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912호
당신을 잃고 만항재에 올랐네
박제영
당신을 잃고
천삼백삼십 날 꼬박
지독한 열병을 앓았지
정선에 와서 알았지
아라리를 앓았다는 것을
당신을 잃고
해발 1,330미터 만항재에 올랐네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만 개의 아라리를 적어
만 개의 풍등을 띄워 보낸 항구라지
만 개의 이별이 피워낸 아라리라지
열꽃들 만개한 만항재에 올랐네
당신을 천삼백삼십 번 잃겠네
그때마다 아라리를 앓겠지만
그때마다 만항재에 오르겠네
천삼백삼십 개의 풍등을 띄워 보낸다면
마침내 당신에게 닿을지 모르겠네
- 천년 후에 나올 시집 『말하자면 텅 빈 우리, 우리라는 모순』
***
나흘을 꼬박 죽을 듯이 앓았습니다. 오늘 아침 겨우 몸을 추스려 사무실에 나왔네요. 의사는 코로나와 독감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는 처방전을 보여주었지만, 아닙니다. 내 몸에 지독한 아라리가 들어섰던 겁니다. 아라리를 앓았던 겁니다.
의사들이 몸살이라고 코로나라고 독감이라고 처방하는데 실은 몰라서 하는 얘깁니다.
나는 아라리가 났을 뿐이라고, 그러니까 몸에 오한이 나고 발열이 나는 증상은, 내 몸이 당신의 살을 토해내는 것, 그러니까 아라리란, 병의 증상이 아니라 사랑의 징후이거나 실연의 예후인 것, 그러니까 꽃들도 피고 질 때 아라리를 앓는 거다, 라고 설명을 해주었더니 의사는 영 못 알아듣는 표정이더군요.
이게 다 이번에 전윤호 형의 장편서사시 『정선 뗏목 아리랑』 편집 후유증일 겁니다. 그놈의 감재와 은희의 질곡진 아라리를 쫓다가 생긴 후유증일 겁니다.
여전히 머리가 아프고, 오한이 나고, 열도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이 또한 지나갈 겁니다.
그렇다해도 오늘은 오전 근무만 하고 퇴근해야 할 듯합니다.
내가 자꾸 아라라 아라리 어쩌구 저쩌구 하니까, 의사 선생이 객소리 그만하고, 약 먹고 푹 쉬라고 하네요.
이럴 땐 의사 말을 듣는 게 맞을 겁니다.^^
2023. 11. 20.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