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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관사상(中觀思想) >
중관철학은 용수(龍樹, 나가르주나/Nagarjuna, 150경~250경)로부터 시작돼,
유식학파와 더불어 인도 대승불교의 양대 산맥을 형성했다.
용수는 불교의 궁극적 진리를 중도(中道)로 봤으며,
그렇게 중도로 보는 것을 중관(中觀, skt. Madhyamika)이라 해서,
중관학(中觀學) 혹은 반야중관학(般若中觀學)이라 한다.
그리고 중관사상이란 용수의 대표적인 저술인 <중송(中頌)>을 중심으로 한 사상으로서
<반야경>에 나타나는 공사상의 이론적 체계를 수립한 것이다.
즉, <반야경>의 공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시킨 사람이 바로 용수(龍樹)이다.
초기불교의 연기설에서는,
현상세계는 연기의 이법(理法)에 따라 생기거나 사멸하거나 하는
개물(個物)의 집합에 지나지 않지만,
연기이법 자체는 불변의 법칙(달마)으로 전제돼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용수는 연기이법 자체도 본질적으로는 공(空)이라고 비판했다.
즉, 사물이 존재한다(有)고 하는 판단도, 사물이 존재하지 않는다(無)는 판단도,
모두 「연기(緣起)=공(空)」의 입장에서는 부정되는 것이며,
이런 존재론적인 유와 무 두 견해를 끝없이 부정해가는 바에 참된 중도가 있다고 했다.
결국 중관학은 철학적으로 왜 이 몸과 정신이 연기이고, 공(空)인지를 밝혀놓은 학문이다.
중관사상은 용수의 제자인 제바(提婆, Arya-deva, 170년~270경)에 의해
<백론(百論)이 발표되고, 그 후 청목(靑目/Piṅgala, 4세기 전반)에 의해
<중송>을 해석한 <중론(中論)>이 발표됨으로써 중관학의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이 청목(靑目)이 지은 <중론> 속에 <중송>이 모두 포함돼 있으므로
<중송>을 <중론>이라고도 하며, 따라서 <중론>의 저자를 용수라고도 한다.
그래서 용수의 저서를 중송(中頌)이라 했다가 중론(中論)이라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관학파의 성립은 그 후 청변(淸辨, Bhāvaviveka, 500~578) 등에 의해서 확립됐다고 본다.
중관사상은 인간의 언어논리의 진실성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인간은 언어논리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인간 간의 교감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부처님도 언어논리에 의존함이 없이는 설법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언어가 없었다면 부처님 가르침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깨달음이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수단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인간의 언어논리에 의한 사물의 변별은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궁극적인 목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수단임이 틀림없다.
이와 같은 수단으로서의 지식을 갖는 것을 방편지(方便智)라고 한다.
그러므로 방편지 없이 깨달음의 길로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불교교학의 중요성이 있다.
인간의 언어논리에 의한 판별은 깨달음의 수단은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궁극적인 진리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단지 인간의 언어논리에 의해서는
궁극적인 진리를 증득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중관사상이다.
그리고 중관사상에서는 궁극적인 깨달음의 수단으로 반야지(般若智)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용수는 <중론> 속에 공사상의 이론적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중론> 제24장 18게에서
「무릇 연기하고 있는 것, 그것을 우리들은 공성(空性)이라 설한다.
그것은 임의로 시설되어진 가명(假名)이며,
그것은 중도(中道) 그 자체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게송에서 볼 수 있듯이, 용수는 <반야경>에서 공이라고 설했던 것은
그것이 바로 연기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임을 명확히 밝힘으로써
공사상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곧 우리가 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실제는 모든 사물이 각기 독자적인 존재의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인 연기의 관계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기의 관계로 이루어진 까닭에 연기의 관계를 떠나있는 독자적인 성질로서
자성(自性)이나 실체(實體)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용수는 이러한 연기의 인연관계를 떠나 있는 것을 자성(自性)이라고 부르고,
따라서 자성이란 존재하지 않는 까닭에 「무자성(無自性) ― 공」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만약 사물이 연기적인 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독자적인 실체인 자성에 의해 생긴다고 한다면,
그 때는 자성이 서로 연기한다는 모순이 될 것이라고 설했다.
곧 자성(自性)이란 인(因)과 연(緣)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자립적인 것이며,
또한 다른 것에 의존하는 일없는 항상 고정불변한 존재이지만
실제로 그와 같은 것은 생겨날 수도 있을 수도 없음을 용수는 지적하고 있다.
곧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因)과 연(緣)의 상호관계로 생겨나는 것이고,
따라서 그와 같은 것은 곧 자성이 없는 까닭에 공(空)인 것이다.
이처럼 용수가 고정불변한 자성의 개념을 부정한 것은
그 자성의 관념이 우리 인간들의 망상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론>은 그와 같은 불변적인 성질로서 자성이란 존재하지 않고
그 자성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가 우리 삶의 세계가 연기의 이치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중론>이 이처럼 연기법을 바탕으로 「무자성 ― 공」에 대한 논리를 수립해
<반야경>의 공관에 대한 이론적인 체계를 세우고 있지만,
이러한 이론적 체계에 무엇보다 중요한 관점을 용수는 이제설(二諦說)의 정립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제(二諦)에 대한 교설은 공에 대한 이해와 직접적인 관계를 보이는 것은 물론,
동시에 용수 이후 <중론>의 주석가들 사이에서 그 견해 차이로 인해
중관파가 둘로 나뉠 정도로 중요한 쟁점이 됐던 교설이기도 하다.
용수의 반대자는 <중론> 제24장에서 말했듯이 만약 일체가 공이라면
사성제, 사향사과(四向四果), 삼보(三寶) 등의 일체도 공해
모두가 그 의미를 잃게 될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용수는 그 반대자가 공용(空用), 공성(空性), 공의(空意)에 대해 무지한 까닭에
그와 같이 스스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한 뒤 이제설(二諦說)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제(二諦)란 세속제(世俗諦)와 제일의제(第一義諦)를 말한다.
세속제(世俗諦)와 제일의제(第一義諦)의 2제에 대한 바른 이해는
진실한 뜻을 아는 관건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에 대한 본격적 논의는 용수 이후 <중론>의 주석가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나아가 용수는 ‘연기와 공성을 파괴한다면 세간의 일체 언어습관을 파괴하는 것이 된다’라고 해서
연기와 공의 이치야말로 세간을 성립시키는 근본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용수는 <중론>에서 <반야경>에 나타나는 공관을 연기설과 같은 위치에 놓음으로써
공관을 이론적으로 해명하고 대승불교의 역사적 위상을 확립시켰다고 하겠다.
이로 인해 <반야경>으로 대표되는 대승불교는 역사적으로
그 연원이 불타에게 유래됐음을 분명히 하고,
아울러 대승불교의 역사적 의미를 더욱 공고히 했다.
훗날 세친(世親)의 유식에서는
제8식이 전변(轉變)해 청정무구한 깨달음에 이른다고 하지만,
<반야심경>에서는 오히려 모든 마음의 움직임과 실체를 공(空)하다 하니,
잘 살피면 유식과는 오히려 상반되는 것이다.
곧 용수가 중론에서 말한 연기와 공의 개념이 붓다 가르침에 더 잘 맞는다는 말이 된다.
― 중관사상(中觀思想)과 유식사상(唯識思想) ―
붓다 입멸 후 용수(龍樹, Nigarjuna)와 같은 걸출한 사상가의 등장은
대승불교 발전에 획기적인 계기가 됐다.
용수가 등장한 시기는 부파불교가 한창 분파를 거듭해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시기였다.
흔히 불교 발전을 「근본불교-부파불교-대승불교」의 순서로 전개됐다고 한다.
그렇다고 각 사상의 발생과 소멸이 이렇게 확연하게 구분돼 단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부파불교가 끝나고 대승불교가 시작된 것도 아니다.
부파불교는 붓다 입멸 후 100~400년 사이에 분열을 거듭했지만,
기원 전후의 대승불교 흥기 이후에도 무려 700년 정도를 더 건재해,
부파불교와 대승불교가 병행해서 함께 발전한 시기가 700여년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용수가 본격적인 대승사상을 전개한 시기는 부파시대의 종말이 시작된 시점이 아니라,
부파불교의 아비달마가 한창 번성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학자들은 인도에서 불교사상의 다양화는
서로 교류하기 어려울 정도의 지리적 환경이 다르고, 교통이 힘들 정도로 멀리 떨어져
각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나름의 교학이 형성되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에
다양화됐다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제2의 붓다’, ‘용수보살’이라고까지 칭송받으며,
대승의 핵심 내용인 「연기(緣起)ㆍ공(空)ㆍ중도(中道)」사상을 정립시킨 것이 용수였다.
용수의 불교철학은 그가 저술한 <중론(中論)>의 중관사상으로 대표된다.
용수는 <중론>을 통해 대승사상의 근본을 차원 높게 설명했다. 그 내용을 중관사상이라고 한다.
용수는 <중론>의 삼제게(三諦偈)로 일컬어지는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 아설즉시공(我說卽是空)
역위시가명(亦爲是假名) 역시중도의(亦是中道義) ―
인연이 생기는 진리는 공(空)이라 하며, 또한 가(假)라고도 하며,
또한 이를 중도라 한다.」
이 공(空)ㆍ가(假)ㆍ중(中)이 삼제사상(三諦思想)으로 발전해
먼 훗날 천태교학의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용수가 말하는 공(空)의 개념을 연기의 성품으로 해석한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이 공(空)을 ‘허무’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주장하며 나타난 논리가
무착(無着, Asanga)과 세친(世親, Vasubanhu)이 주창한 유식(有識)사상이다.
무착과 세친 형제는 원래 서북인도(현재의 파키스탄 페샤와르)에 있던
건타라국(健馱邏國, 간다라/Gandhara)의 브라만 출신이다.
세친은 처음 부파불교(설일체유부)로 출가한 후에 형 무착의 권유에 의해 대승으로 전환했다.
유식학을 완성한 이 두 형제는 용수보다 150여년 후에
「공성(空性)의 오해」를 들고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두 논사는 공의 논리 대신에, 마음의 인식작용인
「식(識)」을 주체로 모든 불법을 설명하려 시도했다.
간명하게 말하면, 용수의 중론은 ‘공(空)’으로 대변되고, 세친의 유식은 ‘식(識)’으로 대변된다.
유식(唯識)은 그 출발이 중관을 비판하기 위한 사상이므로 태생적으로 중관과 양립할 수 없었다.
「그런데 연기이론의 발전단계를 보면, 업이 연기의 주체라는
근본불교의 업감연기(業感緣起)에서 유식학에 이르러
8식인 아뢰야식이 주체라는 아뢰야식연기(阿賴耶識緣起)를 거쳐,
화엄사상의 법계 자체가 모두 연기의 주체라는 법계연기(法界緣起)
혹은 중중무진연기(重重無盡緣起) 순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세친이 유식학에서 말하는 아뢰야식연기가 붓다께서 깨달으신 연기에 부합한 것이라면,
굳이 후대에 더 깊은 식인 8, 9식까지 고려해야 할 까닭이 없었다.
붓다의 사상을 후대에 보충할 필요가 없듯이 말이다.
곧, 무착과 세친의 유식학은 그런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불교의 외형을 보면 수행의 목적지는 중관의 공(空)으로 하면서,
수행의 방법론에 있어서는 유식(唯識)을 들어 설명을 하는 경향이 있다.
유식학을 완성한 세친은 굳이 ‘족보’를 쫓자면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부파는 대승의 최상승법인 「아공⋅법공(我空法空)」이 아닌 「아공⋅법유(我空法有)」를 주장해서
유부(有部)라고 부르고 있다. 세친은 이 부파에서 대승으로 건너오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유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면이 있다.
유부의 견해인,「나는 공(空)해도, 법은 공(空)하지 않고 실체가 있다 ―
아공(我空)⋅법유(法有).」라는 말이 세친 사상의 출발이자 종착지이기도 하다.
유부의 법유(法有)가 유식학의 유식(唯識)으로 변한 것이 다를 뿐이다.
세친은 유식학 이전에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을 집필했다.
논서의 제목대로 법의 실체를 갈래갈래 분류해, 오위칠십오법 (五位七十五法)으로
정리한 부파불교의 대표적 논서이다.
줄여서 <구사론>으로 불리는 이 논서는 산스크리트 본, 티베트 본, 한역 본 2종이 현존하고
구사종(俱舍宗)이라는 단일 종파의 소의경전이 될 정도로 비중 있는 저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서의 한계는 법은 실체가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해야 75법으로 분류가 가능하다는 소승의 법유(法有) 논리에 묶여 있음이다.
유식사상도 공(空)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건 애초에 공 자체를 부정한 유식학이 다시 공의 논리로 말한다는
해석 자체가 접근의 방식에 오류가 있는 것이다.
설령 그 주장을 부분적으로 인정한다 해도
마음작용인 ‘식(識)’을 단계로 나누는 것은 유연해 보이지 않다.
유식학을 처음 접하면 마음을 해부하듯 해 놓은 작업에 매료돼 꽤 정교한 체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식의 체계가 상당 부분 인위적이고 이론적인 부분이 있다.
즉, 우리 마음은 예상이 불가능할 정도로 미묘해 식(識)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다.
예건대, 유식학의 제7식[분별, 사량식]과 8식 아뢰야식[함장식]의 경계는 구별이 아주 어렵다.
마치 무지개의 일곱 가지 색깔 중 미세하게 ‘중간색’이 존재하듯,
7식이나 8식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마음작용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제8식이 전변(轉變)해 깨달음의 식이 된다는 유식학의 논리 역시,
그럴 경우 본래 더럽지도 않고 청정하지도 않은 근본 마음인 제8식의 정체에 의문이 생긴다.
그런 의문이 바로 여래장(如來藏)이라는 사상으로
그 미진한 부분을 보충하게 만드는 요소로도 작용하고 있다.」 ― 黔丹善士
중관파가 현상의 공성(空性)을 설파한 것에 대해
유식파는 현상의 발생근거에 대한 정밀한 고찰을 전개했다.
즉, 현실존재는 공(空)에 기초한다고 하는 점에서는 중관파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단지 이 현상세계가 일시적인 가상일지라도 현실에서 차별의 모습을 띠면서
존재하는 것은, 일정한 원인이 될 만한 근거가 있기 때문인데, 그것을 종자(種子)라고 했다.
이 종자는 순수한 정신작용으로서의 식(識)이고,
모든 현상은 단지 이 식에 의해 현현(顯現)한 것[유식(唯識)]이라고 했다.
세친(世親)의 유식에서는 제8식이 전변(轉變)해 청정무구한 깨달음에 이른다고 하지만,
<반야심경>에서는 오히려 모든 마음의 움직임과 실체를 공(空)하다 하니,
유식과는 오히려 상반되는 것이다.
곧, 용수가 중론에서 말한 연기와 공의 개념이 부처님 가르침에 잘 맞는다는 말이 된다.
용수의 중론과 세친의 유식을 비교하자면, 중론은 연기의 본질인 공을 추구하고 있으니
붓다 가르침의 핵심을 설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오히려 한참 후대 사상인 세친의 유식은 부파불교의 연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중관학파(中觀學派) ―
중관파(中觀派)라는 명칭은 용수의 <중론송>에서
‘불생불멸 불상부단 불일불이 불거불래(不生不滅不常不斷不一不異不去不來)’의
팔불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상대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여러 개념의
어느 한편에도 집착하지 않는 입장을 취한다고 해서 중도(中道)라고 한 데서 유래된 것이다.
그러나 용수(龍樹)는 ‘중관파’라는 말을 직접 쓰지는 않았고,
다만 역사적 계보를 수립하기 위해 후일 그를 중관학파의 개조로 내세웠다.
용수의 제자인 제바(提婆, 아리야데바/Arya-deva, 170년~270경)는
용수와 함께 삼론종(三論宗)의 시조에 해당하며,
주요 저서로 <백론(百論)>, <사백론(四百論)>, <백자론(百字論)>, <광백론(廣百論)> 등
명저를 남겼으며, 그의 저서에 모두 ‘백(百)’자가 들어 있다.
그것은 백의 원어인 사타(sata)가 깨뜨린다는 동사의 어간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서도 그의 입장을 엿볼 수가 있다.
제바는 <중론송>에 가르쳐진 파사적(破邪的) 활동에 힘썼다.
그리하여 타고난 변재(辯才)로써 많은 외도들을 교화시켜 나갔다.
제바는 용수가 주창한 공의 이법(理法)을 체득하고 용수의 입장을 계승하면서도
이를 넘어서서 외교(外敎:다른 종교)를 격렬하게 논파했다.
제바는 그의 저술 <백론(百論)>에서 날카로운 논법으로
여러 학파의 이견을 논파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제바의 제자 라후라발타라(羅睺羅, Rahulabhadra, 200년~300년경)는
<중송>의 ‘팔불(八不)’을 주석했다.
그리고 청목(靑目/Piṅgala, 4세기 전반)은 용수의 <중송(中頌)>을 해석한
<중론(中論)>을 발표함으로써 중관학의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그런데 <중론> 속에 <중송>이 다 포함돼있어서,
<중론>과 <중송>이라는 말이 혼용돼 부리고 있으며,
저자조차도 <중론>이 용수의 저서로 알려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 후 청변(淸辨, Bhāvaviveka, 500~580)에 의해 5~6세기 이후에 학파로 확립됐다.
특히 청변은 유식유가행파에 속한 호법(護法, 다르마팔라/Dharmapāla, 530~600)과 동시대인이었는데,
이들이 서로 논쟁한 것은 ‘공유논쟁(空有論爭)’이라고 해서 불교사에서 유명한 일이었다.
그런데 인도에서 중관학파는 6세기경에 불호(佛護, Buddhapālita, 470~540)의 계통과
이를 비판하는 청변(淸辨, 490~570)의 계통으로 나뉘었다.
이것은 공의 입장을 파악하는 방법이 서로 다름으로 해서 나누어진 것으로,
불호는 공이란 입장이 없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다른 이론을 파석해야만 표출될 수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해,
청변은 공이란 적극적으로 스스로의 입장을 주장하는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불호 계통에서 뒤에
월칭(月稱, candrakīrti, 600~650)과 적천(寂天, Santideva, 687~7636) 등이 나오고,
청변 계통에서는
관서(觀誓, Avalokitavrata, 7세기)가 나와 용수의 <중론송>에 독자적인 주석을 가해,
이후의 대승불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적호(寂護, Śāntarakṣita, 680~740)와
연화계(蓮華戒, Kamalaśīla, 713-763)가 계승했다.
이렇게 해서 중관학파는 유가행유식학파(瑜伽行唯識學派)와 더불어
인도 대승불교 2대 조류를 형성했다. 학파로서는 오히려 유가행유식학파가
중관학파보다 앞서서 확립됐다.
7세기경의 인도불교는 불교사상에 있어서 난숙한 발달을 보인 시기였는데 중관파와 유가행파는 불교 내부에서 상호간에 활발한 논전을 벌였을 뿐 아니라 외부의 힌두교나 자이나교의 종파들과도 논쟁을 벌이기도 하면서 발전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중관사상에 의한 삼론종(三論宗)이 성립됐다.
중국불교의 삼론종(三論宗)은 인도불교의 중관학파에 대한
중국 측의 명칭에 해당된다.
삼론종은 용수의 <중론>과 <십이문론>에 제바(提婆)의 <백론(百論)>을
더한 삼론서를 중심으로 전개된 종파이다.
이 삼론은 도안(道安, 312~385)의 권유로 구마라습(鳩摩羅什, 344~413)에 의해 한역됐고,
그것이 제자들에 의해 연구돼 삼론학파가 형성됐다.
기본적으로 삼론종은 반야의 공사상을 교리의 근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중관종(中觀宗)ㆍ공종(空宗)ㆍ무상종(無相宗)이라고도 불린다.
한편 수⋅당대의 길장(吉藏, 549~623)은 이 삼론에 각기 주석을 가하고,
<삼론현의(三論玄義)>를 지어 삼론종을 대성시켰다.
길장은 중관사상의 성격을
‘잘못된 것을 타파해 올바른 것을 드러내는 것[파사현정(破邪顯正)]’으로 규정했다.
[출처] 블로그 아미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