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의 그림세계 -끝없이 투명한 심성(心性)과 경계(境界)를 초월한 시간여행
편운(片雲) 조병화 시인은 개인적으로 1954∼56년도에 서울고등학교에서 가르침을 주셨던 은사이시다. 전쟁의 와중(渦中)에 문학과 미술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할 무렵 조병화 시인을 찾아뵙고 상의하였다. 미술을 전공으로 선택하고도 평생 시인으로 활동할 수 있을까 해서였다. 미술대 진학으로 방향을 잡은 계기를 마련하여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있게 잡아주신 분이시기도 하다, 예술의 본질은 하나로서 미술과 문학은 표현의 차이뿐이다. 다만 "문자"로 표현하면 문학이 되며 "색채 등의 매체"를 의존하면 회화나 조형 등으로 구분된다. 음률로 표현되면 음악이며 각종 혼합(混合)재, 섬유, 전자, 온갖 매체(媒體) 등에도 다양한 예술분야가 성립될 수 있다. 조병화 시인은 내게 미술과 문학 두 길을 가면서 성공한 작가들을 말해주셨다. 이분의 미술작품들을 대하면 감성과 서정이 섞인 시간여행을 떠나게 된다. 각 작품들에는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 특히 각박한 도회지의 지성인의 심상(心象)을 다듬어주는 향수(鄕愁), 즉 노스텔지어가 서려 있다. 티 없이 투명한 프러시안 블루와 나른한 황토색조(調), 자신만의 무연한 산하를 대하면 나도 모르게 환상과 몽환(夢幻) 속에 취하게 된다. 그의 작품에는 뜬구름과 같은 "꿈"이 서려 있다. 여러 회에 걸친 개인전과 시화전 그리고 화집을 통하여 화백 조병화의 개성과 기법 등 그의 진면목(眞面目)을 누구든 거부감 없이 살필 수가 있게,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 시 역시 난해(難解)하지 않고 독자들에게 편편히 녹아 흐른다. 19세기말(末) 유럽을 풍미(風靡)한 다다(Dadaim)는 당시 전쟁 속에서 "내일"을 잃은 사회에 문인, 화가 및 지성인들이 장르를 뛰어넘어 교감(交感)하며 어울리던 몸부림이자 구원(救援)을 찾는 운동이었다. 어찌 보면 모든 예술들이 서로를 경계하거나 각(角)을 세우지 않고 껴안고 북돋아왔기에 오늘의 부흥(復興)을 이룩하지 않았을까 한다. 허나 아직도 우리 문화예술계에는 분야 간에 벽(壁)을 쌓고 도외시하는 경향이 상존(常存)한다. 이런 측면에서 편운(片雲)선생이야말로 장르를 초월하는 선구자이며 경계(境界)를 아우르는 완숙의 경지로 길이 후세들에게 귀감(龜鑑)이 된 대가(大家)라고 믿는다. 오늘도 난실리 하늘을 떠나지 못하고 머무는 뜬구름. 편운의 그림 한조각 캔버스. 시화(詩畵)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편운(片雲)의 시가 내재한다. 조병화 시인은 차라리 화가이시다. 리얼리즘(Realism) 경향의 마른 색감, 격식이 없는 보헤미안. 한 때 종로에 유명한 맥주홀 <낭만>을 자주 찾고 이름까지 지어 주었다고 들었다. 낭만주의(Romanticism) 로맨티스트로 파이프를 물고 자연(紫煙)을 음미하는 혜화동백작을 그려본다. 여한(餘恨)없는 예술가의 삶을 누리고 떠나간 편운(片雲), 국내외적으로도 문학과 미술의 두 길을 걸어간 작가들이 적지 않은데 이분만큼 풍성하고 여운(餘韻)이 감도는 화가는 없다. 세월을 넘어 남기신 작품들은 영원히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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