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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6:12-24. 여호와는 평강이라. 여호와 샬롬!!! 2026. 2. 1.
본문의 배경과 내용입니다. 6:1.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7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 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에 의하여 이스라엘의 사사로 부름을 받았을 때, 이스라엘은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사람들의 속박아래에 있었습니다. 이처럼 죄악이 있는 곳에 평안이 없습니다. 사57:20-21에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습니다. 그래서 속박아래에서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6:2-6.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 먹을 것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 메뚜기 떼 같이 많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낙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만들어서 지냈습니다. 파종할 때면 소산을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먹을 것을 남겨 두지 않았습니다. 양과 소와 나귀도 남겨 두지 않고 약탈을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사람과 낙타도 메뚜기 떼 같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오죽하면 17절 하 반절에 기드온이 몰래 밀을 수확하여 포도즙 틀에서 타작을 했을까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비참한 삶과 현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조금의 평강과 평안이 없었습니다. 그저 눈물과 한숨과 걱정과 불안뿐이었습니다. 내일과 미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비참한 상황을 감찰하시고 보신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기드온을 사사로 세웠습니다. 방법은 하나님의 사자를 기드온에게 보내어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이 난관을 극복하고 풀 사람으로는 너 기드온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자기 앞에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가 정말 하나님이 보내셨는지, 또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고 일하신다는 말이 사실인지 의심을 하였습니다. 13절의 내용은, 그렇다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지금의 이 상황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말이 되십니까? 더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고, 천배나 더하게 하시며, 쌓지 않은 성과 짓지 않은 집과 모아들이지 않은 각종 아름다운 것과 심지도 아니하고 뿌리지도 아니한 열매와 소출을 주셨던 이전의 은혜는 어디에 있습니까? 각양의 대적을 막아주시고 승리를 주셨던 그 능력은 어디로 갔습니까? 14절. 직접 여호와께서 기드온을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그래서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직접 4가지를 말씀하시는데 첫 번째는 너는 가서, 두 번째는 너의 힘으로, 세 번째는 이 난관을 타개하라, 마지막으로 그래서 너를 지명하여 보낸 것이 아니냐?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에게도 너는 가서, 너의 힘으로, 2026년의 문제를 풀어라. 그래서 너희를 2026년의 시간과 공간 속에 보낸 것이 아니냐? 이렇게 말씀하시는 줄을 믿습니다. 그럼에도 기드온은 15-16. 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입니다. 여호와께서 다시 직접 나타나셔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앞의 4가지를 직접 주셨으면 아멘 하고 순종만 하면 되는데, 4가지의 내용이 기드온 자신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너의 힘으로라는 그 순간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기드온의 현실이, 지금의 모습은 밀 타작을 포도즙 틀에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최상급을 붙여서 부정합니다. 4가지의 사역을 못하겠다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다시 반드시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그 강성 미디안을 한 사람을 치듯 간단하게 물리칠 수 있게 하시겠다는 반드시와 한 사람 치듯 하는 그런 최상급의 표현으로 말씀합니다. 그때서야 기드온이 주의 은혜를 입었으면, 그 말씀하신 분이 주 되심을 믿게 하옵소서. 그러면서 여호와의 사자에게 표징을 구합니다. 19-21절. 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전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서,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전병을 가져 이 반석위에 두고 그 위에 국을 쏟으라.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전병에 대매,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여호와의 사자가 보여 준 표징을 직접 목격한 기드온은 비로소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구원하여 평강의 삶을 이어가게 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하지만 기드온 여호와의 사자, 곧 하나님을 대면했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몹시 불안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문화는 죄인인 사람은 하나님을 직접 볼 수도 없고, 부를 수도 없었습니다. 아도나이, 나의 주여, 이런 표현으로만 하나님을 뵙고,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사6:5. 그 때에 이사야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이사야 선지자도 환상 중에 하나님을 본 이후에 불안했습니다. 죽는 줄로 알았습니다. 기드온도 마찬가지로 22절.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고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두렵고 불안하고 죽는 줄 알았습니다. 23절.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는 평강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표징을 위해 제물로 올려놓았던 그 반석 위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샬롬, 여호와는 평강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배경과 내용입니다. 무엇을 말씀하시나요?
1. 평강의 본질과 기초와 종류입니다.
1-1. 평강의 본질입니다. 빌4:6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평강의 본질입니다. 여러분, 지금 세상의 모든 이슈는 AI와 관세입니다. 트럼프를 비롯한 미국과 세계가 왜 이런 이슈에 집중을 합니까? 왜 싸우고 전쟁을 하고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침범합니까? 왜 이렇게 시끄럽습니까? 그들이 다 같이 구하고 찾는 것이 무엇입니까? 궁극적으로는 그들만의 평화와 평안을 위해서 그렇습니다. 사업을 통하여 돈을 많이 축적하려는 것도 그들만의 평안을 위해서 그렇습니다. 왜 정치권이 시끌벅적 합니까? 권력을 통해서 그들만의 평안을 위한 것입니다. 머리를 싸매고 잠을 설치며 열심히 공부하는 것과 좋은 학교를 선망하는 것과 좋은 직장을 원하는 것도 실은 안정되게 평안히 살아보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목표를 이루어 간다고 평안하실까요? 권력을 손에 쥐고 세상을 흔들면 평안합니까? 공부 많이 해서 학위 받고 안정된 직장을 얻으면 평안합니까? 다 누려보고 만진바 되어도 바라는 원하는 진정한 평안이 없습니다. 평안을 원하지만 또다시 딜레마에 빠집니다. 요14:27.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여러분, 세상이 주는 평안이 있고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잠시 잠깐입니다. 지속적이지 않습니다. 잘못하면 평안이 아니라 음부의 권세 아래에 놓입니다. 참 평안이 아닙니다. 돈이 많고 권력이 크면 많고 클수록 불안합니다. 왜요? 넘어뜨리려는 악한 마귀와 사탄의 권세가 우는 사자와 같이 덤벼들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고의 권력자의 자리가 평안한 줄 아십니까? 중국, 북경에 있는 자금성의 왕의 침실은 한 방에 동과 서로 침상이 둘입니다. 안전한 궁중인데도 왕이 어느 침상에서 잠을 자는지 모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한국은 안가(安家)라는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왜요?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용산이나 청와대는 평안합니까? 여러분, 권력에 평안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하고 세계를 지배하려다 워털루 전투에서 패한 뒤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입니다. 세계를 제패했던 영웅이었지만, 죄인의 몸이 되었기 때문에 좀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한 기자가 어렵게 나폴레옹을 인터뷰를 했는데, 지난날을 회상할 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이었습니까? 나폴레옹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눈물을 흘렸습니다. 스위스의 알프스 산맥을 넘을 때이었지!!! 잠시 전투가 그친 어느 주일 아침이었는데 산 아래 조그만 교회에서 종소리가 울려왔지!!! 그 소리에 이끌려 교회로 들어갔다네. 나는 그때 눈물을 흘리며 인생 최고의 행복을 맛보았다네. 여러분, 천하의 나폴레옹도 하나님의 집에서 안식을 찾았습니다. 탕자같이 방황했던 어거스틴은 그의 참회록 첫 페이지에서 하나님, 내가 당신 품안에 돌아오기 전까지는 참된 안식이 없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하나님 품안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평안을 맛볼 수 있습니다.
1-2. 평강의 기초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골1:20절.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인간에게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오는 근원적인 이유는 바로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오는 죽음과 그 이후의 심판에 대한 공포 때문에 불안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않고는 근원적인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인류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담을 제거하시고,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회복하고 그로 인하여 죽음과 심판의 공포에서 해방이 됩니다. 근원적인 두려움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요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러한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불안정한 평안이 아닙니다. 어떤 고난과 고통과 문제도 흔들 수 없는 안전하고도 영원한 평안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어떠한 평안입니까? 모든 환경을 초월해서 누릴 수 있는 평안입니다. 초대 교부 크리소스톰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포기하라는 로마 황제의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황제의 명령을 듣지 않아 체포되었습니다. 그놈을 독방에 처넣어라. 아니 되옵니다. 기독교인들은 독방을 더 좋아 합니다. 왜? 조용한 기도실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잔인무도한 악당들이 있는 곳에 집어넣어라. 그것은 더욱더 아니 되옵니다. 악당들을 전도하여 기독교인으로 만들 것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끌어내어 목을 쳐라. 폐하! 그것은 더 아니 되 옵니다. 왜 그것도 안 된단 말이냐? 기독교인들은 순교를 최상의 영광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순교할 때 울지도 않고, 오히려 얼굴에서 광채가 납니다. 어떠한 상황에 메이지 않습니다. 조건이 없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삶입니다. 모든 환경과 여건과 상황을 초월할 수 있는 참된 평강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이후의 예수님의 첫마디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모든 불안과 근심과 걱정을 일소에 해소하시는 평강입니다.
1-3. 평안의 부류입니다. 십자가인데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평안입니다. 죄인에서 의인의 반열에 세워진 평안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과 거룩한 나라와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살아가는 평안입니다. 하늘과 땅이 연결되는 평안입니다. 두 번째는 내 마음의 평안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한 사람에게는 내적인 깊은 마음의 평안이 있습니다. 이 평안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평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으로도 빼앗을 수 없는 지각에 뛰어난 평안이기 때문에 이웃과의 평안이 됩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하고, 내적으로 깊은 하나님의 평안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이웃과 더불어 화평하게 됩니다. 싸움이 있는 곳에 화평을 심는 십자가의 중심입니다. 그러니까? 크로스의 중심에 내가 있고 그 위로와 아래로는 하나님이 나를 이어주고 그리고 좌우로 이웃과 연결이 되는 평안입니다.
2. 부르심에 대한 문제제기입니다. 문제제기는 신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문제해결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순종으로 영적인 해결이 되면 삶과 육체와 환경의 문제까지 해결됩니다. 16-17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내가 너와 함께 할테니 미디안을 치라 네가 이기리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신중했습니다. 정말 말씀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 표징은 고기와 무교병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 놓고 그 위에 국을 붓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바위에서 불이 나와 고기와 무교병을 태웠습니다. 이 일로 기드온은 지금 자기에게 말씀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확인했고,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한 번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삿 6:36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습니다. 기드온이 사람을 보내어 군사를 소집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미디안과 싸우라 명하셨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약속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면 공격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기드온은 다시 한 번 하나님께 표징을 구합니다. 왜요? 이 싸움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자기가 승리할 것이라는 확증을 받기 위함입니다.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둘테니 하나님께서 이슬이 이 양털 뭉치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제 되지 않았을까요? 39절.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 하리이다. 구 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또 다시 하나님께 표징을 구하는데 반대로 양털만 마르고 주변 땅에 이슬이 가득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요구한 표징대로 되었습니다. 그 때에 기드온은 군사들을 이끌고 미디안을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여러분, 기드온이 의심이 많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아멘하고 순종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반복하여 표징을 구하며 확인을 합니까? 믿음의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태도를 책망하시거나 문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요청을 매번 들어주셨습니다. 이런 태도를 존중해 주셨습니다. 왜요? 기드온의 신앙적 태도를 의심하는 것으로 보시지 않고 신중한 태도로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서 신중해야 합니다. 자칫 욕심과 사탄의 미혹이 하나님의 뜻이라 착각하지 않고 미혹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말씀의 표징입니다. 설교를 들을 때,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주시며 내가 구하는 하나님의 뜻을 확인시켜주십니다. 또 하나는 마음속의 표징입니다. 그 것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심령과 마음속에 평안을 주시고, 담대함을 주실 경우입니다. 그런가하면 환경을 통한 표징이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지 못한 일을 겪을 때, 그리고 뜻밖의 사람을 만나며 대화를 나누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깨달음을 주실 경우와 때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고 언약한지 24년 만에 나타난 3사람의 나그네입니다. 그 것도 정오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자상하고 세밀하고 민감하게 대응을 했습니다. 그래서 웃음과 같은 이삭을 잉태하게 되고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의 비밀을 깨닫게 됩니다. 조카 롯을 그곳에서 끄집어 내어오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콜링에 대한 순종도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영적으로 민감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32000명의 용사들을 뒤로하고 하나님께서 이끄시고 선택한 300명으로 미디안돠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의 미래를 열어 갔습니다.
3. 영적 담대함입니다. 삿7:1절.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이라고 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영적 담대함의 사람 기드온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전쟁은 담대함의 승리가 될 것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이 전쟁이 어떻게 됩니까? 미디안의 병력은 13만 5천명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병력은 300명입니다. 450대 1의 전쟁입니다. 미디안 군사들은 당시 막강한 전투장비로 무장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군사들은 전투 장비가 아니고, 항아리와 횃불과 나팔입니다. 이런 현실 앞에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들은 어떻습니까? 돌아가 22000명과 또 9700명이 눈여겨봅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말이 됩니까? 게임이나 되겠습니까? 상황과 현실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심을 믿었고 미디안을 자기 손에 넘겨주셨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 때문에 영적 담대함이 있었습니다. 이 영적 담대함으로 결국 미디안을 물리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적 사건에서는 양과 질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수와 장비의 성능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믿음과 담대함이 중요합니다. 환경과 상황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영적 담대함이 중요합니다.
스코틀랜드를 영적으로 개혁한 종교개혁자, 죤낙스가 있습니다. 일생동안 수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프랑스군에 체포되어 1년 7개월 동안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그리고 영국의 여왕 메리 1세에게 극심한 박해를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영적 담대함으로 마침내 자기의 조국을 믿음으로 지켜냈고, 성공적으로 종교개혁을 이루어냈습니다. 죤낙스를 박해했던 영국 여왕 메리 1세는, 존 낙스의 기도는 100만 명의 군대보다 더 두렵다고 했습니다. 존 낙스가 세상을 떠난 후 장례식 장에서 당시 스코틀랜드의 섭정이었던 모튼이, 여기에 이 세상에 그 어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한 사람 낙스가 누워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영적 담대함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여룹바알이라 불리던 기드온처럼,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한 사람이라고 불리던 낙스처럼 영적 담대함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어떻습니까?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십니까?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그 어떤 상황도, 심지어 사탄 마귀까지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6년을 살아가면서 변화무쌍한 현실이 도래할 수 있습니다. 알지지 못하는 소식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문제 앞에서 산과 굴과 웅덩이라도 들어가야만 하는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여호와 살롬의 평안이 넘치시고 그리고 때마다 부르시는 콜링에 민감한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고 결국에는 웃음과 같은 역사를 만드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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