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17:13~23)
'그들은 여호와의 규례와 여호와께서 그 조상들과 맺으신
그 언약과 그들을 행해 경고하신 말씀을 모두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우상들을 따라 스스로 우상 숭배자가 됐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저들처럼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음에도
이웃 나라들을 따랐습니다.'(15절)
불순종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열왕기의 끝부분인가보다.
그동안 실제 왕들의 주로 악한 행적들을 기록한 내용이었는데
오늘은 전반적인 평가의 성격이다.
마무리하다보다.
15절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됨으로써 축복을 누리는 방법을
말씀의 언약으로 명확하게 제시하셨다.
그러나 사람들, 특히 왕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 규례와 언약을 준수하지 않고 하나님을 거역했다.
'거역'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권위적? 관료주의적? 느낌이 있다면
그것은 오해이다.
하나님께서 권위를 부리시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큰 사랑을 베풀기 위한
조건, 관문. 아니, 그보다는 우주의 원리 자체가
규약으로 제시하신 선량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규약과 사랑, 축복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이며
연결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사랑으로 통하는 언행을 하라는 규약의 이야기.
오늘 본문해설 중에 나온 내용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적의 공격이나 환경의 어려움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오직 불신앙으로 망합니다.'
완전 공감한다.
적의 공격이나 환경의 어려움이 분명 중대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환란 중에도 내 인지(정보처리)에 따라서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것은 천자만별이다.
누군가에게 지옥이 누군가에는 천국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그 정보처리 체계, 인지를 형성하는 근원이 중요하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인지체계를 형성한 사람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궁극적 승리의 삶을 신뢰함으로
결코 망하는 삶이란 있을 수 없다.
반대로 적의 공격이나 환경이 어렵지 않아도,
돈과 권력과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어떤 것으로 채워져도
그것이 만유의 주 되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남으로
궁극적으로은 영원한 생명으로부터
작은 것, 모든 것이 점점 허물어져 간다.
그렇게 망한다.
'어긋남'은 '균열'을 반드시 일으키게 되어 있다.
처음에는 어떤 '편리함'으로 그렇게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균열'은 명확히 드러난다.
나를 유혹하는 어떤 '편리함'과 '선호'로부터 철저히 벗어나라!
설령 작은 무너짐, 실패를 피할 수 없는 것이
연약한 인간과 거친 환경 속에서의 실존이지만
하나님 의지하여 7전 8기의 정신으로 분투하자.
나는 영원히 무너질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면 우보만리 승리의 길로 가게 되어 있다.
그리고 묵상에세이.
'인생의 위기 앞에서는 항복하거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갖거나
양자택일해야 한다.' -레이 프리처드-
하나님은 사람을 일깨우는 도전의 수단으로 위기나 절망을
때때로 용인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이 애궂으셔서가 아니라,
그런 일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깨닫고 선택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키에르케고르도 그 진리를 깨닫고
'절망'을 다시 정의하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기적의 하루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오늘 그 의미를 깊이 깨닫고 각성하여 은혜와 사랑으로 채우는
시간이 되게 해 주십시오. 함께 분투하는 여러 상황에 처해 있는 영혼들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양정환 치유의 시간에 주님께서 함께 해 주실 줄 믿습니다.
바라옵기는 완전히 회복하여서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그의 전 인생을 통해 증거하는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