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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벧전 5:5-11)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제, “‘짐칸은 불안’ 외국 관광객들 KTX에서 캐리어 안고 ‘끙끙’”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었습니다. KTX 안에는 넉넉한 짐칸이 있는데, 외국 관광객들이 그 짐칸에 캐리어를 보관하지 않고, 비좁은 통로에 놔두거나, 안고 탄다는 것입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짐칸을 불신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소매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서울대병원에 가면, 병원 내 식당을 이용하게 되는데, 어떤 때는 자리 잡기가 어려워, 먼저 자리를 잡고 나서, 주문을 하게 됩니다. 키오스크로 주문하기 위해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데, 그때에, 핸드폰을 식탁에 올려놓고, 키오스크로 가서 주문을 합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자리를 잡기 위해서, 비싼 핸드폰이나 노트북을 아무 생각도 없이, 식탁에 올려놓고 자리를 떠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잠시라도 방심하면 소매치기를 당하는데, 자리를 비우면서, 핸드폰이나 노트북이나, 가방을 놔둔다고 하는 것, 다른 나라 사람들은 감히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KTX 안에서도 누가 캐리어를 훔쳐갈까봐, 불안한 마음에, 짐칸에 놔두지 않고, 꼭 붙들고 간다는 것입니다.
소매치기 당할까봐 불안한 마음은 우리나라에 온 외국 관광객들 뿐만 아니라 외국으로 여행을 가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외국에 나가면 소매치기 당할까봐 늘 불안하고 조심합니다.
신뢰가 있는 곳에서는 맡길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곳에서는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렇지 못한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찰스 스펄전은 종종 이런 예화를 들었습니다.
“어떤 나그네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다가 마차를 얻어 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차에 올라타고서도 여전히 그 무거운 짐을 자신의 머리 위에 이고 끙끙대고 있었습니다. 마부가 짐을 바닥에 내려놓으라고 하자, 나그네는 ‘마차를 얻어 탄 것만도 황송한데, 어떻게 짐까지 마차에 맡기겠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은혜라는 구원의 열차에 올라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여전히 인생의 염려라는 캐리어를 끌어안고 끙끙대고 있습니까?
매일 염려와 걱정 속에 파묻혀 살아가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하루를 염려나 걱정없이, 마음 편하게, 살아갈 수 없을까요? 과거에는 먹고사는 것이 걱정이었다면, 오늘날은 건강, 노후, 자녀, 직장, 인간관계, 경제적 불안,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들의 마음을 짓누릅니다.
어느 정신과 의사는 “현대인은 실제 문제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느라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하는 걱정의 대부분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경은 염려를 단순히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염려는 하나님 대신 내가 내 인생을 책임지려고 할 때 생겨납니다. 염려는 영혼의 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튼튼한 쇠를 녹슬게 하듯, 염려는 사람의 마음을 좀먹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염려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 힘으로 내 인생을 통제하고 지키려 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앞에, 내 자아를 깨뜨리지 못하면, 우리는 평생 염려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염려와 걱정거리로 가득한 이 고달픈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초청하십니다.
여기 “짐”이라는 단어를 “주어진 운명”을 의미한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의 무게를 여호와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기차를 탔는데, 짐을 짐칸에 맡기지 않고, 끌어안고 앉아 있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짐칸은 그 짐을 위해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염려와 짐을 받으시기 위해 언제든지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 짐을 맡기지 않는 것이야말로, 기차 여행을 스스로 힘들게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염려를 끌어안고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힘들게 살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주님께 다 맡기고 홀가분하게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무거운 짐들은 다 주님께 맡겨 버리고, 참된 안식을 누리는 삶, 특별히 오늘 읽은 7절의 말씀을 통해, 그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염려를 맡기라는 것은 믿음으로 내려놓으라는 뜻입니다.
7절 말씀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여기 “염려”라는 단어는 “분열시키다”, “찢다”라는 뜻에서 왔습니다. 염려는 우리의 마음을 분열시키고, 집중력을 흩뜨리고, 영혼을 갈가리 찢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편지를 받은 수신자들은 단순히 내일 뭘 먹을까 고민하는 수준이 아니라, 로마 제국의 극심한 핍박 앞에서 생존을 위협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핍박이 그들이 마주하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런 핍박마저도 주님께 맡겨버려야 합니다.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한두 개만 맡기라고 한 것이 아니라, “다 맡기라”고 말했습니다.
핍박과 고난의 문제 뿐만 아니라, 건강 문제도 맡기고, 자녀 문제도 맡기고, 사업 문제도 맡기고, 앞날의 불안도 맡기고, 사람 때문에 생긴 상처도 맡기고, 죄책감도 맡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맡기지는 않습니다. 기도할 때, 짐을 주님 앞에 내려놓았다가, ‘아멘’ 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 그 짐을 다시 주섬주섬 챙겨서 돌아가는 것은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맡기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놓지 못하고 여전히 붙들고 있습니다.
여기 “맡기라”는 말은 단순히 “올려놓는다”라는 뜻이 아니라. “나에게서 분리하여 힘껏 던져버리다”라는 강렬한 동작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소심하게 올려두는 것이 아니라, 전폭적으로 의탁하는 신앙적 결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서, 제자들이 나귀 새끼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걸쳐 놓을 때’ 쓰인 단어가 바로 이 단어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어깨를 짓누르던 짐을 풀어서, 주님의 어깨 위로 확 던져버려야 합니다.
힘겹게 지고 가던 무거운 짐보따리를 주님께 더넘기고, 홀가분하게 걸어가야 합니다.
다윗은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깊은 배신과 고통 속에서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고 고백했습니다. 절친한 친구의 배신, 아들 압살롬의 반란, 그 모든 고통의 한복판에서, 다윗은 짐을 여호와께 던져버렸습니다.
염려를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자신을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신뢰 없이는 어떤 사람도 진정으로 안식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는 만큼, 우리는 자신의 짐을 주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그대의 염려를 그대 안에 가두지 말라. 염려는 그대가 안고 있으면 있을수록 더 커진다. 그것을 하나님께 내던질 때, 비로소 그것은 작아진다.”고 말했습니다.
맡김은 포기가 아니라, 신뢰입니다. 누군가에게 짐을 맡긴다는 것은 전적인 ‘신뢰’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염려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염려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하나님을 끌어내리고, 자신이 그 자리에 앉아 내 인생의 통치자가 되려는 교만한 죄”라고 말했습니다.
염려와 걱정은 믿음의 반대편에 있습니다. 염려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행위이며, 하나님의 약속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과감하게 던져 버리지 못하는 것은 쥐고 있는 것을 아까워하거나, 내 방식에 애착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쓸데없고, 해로운 염려와 걱정을 과감히 던져버리십시오. 빈손이 되어야,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것을 놓아야, 하나님을 붙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무거운 짐을 다 던져버릴 수 있습니까? 베드로는 그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둘째, 하나님이 돌보시기 때문에 맡길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돌보신다”는 말은 단순한 관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밀하게 살피시고, 책임져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돌보심”이란 단어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의 심장에 품고 계신다”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단순히 우리의 존재를 아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우리의 상황을, 우리의 고통을 다 아십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우리는 수많은 군중 속의 하나가 아니라, 오직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다스리시면서도, 한 사람의 눈물 한 방울도 잊지 않으시고, 한 숨 한 번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하늘의 별을 움직이실 뿐만 아니라, 참새 한 마리의 떨어짐까지 주관하시는 섬세한 아버지의 돌보심입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을 때, 우리는 비로소 염려를 주님께 다 맡길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염려를 받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 이제 날마다 돌보십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우리가 잠든 밤에도, 하나님은 깨어 계십니다. 우리가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새 길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문이 닫혔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은 다른 문을 열고 계십니다. 우리는 미래를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 우리는 내일을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영원을 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염려는 미래를 모르는 인간이 하는 것이고, 믿음은 미래를 아시는 하나님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맡기는 것입니다.
고아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지 뮬러는 수천 명의 고아를 돌보면서도, 사람들에게 후원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아침 고아원에 먹을 것이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뮬러는 아이들을 식탁에 앉히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실 줄 믿습니다.”
기도가 끝나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빵집 주인이 나타나 말했습니다.
“새벽부터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빵을 가져오라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 후, 우유 배달 마차가 고장 나면서, 우유를 모두 기증하게 되었습니다.
뮬러는 “염려는 내일의 슬픔을 없애지 못하고 오늘의 힘만 빼앗아 간다.”고 말했습니다.
염려하면, 슬픔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있던 힘마저도 빠지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음으로, 모든 염려를 주님께 다 맡겨 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염려를 맡기는 가장 큰 영역은 죄의 짐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맡겨야 할 가장 근본적이고 무거운 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돈의 문제도, 건강의 문제도 아닙니다. 바로 “죄의 짐”입니다. 삶의 염려와 걱정도 무겁지만, 죄의 짐은 더욱 무겁습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보면, 주인공 크리스천의 등에 커다란 죄의 짐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가 스스로의 힘으로 도덕과 율법의 산을 오를 때는 짐이 더 무거워져,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갈보리 언덕 십자가 앞에 서는 순간, 그 무거운 짐이 등에서 툭 떨어져, 무덤 속으로 굴러 들어갔습니다. 번연은 그 순간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크리스천의 짐이 어깨에서 미끄러져 내려가더니 굴러굴러 무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크리스천은 다시는 그 짐을 보지 못했다.”
베드로가 왜 물고기를 잔뜩 잡고도, 예수님 발앞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라고 고백했을까요? 그 순간은 만선의 기쁨이 절정에 달했을 바로 그때였습니다. 왜 하필 그 순간에,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했을까요?
바울이 왜 수많은 복음 사역을 감당하고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라고 몸부림쳤을까요? 수많은 고난과 죽음의 위기를 넘겼던 그가 왜 이렇게 고백했을까요?
베드로와 바울,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 본연의 가장 깊은 절망,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죄인의 짐은 온 우주의 무게보다 더 무겁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내 죄의 짐이 얼마나 크고 무거우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을 믿고, 주님께 맡기느냐?”입니다.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에서, 우리의 모든 죄의 짐, 율법의 저주, 삶의 질고를 홀로 다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져야 하는 죄의 짐을 대신 지셨습니다. 십자가는 죄인들이 짐을 내려놓는 자리입니다. 죄를 숨기는 사람은 힘들게 살아가지만, 죄를 주님께 맡기는 사람은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그 죄의 짐을 홀로 지고, 괴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의 짐을 진 모든 영혼의 안식처입니다. 그 앞에 나아오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짐을 내려놓고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죄의 짐을 품고 있는 한, 인간의 마음은 결코 쉴 수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 앞에서, 그 짐을 예수님께 내려 놓을 때, 비로소 참된 쉼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넷째, 맡긴 사람은 평안을 누립니다.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쓸 때, 그는 로마의 차가운 감옥에 갇혀, 언제 사형 당할지 모르는 처지였습니다. 환경만 보면, 근심과 절망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기뻐했습니다. 왜입니까? 상황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입니다.
염려와 기도는 같은 마음에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염려가 커지면 기도가 작아지고, 기도가 커지면 염려가 작아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짐을 옮겨 드리는 작업입니다. 바울은 기도를 통해 염려를 감사로 바꾸었습니다. 염려로 밤을 지새우는 대신, 기도로 밤을 채웠습니다. 바울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감옥 안에서 기도하고 찬송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건강의 짐입니까? 자녀의 짐입니까? 경제적인 짐입니까? 관계의 짐입니까? 죄의 짐입니까? 주님은 오늘도, “너희 염려를 다 내께 맡기라 이는 내가 너희를 돌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께서, 우리의 인생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손에 붙들린 염려를 내려놓고, 주님의 손을 붙잡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염려 대신 기도를 선택하고, 두려움 대신 믿음을 선택하며, 걱정 대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염려를 주님께 맡기십시오. “맡기라”는 것은 소심하게 올려두는 것이 아니라, 힘있게 내던지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짐을 끌어안고 힘들게 살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돌보심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아시고, 세심하게, 친밀하게 돌보고 계십니다.
죄의 짐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의 죄의 짐을 대신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더 이상 죄의 짐을 혼자 지고 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겸손히 하나님 앞에 서고, 우리의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서 있을 때,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 우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고, 굳건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터를 견고하게 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는 이 말씀이 우리 마음에 깊이 새겨져서, 오늘 이 자리를 떠나실 때, 여러분의 모든 염려와 죄의 짐을 주님 앞에 내던지고, 홀가분한 발걸음으로, 주님이 예비하신 참된 평안과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는 맡긴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염려를 붙들고 살아왔습니다. 내 힘으로 해결하려 하고, 내 지혜로 감당하려 하며, 내 계획을 의지했던 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두려움과 불안과 걱정을 주님의 십자가 아래 내려놓게 하옵소서. 가정의 문제, 자녀의 미래, 건강의 문제, 경제적인 어려움, 사람으로 인한 상처도 맡깁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죄의 짐을 주님께 맡깁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어 주시고, 정결한 마음과 새 영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신다는 사실을 날마다 경험하게 하시고, 폭풍 같은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염려 대신 기도하게 하시고, 불안 대신 감사하게 하시고, 두려움 대신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고, 넘어질 때 붙드시며, 눈물 흘릴 때 위로하시는 주님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날마다 우리를 돌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