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방어선의 붕괴
한국군 제1사단은 26일 밤까지 북한군의 남하를 효과적으로 저지하고 있었다. 병력도 적고, 무기도 빈약했지만, 파평산에서 저지하고, 임진강철교 부근에서 저지하고 있었다. 적군의 반복된 공격을 번번이 막아내고 있었다.
그러자 후방에서 병사들이 모여들었다. 누구였을까? 휴가 나갔던 장병들로 짐작된다. 그 덕분에, 980명에 불과했던 연대 병력이, 1,500명으로 증가했다.
내가 입학할 때쯤이었다. 우리 동네에는 입대하지 않으려고 도망 다닌 청년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분들은 자발적으로 복귀했다. 포연이 자욱한 전쟁터로 달려왔다. 이분들은 무명용사다.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려고 한달음에 달려든 무명용사다. 러시아의 무명용사 묘에 새겨진 문구로 이분들의 희생을 기린다.
“그대의 이름은 불명(不明)이나, 그대의 공적은 불멸(不滅)이다.”
비록 훈련이 미흡한 오합지졸이었지만, 부대의 전투력은 대폭 증강되었다. 사단장 백선엽 대령은 주 저항선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반격의 기회로 삼으려 했다. 전투 상황을 전환하고자 계획했다.
그러나 한국군 제7사단이, 덕정(德亭) - 축석령(祝石嶺)선으로 철수했다. 북한군은 멈추지 않고 가여울 - 적성리로 진출했다. 그리고 한국군 제1사단의 주 저항선을 공격했다. 노출되어, 아무런 저항도 없는 제1사단의 우 측방을 공격했다.
한국군이 시도한 임진강철교 폭파 작전이 실패했다. 그 소식이 알려지자, 북한군 제6사단이 문산 돌출부에 전차 5대를 투입했다. 보병·전차·포병 협동부대를 편성하여 일제히 공격해왔다.
이와 맞선 한국군 제1사단 제11연대는, 임진강철교 남쪽 방어지대에서 완강히 저항했다. 그러나 한국군에는 북한군 전차와 대결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과 방법이 없다. 부득이 문산 남쪽 구릉지대로 철수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한국군에게 불리해졌다. 그때 문산 북쪽까지 진출한 북한군이 공격을 잠시 멈추었다. 후속 부대를 기다린 것이다.
역습의 호기라 판단한 제11연대장이 공격을 감행했다. 배속된 보병학교 교도대대를 포함하여, 3개 대대를 동시에 투입했다. 그 결과 지역 내 적군을 임진강철교 북쪽으로 격퇴하고, 주 저항선을 회복했다.
그 무렵 제13연대가 방어하고 있는, 파평산 진지가 무너졌다.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 제1사단의 주공이, 320번 도로를 따라 서진하면서, 문산리를 위협했다.
6월 27일(화), 사단장 백선엽 대령은, 최후 저지선으로 철수하여, 마지막 결전을 펼치려 계획했다. 야간을 이용하여 철수하고, 반격의 기회로 삼으료 했다.
그때, 북한군의 거센 압박으로, 한국군의 위급한 국면이 전개되었다. 전투 진지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나타났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 사단장은 철수 명령을 내리고, 사단은 전술지휘소를 봉일천국민학교로 이동 설치했다.
이로써 제1사딘의 임진강 방어진지가 완전 붕괴되었다.
이상 개성-문산 전투가 시작되어 제1사단의 임진강방어진지가 붕괴되기까지, 그 전투 과정을 날짜별로 정리한다.
6월 25일(일), 새벽 4시 북한군 제6사단이 남침을 시작했다. 소련제 전차 등 막강한 화력을 앞세우고 남침을 강행했다.
한국군 제1사단 제12연대와 제13연대가 개성 지역을 방비하고 있었지만, 장병의 1/3이 휴가 중이었고, 나머지 1/3도 외출 중이었다. 한국군은, 속수무책 남쪽으로 밀려났다.
오전에 개성을 점령한 북한군이, 오후에 임진강철교 부근까지 내려왔다.
한국군은 임진강철교 폭파 작전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에 북한군이 개미 떼처럼 몰려왔다.
6월 26일(월), 한국군은 저들의 남하를 저지하려고 공방전을 벌였다. 파평산에서 벌였고, 임진강철교 부근에서 벌였다.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6월 27일(화), 문산 전투에서 한국군의 임진강 방어진지가 붕괴되었다.
한편, 한순화 소령이 이끄는 제12연대 2대대는, 개성에서 철수한 후 문산리로 가지 않고, 한강을 건너 김포반도 북부에 있는 통진으로 철수했다.
북한군 제6사단이 이들을 추격하여 김포반도로 상륙했다. 일부는 강화도 방면에서 상륙하고, 다른 일부는 한강을 도하 하여 상륙했다.
이보다 먼저 북한군 전투기가 김포비행장을 공격했다. 이로써 김포반도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남하하려는 북한군과 이를 저지하려는 한국군 사에에 벌어진 전투이다.
한국군은 급하게 김포지구전투사령부를 편성하여 대항했다. 김포비행장에서 대항하였고, 경인가도에서 대항하였으며, 오류동 지역에서도 대항하였다. 6월 26일부터 7월 3일까지 무려 8일 동안 이어진, 이 전투를 김포반도 전투라고 한다.
그 자세한 내용은 김포반도 전투 편에서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