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半島)가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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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과의 월드컵 8강전에서 한국팀의 주장 홍명보 선수가 승부차기를 성공시켜 4강행을 확정짓는 순간 4천7백만 국민은 일제히 바닥을 차고 오르며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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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겼다." "와-, 4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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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응원장에서,가정에서,직장에서 국민은 기쁨을 참을 수 없어 펄쩍펄쩍 뛰었다.악을 쓰며 웃기도 하고 엉엉 울기도 했다. 2002년 6월 22일 오후 6시7분 우리 국민은 잠시 제정신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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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거리는 또 한번 밤새 함성과 경적소리, 축포와 태극기 물결로 뒤덮인 축제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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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외치는 "대~한민국"구호는 어느 순간 "세~계최강"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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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광화문 160만명=광화문 80만명.시청앞 80만명 등 사상 최대인파인 2백30만명이 몰린 서울 거리는 이운재의 선방에 이어 홍명보의 마지막 슈팅에 골그물이 철렁이는 순간 도시가 떠나갈 듯한 함성과 붉은 물결로 뒤엉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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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신 전체를 태극무늬로 물감칠한 채 응원을 한 김영근(21.대학생)씨는 두시간 넘게 피를 말린 경기가 끝나고 시청앞 대형 전광판에 '한국 4강 진출'이란 문구가 새겨지는 순간 "드디어 해냈다"며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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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길거리 응원 열기를 직접 체험하러 광화문을 찾았다는 일본인 관광객 유키코 야스히로(29)는 "TV에서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대단할 줄은 정말 몰랐다. 정말 통쾌하다"며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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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2백95곳 길거리 응원장에는 전국민의 10%가 넘는 5백만명이 몰렸고, 가정이나 직장에서 TV로 경기를 지켜본 시민들도 대부분 붉은 악마 셔츠를 입어 전국이 붉은색 일색이었다. 학교들은 대부분 오전 두시간만 수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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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속이나 군부대에도 열기는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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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찾은 등산객들은 지리산 관리사무소가 5개 대피소에 설치한 TV를 보며 산중 응원전을 펼쳤고,육군 37사단 신병교육대 훈련병 1천여명은 부대 내 교육관에서 TV로 축구응원을 하며 훈련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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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서울시청 광장 앞 프라자호텔에서 이날 오후 5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던 윤모(34)씨 커플은 경기가 승부차기까지 이어지고 하객들이 축구경기에 몰두하자 오후 6시 이후로 혼례를 늦추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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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팀의 승리와 함께 시청 앞 서울센터빌딩에 걸린 가로 20m×세로 30m의 대형 걸개그림이 전광판 뒤에서 터뜨린 폭죽 때문에 불이 옮겨붙는 소동도 있었으나 대기 중이던 소방대원 20여명과 소방차의 진화로 10여분 만에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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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이 밤새 해방구로=도심 곳곳은 밤새 해방구를 방불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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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서울 강남역 네거리와 신촌.종로 등지는 몰려나온 수십만명의 인파로 밤 늦게까지 북새통을 이뤘다.강남대로의 경우 오후 8시부터 붉은 옷을 입은 젊은이 20만명이 도로를 완전 점거한 채 폭죽을 터뜨리거나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춤을 추는 등 축제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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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쏟아져 나온 인파는 식당이나 술집을 찾아 축하 건배를 들었다.종로 거리의 호프집과 식당에는 시청앞 광장과 광화문에서 한국팀의 승리를 외치고 몰려온 사람들로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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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학로와 신촌로터리, 부산 해운대 등 단골 응원장소 주변 술집과 식당들도 발디딜 틈 없이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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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실신사태=무더위로 탈진하거나 극적인 승리에 실신하는 환자도 속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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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과 광화문 일대에서는 1백10여명의 응원시민들이 실신하거나 탈진증세 등을 보여 부근에 대기하던 구급차에서 응급처치를 받거나 인근병원으로 후송됐다.제주시 탑동광장에서 응원하던 金모(21.여)씨도 한국팀의 승리가 확정되자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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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렁했던 도로.공항=도심 도로와 고속도로,공항 등은 가장 붐비는 평소 토요일과는 대조적으로 한산했다.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은 특히 오후 들면서 텅 비다시피 했고, 인천공항은 여행객들이 평소 주말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