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은 내가 보훈병원에서 호스피스 봉사 하는 날이다.
오늘 따라 아침 식탁에서 전날 고향에 갔다 돌아온 남편과
못 나누었던 이야기가 길어지는 바람에
출발해야 하는 여덟시 반이 이십분이나 지난 시간에 집을 나섰다.
경기도 광주인 집에서 보훈병원이 있는 둔촌동까지는
승용차로 한 삼십분이 걸리지만
길이 막힐때도 있고 요즘들어 부쩍 늘어난 내원차량으로
힘들게 병원 운동장 끝에 주차를 하고
호스피스 사무실에 도착한 것은 아홉시 반이 넘어서였다.
재빨리 봉사자 가운으로 갈아입은 후
한 주 동안의 활동기록지를 살펴 보았다.
김××- 자고 있어 그냥 나옴.
이란 기록이 내가 그를 보지 못한 한 주 동안 궁금했던
그에 대한 기록의 전부였다.
오늘 활동 할 병실을 배정받고
제일 먼저 그의 병실을 찾았다.
요일을 바꾼 엘리사벳과 함께.
여전히 그는 눈을 감고 있었고
우리가 인사를 건네자 눈을 잠깐 떴다가
아무 말없이 다시 감는다.
"양말을 신겨 주고 싶어서 사왔는데..하면서
내가 그의 발을 만지자
눈을 감고 있던 그의 얼굴이 갑자기 야수처럼 변하더니
싫다고 손을 내 젓는다.
아마도 목에 항암치료 받은 곳이
고름이 터져 나와 너무 아프고
상태가 나빠진 탓에 마음도 나빠졌나보다.
엘리사벳이 "지난 주 너무 힘드셨나보다" 하면서
그의 손을 얼른 잡아 주었다.
"우리가 집에서도 ××님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어요.
"병원에 와서 ××님 한테 제일 먼저 온거 알죠?
엘리사벳과 번갈아 가며 그의 마음을 다독거리자
조금은 순해진 듯 고개를 끄덕인다.
"양말은 서랍속에 넣어둘테니 신고 싶을때 꺼내 신으세요''
역시 고개만 끄덕거린다.
오늘은 그가 곁을 주지 않으니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기도 해 드려도 되겠어요?
엘리사벳이 자기가 말해 놓곤 날더러 기도하란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좋다는 표시를 하길래
그나마 반가워서 잘 못하는 기도지만
그의 병든 육신의 고통과 지치고 두려움에 떠는 그의 마음을
주님께 봉헌하며 그를 위해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평상시 나는 호스피스활동을 할때
기도와 성가를 하지 않는다.
환자가 원할 때를 제외하곤.
간혹 같이 일하는 타종교 봉사자들이 종교단체의 자선이나
선교운동차원의 접근으로 호스피스를 이해하는 것 같아
호스피스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 되고 왜곡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많이 안타까울 때가 있다.
고통받는 환자들을 돕겠다는 인류애적인 마음이 우선시되고
보편적 종교정신으로 환자에게 접근할 때
죽음을 앞두고 고통받는 환자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도움자로서의 역활을 제대로 할수 있는 것 아닐까.
오늘처럼..
돌보던 환자의 반응이 냉냉해지고 소통이 잘 안될 때
마음이 무척 아프고 어깨가 내려앉는 기분이 든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라고 말하지 말라"
메리 트레이시 수녀님 이한 강연에서 말씀하신 격언을 되새기며
환자를 도와주는 방법에서 보다 창의적인 방법을 찾도록
더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