도 어렵다. 그러나 놀랍게도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았다.

 

‘그 여자, 마네킹’, ‘사각형 속에 둥근 귀’, ‘물고기자리’, ‘기린’, ‘거실의 세렝게티’, ‘폐허를 말하다’, ‘담쟁이의 혈당체크’, ‘안녕, 살구’ 등이 끌렸다. 이 분들 모두에게 박수를 드리고 싶다. 그 중 ‘사각형 속의 둥근 귀’는 성숙된 작품임이 분명하나 익숙한 문체나 구절들이 거슬렸고, ‘물고기자리’는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게 흠이 되었다. ‘거실의 세렝게티’는 단순한 소재를 끌어가는 솜씨가 돋보였으나 주제가 선명치 않았다. ‘기린’ ‘담쟁이의 혈당체크’ 등을 쓴 분의 독특한 상상력이 못내 아쉽다. 완성도도 약했지만 그 외에 다른 작품들이 힘이 되어주질 못했다.

 

마지막까지 손에 들린 작품은 ‘안녕, 살구’와 ‘그 여자, 마네킹’ 이었다. ‘안녕, 살구’외 3편을 낸 강봉덕의 작품은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솜씨가 퍽 발랄하고 거침없었다. 조금만 더 숙련된다면 다음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하여 ‘그 여자, 마네킹’ 외 ‘짧은 휴식을 위한 변명’과 ‘홀쭉한 등’의 3작품을 낸 강봉덕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쾌히 뽑는다. ‘홀쭉한 등’과 ‘그 여자, 마네킹’ 둘 중 무엇을 수상작으로 정할까도 망설였다. ‘홀쭉한 등’으로 자꾸 시선이 갔으나 군데군데 매끄럽지 못한 점이 많아 ‘그 여자, 마네킹’을 수상작으로 든다. 3편 모두 현대적이면서도 건조하지 않고 세상을 대하는 폭이 상당히 넓고 진솔하여 수상자로 선정함에 망설임이 없다. 축하드리며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 계속 거듭나길 기대한다.

 

 

2013 영남일보 문학상 시 당선작

 

말(馬) / 정와연


수선집 사내의 어깨에 말의 문신이 매어져 있다

길길이 날뛰던 방향 쪽으로 고삐를 묶어둔 듯

말 한 마리 매여 있다

팔뚝에 힘을 줄 때마다

아직도 말의 뒷발이 온 몸을 뛰어다닌다

고삐를 풀고 나갈 곳을 찾고 있다는 듯 연신 땀을 흘린다

저 날리는 갈기를, 콧김을, 이빨 드러내는

투레질을 굵은 팔뚝에 가둬두고 있다는 것을

저 사내 알기나 할까

어쩌면 질풍노도의 시절에 스스로 마구간을 짓고

지독한 결심으로 고삐를 매어두었을지도 모른다



말은 복종하는 발굽과 항거하는 발굽이 다르다

앞발을 굽힐 때 뒷발은 더 빡세게 버티는 법이다



어느 뒷골목의 시간들을 붙잡아

사내의 안쪽을 향하게 단단히 묶었으나

꿈틀거리는 역마살이란 언제까지 갇혀 있을 발굽이 아니다

비좁은 마방에서 수년 째 구두를 깁는 일이

자못 수상하기까지 하다

닳고 닳은 뒤축을 깁는 일과

말의 박차를 박는 일에 우연(偶然)이 있다면 그것은 다 길의 파본이다



발굽을 갈아 끼울 때마다 사내는

박차고 나가려는 팔뚝의 불뚝한 말을 오래 쓰다듬듯 주무른다

이제야 말 한 마리를 다룰 줄 안다는 듯

말과 주인이 따로 없다는 듯이

 

 

 

 

[시 당선소감] 정와연 “젊은 정신으로 세상을 보겠습니다”

 

젊은 시를 공경하며 사는 일이 그리 편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나이를 잘 타일러 멀리 보내버렸습니다.

왜 나이를 먹어갈수록 우둔해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가장 믿는 것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그 우둔함을 믿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정하고 갈 뿐입니다. 젊은 정신으로 사물을 보겠습니다.

꿈을 현실로 바꿔놓은 전화 한 통은 실로 꿈을 꾸는 듯했습니다. 떨리고 겁이 났습니다. 몸을 흔들어 정신을 차려봅니다.

이토록 멋진 장을 열어주신 영남일보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저의 글을 뽑아주신 이하석 선생님, 송재학 선생님께 진심어린 큰절 올립니다.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 걸어가겠습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숭의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님과 여러 선생님 감사합니다. 등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며 버팀목이 되어준 남편, 시 쓰는 엄마가 자랑스럽다는 세 딸, 음악활동에 열중인 아들(나무)의 원대한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모두 모두 사랑합니다. 끝으로 이 기쁨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시 심사평] 이하석·송재학 “명쾌한 논리와 탁월한 언어감각 자신만의 ‘감각의 통점’ 짚어내”

 

장유정씨의 ‘나무 옮겨 심는 법’, 정와연씨의 ‘말’, 김묘숙씨의 ‘편자꽃’, 이인숙씨의 ‘모자이크’ 등이 우리가 마지막까지 읽은 작품들이다.

본심에 올라온 수십 편의 시들은 그 내부에서 서로가 서로를 카피한 혐의가 있다. 원본은 사라지고 카피본들의 베껴쓰기가 다반사로 이루어진 세간의 형편과 다르지 않다. 수사와 기교가 일정한 수준을 유지했다는 점은 위안이지만, 카피의 스펙트럼이 광범위하기에 이번 심사는 곤혹스러운 체험이다.

본심의 작품들은 대체로 비슷한 감각의 폴더를 공유했다. 어떤 책의 감동이 블로그를 통해 흔적처럼 남겨지고, 이후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은 앞선 사람의 블로그를 거치면서 비슷한 감정을 공유한다.

음악도 영화도 같은 폴더라는 소비패턴을 반복한다. 그것은 또한 감각에서조차 트렌드를 생산한다. 즉, 문화의 접점이 개별적이지 않다는 비효율성을 생산한다. 문학의 본질이 사유의 진보와 확장이라는 점에서 문학은 필사적으로 개별이자 개성적이어야 한다. 숭고미가 있다면 추악한 아름다움이라는 대구(對句)의 필연성이 문학의 범주다.

문학은 대상과의 적절한 타협이 아니다. 필경사가 철필로 새겨가는 심정으로 처절하게 모든 것들의 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저잣거리에 널리 유통 중인 수월한 감각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만이 가진 ‘감각의 통점’을 짚어내는 것이 문학이다.

장황해졌지만 그런 점에서 정와연씨의 ‘말’은 다소간 독보적이다. 게다가 명쾌한 논리성과 우월한 언어 감각에 기대고 있다. 당선작 ‘말’은 구두수선공의 어깨 문신에 주목한 작품이다.

문신 속의 말(馬)은 수선공의 내면과 수작하면서 수선공이라는 개별적 삶의 문어체를 획득한다. “닳고 닳은 뒤축을 깁는 일”과 “말의 박차를 박는 일에 우연이 있다”는 두 갈래 상상력을 길의 파본이라 파악하는 삶의 성찰성에 우리는 비상한 관심을 가졌다. 그의 다른 작품 ‘의태 계절’과 ‘샌들의 감정’에서도 독특한 감각이 드러난다. 그 두 작품은 ‘말’보다 더 풍요로운 문학 생태를 드러낸다.

신춘문예 당선이 일희일비가 아니라 행복한 감정이 되려면, 오랜 훗날에도 진정성을 유지하는 시인이어야 할 것이다.

 

 

 

 

2013 경제신춘문예 시 당선작]

 

벗어둔 고래 / 최영정


밤새 헛기침하는 저 구두
신발장에서 꺼내 한 손에 낀 채 닦아내다가
밑창에
작게 뚫린 고래의 숨구멍을 보았다

비가 올 때마다
얼마나 많은 가느다란 물줄기가
컴컴한 동굴 같은
저 안에서 솟구치고 솟구쳤을까

내 마음이 내딛는 자리마다
생겨나는 커다란 물웅덩이에
빠진다.

정년퇴임 후 아버지가 가지런히 벗어둔
저 구두는
숨 쉬러 물 밖으로 가끔 뜬소문처럼 올라온다는
고래들처럼
요즘엔
경조사 빼곤 좀처럼 밖을 나서는 법이 없다.

다시 마른
헝겊만으로 구두를 닦고 또 문지르는데도
무슨 일인지
자꾸만 눈부신 물광이
구두에서 난다.

2013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적도 / 조율

 

 

 옥탑방 평상에 앉아 수박에 칼을 찔러 넣는다

 수박의 적도 부근쯤이다 지구본으로 따진다면

 한 중앙에 위치한 에콰도르의 어느 도시 정도가 되겠지

 이곳은 뜨거운 열대우림, 곰팡이가 타잔처럼 천장을

 오르는 옥탑방, 생각한다, 왜 나에게는 선글라스를 끼고

 일광욕을 즐기는, 그런 적도가 지나가지 않는가?

 눅눅한 근로계약서에 손가락을 빌려줄 때마다

 낮은 태양이 양철지붕 위로 더 무겁게 녹아 내려붙는다

 가로줄이 많은, 빈칸이 많은, 적도가 많은

 주름진 종이 속에는 엷은 비늘이 숨어 있다

 적도를 벗어난 열대어의 서글픈 눈망울이 끔뻑인다

 온통 경력자들만의 구인광고 박스, 열대성 기후 속에서

 적도는 옆구리 뜨거운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지구의 허리춤을 적도가 점점 조이고, 조여 오면

 이거 벨트에 구멍을 하나 더 뚫어야 하나?

 난간에 서서 입안에서 우물거리던 수박씨를 뱉는다

 내가 맞히지 못한 뒤통수들은 달동네에 엉킨 오르막길을

 왜 이렇게 가뿐히 풀어내는가? 수박씨 속에도 적도가

 있다던데 그곳은 영영 바람 한 점 없단 말인가?

 이천 원짜리 금간 수박에서, 무너진 신발장

 경첩과 경첩 사이에서, 경력과 초보사이에서 도려낸 적도,

 언제나 남은 절반은 절반을 닮아간다

 바지랑대를 세워 하늘을 갈라본 적도,

 구름을 베어본 적도, 적도 부근에 가본 적도 없지만

 바람 잘 날만 있는 이곳은 언제나 바싹 말라가는 무풍지대,

 

 

 

 

[시 당선소감] 조율 "세상의 절반을 가득 울리는 시"

저는 구름을 뜯어먹어 본 적도, 남들 다 가는 그 흔한 시집을 가본 적도 없습니다. 쓰고 또 쓰느라 나를 읽어볼 새 없이 꼬박 서른을 채웠습니다. 이제, 저는 골목을 읽고 당신의 옆모습을 읽고 당신의 잘려나간 바짓단을 읽겠습니다.

2012년 겨울, 저는 꿈속에서 방석과 방석 사이에 '햄버거 패티'처럼 쑤셔진 뱀을 보았습니다.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는 주변의 이야기를 잊어갈 무렵 당선 통보를 받았습니다. 한 남자를 잠시 생각하느라, 혹은 저울질하느라 머리가 아팠습니다. 그럴 땐 달달한 것이 좋아 신기하게도 제주도 감귤 초콜릿을 먹고 싶다고 이야기를 한 다음 날, 당선 소식이 왔습니다.

이제껏 시를 쓰며 시집갈 밑천은 없고 시집만 많은 별 볼 일 없는 여자가 될 뻔한 저에게 이렇게 시집이 많은 이유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그리고 얼마 전 밥은 해먹을 줄 아느냐며 칠 년 만에 꿈속에 나타나 걱정하던 아버지, 그리고 하나뿐인 남동생이 정말 기뻐할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 함께 공부했던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분과동아리 '시륜' 동인들과 교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무너진 삼례역의 무지개, 온천은 없는데 온천역만 남은 신길온천역 찢어질 듯 붉은 서쪽 하늘, 안양시 귀인동 922번지 옥상, 역곡역 하늘을 쓰는 이름 모를 나무에게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언제나 세상의 남은 절반이 되어 남은 절반은 가득 울리는 시를 쓰겠습니다.

▷1983년 인천 출생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시 심사평/김규린 시인]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 녹아들어

누군가 혼신을 드러낸 작품에 대하여, 타인이 전혀 다른 주관적 잣대로 평가하는 일은 조심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작품을 읽기 전에 작품 속의 사람을 읽어야 하며, 그가 겪은 체험의 변용을 진지하게 탐색해야 한다는 것. 그러므로 이러한 일에는 책임이 따른다. 나는 그 책임을 가능한 한 무겁게 지기 위해, 그리하여 그 결과를 즐겁게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최종심은 '안정적인 작품을 가려낼 것인가, 불안정한 작품을 한 번 믿어볼 것인가'라는 두 가지 화두의 팽팽한 갈등 속에 이뤄졌다. 예심을 거쳐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은 송지은의 '마늘밭 유훈2', 문귀숙의 '어탁', 강동완의 '눈먼 꽃', 조율의 '적도' 등 모두 4편이었다.

'마늘밭 유훈2'와 '어탁'의 장점은 안정감이었다. 주제가 따뜻하고 형식적인 면에서도 꽤 숙련된 솜씨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안정감은 익숙한 리듬과 익숙한 시 전개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진부함을 느끼게 하였다. 반면 '눈먼 꽃'은 지나치게 수다스러웠다. 행의 길이도 길어서 산문시의 느낌을 주었는데, 다행히 문장에서만은 성실함이 엿보였다. 그의 성실성을 향해, 수다스러울수록 명료하게 견지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숙고하기를 당부하고 싶다.

고심 끝에 당선작으로 고른 작품은 조율의 '적도'이다. 이 작품은 앞서 언급한 '불안정한 작품'의 경우이다. 그런데도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은,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 중 가장 불안정하지만 가장 매력적인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무거움과 가벼움의 산뜻한 교차와 조화, 그 속에 투영된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가 시의 불안정함을 상쇄해 주었다.

불필요한 사족, 남발되는 의문사는 물론, 행구분도 그리 전략적이거나 타당성 있어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눅눅한 근로계약서와 달동네를 읽어내는 그의 '옥탑방 평상의 꿈'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의 시는 가볍다. 그러나 단지 가볍지만은 않다. 차별화된 가벼움을 그의 장점으로 승화시켜 나갈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13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손톱 깎는 날 / 김재현

 

 

우주는 뒷덜미만이 환하다, 기상청은 흐림
구름 사이로 드문드문 쏟아지는 빛 속에는
태양이 아닌, 몇 억 광년쯤 떨어진 곳의 소식도 있을 것이다
입가에 묻은 크림 자국처럼 구름은 흩어져 있다
기상청은 거짓, 오늘
나는 천 원짜리 손톱깎이 하나를 살 것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내 손톱은 단단했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나의 바깥이었다
어릴 적부터 손톱에 관해선
그것을 잘라내는 법만을 배웠다
화초를 몸처럼 기르는 어머니를 보고 자랐지만
나는 손톱에 물을 주거나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는 일 따위에 대해선 상상할 수 없었다
결국 그것은 문제아거나 모범생이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과 같았지만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만 모범이었으며 문제였을 뿐
그러므로 손톱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나 또한 그것의 바깥에 불과하다

오늘, 우주의 뒷덜미가 내내 환하다
당신은 매니큐어로 손톱을 덮으려 하고 나는 손톱을 깎는다
우리는 예의를 위해 버리고, 욕망을 위해 남기지만
동시에 손가락 위에 두껍게 자라는 것들이
어느 쪽에 가까운지 알 수 없다
다만 휴지 속으로 던져둔 손톱들과, 날씨
그리고 나에 대해서만 생각할 뿐
버려진 손톱들은 언제나 희미하게 웃고 있다

 

 

 

 

 

 

[당선 소감] "아이처럼 엉엉 울었습니다, 자꾸만 새로워지겠습니다"

 

찌개가 끓고 있는 밥집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텅텅 비어 있던 배 속이 밥알 대신 알 수 없는 감정들로 차올랐습니다. 먹지 않아도 배부를 수가 있구나. 우습지만, 당선 연락을 받고 처음 깨달은 게 그것입니다. 연락을 받은 친구들이 달려와 볼에다 마구 뽀뽀를 해댔습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고 금세 두려움이 차올랐습니다. 제가 그동안 무엇을 써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훈련을 마치고 첫 전장에 나가는 병사의 심정이 이랬을까요.

시인이 된다는 것과 시인이 되고 싶은 것 사이에 이토록 깊은 거리가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간밤의 꿈에서 누군가에게 사과를 했고 그는 받아주지 않고 그냥 돌아섰습니다. 그가 시였을까요. 꿈에서 깨어난 후, 나는 아직 텅 비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은, 시 쓰기에 방점을 찍는다는 생각으로 투고했던 글이었습니다. 그 방점이 새로운 문장을 쓰기 위한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놓으면 온다는 이치를 알 것 같습니다. 이제 이 길을 숙명이라 믿고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

제 가능성을 봐주신 심사위원분들께 우선 감사드립니다. 부끄럽지 않게 써나가겠습니다. 끝까지 저를 놓지 않으셨던 박주택 선생님, 김종회 선생님, 서하진 선생님. 평생을 다해도 갚을 수 없는, 너무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처음으로 시의 길을 알려주셨던 정우영 선생님. 항상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격려와 확신을 주었던 이체, 강진, 동운. 주모동의 단테. 문예창작단의 선후배들. 당신들이 제게는 써야 하는 이유들이었습니다. 고향 친구들인 용준, 한상, 지홍, 경록, 정훈. 내일도 오늘처럼 끈끈하게 살아갑시다. 지금은 이름을 부르기 힘든, 하지만 언젠가 나를 용서해주길 바라는 그에게도 하고픈 말이 있습니다. 절망과 방황을, 성장과 배움을 당신을 통해 겪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를 나 자신보다 아껴주는 금희와 부모님에게 진심을 담은 사랑을 전합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갓 태어난 기분입니다. 집에 돌아가 아이처럼 울었습니다. 자꾸만 새로워지겠습니다.

▲1989년 경남 거창 출생
▲경희대 국문과 재학 중

 

 

 

[심사평] 삶의 구체성을 통한 사유 그것을 언어화하는 능력 돋보여

 

어느 해보다 많은 응모작을 보며 새롭고 다양한 개성과 시세계에 대한 기대 또한 더욱 높았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시 가운데 이소연의 ‘활과 무사’ 외, 노정균의 ‘우산은 어디서 파나요?’ 외, 김재현의 ‘손톱 깎는 날’ 외로 의견이 좁혀졌다. 이 세 사람의 작품은 우선 언어 장인으로서의 기량과 그것을 삶의 지렛대로 끌고 가려는 진정성이 돋보였다. 최근 한국시에서 자주 지적되는 산문화, 언어 낭비, 소통의 문제도 비교적 잘 극복해 가고 있었다.

이소연은 ‘활과 무사’ ‘늑골이 빛나는 발레 교습’ 등의 작품을 통하여 감각적 투시, 대담한 언어 구사로 산뜻함을 드러내었고, 노정균은 ‘우산은 어디서 파나요?’와 ‘입양’을 통하여 우리말의 어미를 “…다.”로 끝내지 않고 이어지는 각운을 통하여 사유가 리듬을 불러오는 작법의 시도를 보여주었다.

논의를 거듭한 끝에 김재현의 ‘손톱 깎는 날’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삶의 구체성을 통한 사유, 그것을 언어화하는 능력과 밀도를 주목했다.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 또한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신뢰를 보탰다. 뱀처럼 섬뜩한 이미지의 ‘아야와스키의 시간’, 태어날 것들을 위해 스스로를 앓아 주렁주렁 매달린 ‘몰식자(沒食子)’에서 예사롭지 않은 재능을 보았다. 하지만 미개척지를 향한 탐색과 언어 실험자로서의 패기가 지나쳐서 억지스러운 조어가 이물(異物)처럼 박혀 있는 것이 다소 눈에 거슬렸다. 시란 사물과 사유를 언어로 갈고 닦아 가장 명징하게 본질을 드러내는 생명체이다. 삶의 타성과 시류와 진부에로의 수압을 잘 견뎌내어 부디 좋은 시인으로 훨훨 날아오르기를 바란다.


 

 

2013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가난한 오늘 
- 이병국


 검지손가락 첫마디가 잘려나갔지만 아프진 않았다. 다만 그곳에서 자란 꽃나무가 무거워 허리를 펼 수 없었다. 사방에 흩어 놓은 햇볕에 머리가 헐었다. 바랜 눈으로 바라보는 앞은 여전히 형태를 지니지 못했다.

  

  발등 위로 그들의 그림자가 지나간다. 망막에 맺힌 먼 길로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나는 허리를 펴지 못한다. 두 다리는 여백이 힘겹다.

  

  연필로 그린 햇볕이 달력 같은 얼굴로 피어 있다. 뒤통수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양손 가득 길을 쥔 네가 흩날린다. 뒷걸음치는 그림자가 꽃나무를 삼킨다. 배는 고프지 않았다.

  

  꽃이 떨어진다.

 

 

 

 

 

당선소감

 

이병국
△1980년 인천 강화군 출생
△인하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인하대대학원 석사 수료(현대문학)

 

 대문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창이 나 있었습니다. 늘 한쪽 창의 불이 꺼져 있기를 바라며 집으로 향했던 때가 있습니다. 어둔 방에 불을 켭니다. 그렇게 십여 년이 흘렀고 빈방에서 저와 아버지에 대한 시를 씁니다. 월미도 유람선에서 쓴 시를 교실 뒷벽에 붙여놓았던 고등학교 2학년에서 어느덧 미끄러져 서른을 훌쩍 넘겼습니다. 신문에 제가 쓴 시가 놓이게 된다니 제 마음에 창 하나가 밝게 빛나게 되네요.

 

  심사위원님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이번 생일이 1월 1일인데, 생일 선물을 너무 거창하게 받네요. 밖에 내놓은 아들 걱정하며 노심초사하는 어머니, 그 곁에 함께 하는 분당 아버지께도 감사드려요. 최원식 선생님, 김명인 선생님을 비롯한 인하대학교, 대학원 선생님들과 동문들께도 감사드립니다. 탁경순 선생님, 꼭 찾아뵐게요. 강영숙 선생님, 이름 고맙습니다. 그리고 지금 옆에서 절 응원하고 같이 웃어주는 그녀, 고마워요. 

 

  그저 말 많은 선배에서 그래도 신춘문예 당선된 선배로 남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가슴을 쓸어내리네요. ‘멋진수요일’, ‘청하’, ‘시선’. 대학 때 만난 학회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제가 있었을까요. 숱한 세미나와 술자리들이 모두 기억에 남습니다. 그 곁을 함께 한 선후배 모두 고맙습니다. 이제 즐겁게 시, 쓰겠습니다.

 

 

 

심사평

 

장석주, 장석남 시인

통념을 깨는 상징을 찾아라, 감각의 명증성을 보여라, 생명의 도약에 공감하라, 세계의 찰나를 경이로써 보여주라. 좋은 시의 덕목으로 꼽을만한 것들이다. 무엇보다도 껍질을 깨라! 도약하는 힘을 보여라! 마치 “알맹이의 과잉에 못 이겨 반쯤 벌어진 단단한 석류들”이 그렇듯이. “제가 발견한 것들의 힘에 겨워 파열”하고, 사물의 새로움과 내면의 고매함을 융합하며 붉은 보석이 밖으로 터져 나온다.(발레리, 「석류들」) 상상력은 늘 그렇게 독자를 익숙한 것들에 대한 놀라운 개안(開眼)으로 이끈다.

  「이모의 가까운 해변」「골목을 들어올리는 것들」「향리의 저녁 일지」「발의 원주율」「어제의 인사」「끌어안는 손」「오늘 너의 이름은 눈」「친구들」「가난한 오늘」「迷路庭園」「밀의 기원」「꽃 앞의 계절」 등을 최종심에서 읽었는데, 그것은 개성과 환유의 백가쟁명(百家爭鳴) 속에서 무르익어 스스로 내면을 깨고 터져 나오는 시를 찾는 일이다. 익숙한 서정을 찾기 힘든 대신에 낯선 감각과 의도된 착란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흐름은 주목할 만했다. 우리는 서너 편의 시를 손에 쥐고 오래 망설였다.

 「가난한 오늘」을 두 시간이 훌쩍 넘는 고심 끝에 골랐다. 신체 말단이 잘리고 헐고 바랜 자는 상처 받은 자이고, 그 상처는 가난의 흔적일 것이다. 일체 엄살이 없다. 아픔을 과시하는 헤풂을 절제하고 가난에 형상을 부여하는 힘은 정신의 야무짐에서 나온다. 싯구와 싯구 사이에 여백이 그 시적 물증이다. 수사가 덜 화사하고 주제가 소박했지만 아픔과 미망에 대한 표현의 간결함에서 사물에 감응하는 시인의 정직과 내핍의 염결성을 느꼈고, 그것에 깊이 공감했다. 이 시인의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은 게 분명하다. 지금보다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이 「가난한 오늘」을 당선작으로 뽑는 우리를 설레게 한다.

 

 

 

2013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김정경

 

검은 줄

 

파업이 길어지고 있었다

주머니엔 말린 꽃잎 같은 지폐 몇 장

만지작거릴수록 얇아졌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므로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시간,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여니

방바닥에 검은 줄 하나 그어져 있다

특수고용자로 분류된 나는

노동조합이 철야 농성 중인 회사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출입문 위에

붉은 글씨로 쓴 부적들 나부끼고

제 이름 외치며 뛰쳐나온 노란 팬지꽃

화단 위에 삐뚤빼뚤 구호를 받아 적었다

나무 기둥의 몸을 열고 나온 날개미들,

좁은 방에 검은 줄 늘려가고 있다

문 걸어 잠그고

쓰다 남은 살충제 쏟아 붓는다

혼자서 살겠다고

혼자만 살아보겠다고

고쳐 쓰고 또 고쳐 쓰던 자기소개서

개미들이 따라가며 밑줄을 긋는다

고쳐 쓰다만 자기소개서 위의 검은 줄이 흩어진다

 

 

 

 

시 당선소감 - "손녀에게 한 수 가르쳐 준 할머니께 영광을"

 

올봄 고향에는 유난히 벚꽃이 고왔다고 했습니다. 그 고운 꽃빛이 다하고 배롱나무 꽃 필 즈음 할머니께서 하늘로 꽃구경 가셨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울다 말고 그날 분의 방송 원고를 썼습니다.

그렇게 불성실한 자세로 할머니를 보내드리며 죽은 자의 일과 산 자의 책임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가시는 길에도 손녀딸에게 한 수 가르쳐 주신 아름다운 매화, 정가매 씨. 당선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할머니가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제가 쓰는 글에 책임을 지며 살겠습니다. 제 시에 뼈를 세워주신 부모님, 시의 살이 되어주신 원광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님들과 원광문학회 식구들, 헐벗지 말라고 옷을 지어주신 우석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교수님들, 외롭지 않도록 함께 길을 걸어준 문우들께 인사를 전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차마 순서를 정할 수 없어 고마운 이름들을 쓰지 못하겠습니다.

두고두고 그 이름 부르면서 곁에 있겠습니다.

제 시의 가능성을 보아주신 유강희 선생님, 박성우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시를 보듬어 주신 정양 선생님, 이시영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시인이 되고 싶다는 열망에 빠지게 했던 두 분 선생님께서 제 시를 안아주셨다는 것이 아직도 꿈 같습니다.

생애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신 전북일보사에도 감사의 인사 전합니다.

 

 

 

시 심사평 - "파업현장 현실 인식·시적 긴장감 돋보여"

 

마지막까지 남아 선자들을 고심케 한 작품은 '검은 줄'(김정경)과 '닭'(정지웅)이었다. '닭'은 '닭이 발톱을 세워 저물녘을 뒤란에 눌러놓는다/머리에 달린 어떤 생각이 갈 방향을 콕 쪼아야 한 발 걷는 닭/퇴근 없는 저 눈이 무섭다'처럼 언어가 생각을 담는 솜씨가 놀라울뿐더러 비유가 관습을 벗어나 새롭게 빛을 발하고 있다.

말하자면 관념을 언어로 낚아채 시적 표현으로 밀고 나가는 능력이 돋보였다.

'검은 줄'은 '파업이 길어지고 있었다//주머니엔 말린 꽃잎 같은 지폐 몇장/만지작거릴수록 얇아졌다'로 시작되는 시의 첫머리처럼 우리 시대의 아픈 '파업 현장'을 다루고 있는 작품인데, 기왕의 사실주의 시들의 상투적인 표현을 벗어나 현실을 다루면서도 시적 주체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숙고 끝에 우리는 언어의 날카로움이 살아있는 '닭' 대신 오늘의 사회 현실을 독자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검은 줄'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에 합의했다.

같이 응모한 다른 작품에서도 보이지만 '닭'의 시인은 그 건강한 농경정서가 자칫하면 익숙한 농촌시들의 복제에 기여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깨끗이 씻어버리기에 아쉬운 표현들이 많이 눈에 띈 반면, '검은 줄'은 파업현장을 다루면서도 거기에도 끼지 못하는 '특수고용자'로서의 신분이 뚜렷이 부각된 시구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므로/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 같은 표현이 보여준 바대로 주체와 현실의식과의 시적 긴장이 앞의 작품보다 조금 더 우위를 차지한다고 판단되었다.

이밖에도 선자들의 눈을 끈 작품은 '보랏빛 선글라스'(문화영), '연잎 정자에 초대하다'(이정희) 등이었음도 밝혀둔다. '닭'의 시인에겐 정진을, 그리고 당선자 김정경씨에겐 축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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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 김유경

 

 

섬, 이유

 

 

이 섬에선 사람이 죽으면 바람에 묻는다

그건 섬의 풍토병 같은 내력이어서 여자는

바다로 떠나 돌아오지 않는 아비의 아이를

박주가리 씨앗처럼 품은 채 바람에 묻혔다

은행나무가 여자의 무덤이며 묘비명이었다

남은 여자들이 제 주검을 보듯

길게 울다 돌아갔다, 섬에서 여자가 죽으면

살아서 뜨겁고 애달팠던 곳이 먼저 젖는다

바람은 젖어 있는 것부터 시나브로 말린다

소금에 간이 밴 깊이를 모두 말려

눈물의 뿌리가 마른 우물처럼 바닥을 드러내면

영혼을 바다로 돌려보내는 것이 바람의 법이다

하루 두 번 물마루 끝이 어물어물 붉어지고

꼭 쥐고 있던 바람의 손아귀가 스르르 풀리면

섬은 귀를 열고 듣는다, 먼 바다에서 들려오는

돌아오지 않는 아비들의 빈 배가 웅웅 우는 소리를

죽은 여자는 그 소리에 기대어 바람 몰래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 뭉텅뭉텅 사라지는 몸에서

눈동자는 빛을 잃고, 머리칼은 제멋대로 자라나온다

아이를 품은 움 같이 보드라운 궁륭, 그 곳에선

바다 밑바닥에서만 나는 해초 내음이 나날이 짙어졌다

마침내 바람이 여자를 온전히 데려갈 때

죽은 여자는 아이를 은행나무 잎 속에 묻어두고

떠난다, 홀로 누워 있었던 자리에

노란 은행잎이 수북수북 쌓인다, 가을 한 철 내내

바람의 장례가 제 열매 다 익도록 잎을 물들이지 않는

은행나무의 사랑 같은 것인지 아무도 몰랐다

바람이 먼 바다 부표를 향해 치솟아 올라 길을 잡고

여자의 푸른빛 인광은 그리운 바다를 향해

따뜻하게 흘러간다, 아이는 그 바다 어디쯤에서

돌아오지 못한 제 아비를 그대로 빼닮았지만

섬도 바람도 그 아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당선소감

 

종종, 일상을 '살아내는 것'이 아닌 '견디고 있다'고 느끼는 때가 있었다. 모두들 떠들썩하게 즐거운 때, 도저히 그 속에 섞여들 수 없었던 때도 있었다. 그런 막막함 속에서, 나는 줄곧 '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왔다. 그것은 희박하지만 여일하게 빛을 발하는 밤하늘의 별 같은 것이었다.

애초부터 빈약하고 어수룩한 내 글이 삶의 방편이 되리라는 위험한 상상은 하지 않았다. 때문에 '쓴다는 것'으로 되돌아오기까지,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다. 2010년 여름부터 시작된 나의 글쓰기는 다른 쪽으로 난 두 갈래 길을 합쳐 하나로 만드는 무모한 작업이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읽기를 게을리 했다. 기사를 쓴다는 명목으로 쓰기를 소홀히 했다. 앞서 간 이들의 빼어난 문장을 교묘하게 훔쳐와 내 것인 양 우쭐대기도 했다. 이 과분한 자리를 빌려 깊이깊이 고개 숙여 반성한다. 앞으로 다가올 새날은, 나만의 고유한 빛깔을 지닌 살뜰한 문장들이 정수리 위로 벼락처럼 쏟아지는 날들이길 바라본다.

'시'라는 하나의 완결된 세계로 철부지를 이끌어주신 정일근 교수님, 글 쓰며 동고동락한 경남대 청년작가아카데미 친구들, 맹랑한 후배 너그럽게 품어주시는 경남신문사 식구들께 이 영광을 돌린다. 애틋한 나의 가족과 친지들, '부족함'을 '가능성'으로 보아주신 심사위원님들, '서른 전에 등단하겠다'는 만용을 패기로 여겨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그리고 전심으로 감사드린다.

한 문장 겨우 쓰고 쉽게 두 문장을 지우는, 스스로에게 야박하고 모진 시인이 되겠다.

▶약력 1985년 경남 창원 출생. 부산대 사범대학 졸업. 경남대 교육대학원 재학. 현재 경남신문 문화부 기자.

 

 

심사평

 

파악된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상식으로 굳어져 최초의 경이를 상실해버린 세계 속에서 어떻게 삶과 사물에 대한 실감을 끌어올 수 있을까.

예심과 본심을 겸한 1차 심사를 거쳐 오른 작품들은 시 장르 고유의 구심점을 향한 몰입과 그로부터의 탈주로 크게 구별되었다. 서정성에 충실하였으나 새로운 모험의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 작품들 그리고 과잉된 탈주의지로 설명적인 산문투들이 먼저 제외되었다. 조립은 잘 되었으나 맥이 빠져 시적 울림에 실패한 작품들 또한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최종심에 오른 것은 박다닌, 최희명, 김유경 세 사람의 응모작이다. 우선, 박다닌은 소외된 삶을 조명하는 따듯한 시선에 호감이 갔으나 이미지와 이미지를 연결하는 고리가 작위적으로 다가왔다.

심사위원들은 최희명과 김유경의 작품을 들고 팽팽한 긴장 속에 심사를 이어갔다. 최희명은 '고려인 집성촌'이라는 무거운 오브제를 절제된 감각으로 구조화하는 솜씨가 녹록잖았다. 견고한 형식미 또한 높은 점수를 받았으나 오히려 그 형식미가 시상의 확장을 방해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주제를 삶의 구체성 속에서 길어올리는 김유경의 시는 시상을 끌고 가는 기량에 있어서나 시어를 낯설게 만드는 방식에서 단연 돋보였다. 넘치는 수사의 욕망에 절제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으나 서사를 내장한 이미지들의 날렵함이 그 흠을 오히려 더 빛나게 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함께 보내온 작품들의 고른 수준도 신뢰감을 주었고, 무엇보다 시 너머에 대한 지향을 통해 고정된 형식을 뒤흔드는 신인다운 패기가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장고 끝에 김유경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는데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합의를 보았다. 이 새로운 시인이 시 장르만의 특장을 고집스럽게 파고들어 가면서도 그 너머를 사유할 수 있는 무서운 신인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심사위원 허만하, 최영철, 손택수(이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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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한국경제 신춘문예 시 당선작]

 

 

 

 

 

 

 

 

시 당선자 김기주 씨 "바텐더·쇼핑몰 운영…결국 제 본질은 詩였죠"

 

강원랜드 TV다큐 보고 대학서 카지노경영학 공부
카지노와 글쓰기는 극과극…그래서 서로 통했나봐요
당선작 '화병'은 떨어지는 물 지켜보다가 詩想 떠올라 쓴 것

 


“감격스럽습니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습니다. 슬플 때 표정이 자신에게 가장 진실된 표정이라고 하죠. 어떻게 보면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당선된 게 아닌가 싶어요. 당선 이후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부끄러움’입니다. 그러나 이 부끄러움으로 ‘제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시’를 쓸 겁니다.”

한경 청년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 김기주 씨(30·추계예대 문예창작과 4학년)는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알고 지내던 김나영 시인이 시집을 선물하며 첫 페이지에 ‘김기주 시인에게’라고 써줬어요. 시인이라는 호칭이 감격적이면서도 부끄럽고 어색했죠.”

‘김 시인’의 부끄러움은 실력이 없거나 수줍음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심사위원(신경림 최승호 김기택)들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 없는 신인을 발굴해 기쁘다”고 입을 모았다. 닿을 수 없는 본질에 대해 인간이 느끼는 부끄러움을 김씨는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천상 시인으로서의 ‘존재론’이다.

그는 젊지만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고향 부산을 떠나 서울 응암동으로 이사했다. 부모님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였다. 충암고를 졸업할 때까지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다. 소질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느날 TV에서 강원랜드를 집중 조명한 다큐멘터리를 본 뒤 돌연 ‘여기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망의 끝’으로 직접 들어가고 싶었던 그는 2002년 제주관광대 카지노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때 문예반 활동을 하기도 했어요. 참 즐거웠죠. 그런데 ‘욕망의 끝’인 카지노와 시 쓰기는 극과 극이잖아요. 그래서 서로 맞았던 것 같아요. 제주관광대 친구들이 제가 신춘문예에 당선된 걸 알면 깜짝 놀라겠죠. 시적 감수성 같은 건 전혀 드러내지 않았으니까요.”

강원도 고성 수색대에서의 군생활 중 책을 200권 넘게 읽으면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본격적으로 했다. 그래서 2011년 추계예대로 편입했다. 그 사이에 서울에서 바텐더, 대출영업, 온라인 쇼핑몰 운영, 차량견인, 헬스트레이너 등 온갖 일을 했다.

추계예대 편입 후 ‘시마(詩魔)’가 씌었다는 표현 그대로 시 쓰기에 전념했다. 그는 “처음부터 차곡차곡 글쓰기를 해온 게 아니라서 최소한 게으르지는 말자고 다짐했다”고 했다.

당선작인 ‘화병’뿐만 아니라 함께 투고한 시 ‘내가 내 속의 나보다 겉에 있다’는 끈질긴 묘사와 자신만의 시선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그는 이 시를 쓰게 된 계기를 담담하게 설명했다.

“술자리에서 물을 엎질렀는데 물이 ‘둥글게’ 모여들면서 뭉치더라고요. ‘화병’은 그 둥근 물을 한 시간 넘게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쓴 시예요. ‘쏟아진 물인데 너희들은 서로 둥글게 붙잡고 있구나, 나는 이 물보다도 모나고 모질구나’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가 내 속의 나보다 겉에 있다’는 그가 동네 버스정류장 앞에서 죽은 개를 보고 묻어준 경험을 그대로 옮긴 시다. 길에 버려진 개를 묻어주면서도 그는 “개의 죽음을 그대로 본 게 아니라 시의 소재로 써먹은 것이 부끄러웠다”고 했다.

앞으로도 시가 중심이 되는 인생을 살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아무리 큰 돈과 권력이라도 고개 숙이지 않을 텐데 시 앞에서는 제가 고개 숙일 수 있겠구나 싶어요. 100명이 한 번 읽는 시보다는 한 명이라도 100번을 읽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독자 그 한 명과 딱 붙는 그런 시 말입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당선 소감 ) "모른 척 걸어가듯 시 쓰겠다"

‘시는 결코 대단하지 않다. 하지만 대단한 것 또한 아무것도 없다.’

다 솔직할 수는 없습니다. 이 글도 마찬가지. 아직도 사람을 알려면 오백년은, 사랑을 하려면 천년은 걸릴 거라고 믿습니다. 모른 채 태어나 모른 척 걷는 게 유일한 특기인 셈입니다.

하늘이 참 좋은 날. 은대 원준 영수 인태랑 사막에다가 오줌을 휘갈기고 싶은 것이 꿈입니다.

박찬일 선생님과 이형우 교수님, 이성혁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보다 더 기뻐해준 추계예대 동문들, 유정이 삼겹살 때문에 우리 많이도 웃었습니다. 승빈이의 지조와 그대들의 밝음에 감사합니다.

하이네 시집을 들고 웃는 어느 여인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한 자격이지만, 역시나 침묵은 압제자를 돕는 것. 그만큼은 글을 쓰겠습니다.

▷1983년 부산 출생

▷제주관광대 카지노경영학과 졸업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4학년

 

 

 


심사평 ) "여백과 침묵으로 상상력 확장한 수작"

‘청년’과 ‘신춘’이라는 말에는 지금도 활발하게 형성되고 있는, 굳어지지 않아서 무정형인, 무엇으로 변화할지 모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직 자연 상태 그대로의 어린이가 살아있는 비밀스러운 힘이 있다.

선자들은 될 수 있는 대로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기성세대의 잣대로 가공되지 않은, 드러난 것보다는 앞으로 드러날 탄력이 더 풍부한 작품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심사에 임했다.

물론 응모작에는 서툴고 거칠고 어눌한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결함이라기보다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새로움을 한껏 내장하고 있는 가능성으로 보였다.

선자들의 이런 마음을 향해 한 작품이 걸어 들어왔다. 모두가 망설이지 않고 당선작으로 결정한 그 작품은 김기주의 ‘화병’이다.

이 작품은 조금도 화려하지 않고 신춘문예에 어울리지 않게 평범하고 어눌해 보인다.

그러나 대상의 작은 것까지 낚아채는 관찰은 섬세하고 정확하며, 묘사는 끈질기고, 표현에는 집중력과 응집력이 있으며, 어조는 차분한 정도를 넘어 무심할 정도로 건조하다.

당선자는 말을 적게 하면서 행간의 여백과 침묵을 한껏 활용해 시를 힘 있게 만들 줄 아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말을 덜함으로써 독자의 상상력을 확장하는 법을 알고 있다.

함께 투고한 ‘내가 내 속의 나보다 겉에 있다’ 역시 죽음에 대한 블랙 유머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이 작품들을 보며 당선자에게 아직 쓰지 않은 더 크고 풍부한 것들이 있으리라는 믿음과 기대를 갖게 됐다. ‘청년’과 ‘신춘’에 어울리는 참신한 신인을 한경 청년신춘문예의 첫 당선자로 내보내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소연의 ‘나를 기포의 방에’와 강산하의 ‘티베트 노인들의 합창’은 당선작과 마지막까지 겨뤘으나 당선의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앞의 작품은 이미지가 발랄하고 신선하지만 일부러 꾸민 것 같은 작법이 거슬렸고, 뒤의 작품은 성실한 관찰과 재미있는 모순어법이 돋보였지만 성장을 위한 습작 기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됐다.

신경림·최승호·김기택

 

 

2013 영주신춘문예 시 당선작 / 권행은

 

목련꽃 지다

 

저 집, 독거노인이 보이지 않는다

목련꽃 져 내리고
조문하듯 비가 지난다

꽃은 새의 깃털처럼 허공에 기대었을 때에도
신의 영역을 탐하지는 않았다
그 때문인지
맨 땅에 누워 듣는 하늘의 말씀이 희다

툭, 떨어질 때
공기가 잠시 출렁했을 뿐
저 꽃은 첫 번째 고백부터
쪽방 밑에 버려진 마이너리티

뒤척이는 바람이
한 계절 백발이 성성하던 꽃의 외로움을 뒤집고
풍문처럼 누르스름하게
해묵은 발자국도 잠시 석양에 문지른다

한 때 속절없이 눈부시던 봄빛에
하얗게 저항하던 그녀의 몸짓을
그 누가 아름답다고 했을까

붓을 들어 마지막 유서를 쓰듯
혼신으로 써내려간 꽃의 낙화를 안다면
어둑어둑 밤의 담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내리는
한 장 어둠이 이불인
저 독거의 노추老醜를 함부로 밟지는 못할 것이다

 

 


[시 심사평] 삶의 진정한 피투체로서의 시

 

겨울 들어 내린 대설이 다음해에 풍년이 들 것을 예고하듯, 이번 영주 신춘문예에 투고된 만만찮은 분량의 수작들을 접하면서 우리 시의 밝은 미래를 예감하게 된다. 전국 각지에서 골고루 분포된 투고자들은 이 신춘문예의 위상과 공신력을 말해주는 한편, 새삼 우리 사회에 시인 지망자들의 폭이 넓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어 마음 든든하다.


이같이 전국에서 답지한 많은 응모작들 가운데서 당선작을 가려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열을 가려야 하는 신춘문예의 성격상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의 서기 위한 탄탄한 레토릭과 공감대를 넓게 하면서 주제를 이끌어가는 힘 등에 우선 주목하였다. 하지만 기교를 위한 기교나 작위적인 면이 지나친, 이른바 공모 제도에 병폐를 노정하고 있는 작품들에는 눈길을 빼앗기지 않는 데 유의하였다.


이번에 공모된 작품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최근 공모 제도에 횡행하는 낯선 소재 선택 및 지나치게 작위적인 레토릭 구사에 치중한 시편들이 적지 않았다. 시는 무엇보다 진정한 삶에 바탕하여야 하며, 지나침이 없이 시인이 염두에 둔 주제에 걸맞는 수사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기존의 경향에 편승하기보다 더욱 삶의 진정성을 추구하면서 그에 어울리는 수사가 강구된 시편들을 찾는 데 주력하였다.


그 같은 고심의 결과 장고 끝에 손석만 씨의 「사월」과 권행은 씨의 「목련꽃 지다」가 선자들의 손에 끝까지 남게 되었다. 「사월」은 예전에는 풍성한 호수였으나 지금은 물이 말라버린 타클라마칸 사막을 둘러싼 드라마를 알레고리로 하여 우리네 삶에 내재된 삶의 삭막함과 그로부터 일탈하고픈 욕망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눈썹 깜박거리는 모반을 꿈꾸는/ 이 모래먼지는 우주의 피부다’ 등의 구절을 통하여, 모래먼지로 상지되는 무소유의 정신이 현대를 새롭게 하리라는 사유를 펼쳐 보이고 있다.


「목련꽃 지다」의 경우에는 독거노인의 삶을 둘러싼 생의 비의를 ‘목련꽃’을 환유로 하여 풀어낸 작품이다. 오늘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물질적 풍요에 역행하는 비인간화의 풍경을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가운데 선명한 이미저리와 함께 제시하고 있다. 또한 낯선 수사를 찾아내는 데 골몰하지 않고, 목련의 눈부신 개화와 쇠락을 새로운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점에 눈에 띈다. ‘꽃은 새의 깃털처럼 하공에 기대었을 때에도/ 신의 영역을 탐하지는 않았다/ 그 때문인지/ 맨땅에 누워 듣는 하늘의 말씀이 희다’는 대목에 보이듯, 비록 육신의 쇠락은 어쩔 수 없이 맞았지만 내면에 간직한 영혼은 깨끗하다는 사유가 잘 녹아 있다.


두 작품이 다 일장과 일단을 갖고 있다는 데 선자들은 동의하였다. 앞의 작품은 소재의 신선함과 잘 다져진 수사가 선뜻 눈길을 끄는 반면에, 추체험만에 바탕하여 구축한 사상의 전개와 다소 작위적인 수사가 마음에 걸렸다. 권행은 씨의 작품은 명징한 이미저리의 구사를 바탕으로 한 수사와 공감대가 넓은 주제의 구현이 강점이지만, 다소 다양하지 못한 시상의 전개와 결구의 미진함이 엿보였다. 선자들은 두 사람의 여타 투고 작품들을 함께 검토한 끝에 권성은 씨의 작품들이 고른 수준을 견지하고 있으며, 흔히 신춘문예 응모작들이 노출하기 쉬운 상투적인 골격에서 벗어나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아 그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기로 합의하였다.


결선에서 함께 논의된 몇몇 작품들도 선자들의 손에서 놓기가 아까웠다. 정순 씨의 「빈 통장 같은 오후」는 디지털 세상이 노출하고 있는 비인간화와 과소비의 문제를 실감있게 다루고 있으나 좀더 치밀한 수사의 강구가 아쉬웠다. 주대생 씨의 「태안 검은 얼굴 앞에서」는 서해 오염 문제를 소재로 삼아 시상을 전개하고 있지만, 보다 폭넓은 환기력과 적절한 수사가 요구되었다. 김창호 씨의 「감기」는 신선한 이미저리의 처리가 일품이지만 소재의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고 주제의 모호함이 지적되었다.


이상 결선에서 논의된 작품들은 당장 기성 시단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역량을 보여주어 선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분발한다면 어느 지면을 통해서든 우리 시단의 일원이 될 역량을 지닌 이들이니만큼 더욱 정진을 게을리 하지 말기 바란다. 아울러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당선자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드리며, 더욱 정진하여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시단의 일가(一家)를 이루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심사위원 : 변종태(시인), 박몽구(시인?문학평론가, 글)

 


     
 
[당선소감]
 

권행은

   
▲ 권행은씨(시 부문 당선자)
원고를 보내던 그날은 하늘 보자기가 풀린 듯 함박눈이 쏟아졌습니다. 하늘도 무언가 쏟아내고 싶은 말이 있었을까요? 조곤조곤 하늘의 하얀 말씀을 들으며 돌아오는 길이 미끄럽지만은 않았습니다. 올해 신춘은 어쩌다 보니 주요 일간지의 마감일을 놓치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동인들 덕에 마감일 전날에야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당선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번에는 눈발이 쌀밥처럼 부풀다가 한 줄 물이 되어 주루룩 흐릅니다. 모자라는 시를 선하여 빛을 보게 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손 모아 감사를 드립니다.
시를 포기하고 싶을 때 말없이 응원해준 남편과 아이들, 늘 웃음으로 격려해주던 친척들과 친구들, 시의 열정으로 한 식구가 된 아바동인들, 그리고 뒤늦게 시의 길로 인도해주신 문효치 선생님과 박남희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늘이 어두울수록 별은 더 밝게 빛납니다. 시는 저에게 길을 밝히는 별이자 빛입니다. 빛을 잃은 별 부스러기들을 주워 모아 겨울 숲의 나무들에 매답니다. 제 우듬지의 빙점을 통과하며 아름다운 눈꽃 세상을 만드는 나무들, 그 신비한 찰라 속에서 나무들의 인내를 배우며 낮은 걸음으로 시를 통하여 세상과 만나고 싶습니다.


* 권행은(본명): 1962년 전남 광양 출생
2006년 미네르바 신인상 시
* 주소 :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30-33 대림아파트 104동1403호
* 전화번호 :
* 메일주소 : upinin@hanmail.net

 

2013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쇼펜하우어 필경사

 

 

안개 낀 풍경이 나를 점령 한다

가능한 이성을 다해 착해지려한다

배수진을 친 곳에 야생 골짜기라고 쓴다

가시덤불 속에 붉은 볕이 흩어져 있다

산양이 혀를 거두어 절벽을 오른다

숨을 모은 안개가 물방울 탄환을 쏜다

적막을 디딘 새들만이 소음을 경청한다

저녁 숲이 방언을 흘려보낸다

무릎 꿇은 개가 마른 뼈를 깨물어댄다

절벽 한 쪽이 절개되고

창자 같은 도랑이 넓어진다

사마귀 날개가 짙어진다

산봉우리 몇 개가 북쪽으로 옮겨간다

초록에서 트림 냄새가 난다

밤마다 낮은 거래 되고

낮이 초록을 흥정하는 동안

멀리 안광이 흔들린다

흘레붙은 개가 신음을 흘린다

당신이 자서전에서 외출하고 있다

 

 

 

 

◆당선 소감(김지명)

 

꿈 높이 구두를 갈아 신은 아침 같았다. 불현듯 다가온 당신이 동굴 밖에 인형 하나를 그리며 소란했다. 당신의 소리 없는 노래를, 안무 없는 춤을, 감정 없는 사랑을, 동굴 속 어둠을 빌려 수없이 적었다. 당신과 내가 짝짝이 신발이란 걸 알아차린 어느 날, 당신은 떠났다.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이 호흡인 나날을 보냈다. 불안은 짐승 여럿이 사는 움막에서 동거했다. 침묵으로 수태 기간을 보내고 당신을 찾아 나선다. 당신이 날 알아볼 줄 알았다. 꿈 높이 구두로 능동의 영토에 첫 발자국을 만든다. 이제 또 다른 불안을 내 허파에 기른다.

 

모험할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멀리 볼 수 있는 안목과 죽음을 담보로 시작에 임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신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무작정 시를 좋아하던 설렘을 어깨 힘줄로 길러 준 선목문학회, 에이스동인 혜경, 정현, 성진에게 고마운 마음 전한다. 끝으로 오랫동안 후견인으로 지켜봐 준 남편과 딸에게 기나긴 고마움을 표한다.

 

◇ 약력

1960년 서울 출생

논리논술 강사

   

 

◆심사평-해마다 시 쓰기 열정 많아 향후 발전 가능성에 무게

 

예심을 통과한 열네 분의 작품들을 선자들이 숙독하고 논의했으나, 아쉽게도 올해엔 한눈에 띄는 당선작을 찾지 못했다. 전반적으로 일정한 수준의 기본기는 갖췄으나, 그 ‘너머’에 이르도록 끌고 가거나 들어 올리는 힘을 내재한 시편을 찾아내기란 꽤나 지난한 일이었다. 그러한 추동력이란 삶을 바라보는 서정적 진정성의 관점에서는 물론이려니와 언어 자체가 직조해내는 미묘한 ‘아우라’를 통해서도 발현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최종적으로 네 분의 작품들이 집중 숙고되었는데, 김지명의 ‘쇼펜하우어 필경사’, 지연식의 ‘가금의 서’, 박은선의 ‘흔적 하나’, 이도은의 ‘엄마는 외계인’이 그것들이다. ‘가금의 서’는 가장 활달한 지적 실험정신과 개성 있는 텍스트적 상상력을 보여주어 주목되었는데, 과유불급이랄까 시에 녹아들지 못한 생경한 언술이나 비유들이 흠결로 드러나 완성도라는 점에서 아쉬웠다. ‘흔적 하나’는 창문 틈에 죽은 곤충의 시체를 화자로 한 묘사적 상상력이 진정성에 닿아있어 끝까지 고려되었지만, 군더더기라 할 언술들이 많아 정련미가 부족했다. ‘엄마는 외계인’은 동화적 상상력이라 할 나름의 발성법을 갖고 있어 발전 가능성이 보였으나, 좀 더 웅숭깊은 시선과 시적 사유의 깊이와 넓이를 더해주기를 바란다.

고심 끝에 ‘당선작 없음’까지 고려되었으나, 해마다 시 쓰기의 열정을 불태운 투고자들의 고뇌와 절망을 감안하여 향후의 발전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쇼펜하우어 필경사’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쇼펜하우어 필경사’ 역시 수사적 완성도의 미흡함을 드러내고 있으나 앞으로 각고의 정진을 통해 문체를 획득하게 된다면, 오히려 이런 약점을 자신만의 시학을 구축하는 장점으로 전환시킬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하는 특유의 힘 있는 시적 언술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높이 산 것이다.

심사위원 본심: 엄원태`조용미(시인), 예심: 안상학`김이듬(시인)

 

2013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녹번동 / 이해존

 

2013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이정훈

 

쏘가리, 호랑이

 

 

나는 가끔 생각한다
범들이 강물 속에 살고 있는 거라고
범이 되고 싶었던 큰아버지는 얼룩얼룩한 가죽에 쇠촉 자국만 남아
집으로 돌아오진 못하고 병창[i] 아래 엎드려 있는 거라고
할애비는 밤마다 마당귀를 단단히 여몄다
아버지는 굴속 같은 고라댕이[ii]가 싫다고 산등강으로만 쏘다니다
생각나면 손가락만 하나씩 잘라먹고 날 뱉어냈다
우두둑, 소리에 앞 병창 귀퉁이가 와지끈 무너져 내렸고
손가락 세 개를 깨물어 먹고서야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갔다
아버지가 밟고 다니던 병창 아래서 작살을 간다
바위너덜마다 사슴 떼가 몰려나와 청태를 뜯고
멧돼지, 곰이 덜걱덜걱 나뭇등걸 파헤치는 소리
내가 작살을 움켜쥐어 물속 산맥을 타넘으면
덩굴무늬 우수리 범이 가장 연한 물살을 꼬리에 말아 따라오고
내가 들판을 걸어가면
구름무늬 조선표범이 가장 깊은 바람을 부레에 감춰 끝없이 달려가고
수염이 났었을라나 큰아버지는,
덤불에서 장과를 주워먹고 동굴 속 낙엽잠이 들 때마다
내 송곳니는 점점 날카로워지고
짐승이 피를 몸에 바를 때마다
나는 하루하루 집을 잊고 아버지를 잊었다
벼락에 부러진 거대한 사스레나무 아래
저 물 밖 인간의 나라를 파묻어 버렸을 때
별과 별 사이 가득한 이끼가 내 눈의 흰창을 지우고
등줄기 가득 가시가 돋아났다 심장이 둘로 갈려져,
아가미 양쪽에서, 퍼덕,
거,리,기,시,작,했,다
산과 산 사이
沼와 여울, 여울과 沼가 끊일 듯 끊일 듯 흘러간다
坐向 한번 틀지 않고 수 십 대를 버티는 일가붙이들
지붕과 지붕이 툭툭 불거진 저 산 줄기줄기
큰아버지가 살고 할애비가 살고
해 지는 병창 바위처마에 걸터앉으면
언제나 아버지의 없는 손가락, 나는


 

[i]'절벽'이란 뜻의 강원도 사투리
[ii] '골짜기'란 뜻의 강원도 사투리

 

 


 

 

 

당선소감


"세 번 도리질했는데… 두 아이 이름 적어놓고 또 밤길을 줄여갑니다"

세상의 하고많은 배역 중
왜 제게는 나귀 한 마리와
끝없이 걸어야 하는 길이 주어졌는지

밤마다 손바닥을 들여다봅니다
후벼서 미안하다는 듯 흐르는 이 강을
오늘은 애수라고 불러봅니다
내가 강가에 마을 하나 지어 놓으면
밤나무 두 그루와 낡은 슬레이트 지붕이 떠갑니다
뇌운 용항 도돈 판운 멀리 주천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여울 가 삐익 삑,
노루새끼 호드기 붑니다

고지를 받았을 땐 지실고개를 넘고 있었습니다
아니요, 세 번 도리질 했는데
네 번 맞다고 해서 박달재를 넘을 땐
말씀으로 수태한 처녀 같았습니다
딱!
밤톨 떨어지는 소리가 만종처럼 울려
다릿재 꼭대기 노을을 몰고 시속 팔십 킬로미터
붕붕 서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립고 고마운 이름이 왜 없겠습니까만
나경 해오니 두 아이의 이름 울금빛으로 적어놓고
또 밤길을 줄여야합니다

고형렬 선생님, 감사합니다



심사평


독특한 개성의 탄생… 신화적 상상력의 눈부신 질주 보는 듯

세 명의 심사위원이 투고작 전부를 나눠 읽고 거기서 추린 작품을 토대로 논의를 거듭한 결과 '쏘가리, 호랑이'(이정훈)를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합의했다.

'쏘가리, 호랑이'를 비롯해 이정훈의 작품은 요즘 우리 시단에서 보기 힘든 신화적 상상력의 눈부신 질주를 보여준다. 그 상상력은 강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산맥을 치달리는 호랑이로 치환시키는 마법을 가능케 한다. 우리 민족 고유의 향토적 풍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시는 마치 이 땅에 산업사회가 도래한 적이 없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언어의 구체성과 밀도를 획득하고 있다. 이 독특한 개성의 탄생을 축하하며 다만 그의 시편들에 내포된 일종의 아나크로니즘(의도적인 시대착오성)을 앞으로의 시작을 통해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모색해주길 바란다는 권고를 덧붙이고 싶다.

'단풍나무 빵집'의 손현승은 심사위원들에게 오랜 망설임의 시간을 강요한 응모자였다. 대화체를 적절히 활용한 이 시는 대상이 되는 빵-빵집-빵집 여자에 범용한 일상성을 뛰어넘는 서정적 후광을 씌워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 삶을 바라보는 따스하면서도 원숙한 시선이 인상적인 이 시는 읽다보면 고소한 빵냄새가 주변에 감도는 듯한 풍미를 선사한다. 심사위원 구성이 조금만 달랐다면 최종 결과가 다르게 나왔을지도 모를 만큼 이 작품이 주는 매혹은 상당했다.

'곰이 돌아왔다'의 장유정도 아까운 응모자였다. 투고작 전부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한 견고한 시적 형상화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미지의 조형이나 어조의 완급조절에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시적 발상이 새롭지 않다는 난점을 갖고 있었다.

이밖에 '누군가의 단검'의 김지연, '애플파이 레시피'의 고태관, '골목은 모퉁이를 돌면 막혀 있다'의 유병현, '불룩한 체류'의 이문정 등도 기억에 남는 작품을 선보인 응모자들이었다. 이들 모두에게 건필의 응원을 보낸다.

 

 

 

"난 20년차 화물차 운전사… 마흔 사춘기에 시 배워"

■ 신춘문예 시 당선 이정훈씨
열심히 살아왔지만 아버지·아내에게 치여 바지저고리가 된 느낌
"이런 꼴 보려고 사나" 세상에 부대껴 힘들 때 무언가를 쓰고 싶어져

 

2013년도 신춘문예, 최고 화제의 인물은 아마도 시 부문에 당선된 이정훈(46) 씨가 될 것 같다. 강원도 평창군에서 보낸 이 씨의 투고작은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아버지, 가족의 애증을 간결하게 표현해 일찌감치 심사위원들에게 낙점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끝낸 후 당선자 통보를 하기 위한 전화통화에서 이 씨는 "20년차 화물트레일러 운전기사"라고 자신을 소개해 자리에 있던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했다.

평창군에서 다섯 번째로 경운기를 살 정도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초중고교를 모두 서울에서도 보낸 이씨는 (서울의 한) 대학에 입학한 후, 학생운동에 매달리느라 4학기 학점 '합계'가 2.0이 안 돼 학점미달로 퇴학 처분을 받았다. 강원대에 다시 입학하여 졸업하고 선택한 직업은 화물트레일러 기사였다.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었지만 굳이 그는 그 길을 택했다.

"학교 잘리고 구치소에 갔다 오며 근골노동에 대한 선망이 생겼어요. 잘 난 세상을 잘나게 움직이려는 경향이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때(청년시절)는 학벌지상주의라든가 이런 게 싫어서 팔다리 움직여서 먹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죠."

동해 삼척과 담양 제천 영월의 공장단지에서 전국 각지 레미콘공장으로 시멘트를 옮기는 것이 그의 일이다. 수하물 중 시멘트를 주로 옮기는 이유는 '노동의 현장'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란다. "몸보다는 노동여건이 열악한 점이 힘들어요. 20년째 운임비가 똑같은데, 이제는 화물차 번호판까지 3,000만원씩 거래돼서 3년 전에 화물차 회사에서 제 번호판을 강제로 떼어갔죠. 화물차는 제 소유인데 말이죠."

그가 시를 쓰게 된 건 40대에 접어들면서라고 했다.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고 가장으로 열심히 살았지만 가슴 속은 텅 비어가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넘지 못할 산 같은 존재였고, 집안의 헤게모니는 자식세대로 넘어오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가정의 주도권마저 부인에게로 기울었다.

"마흔 무렵이었는데, 잠이 안 오고 밥도 못 먹겠더라고요. 제 발로 정신과 상담을 하러 갔어요. 고해성사하듯 두 시간 떠들고 나니까 의사가 저에게 남아있는 게 뭔지 물어보더라고요. 40대에 남은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바지저고리가 된 느낌이 심했어요."

그때 우연히 듣게 된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강좌에서 고형렬 시인을 만나게 되면서, 이 씨는 시를 쓰며 마음을 달랬다. 그렇기에 그에게 창작은 일종의 힐링이었다. "현실에서 부딪히고 상처받고 깨진 마음을 그대로 적어보려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나오는 시는 보람이었고 기쁨이었죠."

주로 일하는 틈틈이, 트레일러와 식당에서 시를 썼지만 노동현장을 직접 담은 시는 거의 쓰지 않았다. 잘못 쓰면 선전문구처럼 읽히고, 잘 써봐야 80년대 민중시 아류처럼 보여서 피하고 싶었단다.

"저는 기쁘거나 슬플 때 시를 쓰는 게 아니라, '내가 이런 꼴 보려고 사나?'할 때 뭘 쓰고 싶어져요(웃음). 세상에 부대끼면서 힘들면 힘들수록 옛날 살던 강가나 산골짜기, 나를 그렇게 예뻐해주던 할머니 할아버지 계신 골방 같은 데로 가고 싶죠. 돌아갈 집이 없으니까 집을 허공에 짓는 거예요."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으면서 4년 전부터 신춘문예와 공모전에 투고를 시작했다. 노트북에 정리된 80여 편의 시는 고향과 가족에 관한 시들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등단작 '쏘가리, 호랑이'를 비롯해 이 씨의 시에서 아버지는 호랑이로 자주 비유된다.

작은 문예잡지 공모전 최종심에서 몇 번 고배를 마셨다는 그는 3년 전 한 지인으로부터 "당선됐다"는 장난전화를 받은 후부터 당선통보를 전혀 기다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당선통보 전화통화에서도 "장난하지 말라"며 기자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이씨는 "전화 끊고 나서 30분을 울었다"면서도 여전히 등단이 실감나지 않는 듯 인터뷰 당일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앞으로 가족과 고향 말고 무엇을 더 쓸 수 있을지 고민"이라면서도 이씨에게 시 쓰기의치유효과는 탁월한 듯 보였다. 짐짓 명랑하게 과거 상처들을 고백하며 들뜬 이씨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신춘문예 수상소감, 미스코리아 수상소감처럼 써볼 게요."

2013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고로쇠 옆구리 / 김정애



뚫어야만 다스려지는 상처가 있다
뭉툭한 옆구리에 핏물을 가두고
거친 호흡으로 살아가던 나무가
잎사귀의 언어로 조용히 말을 걸어올 때
꿈의 밑동에서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세상에 저문 울음들을 끌어안고
복수腹水를 다스리는
노모의 시간


살갗 밑으로 가는 뿌리가 자라나고
산을 들어 올릴 듯 무거워진 몸으로
때론,
내 것의 체취도 조금은 빼내고 살자며 옆구리를 들춘다
콸콸콸 쏟아내는 물속에는
어머니의 깊은 한숨과 불면의 시간들이 우러나 있고
혈관을 따라 울려 퍼지는 피의 음악이 스며 있어
꿀떡 삼킬 순간을 놓치고 숲에 안겨본다
바람을 휘저으며 폭포를 향해 뻗어가던 기상과
쇳물을 다스리는 철의 여인 같던 고집이
명치 한복판을 뚫고 뼈의 무늬로 흐르고 있다
우글거리는 잎사귀를 향하여
응달을 다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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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당선작 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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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한숨과 불면의 시간을 밝혀주는 새해 첫날 같은 시 쓰고 싶어"

한 그루 나무가 제 가슴속에 부리를 묻고 있는 아침,

옆구리를 들추는 노모는 싱싱한 잎사귀를 어루만지며 가슴속에 살고 있는

바람들을 놓아 주고 몸을 바꾼다.

오래 쳐다 본 그 나무, 그늘을 베풀어 주고 답답할 때 말 걸어 주던 그 나무,

나무가 새의 몸을 빌려 울듯 노모의 몸을 통해 더욱 단단해진 뼈의 무늬를 만들면서

어둠을 다스렸고 생각이 깊어지고, 가슴에 멍이 든 이름들을 불러 보았고 이른 봄날 혼자 착해지기도 했다.

미칠 듯 기억 하나 꺼내 들고 물소리보다 먼 세월을 바라보는데 쉼 없이 어루만졌을 물의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혀있다. 물살의 굳은 흔적으로 깊은 한숨과 불면의 시간들을 밝히고 오랜 응달의 시간을 다스리는 새해 첫날 같은 시를 쓰고 싶다.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는 이웃 같은, 그래서 더욱 살가운 시를 쓰고 싶다.

생각나는 얼굴들이 많다.

빈약한 시를 올곧게 붙들어 주신 심사위원님, 방향 없이 헤매는 것들을 가능성으로 옷 입혀주신 스승님,

시 쓰기에 한 없이 게으르다 싶으면 울컥 해질 때까지 껴안아주고 함께 위로 받던 문우들,

청춘의 소리를 가슴으로 새겨듣겠다는 소리와 민철,

가까이 있으면서 먼저 좋아하고 기뻐하는 가족들이 겨울햇살처럼 환하게 다가온다.

쓰자마자 휘발되는 것 말고 뭉근히 피어나는 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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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가-김정애
▲여수출생
▲방송통신대 국문과 졸업, 여수화요문학회 회원
▲여수해양문학상 (2009년), 하동소재 문학상 (2009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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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문 당선작 심사평

김경윤 / 시인·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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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투고된 작품수는 400 여 편이 조금 넘었다.

전국 각지에서 응모한 120여 명의 예비 시인들의 작품을 읽는 일은 흥미롭고 긴장되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투고된 작품들은 아직도 시가 개인적인 고백의 양식이라고 생각하거나 낭만적인 감정의 표출 정도로 생각하는

구태의연한 시들이 많았다.

또한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한 작품들도 대체적으로 발상 자체가 보편적이거나 산문적인 경향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익숙한 사물을 낯설게 보게 하는 경험을 선사해준 좋은 시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언어적 세련미나 시적 완결성보다는 시적 치열성과 참신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시란 삶과 현실에 대한 성찰과 열정의 산물이다.

시적 치열성이 없이는 좋은 시가 나올 수 없다.

사소한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시를 발견하는 시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좋았다.

그 중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최재호의 '자두나무 변성기',

김재홍의 '빈센트 반고흐의 낡은 구두 한 켤레', 김정애의 '고로쇠 옆구리' 였다.

세 작품은 모두 시적 역량이 뛰어나고 다년 간 습작기를 거친 흔적들을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자두나무 변성기'는 꽃 피는 자두나무와 사춘기 소년를 비유한 작품으로 감성이 풍부하고

'햇살 한 무리 잉태한'이라든가 '우람한 목피 속에 바람의 숨결' 같이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세련됐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의미구조가 모호하고 주제의 응집력이 약하다는 것이 흠이었다.

그리고 '빈센트 반고흐의 낡은 구두 한 켤레'는 고흐의 그림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작품이다.

낡은 구두를 통해 삶의 애환과 삶의 무게로 인한 고통를 노래하고 있는데,

그림이 주는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보였다.

또 시상을 끌고 가는 힘이나 언어 구사력은 뛰어난데

알맞은 내용을 알맞은 분량으로 압축하는 절제의 미덕이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고로쇠 옆구리'는 고로쇠 나무를 '세상에 저문 울음을 끌어안고'

살아온 어머니의 삶에 비유한 작품으로

자신의 삶의 주변에서부터 우러나온 경험을 형상화하는 시적 능력이 뛰어났다.

평이한 시어로 삶에 대한 깊이을 들어내는 깊은 안목을 가지고 있으나

마지막 부분에서 긴장이 좀 풀린 감이 있었다.

이 세 작품을 갖고 숙고한 결과 최종적으로 김정애의 '고로쇠 옆구리'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구조의 완결성 면에서 다소 부족한 점은 있지만 함께 응모한

'섬진강을 굽다'와 '꽃잎을 번역하다'에서 보여준 뛰어난 언어감각과

사물과 삶에 대한 이면을 성찰하고 탐색하는 태도가 녹록하지 않음을 높이 평가하기로 했다.

좋은 시를 당선작으로 뽑게돼 기쁘다.

보다 치열하게 정진하여 한국문단을 빛내는 좋은 시인이 되길 바란다.

끝으로 최재호, 김재홍 두 분께도 격려를 보내며 아름다운 미래가 있기를 기원해마지 않는다.

2013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시 당선작] 양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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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당선작/ 낮잠 훔쳐보기

 


달아나려는 바쁜 오후가 아기의 손에 잡혔다
오가는 발소리 배달하는 오토바이도 옴짝달싹못한다 
허공을 말아 쥔 채 공기까지 부여잡고,
요람 속에 깊숙이 빠져든 아기가
놔줄 기미 보이지 않자 풀 죽은 오후가 잠잠하다
찬찬히 탐색하는 눈길을 아는지
아기입술에 꼬리가 생겼다 사라진다
살짝 벌어진 살구꽃잎에 나른한 웃음이 고여있다
 
이백팔십일간의 비밀을 가득 담고 깊게 잠든 손
내막이 궁금한 커다란 손이 얇고 투명한 손가락을 열면
움츠러들며 더 힘껏 말아 쥐는 아기의 손
나팔꽃처럼 오무라든 주먹이 숨겨 논
아기의 비밀을 가만가만 펴보니
저항 없이 하나씩 하나씩 열리는 아기의 손
돌돌말린 하얗고 긴 먼지가 살포시 누워있다
하얀 손수건이 조심조심 아기의 비밀을 캐내자
고스란히 따라 나오는
아기의 내력이 기록된 솜털뭉치들
천천히 한 올 한 올 닦아내면 
다시 순서대로 접히는 미모사 같은 아기 손가락
작정하고 한 번 으깨보고 싶은 큼지막한 손이 꼬옥 감싸자
깨끗하고 까만 눈이 활짝열린다 
그제야 정보가 누출된 것을 알았는지 맑게 웃는다
 
악착같이 감추지 못한 아기가
미처 찾아내지 못한 공범을 밝히려 손을 뻗자
아기에게 잡혀 들통 날까 안달 난 오후가 재빠르게 달아난다
낮잠 속에서 깨어난 아기, 몸을 늘린다

 

 

 

    시 당선소감 /  양 성 숙
“내게 시는 풀고 싶은 실타래”

무척이나 시끄러운 거리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대선홍보차량, 서울시교육감재선거 홍보차량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소리들이 짜증날 때 즈음 전화가 왔습니다.
그런데 제 이름을 확인하고 시가 당선되었다는 선명한 목소리에 순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순해졌습니다. 마음이 너그러워졌습니다. 웃음이 입을 넘쳐흘렀습니다.
제게 있어 시는 안 풀리는 실타래였습니다.
잘 풀리지 않는 실타래였기 때문에 항상 제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실타래를 풀기 위해 오늘밤도 자판위에 공손히 두 손을 올려놓을 것 같습니다.
이 기쁨을 알리기 위해 당선 소식 듣고 제일 먼저 전화 드렸더니 젊잖게 큰소리로 축하해주신 김기택 선생님과 항상 얄미운 자극을 주신 이명우님, 그리고 시마패 문우님들, 마경덕 선생님, 숲동인님들과 옆에서 열심히 응원해준 제가 사랑하고 저를 사랑해주는 가족들과 이 즐겁고 행복한 기쁨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더 열심히 실타래를 풀어보라고 등을 토닥거려주시고, 맘껏 제 실력을 펼쳐보라고 넓고 푸른 초원을 제게 주신 동양일보와 정연덕 심사위원님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양성숙
  
●1968년 서울 출생
●MERIX 학원 원장
●시마패·숲 동인회 회원
●서울시 동작구

 


시 부문 심사평


따뜻한 숨결로 생명을 노래
심사위원에게 넘겨준 작품은 75명의 작품 403편이었다. 예년에 비하여 높은 수준’의 작품들이 많았다. 산문적 기법을 도입하여 시의 진술방법을 확장하려는 산문시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또한 고등학생들의 응모작품도 늘어나고 그 수준도 많이 향상되고 있음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응모작 중에는 깔끔한 소품 같은 작품도 눈에 띄었지만 하이퍼 시(?)를 빙자한 난잡한 시들이 차츰 늘어나고 있다.
선자의 손에 마지막까지 남아 우열을 겨루었던 작품을 보면 이명선의 ‘정류장을 떠나오다’와 양성숙의 ‘낮잠 훔쳐보기’ 그리고 이현정의 ‘손바닥 유전’이란 작품이었다.
이명선의 ‘정류장을 떠나오다’는 발랄한 감수성이 돋보이고 있으나 표피적인 일상을 뛰어넘지 못한 작품이었고, 이현정의 ‘손바닥 유전’과 ‘뉴킨’ 그리고 ‘자국의 내력’의 작품들 모두가 발상이 디지털시대의 시로 하이퍼성 작품으로 분류되지만 낯설게 하기와 건너뛰기가 아닌 해석에 치우치고 있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양성숙의 ‘낮잠 훔쳐보기’란 작품은 정감과 생기가 있는 시어를 찾아내는 솜씨가 돋보인다. 모성과 아기의 호흡이 하나로 활기를 찾고 있는데 침착한 관찰과 욕심 없는 묘사가 읽는 사람에게 큰 부담을 주기 않고 생명의 신비와 존엄성을 느끼게 한다. 기교 없이 긴장을 끌고 나가는 솜씨가 돋보이고 있다. 또한 표피적인 상황 전개, 과대한 묘사나 상투적인 어휘에  매달리지 않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당선작으로 내놓는다.
앞으로 절제된 자기 목소리 내기, 관념의 탈출을 통한 사물시 쓰기에 더욱 정진해 주기를 바란다. 응모자 여러분들에게 격려를, 당선자에게 축하를 드린다.


■심사위원 : 정연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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