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莊子 外編 16篇 繕性篇 第2章(장자 외편 16편 선성편 제2장)
옛사람들은 구별이 없는 혼돈渾沌 속에 살면서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염담적막恬淡寂漠의 삶을 누리고 있었다. 이 시대에는 음양이기陰陽二氣가 본래의 조화를 얻어 고요하며, 귀신도 사람들을 동요시키지 아니하며, 사계절의 운행이 절도에 맞으며, 만물이 손상되지 아니하며, 모든 생물生物이 요절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비록 지혜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쓸 필요가 없었으니, 이런 때를 일컬어 만물일체가 실현된 시대(지일至一의 시대)라 한다. 이 시대에는 아무도 억지로 함이 없고 늘 자연 그대로의 상태이었다.
그러다가 덕德이 쇠퇴衰頹하여 수인씨燧人氏와 복희씨伏羲氏가 처음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시대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순종하기는 했지만, 서로 일체가 되지 못했다. 덕德이 또 더욱 쇠퇴하여 드디어 신농씨神農氏와 황제黃帝가 비로소 천하를 다스리는 시대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사람들의 삶은 편안해지긴 했지만 서로 순종하지 않게 되었다. 덕德이 또 더욱 쇠퇴하여 드디어 도당씨陶唐氏(요堯)와 유우씨有虞氏(순舜)가 비로소 천하를 다스리는 시대에 이르렀다. 그들은 정치와 교화의 흐름을 일으켜 사람들의 순후淳厚한 진심을 천박하게 하고 소박素朴한 본성을 소산消散시켜 도道를 떠나 엉뚱한 것을 선善이라 하며, 덕德을 위태롭게 만들어 그것을 실행하게 되었다. 그런 뒤에 사람들은 소박한 본성을 버리고 사심私心을 따라 사심私心이 사심私心과 분별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식이 발달하더라도 그들의 지식으로 천하를 안정시키기에는 부족하게 되었다. 그런 뒤에 쓸데없는 껍데기를 갖다 붙이고 박식이라는 꾸밈을 보태서, 껍데기[문文]가 바탕[질質]을 없애버리고 박식이 인간의 마음을 탐닉케 하였다. 그런 뒤에 백성들은 비로소 미혹되고 혼란에 빠져 자기 본성의 진실한 모습으로 돌아가 처음의 상태인 도道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이로써 살펴본다면 세상은 참된 도道를 잃어버리고, 또 참된 도道도 그 도道를 실현할 세상을 잃어버렸는지라. 세상과 도道가 서로 상대를 잃어버리고 말았으니 도道를 체득한 성인聖人이 있다 한들 어떻게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겠으며, 세상 또한 어떻게 그 도道에 의지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도道가 세상에 일어날 수 없고 세상이 도道에 의지해 일어날 수 없다면 성인이 비록 〈일부러〉 산림 속에 몸을 감추지 않더라도 그 덕德은 이미 숨겨진 것이니, 이미 숨겨져 있는 까닭에 스스로 숨지 않는다. 옛날 이른바 은둔한 선비들은 자기 몸을 엎드려서 보이지 않게 한 것이 아니며 말문을 닫아서 말을 꺼내지 않았던 것이 아니며 지혜를 속에 감추어서 밖으로 공표公表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시운時運이 크게 어긋났기 때문이다. 시운을 만나 천하에 크게 시행함에는 사람들을 하나로 돌아가게 하되 자취를 남김이 없고, 시운을 만나지 못해 천하에서 크게 곤궁할 때에는 뿌리를 깊이 박고 지극한 도를 편안히 여기며 때를 기다렸으니 이것이 몸을 보존하는 도리이다.
古之人 在混芒之中 與一世而得澹漠焉
當是時也 陰陽和靜 鬼神不擾 四時得節 萬物不傷 群生不夭
人雖有知 無所用之 此之謂至一 當是時也 莫之爲而常自然
(고지인은 재혼망지중하야 여일세이득담막언하니
당시시야하야 음양이 화정하며 귀신이 불요하며 사시득절 하며 만물이 불상하며 군생이 불요라
인수유지나 무소용지니 차지위지일이라 당시시야하야 막지위이상자연하더니라)
옛사람들은 구별이 없는 혼돈渾沌 속에 살면서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염담적막恬淡寂漠의 삶을 누리고 있었다.
이 시대에는 음양이기陰陽二氣가 본래의 조화를 얻어 고요하며, 귀신도 사람들을 동요시키지 아니하며, 사계절의 운행이 절도에 맞으며, 만물이 손상되지 아니하며, 모든 생물生物이 요절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비록 지혜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쓸 필요가 없었으니, 이런 때를 일컬어 만물일체가 실현된 시대(지일至一의 시대)라 한다. 이 시대에는 아무도 억지로 함이 없고 늘 자연 그대로의 상태이었다.
☞ 혼망지중混芒之中 : 혼망混芒은 천지가 아직 분화되지 않았을 때의 혼돈 상태.
☞ 여일세이득담막언與一世而得澹漠焉 : 일세一世는 일세지인一世之人으로 동시대의 다른 사람들을 지칭. 담막澹漠의 담澹은 앞에 나온 염담恬淡, 막漠은 적막寂漠. 고요하고 담박하며 적막한 삶을 의미한다.
☞ 음양화정陰陽和靜 귀신불요鬼神不擾 : 음양화정陰陽和靜은 음과 양이 서로 짝이 되어 서로를 밀치지 않는다는 뜻. 귀신불요鬼神不擾는 귀신이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않는다는 뜻.
☞ 군생불요群生不夭 : 군생群生은 중생衆生과 같고 요夭는 비명에 죽는 것을 말하는데 일찍 죽는다는 뜻이 요殀와 통용한다.
☞ 막지위이상자연莫之爲而常自然 :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위의 덕을 품고 있기 때문에 단지 자연에 맡기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뜻.
逮德下衰 及燧人伏羲始爲天下 是故順而不一
德又下衰 及神農黃帝始爲天下 是故安而不順
(체덕이 하쇠하야 급수인복희 시위천하라 시고로 순이불일하니라
덕우하쇠하야 급신농황제시위천하라 시고로 안이불순하니라)
그러다가 덕德이 쇠퇴衰頹하여 수인씨燧人氏와 복희씨伏羲氏가 처음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시대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순종하기는 했지만, 서로 일체가 되지 못했다.
덕德이 또 더욱 쇠퇴하여 드디어 신농씨神農氏와 황제黃帝가 비로소 천하를 다스리는 시대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사람들의 삶은 편안해지긴 했지만 서로 순종하지 않게 되었다.
☞ 체덕하쇠逮德下衰 : 체逮는 미침[급及]. 하下와 쇠衰는 모두 ‘쇠퇴하다’는 뜻. “무릇 덕이 쇠퇴하게 되는 까닭은 성인이 대를 이어 세상에 나타나지 못하자 군주의 자리에 있는 이가 스스로 무위를 실천하지 못하고 무위의 자취만 선망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런 폐단이 있게 된 것이다.”(郭象)
☞ 수인복희시위천하燧人伏羲始爲天下 : 위爲는 다스린다는 뜻으로 치治와 같다. 수인씨燧人氏와 복희씨伏羲氏는 모두 고대 전설상의 제왕이자 문화영웅. 수인씨는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나무에 집을 짓고 사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하고 복희씨는 처음으로 서계書契 문자文字를 만들고 팔괘를 만든 인물로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모두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해친 자들로 묘사되어 있다. “옛날에는 짐승의 털을 먹고 피를 마시고 사슴들과 무리 지어 함께 살았는데 수인씨에 이르러 비로소 날것을 바꾸어 익혀 먹었으며, 복희씨에 이르러서는 소를 길들이고 말을 타며 푸줏간을 처음 만들고 팔괘를 그어 문자를 제정하고 거미를 모방하여 촘촘한 그물을 만들었다. 이미 사사로운 지혜가 싹트게 되자 기욕嗜欲이 점차 자라나 순박한 마음을 천박하게 하고 무위無爲의 도를 흩어버렸으니 덕이 쇠퇴하자 비로소 천하를 다스렸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成玄英)
☞ 안이불순安而不順 : “덕화德化가 더욱 쇠퇴하게 되자 폐단이 더욱 심해졌다. 그 때문에 신농씨 때에는 공공共工을 정벌하는 전쟁이 있었고 황제 때에는 치우의 전쟁이 있어서 요기祅氣가 그치지 않고 전쟁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 이 때문에 포악한 이를 죽이고 잔악한 자를 제거하고 백성들을 위로하고 죄지은 자에게 죄를 물어 구차하게 천하를 안정시키기는 하였으나 뭇 생명들을 순종하게 하지는 못했다.”(成玄英)
德又下衰 及唐虞始爲天下 興治化之流
𣻏淳散朴 離道以善 險德以行 然後去性而從於心 心與心識
知而不足以定天下 然後附之以文 益之以博 文滅質 博溺心
然後民始惑亂 無以反其性情而復其初
(덕우하쇠하야 급당우 위시천하라 흥치화지류하야
요순산박하야 이도이선하며 험덕이행한 연후에 거성이종어심하야 심이 여심으로 식하니라
지이부족이정천하한 연후에야 부지이문하며 익지이박하니라 문멸질하며 박이 익심한
연후에야 민시혹난하야 무이반기성정이복기초하니라)
덕德이 또 더욱 쇠퇴하여 드디어 도당씨陶唐氏(요堯)와 유우씨有虞氏(순舜)가 비로소 천하를 다스리는 시대에 이르렀다. 그들은 정치와 교화의 흐름을 일으켜
사람들의 순후淳厚한 진심을 천박하게 하고 소박素朴한 본성을 소산消散시켜 도道를 떠나 엉뚱한 것을 선善이라 하며, 덕德을 위태롭게 만들어 그것을 실행하게 되었다. 그런 뒤에 사람들은 소박한 본성을 버리고 사심私心을 따라 사심私心이 사심私心과 분별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식이 발달하더라도 그들의 지식으로 천하를 안정시키기에는 부족하게 되었다. 그런 뒤에 쓸데없는 껍데기를 갖다 붙이고 박식이라는 꾸밈을 보태서, 껍데기[문文]가 바탕[질質]을 없애버리고 박식이 인간의 마음을 탐닉케 하였다.
그런 뒤에 백성들은 비로소 미혹되고 혼란에 빠져 자기 본성의 진실한 모습으로 돌아가 처음의 상태인 도道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 당우唐虞 : 당唐은 요임금이 다스린 나라 이름. 우虞는 순임금이 다스린 나라 이름. 요堯와 순舜을 각각 도당씨陶唐氏와 유우씨有虞氏라고 일컫는다.
☞ 흥치화지류興治化之流 요순산박𣻏淳散朴 : 치화治化는 교화敎化와 같다. 요𣻏는 얇다[요박澆薄]는 뜻의 요澆와 같은 자字. 여기서는 흩어버린다, 천박하게 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음. “순후함과 소박함을 훼손하여 거짓을 꾸미고 질박함을 흩어서 화려한 거짓을 꾸며 댔다.”(成玄英)
☞ 거성이종어심去性而從於心 : 거성去性은 자연의 본성을 방기한다는 뜻. 종어심從於心은 사심을 따른다는 뜻.
☞ 심여심식心與心識 : 피차간에 사심을 가지고 사심을 엿본다는 뜻. 식識은 서로 살핌. 여기의 심心은 모두 기심機心(교사한 마음)이다.
☞ 지이부족이정천하知而不足以定天下 : 여기의 지知는 지식이 발달한 요堯와 순舜의 지식을 지칭한다. “요堯와 순舜의 지식이 사람들의 사심私心에 간파되어 그들의 지식만으로 천하를 안정시킬 수 없게 되자 쓸데없는 껍데기를 갖다 붙이고 박식이라는 꾸밈을 보태게 되었다.”(方勇‧陸永品)
☞ 부지이문附之以文 익지이박益之以博 : 여기의 문文과 박博은 각각 뒤의 질質과 심心에 상대되는 외형적인 가식을 의미.
☞ 문멸질文滅質 박익심博溺心 : 문文과 질質의 이상적인 관계에 대한 논의는 ≪논어論語≫에 자세하다. 특히 〈옹야雍也〉편에서 공자가 “질質이 문文을 이기면 촌스러워지고 文이 질質을 이기면 고루해진다. 문文과 질質이 균형을 갖춘 뒤라야 군자君子다울 수 있다.”고 한 유가적 논의가 문文과 질質의 균형 상태인 문질빈빈文質彬彬을 이상으로 삼는다고 한다면, 여기의 비판은 그런 균형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를 비판하는 것이므로 유가적 논의를 완전히 뒤집는 것이라고 평가하기는 곤란하다.
由是觀之 世喪道矣 道喪世矣 世與道 交相喪也
道之人 何由興乎世世 亦何由興乎道哉
道無以興乎世 世無以興乎道
雖聖人 不在山林之中 其德 隱矣 隱故不自隱
(유시관지컨대 세 상도의며 도 상세의라 세여도 교상상야니
도지인은 하유흥호세며 세 역하유흥호도재리오
도 무이흥호세며 세 무이흥호도면
수성인이 불재산림지중이라도 기덕이 은의니 은고부자은이니라)
이로써 살펴본다면 세상은 참된 도道를 잃어버리고, 또 참된 도道도 그 도道를 실현할 세상을 잃어버렸는지라. 세상과 도道가 서로 상대를 잃어버리고 말았으니
도道를 체득한 성인聖人이 있다 한들 어떻게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겠으며, 세상 또한 어떻게 그 도道에 의지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도道가 세상에 일어날 수 없고 세상이 도道에 의지해 일어날 수 없다면
성인이 비록 〈일부러〉 산림 속에 몸을 감추지 않더라도 그 덕德은 이미 숨겨진 것이니, 이미 숨겨져 있는 까닭에 스스로 숨지 않는다.
☞ 세상도의世喪道矣 도상세의道喪世矣 세여도교상상야世與道交相喪也 : 도道와 세世의 상관관계를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가 사상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어지는 문장에서 “도道가 세상에 일어날 수 없고 세상이 도道에 의지해 일어날 수 없다.”고 한 표현은 세상은 오직 도에 의해서만 다스려질 수 있다는 표현으로 유가의 치도治道와 다를 것이 없다.
☞ 수성인불재산림지중雖聖人不在山林之中 기덕은의其德隱矣 : “세상과 도가 서로 일으켜 주면 성인이 일어나 만물이 모두 제 모습을 드러내고 세상과 도가 서로를 잃어버리게 되면 성인이 세속에서 노닐더라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니 참으로 이미 숨겨진 것이니 어찌 스스로 산림 속에 숨는 일을 하겠는가.”(呂惠卿)
☞ 은고부자은隱故不自隱 : “세상이 온통 도道를 알지 못하게 되면 성인이 비록 눈앞에 있더라도 또한 알지 못할 것이니, 성인이 비록 스스로 숨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숨으려 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숨고 있는 것이다.”(林希逸)
古之所謂隱士者 非伏其身而弗見也 非閉其言而不出也
非藏其知而不發也 時命大謬也
當時命而大行乎天下 則反一無迹
不當時命而大窮乎天下 則深根寧極而待 此 存身之道也
(고지소위은사자는 미복기신이불견야며 비한기언이불출야며
비장기지이불발야라 시명이 대무야일새니라
당시명이대행호천하하야는 즉반일무적하고
부당시명천대궁호천하하야는 즉심근녕극이대하나니 차 존신지도야니라)
옛날 이른바 은둔한 선비들은 자기 몸을 엎드려서 보이지 않게 한 것이 아니며, 말문을 닫아서 말을 꺼내지 않았던 것이 아니며, 지혜를 속에 감추어서 밖으로 공표公表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시운時運이 크게 어긋났기 때문이다.
시운을 만나 천하에 크게 시행함에는 사람들을 하나로 돌아가게 하되 자취를 남김이 없고
시운을 만나지 못해 천하에서 크게 곤궁할 때에는 뿌리를 깊이 박고 지극한 도를 편안히 여기며 때를 기다렸으니 이것이 몸을 보존하는 도리이다.
☞ 시명대류야時命大謬也 : 시운이 크게 어긋났기 때문에 불견不見, 불출不出, 불발不發하였던 것이다. 시명時命은 시운時運, 세도世道가 흥기와 쇠퇴하는 시기를 말한다. 시운時運을 만나는 것은 좋은 때를 만남이고 시운時運을 만나지 못함은 좋지 못한 때를 만남을 말한다. 대류大謬는 크게 어긋남.
☞ 당시명이대행호천하當時命而大行乎天下 즉반일무적則反一無迹 : 당시명當時命은 좋은 때를 만났다는 뜻. ‘대행호천하大行乎天下’는 도道가 천하天下에 널리 통행함을 말함이다. 반일무적反一無迹은 완전하게 통일된 경지 또는 지상至上의 도道의 세계로 돌아가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는 뜻.
☞ 즉심근영극이대則深根寧極而待 : 심근深根은 뿌리를 깊이 한다는 뜻으로 자연의 근본을 견고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영극寧極은 지극한 본성을 편안하게 지킨다는 뜻.
☞ 차존신지도야此存身之道也 : 존신存身은 자연自然의 성명性命을 보존한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