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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녹취 하늘녹취사무소 원문보기 글쓴이: ygtj913
개척자(여호수아 1장 1-4절) -김민철 목사님-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고자 했던 땅은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주인이 없는 빈 땅이 아니었어요. 이미 수많은 가나안의 원주민들이 살고 있던 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물로 주실 때 완성품으로 주지 않으셨습니다. 완성품으로 주지 않으셨다는 말은 바로 입주 가능한 상태로 주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기 위해서는 먼저 전쟁을 통해서 가나안 거민들을 다 몰아내야 했습니다. 영적으로 그곳을 깨끗하게 청소한 후에 자리를 잡고 살아야 했어요. 우리는 그 과정을 개척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가나안 정복이 시작되는 여호수아서를 보면 그 개척에 관한 명령들을 쉽게 찾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 말씀이 나오는데요.
오늘 본문 1절 말씀 보시면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모세 다음 리더인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가나안 땅을 말합니다. 3절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아멘.
하나님이 어떤 땅을 줬다고요? 발바닥으로 밟는 땅을 주셨다는 거예요. 그리고 앞으로도 발바닥으로 밟는 땅을 주시겠다고 뒤에 약속하십니다. 그래서 4절에 보면 곧 광야로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주시는데 분명한 조건이 있습니다. 방금 설명을 드렸죠. 발바닥으로 밟는 곳만 주신대요. 이 말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직접 들어가서 전쟁을 하고 개간한 땅을 주시겠다는 말입니다. 음식으로 말하자면 재료를 주지 완성된 요리로는 주지 않겠다는 거예요. 왜 그러셨을까요? 하나님의 능력이라면 가나안 거민들을 한 순간에 싹 쓸어버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입주 가능한 빈 땅으로 만들어주실 수도 있었을 텐데 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거민들을 그대로 둔채 너희들이 가서 스스로 밟아서 스스로 전쟁해서 너희들이 그 땅을 개척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그 개척과정이 주는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힘든 개척과정 가운데 경험하게 되는 하나님이 있어요. 저 역시도 부교역자 때는 경험하지 못한 개척과정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경험하는 영적 승리가 있었어요. 그리고 그 개척과정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과 힘이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17장에 보면 개척하라는 명령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호수아 17장 15절 말씀 보시면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 아멘. 이게 사실은 하나님의 명령이에요. 여호수아가 말했지만 하나님의 명령이죠. 18절 말씀 보시면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여호수아서에서 말하고 있는 개척정신을 다 가져야 될 줄 믿습니다. 개척정신은 개척교회 목사님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태어나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모교회가 광주중앙교회라는 교회인데요. 제가 군입대 전까지만 해도 저는 교회를 잘 안 나갔습니다. 나가도 항상 지각을 했어요. 그건 마음이 없다는 말이죠. 특히 대학부는 더욱더 안 나갔습니다. 나가면 장년부를 나갔지 대학부는 안 나갔어요. 그런데 군대에서 은혜를 받고 제대하자 제가 제 발로 대학부를 찾아간 것입니다. 많이 변한 거죠. 약 120여명의 대학생들이 모여 있었던 작지 않은 대학부였는데 그 대학부를 가서 보고 깜짝 놀란 것은 기도모임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당시에 굉장히 교만했던 제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형편없는 교회가 다 있나. 어떻게 이 정도 규모의 교회의 대학부 안에 기도회가 하나도 없단 말인가. 이렇게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교회에서 내가 계속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면서 교회를 진짜 옮기려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교만한 생각이죠. 그런데 그때는 제 나름 진지하고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하나님, 저 교회를 옮겨야 되겠습니다. 도저히 제 레벨에는 맞지 않는 교회입니다 하고 어느 교회로 갈까요 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저의 마음속에 그런 감동과 마음을 주셨습니다. ‘기도회가 없다면 불평만 하지 말고 필요성을 느끼는 니가 한번 시작해봐라.’ 이런 감동을 주셨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기도회가 없다고 불평한 하지 말고 그 필요성을 느끼는 니가 시작을 해봐라. 제가 그 감동이 딱 오는 순간 쇠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느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은 못 했거든요.
제가 그때 난생 처음으로 개척정신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느꼈습니다. 아! 길이 없다면 길이 없다고 원망하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그 길이 날 때까지 막연하게 기다리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그 길이 있는 곳으로 찾아 헤맬 것이 아니라 그 필요성을 느끼는 내가 그 길을 내기를 원하시는구나. 이걸 제가 느낀 거예요. 그래서 제가 바로 동기들을 소집하고 담당목사님의 허락을 받아서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기도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많지도 않아요. 기도회 자체도 없었는데 그것도 목사님이 인도하는 기도회도 아니고 같은 대학생 청년이 인도하는 기도회에 누가 몇 명이나 나오겠습니까? 만만한 게 동기니까 동기들 붙잡고 나오라고 했는데 제 기억으로 동기들 서너명, 많을 때는 대여섯명 앉혀놓고 매주 기도회를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제가 기도회를 개척한 거예요. 남들이 가지 않는 길, 원래 없던 길을 부족하지만 조금씩 길을 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제가 교육전도사 사역을 나가기 전까지 약 1년 반에서 2년 가까이 그 기도모임을 인도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많은 기도응답을 허락하셨고 기도의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또 성실함도 훈련시키셨어요. 정말 한주도 빠지지 않고 매주 그 기도모임을 인도했거든요. 아직도 기억이 나요. 명절연휴 때에도 혼자라도 그 자리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한 주도 빠짐없이 그 기도회 모임을 인도하고 자리를 지켰습니다. 아마 제가 개척하고 인도하지 않았다면 몇 번은 빠졌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개척하고 인도하다 보니까 빠질 수가 없는 거예요. 이 역시 좋은 훈련이 됐습니다.
그렇게 나중에 제가 사역을 해야 돼서 모교회를 나와서 본격적인 사역자의 길을 걸어가는데 제 첫 번째 사역은 공교롭게도 교회 개척사역이었습니다. 제가 교회를 처음 개척했던 것은 사실 7년 전 하늘씨앗교회가 아닙니다. 결혼하기 전에 청년의 때 제 나이 25살 때쯤 교회를 개척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를 설교시간에는 거의 한 적이 없습니다. 제 아내만 알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 오늘 하게 되네요.
당시 25살 총각 때에 했던 교회 개척은 사실 제가 간절히 원해서 했던 개척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제가 아는 목사님 중에서 섬에서 목회를 하고 계시는 목사님이 계셨어요. 그런데 그 목사님이 저에게 부탁을 하신 거예요. 그 목사님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셨어요. 섬 교회에서 1, 2년 후쯤 사역을 마치고 육지로 나와서 교회를 개척하게 될 텐데 개척멤버가 몇 명이 준비돼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에게 김전도사님이 개척멤버를 데리고 먼저 교회를 하고 있어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당신이 올 때까지 세례요한의 역할을 저한테 하고 있으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제가 개척멤버인 청년들 대여섯명을 데리고 그냥 시작하고 있었어요. 그분이 오실 그날을 늘 기다리면서 (웃음) 예수님이 아니라 섬에서 목회하고 계시는 그 목사님이 오실 그날을 기다리면서 그때까지만 하다가 바톤터치하면 되니까 무작정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한번 생각보세요. 나이 25에 신학공부도 제대로 다 졸업하지 않은 상태에서 돈도 없어요. 직장인 청년들도 아니고 대학생 대여섯명이 모였는데 무슨 헌금이 나오겠습니까? 그런 열악한 상태에서 교회를 개척했으니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죠.
지금도 개척이 쉽지 않은데 돈이 없으니까 제 기억으로 지하실을 싸게 얻었어요. 월세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20만원에 지하실을 싸게 얻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델비아라는 교회를 시작했는데요. 제 기억으로는 그 섬에서 목회하는 목사님이 오시기까지 약 1년 반 정도의 담임전도사 사역을 한 것 같습니다. 그 교회가 성장했을까요 안 했을까요? 성도수가 늘었을까요 안 늘었을까요? 하나도 안 늘었습니다. 1년 반을 했는데 그 멤버 그대로였습니다. 1년 반 동안 개척멤버들과 함께 사역하다가 섬에서 그 목사님이 나오시고 저는 바톤터치하고 그 교회를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별 의미 없어 보이고,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진짜 개척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개척이에요. 대학생들 대여섯명 모아놓고 1년 반 동안 개척다운 개척도 아니었지만 어떻게 보자면 별 의미 없어 보이고 실패처럼 보이는 그 과정이 저에게 많은 유익이 됐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일단 저는 그 개척 때문에 제 동기들보다 설교사역을 훨씬 일찍 시작했습니다. 교육전도사 때는 청장년 성도들을 대상으로 설교할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어느 교회나 부목사님급은 돼야 설교할 기회가 주어지지 교육전도자들한테는 설교할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개척 덕분에 교육전도사 시절부터 매 주일마다 주일예배를 인도하고 수요밤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했습니다. 꾸준하게 설교사역을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훈련이 제 설교사역에 큰 도움이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또 재정이 열악한 상태에서, 생각해 보세요. 20대 중반에 대학생들 돈 얼마 되지도 않은 돈을 가지고 이곳저곳 장소 알아보고 계약하고 뭘 알아서 했겠어요. 더듬더듬 계약하고. 또 그 힘들다는 지하개척교회의 현실도 경험해보고. 상당히 다양한 훈련들이 그 안에 들어있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개척은 분명히 두렵고 힘들지만 개척이 주는 유익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교회가 너무 많습니다. 세계에서 면적과 인구대비 이렇게 교회가 말은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불과 132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 교회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영적 불모지였고 완전한 미개척지였습니다. 대부분의 길은 원래부터 있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지나가고 또 다른 사람이 지나가고 그 자리로 지나가기를 반복하고 그 자리로 지나다니는 사람이 한 사람 두 사람씩 늘어나면서 길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132년 전 교회 하나 없던 이 땅에 2명의 개척자가 나타나서 그때부터 족적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복음을 들고 조선에 입국한 언더우드 선교사님과 아펜젤러 선교사님입니다. 얼마나 초창기 조선의 영적 모습이 답답했으면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그런 기도를 했잖아요. ‘주님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 기도문 딱 한 구절에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주님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조선 사람들의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거예요.
언더우드 선교사님과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입국하자마자 예배당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당시 역사적인 배경과 이 나라의 분위기 자체가 예배당을 세울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집에서부터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어요. 누구랑 드렸을까요? 성도 없습니다. 혼자 드렸어요.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혼자 드렸고 총각이니까. 결혼해서 사모님과 같이 들어온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부부가 같이 드렸을 것이고. 집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고아원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 개척의 과정이 없었다면 오늘날 한국교회는 없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드리고자 하는 말씀의 핵심은 이거에요. 개척정신을 가지셔야 합니다. 남들이 내놓은 길만 편안하게 따라가려고 하지 마시고 남들이 준비해 놓은 것만 누리려 하지 마시고 나에게 주신 은사와 믿음을 가지고 필요한 새 길을 내는 개척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목회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든 개척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개척 없는 위대한 역사는 없습니다.
제가 하늘씨앗교회를 개척할 때 하나님께서 많은 은혜를 주셔서 개척 초창기에 필요했던 것들이 대부분 채워졌어요. 시작할 때부터 반주자도 있었고 식당봉사자도 있었고 주보 만드는 사람도 있었고 안내 설 사람도 다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여섯명 데리고 시작했는데 한 사람당 하나씩 했어요. (웃음) 제가 방금 말한 것이 주보 만드는 사람 반주자 한 사람이 하나씩 그냥 했어요. 물론 개척을 시작할 때는 필요가 대부분 채워졌는데 쉽게 필요가 채워지지 않은 개척지가 우리 교회 안에 한 곳이 있었는데 그곳이 주일학교였습니다.
물론 개척을 시작할 때는 저희 가정의 자녀들이 4명밖에 없었기 때문에, 개척을 막 시작했을 때는 자녀가 넷이었어요. 그리고 다섯째는 엄마 뱃속에 있었습니다. 자녀들이 4명밖에 없었기 때문에 주일학교를 바로 시작하기에는 이른감이 있었지만 이제 시간이 한달 두달 세달 흘러가자 주일학교 학생이 한명씩 두명씩 늘어가기 시작하는데 주일학교를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주일학교 예배를 따로 드릴 교육관도 없었고 인도할 담당자도 없었어요. 그런 상태에서 아이들만 한명씩 한명씩 늘어나기 시작한 거예요.
개척한지 약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한 명의 어린이사역 개척자가 나타났습니다. 천진영 자매에요. 주일학교는 아니지만 자기가 가진 영어 달란트로 토요일 오후에 영어제자학교를 시작해보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거예요. 진영이 자매가 영어 잘해요. 그래서 그 달란트를 가지고 정철영어 그쪽에서 크리스찬 어린이들 성경공부 영어교제를 만들었어요. ‘Who made the world’라는 그 교제를 가지고 토요일 오후에 영어제자학교를 시작해보겠습니다 하고 진영이 자매가 지원자가 나타난 거예요.
그래서 하늘씨앗교회 역사상 첫 어린이모임이 토요일에 시작된 것입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한 사람이 먼저 걷기 시작한 거예요. 영어제자학교가 계속 되는 게 아니잖아요. 교제 한권이 끝나니까 또 모임이 없어져버렸어요. 길이 좀 날듯 하더니 또 갑자기 사라진 거예요. 그런데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13년 1월에, 제가 2011년 3월에 개척을 했으니까 거의 2년 정도가 지난 2013년 1월에 주일학교를 해보겠다는 개척자가 나타났으니 그 사람이 유정은 자매입니다. 어느 날 밤예배 때 펑펑 혼자 울더니 저를 찾아왔어요. (웃음) 눈이 벌개가지고 저를 찾아왔어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기가 주일학교를 시작해야 될 것 같다는 거예요. 주일에 어린이예배 자체가 없었는데 한 사람이 나타나서 그 길을 걸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이들만 몇 명 있었고 아무것도 없었던 그 길을 한 사람이 걷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그 뒤로부터 동역자들이 한명 두명 붙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 시작했고 아이들이 늘어나고 나중에 담당교역자까지 오면서 오늘날 주일학교의 모습을 갖춘 것입니다.
지금 저희 주일학교가, 중고등부를 제외하고 초등부부터 그 아래 주일학교가 평균출석이 약 50명입니다. 초창기 모습을 여러분들은 안 봐서 50명이라는 수가 별 감동이 없는 숫자처럼 여겨지지만 저는 제로베이스를 봤어요. 제로베이스는 아니죠. 4명이 있었으니까. (웃음) 4명으로부터 시작된 주일학교가 지금 평균출석이 50명까지 왔습니다. 저는 앞으로 500명이 될 날이 분명히 오리라 믿습니다. 500명이든 5천명이든 그 시작은 항상 한 사람의 개척자였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한 사람이 황량한 땅에서 기도하고 예배하기 시작할 때부터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시작되는 거예요.
저는 여러분들이 그 주인공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직장이나 학교에 신우회 모임이 없다면 여러분이 개척정신을 가지고 시작해 보세요. 교회에서도 내가 느끼는 필요한 것들이 보이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목사님의 허락을 받아서 시작을 해보세요. 그게 개척자의 모습입니다.
우리 교회는 강단에 꽃이 없었습니다. 지금 리모델링을 하고 나서도 강단이 좁은데 리모델링하기 전에는 강단이 더 좋았어요. 그래서 여기다 화분 꽃꽂이를 놓을 여력 자체가 안 됐고 공간이 안 나왔어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개척교회는 매주마다 꽃꽂이할 만큼 재정이 넉넉하지 않습니다. 또 돈이 있다고 해도 꽃꽂이를 할 재능을 가진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데 올해부터 강단에 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개척자가 나타난 거예요. 제가 시킨 게 아닙니다. 그 달란트가 있는 성도가 어느 날 필요성을 느끼고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서 꽃을 갖다놓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자 동역자들이 붙기 시작했고 그래서 지금은 상당히 자주 보입니다. 부흥집회 때라든지 특별행사 때 꽃이 보이기 시작해요.
우리 교회는 미개척지가 많은 교회입니다. 물론 지난 6년, 7년 기간 동안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주신 은혜가 참 크지만 그러나 앞으로도 개척해야 될 영역이 많은 교회에요. 구제사역도 미약하게나마 시작은 했지만 더 많은 관심과 동역자가 필요하고 해외선교도 마찬가지고 문서사역 문화사역 다 마찬가지입니다. 다 미개척지에요. 저는 우리 교회 안에서 개척자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여호수아와 바울의 후예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구약의 대표적인 개척자가 여호수아고 신약의 대표적인 개척자가 바울 아닙니까? 우리가 그들의 후손 아닙니까?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뒤따라 걷는 자들도 물론 필요하지만 새롭게 길을 만드는 개척자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과거에 장군들이 전쟁 때에 앞장서서 적진을 허물고 길을 내는 선봉장을 영광으로 알고 서로 선봉을 맡기 위해서 왕에게 저를 선봉으로 세워주십시오 요청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런 개척자의 정신이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작년에 군대예비학교라는 것을 처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 안에 결혼예비학교는 있었어도 군대예비학교는 역사에 없었습니다. 족적을 찾아볼 수 없는 완전한 미개척지였어요. 제가 작년에 그 첫걸음을 어렵게 뗐습니다. 물론 너무 생소한 개척지이고 처음이라서 참 부족하고 초라하게 끝났습니다마는 저는 꿈꾸는 거예요.
앞으로 두고 보세요. 어떤 길이 생기는지. 우리가 대형교회도 아니고 군대예비학교라는 길 자체가 아예 없는 길이지만 저는 더듬더듬 뚜벅뚜벅 그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이라는 확신이 있는 이상 그 길을 계속 걸어갈 거예요. 가다 보면 생각지 못했던 많은 은혜와 간증이 생길 것이고 가다 보면 많은 동역자들도 붙게 될 것이고 어느 순간부터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여름 태국단기선교 때 저희가 학교 세 곳을 방문했거든요. 초등학생 중학생까지 있는 학교들 세 학교를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방문한 학교들은 미개척지에 있었던 학교들이었습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면 근처에 교회가 아예 없어요. 단기선교팀도 거의 안 들어오는 곳이었습니다. 어떤 학교는 우리가 처음이었다고 했어요. 그런 곳에 가서 복음의 씨앗과 기도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너무 짧은 시간이었고 미약했지만 그러나 저는 그 발걸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사람 두사람, 한번 두번 자꾸 가다 보면 어느 순간 길이 생길 것이고 훗날 대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올해 여름에 태국으로 단기선교를 다녀온 이후에 내년 겨울에도 태국으로 다시 가려고 하는 것은 이번 단기선교 때 저희와 함께 선교했던 선교회의 개척 비전 때문입니다. 태국도 교회들이 수도 중심으로 몰려있어요. 방콕 중심으로 대부분의 교회들이 몰려 있습니다. 태국 북동부 지역 같은 곳에는 교회를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그 미개척지에 교회를 세워갈 개척의 비전을 이번에 저희와 연결된 선교회가 품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 비전을 들었을 때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든 거예요. 그 개척의 길에 조금이나마 힘을 더하고 같이 발자국을 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또 그곳으로 단기선교를 가는 거예요.
저는 우리 성도님들 중에서 선교사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꼭 목사선교사가 아니더라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목사 선교사님들을 돕는 평신도선교사님이라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선교지에 뼈를 묻는 장기선교사가 아니더라도 우리 청년들 같이 자기의 은사와 달란트를 가지고 2, 3년 사역하고 돌아오는 단기선교사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개척자의 길은 따지고 계산하면 절대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제가 7년 전 개척장소를 알아보기 위해서 경기도와 서울지역을 살짝 며칠간 둘러봤는데 둘러볼수록 계산이 안 나왔어요. 개척은 원래 계산이 안 나옵니다. 계산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개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개척은 믿음으로 가는 길이지 계산해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위대한 개척자인 바울을 생각해 보세요. 계산이 나와서 유럽으로 복음 들고 들어갔던 것이 아닙니다. 드로아에서 환상 하나 보고,
사도행전 15장 16장 내용을 읽으신 분은 무슨 말인지 알 거예요. 드로아에서 환상을 하나 보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으로 간주하고 그것 하나 붙잡고 그냥 치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유럽 첫 관문인 빌립보에서 기도처를 찾다가 루디아라는 한 여인을 만나서 그 만남 하나 때문에 예배장소와 사택문제가 한꺼번에 다 해결됐어요. 갑작스럽게 예배처소와 사택을 얻게 됐다는 것은 결국 사전에 계산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계산 안 나왔어요. 하나님의 뜻 하나 붙잡고 그냥 밀고 유럽으로 들어간 거예요.
저는 이 영적 야성이 오늘날 한국교회 모든 성도들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에게는 이런 개척정신이 있었어요. 과거에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 중에는 일부러 개척교회만 찾아다니는 성도들도 진짜 있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부족하지만 힘을 더해서 교회를 하나 세워보겠습니다.’ 그리고 일부러 개척교회만 찾아다니는 성도들이 과거에는 꽤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없습니다. 모두가 편한 길만을 찾습니다. 모든 것이 다 갖춰진 곳에서 길이 이미 잘 나 있는 곳에서 누리기만 원하지 스스로 길을 내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없던 길을 만들어가는 그 재미와 보람은 개척자가 아니면 절대 알 수 없습니다.
저희 집안은 믿음의 가정이 아닙니다. 저희 어머니가 사실 첫 열매에요.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은 제1호 크리스찬이 저희 어머니입니다. 친가 외가 통틀어서. 저희 어머님이 그런 면에서 영적 개척자이십니다. 저희 어머니가 가정의 복음화를 꿈꾸며 처녀시절부터 예배를 시작했어요. 모든 역사의 시작은 예배로부터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배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저희 어머니가 결혼하신 후에 새벽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그렇고 저희 어머니 세대는 그렇게 결혼한 케이스가 많았어요. 연애 없이 그냥 부모님이 하라고 해서 사진 몇 번 보고 결혼한 케이스가 많았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그런 식으로 결혼을 해서 결혼하신 이후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남편을 만나서 새벽기도를 하기 시작하셨어요. 그러자 가족들이 한명씩 한명씩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주일예배도 그렇게 잘 안 나가던 저도, 그렇게 뺀질대던 저도 어머니의 그 기도 때문에 저 역시도 군대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주님 품에 돌아왔어요. 그리고 이제는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는 목사가 됐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그런 의미에서 개척자세요. 한 가정에 한 사람의 예배로부터 한 사람의 새벽기도로부터 하나님나라의 확장의 역사가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세요. 미개척지인 가나안 땅을 향해서 두려워하지 말고 헛걸음을 힘차게 내딛으라는 거예요. 그 발걸음은 개척을 발걸음입니다. 그 발자국이 찍히는 곳마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겠다고 여호수아서 1장 앞부분에서 반복해서 말씀하고 방솝니다. 함께 하시겠다는 거예요. 바라기는 그 개척정신을 가지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땅을 향해서 힘차게 나아가 주의 깃발을 꽂고 주님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귀하게 쓰임 받는 이 시대의 개척자,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