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6월 7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프랑스 파리로 향하던 에어프랑스 비행기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에 의해서 납치 당했다.
당시 비행기에는 248명의 승객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테러리스트들은 항로를 변경해 아프리카 우간다로 비행기의 방향을 틀었고, 우간다에 있는 엔테베 공항에 비행기를 착륙 시켰다.
당시 우간다는 이디아민 독재 체제였기 때문에 테러리스트들은 우간다 정부와 사전 협의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테러리스트들은 인질을 풀어주는 대가로 당시 이스라엘에 억류 중이던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40명과 전세계 각국에 흩어진 테러리스트 13명을 석방해줄 것을 요구했다.
인질 억류 이틀 째인 6월 9일, 테러리스트들은 비이스라엘 인질 148명을 석방하는데, 이는 이스라엘 정부에게 테러의 목적을 명확하게 알리기 위한 포석이었다. 결국 엔테베 공항에는 이스라엘 국적 탑승객 94명과 에어프랑스 승무원 12명만 남겨지게 된다.
물론, 당연한 일이겠지만,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을 석방하라는 하이재커들의 요구를 이스라엘 정부는 가볍게 묵살했다. "테러리스트와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킨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 최정예부대인 사이렛 마트칼(Sayeret Matkal)이 해당 인질들을 구출하는 작전을 담당하게 된다. 작전의 이름은 Operation Entebbe, 한국에서는 <엔테베 구출작전>이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 대테러 인질구출팀의 총책임자는 조나단 네타냐후 (Jonathan Netanyahu). 현직 이스라엘 총리인 벤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가 조나단 네타냐후의 친동생이다.
이들의 아버지는 벤시온 네타냐후(Benzion Netanyahu)라는 유대인 역사학자. 코넬대학교에서 역사학 명예교수로 일을 할 만큼 명망있는 학자였고, 근현대 이스라엘을 사실상 일으키다시피 한, Netanyahu 가문의 주춧돌을 놓았던 인물이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Netanyahu 가문에 대해서 글을 한번 쓰고 싶다).
테러리스트들에게 억류 된 자국민을 구출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군(IDF)는 가용한 모든 자원을 동원한다. C-130 6대에 특수부대, 구출팀, 의무팀, 정보팀, 통신팀 등을 나눠 태운 후, 이디아민이 평소 타는 벤츠 모델을 그대로 본딴 차량을 만들어서 대원들이 공항 검문검색을 통과할 수 있게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렇게 해서 결국 이스라엘 특수부대는 엔테베 공항 내부까지 진입할 수 있었고, 대부분의 인질들을 무사히 구출해낼 수 있었다.
당시 억류 되었던 106명의 인질 중 단 3명의 사망자만 발생했던 기적과 같은 작전이었다. 106명 중 103명을 구출해 낸 엔테베 작전은 훗날 모든 대테러 작전에게 있어 성공적인 교과서와 같은 지표를 제시하게 된다.
어떻게 이런 작전이 가능했는지에 대해 약간의 의문이 들 수 있다. 무장한 테러리스트들로부터 인질을 무사히 구출해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바로 '언어'에 있었다.
이스라엘 특수부대는 엔테베 공항 내부에 들어가자 마자 '히브리말'로 "엎드려"를 크게 외쳤고, 이를 알아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즉각 땅바닥에 엎드렸던 것이다.
그 순간 이스라엘 특수부대는 전방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엎드려"라는 히브리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테러리스트들은 멀뚱멀뚱 앞을 쳐다보고 있다가 전멸을 당하게 된 것이고 -- 정말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이와 같은 '전설적인' 작전의 뒷면에도 그림자는 있었으니, 바로 엔테베 작전의 총 책임자였던 네타냐후 소령이 테러리스트의 총에 맞아 숨지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네타냐후 소령은 작전에 투입 되었던 이스라엘 특수부대원 가운데 발생했던 유일한 사망자였다.
훗날 조나단 네타냐후의 사망에 대해 당시 함께 작전에 참여했던 부대원은 다음과 같이 회고를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He always went first, and he died first."
항상 부대의 최전선에서 팀을 리드하였던 그 모습 그대로, 가장 먼저 명예롭게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엔테베 작전을 처음 접한 이후 조나단 네타냐후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그의 삶에 대해 좀 더 조사를 해보았다. 그리고 그는 나의 영웅이 되었다. 이 인물이 그려낸 삶의 궤적이 너무도 장엄하고 또 눈부시게 아름답기 때문이다.
조나단은 뉴욕에서 태어난 유대계 미국인으로서 이스라엘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후 하버드에 입학해서 그곳에서 철학과 물리학을 공부한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던 조나단 네타냐후는 하버드에서 아내와 함께 공부를 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미모의 아내, 지적 욕구에 대한 충족, 하버드라는 곳에서 공부를 한다는 긍지, 유대인으로서의 자부심 등등, 아마 네타냐후의 보스턴 생활은 문자 그대로 그이상 더 행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지구 반대편에서 이제 막 국가로서 생명을 부여 받았던 이스라엘은 주변 적성 아랍국들과 많은 전쟁을 치뤄야 했다. 6일전쟁(Six-Day War), 소모전 (War of Attrition), 욤키푸르 전쟁(Yom Kippur War) 등등.
자신의 조국이 곤경에 처한 것을 목격한 네타냐후는 결국 하버드에서 공부를 그만두고 이스라엘 군대 (IDF)에 입대를 결정하게 된다.
그리고 사이렛 마트칼에서 복무를 하다가 엔테베 작전을 현장에서 총괄하는 책임자로 착출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영예로운 죽음을 맞이했다.
네타냐후의 애국과 헌신은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하버드에서 보냈던 "완벽에 가까웠던" 생활을 포기하고 이스라엘 군으로 입대를 하도록 만들었을까?
국가란 무엇인가?
왜 어떤 이들은 자신의 삶을 희생해 가며 위대한 희생을 감수하는가?
등등의 질문이 상념처럼 남아 머릿속을 맴도는 것이다.
만약 조나단 네타냐후가 미국에 남아 공부를 끝마치고 평범한 엘리트 생활을 지속했다면, 오늘날 이스라엘의 방향은 지금과 상당히 다른 궤도를 형성했을 것이라고 본다.
현직 이스라엘 총리인 벤자민 네타냐후는 조나단 네타냐후가 작전 중 사망할 당시 MIT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그는 훗날 "형의 죽음이 나의 삶의 모든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고 회고한 바 있다. 원래 MIT를 졸업하고 사업가의 길을 걸으려고 했던 벤자민 네타냐후는 조나단의 죽음으로 인해 정치인의 사명에 눈을 뜨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 이스라엘 역사를 실질적으로 바꾸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조나단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의 영웅이다.
당시 국방부장관이었던 시몬 페레즈는 -- 훗날 이스라엘의 총리가 되었다 -- 장례식 조사에서 조나단 네타냐후의 죽음에 대해
"우리는 이스라엘의 가장 뛰어난 아들 중 한 명을 잃었다 (one of Israel's finest sons)"고 말했다.
지금도 중동 각국에 둘러싸인 이스라엘이 국가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희생적인 국민들(특별히 엘리트층 사람들)의 헌신과 노력, 그리고 충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실제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에 전쟁이 발생했을 때, 텔아비브와 카이로에 있는 공항은 각각 다른 이유로 마비가 되었다고 한다.
텔아비브에 있는 공항은 전세계 각국에서 이스라엘 군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몰려온 청년들로 인해 마비가 되었던 반면, 카이로에 있는 공항은 빠른 시일 내에 나라를 버리고 타국으로 도망가려고 하는 엘리트층이 몰려왔기 때문에 마비가 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 태도적 차이로부터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의 전쟁의 승패는 이미 싸우기 전 결정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국가가 몰락할 때 가장 먼저 붕괴되는 것은 물리적 인프라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나라가 망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빨리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나는 것이 상책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리고 "침몰하는 배에서 빨리 뛰어 내리는 것이 살 길이야"라며, 오히려 한국을 위해 노력 하는 것 자체를 경멸하며 폄하하는 이들도 왕왕 눈에 띈다.
뭐, 사실 나도 요즘 정치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 정부나 야당이나 여당이나 -- 이 나라는 언제 한 번 망해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한국 상황에 대해 환멸을 느껴 이민을 생각하는 분들을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모든 것은 개인의 선택에 맡겨진 몫이지 않은가.
하지만 조나단 네타냐후를 생각하면서, 그리고 조국의 미래를 위해 창창한 청춘을 희생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무엇이 나아갈 길이며, 어떤 것이 끝까지 지킬만한 가치인지를 다시 고민해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때때로는 포기와 각자도생이 가장 현명한 방법론일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은 해보고 "포기"를 논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친다.
아직 포기를 말하기엔 이르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무엇보다, 한 국가를 지탱하는 '정신'이란 무엇인지, 곰곰이 곱씹어보게 된다.
펌
첫댓글 며칠전에 단체톡방에서 이글 받았습니다.
그에 대한 제 답글은
흠, 나에게 국가란 무엇 인가?
곱씹어 봐야 겠네요.
누구에게 하라 가 아닌
내가 먼저 도 생각 납니다.
였습니다.
과연 나는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수 있나?
무엇을 하고 있나?
하고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봅니다.
일베님, 감사합니다.
맞아요 초돌
몇일전 단톡방 글
기다렸어요
누군가 올리겠지?
기다려도 안올라와서
몇일 갈무리 한 감정을 가지고 올렸어요.
나라 잃어본 조선인들의 우매함과 오버랩되더이다
슬프네요.
불과 몇십년전만해도 나라경제를위해 본인이손해 보더라도 전세계를 누비든 대한민국이었는데
불과 얼마되지도 않아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교육이 얼마나 주요한지 반성합니다.
가정교육, 공교육.
이승만 ,박정희 지우기에 방관한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지난 2천년동안 나라없이 세계각국을 떠돌면서 갖은 푸대접과 심지어는
집단학살(홀로코스트)까지 당한 이스라엘은 국가의 소중함을 피부로 느끼는
민족이에요.1948년 팔레스타인 땅에서 독립을 한 이스라엘은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전사이면서 군인이에요.이들은 일찌기 모사드란 정보기관을 반들어놓고
유대인 학살에 관계된 자들을 끝까지 추적해서 나이의 고하를 불문하고 처벌했어요.
아히히만같은 자도 걸려들었지요.
지금 대한민국을 일시 점령하고있는 문가 반역일당들을 모른체 묵인하는 국민들이
많다는 것은 참으로 문제입니다.
눈앞의 조그만 사탕하나 얻는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국민은 망국의 원흉이에요
정보기관은 어떤 권력자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해서는 안되는 기관인데 뭉가는 지 마음 내키는데로 국정원과 기무사를 짓밟는 이런 짓을 하고 있어요
모사드가 존경스런 이유 입니다.
가슴 뭉클한 감동이 밀려옵니다...
국가란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