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하나님의 가족들이 사는 길
성경 누가복음 8장 19-21절
찬송 218장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이렇게 네 개 주셨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고백하는 대로 복음은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소식이며 선포입니다. 이 복음을 담아 증거하고 선포하는 책이 복음서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가를 선포하고 증거합니다. 이점에서는 네 개의 복음서가 똑같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조금씩 다릅니다.
왜 같은 복음을 증거하는데 복음서마다 내용이 서로 다른가? 이것이 우리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 복음의 내용을 풍성하게 하셨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에게 하나의 복음서만 있는 것이 좋을까요? 네 개의 복음서가 있는 것이 좋을까요? 두 말할 필요 없이 네 개의 복음서가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왜요? 이를 통해 우리는 풍성하하고 정확하게 복음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의 복음서가 아니라 네 개의 복음서를 주셨으므로, 우리는 같은 사건과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여러 복음서를 항상 비교해서 읽고 들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더욱 분명하고 풍성하게 복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님들은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는 해석 원리를 따라 항상 성경을 읽고 들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성경을 읽을 때는 관련된 다른 성경 구절을 함께 읽으므로 그 뜻을 바로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해석의 원리를 따라 오늘 우리는 누가복음을 읽습니다. 누가복음를 읽되 마태, 마가, 요한복음과 함께 읽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 말씀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가 그냥 하나의 에피소드로 읽고 지나가기 쉬운 이 사건(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사건)을 마태, 마가, 누가복음이 다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을 세 개의 복음서에 담아 놓으신 것을 보니 이 말씀을 매우 강조하고 싶으셨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하면서 강조하고 싶으셨던 진리, 복음이 무엇일까?
그럼 함께 말씀을 들어볼까요? 우리가 함께 읽고 있는 누가복음은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마가복음보다 훨씬 간략하고 단순합니다. 누가복음에 비해 마가복음이 훨씬 더 자세하고 생생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가복음을 중심으로 누가복음을 읽으려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방에 앉아 계십니다. 그때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찾아왔습니다. 찾아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자기들이 왔음을 알립니다.(누가복음은 이 말씀을 생략합니다.) 멀리서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왔으니,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을 것 같습니까? 당연히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이하여 안으로 모셨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기대하는 이런 모습과 달리 예수님께서는 뜻밖의 행동을 보이셨습니다. 이 일을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이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볼까요?
그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둘러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3:31-35)
예수의 어머니와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로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어떤 이가 알리되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눅8:19-21)
우리의 상식을 따르면 예수님의 이런 행동과 말씀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말씀하고 행동하셨을까요? 기억하십시오. 항상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상식과 다른 행동과 말씀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드러내고 선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드러내고 선포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죄로 오염되고 부패하여 타락한 이 세상의 질서와 완전히 다릅니다. 때문에 누가 하나님 나라의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말할 때, 삼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자기가 가진 상식이나 경험을 따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판단하는 순간, 하나님 나라의 권세와 능력과 영광은 그와 아무 상관이 없게 됩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관심은 어디에 집중되어 있습니까? 나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나와 더불어 혈과 육을 나눈 네 부모와 자녀, 그리고 내 형제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우리는 누구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며 도와주려 합니까? 혈연(血緣), 학연(學緣), 지연(地緣) 등으로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은 이런 사사로운 관계들로 똘똘 뭉쳐 패거리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온갖 부정과 부패를 저지릅니다. 이런 모습이 이 세상의 모습이며, 우리가 속해 있는 한국사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가져오신 하나님 나라는 이와 같은 세상 나라와 전혀 다른 나라입니다. 두 말할 필요 없이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부모 형제를 너무너무 사랑하십니다. 당신과 피를 나눈 부모와 형제이기 때문에, 다른 누구보다 더 사랑하고 공경하십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결단코 혈연(血緣)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가족과 혈연관계를 위해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행하실 수 없습니다. 가족과 혈연이 아무리 소중해도 하나님 말씀보다 앞설 수는 없으니까요. 또 가족과 혈연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칠 수 없습니다. 혈연이나, 지연이나, 학연을 떠나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순종하는 사람들은 다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형제와 자매입니다. 곧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교회를 돌아보십시오. 혹시 우리 교회 안에도 학연이나 지연, 혈연으로 똘똘 뭉친 패거리들이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너무너무 심각한 상태입니다. 하루빨리 회개하고 그 모든 악한 자리에서 떠나야 합니다.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회개하며 기도합시다. 함께 뜻을 모아 바른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도록 합시다. 이와 반대로 우리 교회는 한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하나님의 가족입니까? 우리 교회 식구 모두가 형제요, 자매입니까? 힘써 감사하십시오. 참으로 영광스럽고 복스러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서 들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따라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가족질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직접 들어보실까요?
둘러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3:34-3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눅8:21)
아멘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사람들을 특별한 관계로 맺어주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본받아 행하는 일입니다. 오직 그것뿐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지만 이 말씀을 들을 때, 우리 마음에 의문이 생깁니다.
이렇게 말씀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성경은 행함보다 믿음을 강조하잖아. 행함보다 믿음이 먼저 아니야?
제가 구차하게 설명해 드리지 않아도 여러분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계십니다. 행함에는 믿음이 이미 전제되어 있습니다. 바른 믿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올바른 행함에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반대로 그의 삶 속에 바른 행함이 보이지 않으면 그에게 올바른 믿음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행함과 믿음, 믿음과 행함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이 진리를 선포하는 말씀을 들어볼까요?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1:12-13)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약2:17–22)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3:35)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눅8:21)
누구든지 하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가 믿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야말로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왜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은 그가 믿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을 즐거워합니까?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하나님이시며 자기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도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자기 아버지이시며 자기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성경은 그렇게 많이 행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눅11:28)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7)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에 대한 이런 말씀을 들으면 우리 마음속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담감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런 부담감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못하게 방해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런 부담감은 우리 안에 있는 죄가 주는 부담감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일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사는 일은 결코 성도에게 부담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된 기쁨의 근원입니다. 다음과 같은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시고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행복한 삶의 길로 나아가십시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15:10-11)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눅11:27–28)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 영광스러운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행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복되고 아름답습니까? 이 세상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주는 참 기쁨과 평안 가운데 사는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의 삶은 얼마나 풍성하고 넉넉하고 아름답습니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아버지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가족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