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우선 저는 해운대 반송복지관 사회복지사 김영은입니다.
부산에 가족복지사업 실무자 구슬모임이 열리길 기도했으나 사람이 모이지 않아 두손 비비며 초조했던...
하지만 마치 억지쓴것 처럼 갑자기 조직사업으로 업무가 바뀌어 ....
현재 구슬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입니다ㅎㅎ
행복제작소 사업 이야기들을 한번 올려보라는 김세진선생님의 권유에 당장 올려서 카페에 방문하시는 분들에게 이야기해 드리고 많은 조언을 듣고 싶었지만 ... 바쁘다는 핑계로 지금 적어봅니다. ^^
아마 시작부터 현재까지 이야기를 그냥 쏟아 낼 것 같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ㅎㅎ
「 지역주민과의 첫 만남 」
2007년 4월 반송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써 첫 업무를 맡게 된 건 ‘재가복지봉사센터’였다. 여느 복지관과 다름없이 봄과 가을이 되면 나들이를 가고 명절에는 후원자와 자원봉사자와 함께 열심히 명절음식 배달을 하고 겨울이 되면 김장담그기.. 생신 때는 한꺼번에 모아서 생신잔치를... 이렇게 복지관에서는 가족들을 대신하여 어르신들의 가족이 되어드린다.
“나는 이번에 왜 김치 안주노? ” “나는 이번에 나들이 못가나?”
이럴 때면 “어르신 이번에는 더 어려운 가정에 어르신이 있어서...” 라는 대답밖에 할 수 없다. 아마도 어르신은 김치한포기보다는 당신을 찾아주고 집에 한번 가면서 잠깐 이야기 나누는 것을 더 원하실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 지역주민이 아닌 ‘대상자’로 」
사회복지사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대상자’ 라는 단어는 복지관 관리(?)하에 있고 힘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뜻으로 느껴지는 단어이다. 대상자의 욕구가 생기면 그들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자원을 찾아서 해결해주고 또 다른 욕구가 생기면 또 다시 해결해주고 .... 끊임없이 사회복지사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없애고를 반복한다.
과연 사회복지사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언제까지 욕구가 생길 때 마다 따라다니면서 해결해야 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 오랫동안 해 왔던 이 방법이 틀렸다 맞다는 판단할 수 없지만 이 방법으로는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힘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첫직장에 처음 맡게된 업무는 두둥! 재가복지봉사센터 ... 위와 같은 이유로 사업을 함에 있어 설레임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 해 11월 쯤인가 사회복지종사자교육에서 김세진 선생님의 방아골복지관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한시간정도의 짧은 교육으로 기억하는데 저에게는 재미, 설레임, 깨어짐? 등 신세계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당장 재가사업을 싸그리 바꾸고 싶었지만 쉬운 것이 아니더군요..ㅎㅎ
「 배움을 조금이나마 접목시켜보자!! 」
2008년 3월 가족복지사업을 맡게 되면서 ‘한부모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작년사업서류를 살펴보니 ‘한부모가족문화체험, 한부모가족캠프, 명절지원’ 이 있었다. 과연 이렇게 사업을 한다면 또 다시 되풀이 될텐데... 일단 한부모분들을 모아서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부모세대리스트를 펼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반송복지관 김영은 사회복지사입니다. 복지관에서 한달에 한번씩 한부모분들끼리 만나서 교육도하고 부모들끼리 만나서 얘기도 하려고 하는데 오실 수 있나요?”
대부분은 일을 하고 있어서 참여하지 못하거나 몸이 아프거나 혹은 서류상에는 모자가정이지만 남편과 함께 사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 아이를 위해 시간을 내어 보겠다는 최종적으로 모임에 오기로 한분은 4명이었다.
2008년 5월 한부모가장 4명이 처음 모임을 가졌다. 낯설고 어색했지만 서로에 대해 소개하고 각자 살아가는 이야기, 어려운 부분, 복지관에 궁금한 부분을 이야기 하였다. 자연스럽게 “아 ~ 컴퓨터지원? 그거는 학교에 신청하면 되요 ~ ” “파산신청? 그거? 골 아프지.. 내가 작년에 해봤는데... ” 으로 시작되어 실컷 이야기를 하며 정보를 주고받았다. K아버님은 “쌤~ 우리들 연락처 쫌 모아가 주이소 ~ 지갑에 딱 넣고 다니구로..” 첫 모임 후에 “ 아! 이분들끼리 만나게만 해주어도 이렇게 도움을 주고 받는구나~! ” 무엇인가 새로운 길을 향해 방향을 트는 느낌이었다.
「 어랏! 이거 신기하네! 」
두 번째 모임은 L아버님의 집으로 초대받았다. K아버님은 조개와 곰장어를 사오시고 L아버님은 키우던 닭을 잡아오시고 L어머니는 월남쌈거리를 준비해오시고 푸짐한 만찬이 만들어졌다. 세 번째 모임..네번째 모임.. 모임 횟수가 늘어나면서 “ 아 ~ 오늘도 우리 쇠주한잔 해야지요 ~” “행님~ 행님집에 있는 닭은 언제 잡아요? 잡으면 우리 꼭 부르이소~” “동상~ 우리 애가 생리를 시작했는데 내가 뭐 아나 ? 우리 집에 와서 쫌 가르쳐 줘 ~” “오라방~ 집에 수도가 고장나서 물이 내도록~ 센다 우리집 쫌 와주소 ” 정보에 사람에 정에 이렇게 목말랐나 보다. 이렇게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면서 이웃이 되고 형제가 되어 삶을 의지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사회복지사의 역할은 주민들을 파악해서 모으고 만나게 해주는 일, 딱 거기까지의 역할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모두 이분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참 신기하고 신이 났다.
첫댓글 "참 신기하고 신이 났다."
그러네요...
정말 그랬겠네요.
드디어 올려 주셨군요! 기다렸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웃들 사는 모습이 이렇죠. 이웃사촌, 잊혀진 이야기로 생각했는데, 김영은 선생님 글 보니 이웃사촌이 생각납니다.
김영은선생님의 현장실천의 소중한 경험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영은선생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김영은 선생^^ 방가워요^^
필요한 부분이 모임 속에서 자연스럽게 채워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