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여러분, 잘 들어가셨는지요!
모처럼 일찍 도착하게되어 일부(14-5명) 시간되는 회원님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겸하는 가벼운 회식겸 뒷풀이를 갖고 8시에 헤어졌습니다.
함께하지 못한 다른 회원님들도 다른 기회엔 참여해보시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
특히 어제의 감자옹심이는 공장생산품이 아닌 듯 매우 질감이 좋아서
우리들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았었지요!^^
내포지방 중에 홍성을 중심으로 둘러보고 태안과 서산은 잠시 들르는 기분으로 다녀왔습니다.
먼저 김좌진생가를 갔었는데 우리의 도착시간이 일찍이기도 했지만
개관시간이 무려 오전 10시라고 안내되어 있고, 철문도 잠겨있어 하는 수 없이 담장너머로
들여다보기만 하고 발길을 한용운생가로 돌렸습니다.
이 사진을 분명 13년 11월 29일 금요일 08시 30분에 찍었기 때문에 정말 황당하고 난감한 상황이었지요.^^
나중에 한용운생가 해설사분과 통화해보니
김좌진생가도 해설이 10시부터이고 개관은 9시부터일거라고 하더군요.
이번 기회에 홍성군 당국에 당부드리고 싶은 말은
양 기념관은 지금대로 9시부터 개관하시더라도,
생가는 근래에 복원된 곳이고, 도난우려가 있는 중요유물이 없다면(한용운생가 처럼)
굳이 생가까지 들어가지 못하게 외부담장의 철문을 잠궈버리는 철통경계는
과잉행정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하여 우린 한용운생가로 갔습니다.
오랜만에 생가에 걸린 님의침묵 시를 회원들과 함께 낭독했습니다.
마치 독립선언서를 읽던 그들의 심정을 연상하며
매우 비장한 어조로 말이죠.^^
기념관을 둘러보고 광천읍에 있는 새우젓토굴로 갔습니다.
이 길로 가서 왼편으로 돌아들면 우측에 굴이 몇 개 있습니다.
멀리서 올려다보니 마을의 가장 꼭대기에 심상尋常하지 않은 건물이 한 채 보였습니다.
색깔있는 깃발들이 장대에 매어져 있는 걸로 보아 당집 같아서 급히 뛰어 올라갔습니다.
5칸 짜리 좌우로 긴 신당이었습니다.
당집에 올라보니 그제서야 다리있는 쪽으로 예전엔 바닷물이 들어왔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같은 당집의 역할은 널리 아시다시피 바다를 생업으로 살아가는 주민들에게는 수호신장을 모시고
그들의 가피력을 믿고 기대며 주민들의 생명과 마을의 안녕을 보호해달라는 염원을 바라며 정성을 다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다에 기대사는 곳에는 대부분 마을동제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는,
부처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마을의 수호신장이었던 것입니다.
홍주읍성에 도착해보니 이곳의 대표인물인 성삼문 상이 맨처음 우릴 맞아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손곡蓀谷 이달李達의 한시가 새겨진 시비를 만나 그의 시세계에 잠시 빠져들었습니다.
이달은 1539년(중종 34)∼1612년(광해군 4). 조선 중기의 시인으로
본관은
신평(新平: 충청남도 당진). 자는
익지(益之), 호는
손곡(蓀谷)·
서담(西潭)·
동리(東里)였고.
원주 손곡에 묻혀 살았기에 호를 손곡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제자 제자 허균許筠이 그의 전기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을 지으면서
“손곡산인 이달의 자는 익지이니, 쌍매당 이첨李詹의 후손이다.”라고 밝혔지만,
서얼출신이어서 더 이상의 가계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 시비에 새겨진 시가 매우 좋아 우린 돌아오는 버스속에서도 다시한번
떠올리며 함께 암송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답사 미참여회원들께도 알리고 싶어 다시 올립니다.
田家少婦無夜食。촌가의 젊은 아낙이 저녁거리가 없어
雨中刈麥林中歸。빗속에 보리베어 숲으로 돌아오네.
生薪帶濕烟不起。생나무가 젖어있어 연기도 나지 않는데
入門兒子啼牽衣。문에 들어선 어린아이는 울면서 옷깃을 잡아 당기네.
강샘께서 홀로 옛 군역軍役을 떠올리려는 듯 성을 올라가셨습니다.
그러자 너도나도 성벽을 올랐습니다.
안 올랐으면 못 보았을 경관에 모두들 즐거워하십니다.
이날 내내 옅은 눈발이 날려서 한편으론 태안의 백화산 오를 일이 걱정이었지만
그리 많지 않은 눈이라 큰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또 한 분과
또 한 분의 단독행동이 저의 카메라를 피하지 못하셨습니다.^^
읍성의 동문인 조양문 맞은편 kt지사 앞에는 지금 남아있는 동헌(안회당)이 아닌 또 다른 동헌(경사당)이 있던 자리라고 하는데
이곳에서 천주교 신자들의 문초와 형벌이 있었던 곳이어서 이를 알리는 안내문구가 있었습니다.
지금 남아있는 동헌인 안회당입니다.
여하정에 커플룩을 하신 두 분이 거닐고 계셔서...
회원들을 모두 놀라게 한 장면입니다.
누군가 "소나무에 원숭이 한 마리가 앉아있다."고 해서...
읍내에서 명인의 손길로 빚어 낸 맛깔난 음식을 먹고
우린 태안의 백화산을 올랐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태안엔 햇살이 짙어 백화산을 무리없이 올랐었죠.
여기에선 이날 사이즈를 재느라 이 한 컷만 찍었네요.
태안을 빠져나와 서산에 있는 보원사지를 갔습니다.
우선 당간지주를 뒤로하고 절 정면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직도 약한 눈발이 있는 줄 모르고 플래시를 터뜨렸더니 블링블링한 효과가 더해졌습니다!^^
절 중앙을 관통하며 흐르는 냇물을 건너갑니다.
피안을 향하여...
정작 절터에 도착해보니 아직도 복원작업이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다리를 건너 이 계단을 올라 석탑을 돌아들어 금당을 갔을 텐데
층계 윗단의 좌측 소매돌 끝 상단에 꽂혀 있었던 기둥돌만 홀로 쓸쓸히 서 있었습니다.
다시 보아도 웃음을 자아내게하는 거북이였지요.~~
우린 김좌진장군 덕에 고대 삼국기를 통틀어 가장 정점에 서있는
백제의 마애불인 용현리마애불을 다시 만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앞을 덮고 있던 전각을 걷어냈다는 회원님의 얘기를 듣고 모두 다시 뵙기로 했습니다.
십여 차례를 본 사람이나 처음 본 사람이나 할 것 없이 말이죠.
이렇게 환히 본 모습을 찾으셨네요!
그간 얼마나 답답하셨을까를 생각하니 참으로 죄송스런 마음이 앞섰습니다.
새하얗게 빛나는 듯 했습니다.
약속대로 이 분들의 미소를 감상하시겠습니다.
경북 군위의 삼존불을 필두로 해서 이후 통일기의 불상들은 모두 이런 인간적인 미소가 사라졌습니다.
마치 삼국통일을 이뤄낸 힘을 권위로 표현하려는 듯이 말이죠.
그러나 그 이전의 삼국기에는 저마다의 불상들이 모두 이런 가녀린 미소를 갖고 있었습니다.
본존의 살인적인 미소입니다.
그 앞에 선 누구도 쓰러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다른 쪽에서도 만나 보시죠!
여래 우측의 제화갈라보살입상의 미소입니다.
여래 좌측의 미륵보살반가사유상입니다.
정신 차리고 속계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그 이전의 모습을 못보신 분들을 위해 예전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저 숲속 바위 오른쪽 아래로 전각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랬었구요...
이런 환경에서도 미소를 찾으려 애썼던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회원님들 모두 쌀쌀한 날씨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러나 집에 있지 않고 움직인 덕을 훗날 반드시 보시게 되지 않을까요?
이제 우수도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건강관리 잘 하시고 3월 30일에
남도매화답사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ㅎㅎㅎ 2월답사는 첨이었습니다
암굴 ~~ 사람의 힘으로 못할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늘 도전은 아름답다고했지만 맛을 위한 도전 또한 아름답군요~~'
눈발이 날리는 2월은 참 매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리하여 꽃이 피고 봄이 오겠져
다시 한번 개화의 3월을 기다리며 ~~~~~~~~~~~~~~~~~ 감사합니다
두 분 마애불을 보면서 행복했습니다. 다시 한 번 서해얀 지역 백제 불교를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