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쌀이다>
밥을 하면
자르르 윤기 도는 맛있는 햅쌀이
택배로 왔다.
그때부터 밥솥에서 밀려나
구석 쌀자루에 담긴 채
도통 말이 없던 묵은쌀
어느 날 슬그머니 집을 나가더니
떡이 되어 돌아왔다.
<노루 꼬리만큼>
1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긴
동짓날이 지나면
낮이 조금씩 길어진대.
그게 얼마만큼이냐고
물어봤더니
노루 꼬리만큼이래.
그게 몇 센티미터 정도냐고 안 물어봐도
느낌이 왔어.
그냥
아주 짧은 거야.
<마카메롱>
아침에 괜히 기분이 안 좋았어.
하지만 길을 나서야 했어.
호랑이 수학 학원을 지날 때만 해도
그저 그랬어.
초콜릿 미술 학원에 들러
미소 짓는 치과를 지나
다정한 약국에서부터는
기분이 조금씩 풀리더라.
다시 힘찬 태권도 앞을 지나
까치네 김밥에 갔을 때는 기분이 괜찮아졌어.
설레는 미용실에 도착했을 때는
남은 하루가 은근히 기대되기까지 했어.
큰길 끝에 과자 가게가 새로 생겼는데
이름이 글쎄 마카메롱이야.
빵! 빠앙! 웃음이 터졌어.
동네를 다 돌았을 때쯤엔 아주 즐거워졌어.
03번 마을버스인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내 친구 마을버스들도 다 빵! 웃으면서 돌아왔어.
마카메롱 하면서 말이야.
그럼 여러분, 오늘은 이만 안녕.
마카 메롱!
<가볍게>
한 달 전에 그 많던 화분이
점점 줄어들더니
이번엔 가구도 옷들도 줄어들었다.
왜 자꾸 물건이
줄어드냐고 물었더니
가진 것이 조금밖에 없으면
나중에 하늘나라 갈 때
가볍게 날아갈 것 같아서지.
할머니는 내 얼굴을 두 눈에
가득 채우면서 대답했다.
임복순 동시집 [김단오 씨, 날다] / 창비 / 2024
카페 게시글
사랑채
임복순 동시집 [김단오 씨, 날다] 중에서 몇 편.
빨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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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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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마카 메롱~~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