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나무 아래서 재채기 참기 [이은규]
어떤 열매 속에는 하얀
재채기가 살고 있다
함께 국경을 넘기에는 명분이 필요했는데
엉뚱하게도 향신료 여행
그곳의 후추나무 열매는 언제나 풍년, 매해 하늘에서
내려온 열매가 무럭무럭 자라나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코끝을 간질이곤 한다는데
농장주는 친절했지 후추나무는 반그늘에서 잘 자라요
꽃은 의외롭게도 흰빛, 잎은 어긋나게 올라와요 늦봄에서
초여름 열매 맺어요 후추 열매 껍질은 달고 씨는 매워요
아 그렇군요 반그늘이라는 말이 너무 좋아, 투명하게
웃었었나 우리들 웃음소리에 후추 열매 한 알이 땅 위로
떨어졌었나 그렇다면 우연일 뿐
햇살 아래 한 사람의 검은 눈동자가
여전히 빛나고 있을 것만 같다
후추나무 아래서 재채기를 참는 일은
시차를 거스르는 일과 같고
한쪽으로만 기울어지는 마음은 이미 고장 난 것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고백이라니
사진 속 미풍이 이곳까지 불어온다
한 사람의 이름을 발음할 때마다
이제 명분은 처음부터 없었던 대의를 잃었고
펼쳐지기를 기다리는 일기장 속에 숨어 있어
하얀 밤의 국경을 넘을 때마다 무언가 쉴 새 없이 줍는
꿈을 꾸곤 해 땅에 떨어진 후추 열매 한 알까지 다 주울 거
야 기억 알갱이를 모을 거야, 그럴수록 흩어지는
시차에 눈이 멀어
아름다운 비문을 나누던 우리가 있었다
눈 내리는 겨울에 후추나무 열매가 열린다면 어떨까 후
추, 후추 추임새를 넣으며 어긋난 시간들에 미친 박수를
보낼 거야 재채기를 하다 코가 사라져도 멈추지 않을 거야
국경을 함께 넘다 흩어져도 좋을 텐데
단호하게 빻아지는 후추 열매처럼 기꺼이
- 무해한 복숭아, 아침달, 2023
* 만약 동남아시아와 인도에서 후추가 나지 않았다면
유럽사람들은 소고기를 맛없게 먹었을지도 모른다.
기껏해야 소금간을 해서 비릿한 고기를 질겅질겅 씹었을 것이다.
아라비아 상인들이 국경을 넘어 인도까지 와서 후추를 사다 비싼 값에 팔지도 못했을 게다.
아마도 후추가 없었다면 소를 키워 우유나 먹었을 것이고
고기가 맛없어 키우질 않아 소가 배출하는 메탄가스가 줄어들고
온난화도 더 빨리 오지 않았을 것이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은 다름아닌 후추?
참 억울하겠지만 후추가 사라지거나 느끼해지거나 해서 누린내 나는 고기만 있었으면 좋겠다.
단호하게 빻아지는 것도 억울한데 더 억울해지면 그것도 좀 그렇긴 하다.
첫댓글 줘페님^^ 저도 요리에 젤로 좋아하는 향신료, 조미료가 후추라요 ㅎ
어디에나 다 잘 어울리는 향신료지요.^^*
추어탕에는 꼭 들어 가야 하는 줄 압니다
여기 저기 보아두고 산행 길에 눈 여겨 보아두었던 기억만 남았습니다
.
후추 나무와 열매
시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
추어탕에 꼭 넣어 드시는군요.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