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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트 라인
- 라구람 G. 라잔 (에코리브르, 2011)
5장 하나의 버블에서 또 다른 버블로
- 2004년 2월 FRB 운영 위원 버냉키는 대안정기(Great Moderation), 즉 1980년대 중반 이후 선진국에서 생산과 인플레의 지나친 변동이 꾸준히 감소하는 현상에 대해 견해를 밝힘. 붐이나 몰락 또는 높은 인플레 없이 경제가 꾸준하고 강력하게 성장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
a) 운이 좋아서. 세계경제는 전쟁, 유가 폭등 같은 대형 사고가 없었다.
b) 경제 자체의 변화. 생산, 재고 결정을 신속히 반영하는 시스템 개발. 불황이 왔을 때 늘어난 재고 부담 때문에 획기적으로 생산 감축 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c) 경제 상황에 대한 이해가 늘어난 덕분. 중앙은행 관계자들은 통화 정책이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훨씬 더 잘 이해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 자신이 현대 경제관리에 필요한 정책적 도구를 확실히 잘 파악하고, 그 덕에 경기 불황이 와도 쉽게 극복하고 곧바로 다시 회복기로 넘어갈 수 있다고 자랑.
- But, 2008년 9월, FRB 의장 자격으로 국회에 선 버냉키는 통화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국회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 미국 통화정책은 실패, 국회가 금융 산업을 구제하는 길만이 경제를 안정시키고 장기 불황에 빠져드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
- 그렇다면 FRB의 실수는?
a) 2001년의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긴 했으나 고용이 회복되지 않자 FRB는 금리를 지나치게 낮은 수준으로, 그것도 오랫동안 유지. 결국 통화 팽창 조치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대거 돈이 풀렸는데, 문제는 경제학자들과 정치권의 뜻이 맞아떨어져 FRB가 이 정책을 계속 고수했다.
b) FRB는 이 기형적인 정책이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을 사람들이 갖게끔 적극적으로 분위기 조성. 자산 가격이 지나치게 상승해도 FRB는 그에 반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며, 설령 버블이 터진다 해도 중앙은행에서 다 알아서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금융시장이 갖도록 만든 것.
- FRB 목표: 경제의 건전성 유지. 지속 가능한 고용 수준을 극대화 + 물가 안정을 유지
- FRB 통화 정책은 단기 금리 조정에 크게 의존. 금융 시장에서 은행 간 금리 조절을 통해 통화 조절을 시도하는 것. 물론 단기 금리를 조정하면서 그 조치가 장기 금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기대.
단기 금리는 경제 활동에 직접적 영향. 상당수 대출 금리는 단기 금리와 직결. FRB가 금리 인하 조치를 내릴 경우, 변동 금리 방식으로 대출을 받은 가계의 이자 상환 부담은 줄어 듬. 가계가 소비할 수 있는 자금 여력은 증가. 금리 인하 조치를 통해 FRB는 통화량에 대해 시장에 암시를 줄 수도 있다. 통화 팽창 조치를 통해 시중 대출 자금을 확대하겠다는 의도를 암묵적으로 알릴 수 있는 것.
장기 금리(미 재무부 발행 10년 만기 국채 이자율)는 경제에 중요. 장기 금리가 내려가면 주식, 채권, 주택 같은 장기 자산 가치가 상승하고, 가계의 대출 이자 상환 부담은 감소. 가계의 부가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와 가계의 지출이 늘어남. 다른 관점에서, 장기 금리 하락은 저축 의욕을 떨어뜨려 저금 대신 소비를 선택하게 하고, 이것이 수요 증대를 효과를 가져 옴. 기업은 금리가 낮을 때 투자하는 것이 미래의 수익성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판단해 더 많은 투자를 단행.
- 닷컴 버블 붕괴에 대한 대응책 : 2000-2001년 나스닥 지수가 무너지고, 경기 후퇴가 초래되자 FRB는 꾸준한 금리 인하 조치를 통해 투자시장 붕괴 상쇄 효과를 유발하려고 노력. 2001년 1월 6.5%였던 금리는 계속 내려가 2003년 6월에는 1% 수준으로 떨어짐. 1971년 변동 환율 제도의 도입 이래 금리가 이렇게 낮은 수준으로 유지된 적은 없었다. 경제는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눈치 챘고, 더 낮음 금리로 모기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주택 구매에 뛰어들었다. 가계의 주택 구매가 늘어나자 주택 건설 산업은 더 가파르게 성장.
금리 인하 이후에 생산성 증대와 기업 생산도 계속 늘어났고 경기 후퇴가 공식적으로 끝났다고 인정된 시점인 2003년 6월에 이론상 낮아야 할 실업률은 반대로 최고조에 달함. 당시 상황을 분석해보면, 경제가 디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은 수요가 극도로 낮았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 생산 업체들이 외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생산적으로 구조 재조정을 단행했고 임금 상승을 최대한 억제하려고 노력했기 때문.
당시 정부 고민은 경제 성장률에 비례해 고용증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 그러므로 경제 성장률 격차를 보면 (테일러 준칙에 따라) 금리 인상을 해야 했지만, 고용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FRB는 반대로 금리를 인하했던 것.
- FRB가 실수한 것일까? 전통적으로 유지해온 통화 정책과 비교해볼 때, 당시 FRB가 디플레이션 위험성을 과대평가하는 실수를 범했던 것은 아닐까? 상황을 봐서 이런 생각을 하기가 쉽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잘못. 문제는 실업에 있었다. 정치와 미묘한 관계를 가진 실업 문제가 있었기에 FRB는 금리 인상 조치를 취할 수 없었던 것. 경기 회복은 이루어지고 있는데 고용은 회복되지 않을 경우, FRB가 운신할 폭은 매우 좁다. 원하는 수준까지 고용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느라 어쩔 수 없이 금리를 그렇게 낮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
FRB가 정치적으로 완전히 독립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FRB가 정치적 압력 같은 것은 전혀 받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것. 그러나 사적인 자리에서 만난 FRB 의장들은 한결같이 국회의 압력이 물밀듯이 밀려온다고 고백.
- 은행이 금고를 활짝 열기로 결심했음에도 기업은 돈을 빌려다 투자하기를 꺼렸다. 그러자 은행은 대출 수요를 스스로 창조하기 시작. 사모 펀드 투자가들에게 회사 인수를 장려. 기업을 인수할 자금은 은행이 책임지겠다고 약속하고, 은행은 자신들이 제공한 사모 펀드 대출 상품을 패키지로 묶어 만든 대출 담보 증권(CLOs)을 판매해 또 다른 대출 자금 확보에 활용. 그 결과 은행 대출만 믿고 기업 인수에 뛰어들고, 사모 펀드의 기업 인수 규모는 갈수록 커졌다. 은행 대출이 증가하면서 그 기준도 대폭 완화. 이 모든 상황을 감안할 때, 이번 금융 위기는 단순히 저소득 계층에 대한 대출 확대로 인해서만 발생한 것은 아니다.
- 주택 시장 버블 붕괴의 책임이 오로지 FRB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정부의 저소득 계층에 대한 대출 확대 정책 그리고 민간 금융계의 오류도 주택 시장 버블 형성과 그 붕괴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FRB에 전혀 책임이 없다고 발을 빼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태도이다.
- FRB는 독립적 성격을 띤 기관임에도 자기 뜻대로 목적을 달성하기가 어렵다. 특히 미국처럼 통합적이고 혁신적인 경제가 유지되는 나라에서 기업은 경기 후퇴를 생산성을 제고하거나 고용을 다른 나라로 이전해 세계적 공급 체인을 강화하는 기회로 활용하려 한다. 따라서 급속한 고용 증대를 위한 FRB의 정책은 원하는 효과를 내기가 매우 어렵다. 결국 고용이 회복되길 기대하고 취한 통화 확대 정책은 리스크 감수, 자산 가격 버블 증가라는 부정적인 결과만 가져올 뿐이다. 만일 미국 정부가 경기 후퇴 시 길어지는 실업 기간을 참아내지 못하고 부적절한 개입을 할 경우 그 기간은 더 길어지고, 그러다 보면 상황이 개선되지도 않은 채 버블에서 또 다른 버블로 넘어갈 위험이 상존한다. 그러면 도대체 어디서 일자리가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FRB는 고용 창출이라는 불가능한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는 더 큰 압박감에 시달릴 수 있다.
6장 돈이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될 때
- 18세기 프랑스 왕정에서 필요한 자금 조달 위해서, 국채 형식의 증서 발행. 증서를 구입한 사람에게 죽을 때까지 정기적으로 고정액 지급하는 연금 판매(부유층 50대 남성 대상). 대인기. 제네바 은행가 그룹에서 프랑스 정부의 연금을 저렴하게 구입 후 비싼 가격에 팔아 엄청난 인기. 프랑스 혁명, 연금 지불 연기. 재개 했지만 통화가치 떨어져 투자자들 파산.
1) 돈 냄새 맡는 데 은행가들보다 더 좋은 코를 가진 사람은 드물다. 사업가중 자신의 행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은행가들은 돈을 벌수만 있다면 아무리 교활한 방법이라 할지라도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한다. 특히 미국이나 영국처럼 금융, 실제 생활, 사회가 완전히 분리되어 비관계자 간 거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나라에서는 이런 경향이 두드러짐.
2) 은행은 무지한 투자가나 돈을 버는 것과 관련해 투자 동기를 지닌 사람들을 이용하는 데 천재적 소질을 갖고 있다. 대규모 펀드, 정부 등이 타겟.
3) 은행의 행동은 비록 그 기간이 한시적일지라도 토네이도처럼 점점 규모와 영향력이 커지는 특성을 갖고 있다. 선두 주자는 자신이 벼랑으로 치닫는 무리 맨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보통은 스스로를 천재라고 자신한다.
4) 참여자 숫자가 많을수록 안전하다. 정부는 책임감 때문에라도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은행권의 도산을 방치할 수 없다.
- 순전히 인센티브 위주로만 돌아가는 금융제도는 궤도에서 탈선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금융제도 자체에만 비난을 퍼붓게 되면, 이번 금융 위기가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폴트 라인이 동시에 작용해 초래되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쉽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금융계 종사자들을 비난만 할 게 아니라 왜 그들이 그토록 사회에 해악적인 존재로 전락했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다.
- 근본적으로 잘못된 모기지론 중 상당 부분을 제공한 당사자는 뉴 센추리 파이낸셜이라는 모기지 대출 업체. 이 업체는 대출받기 위해 제출한 평가 서류를 재검토하라는 요구를 거의 하지 않음. 영업의 상당 부분을 브로커에게 아웃소싱한 셈이어서 많은 직원을 고용할 필요도 없고, 넓은 사무 공간도 필요 없었다. 1995년 벤처 캐피털 자금 300만 달러로 설립되었지만, 2006년 모기지 대출 600억 달러를 기록하며 미국에서 2번째로 큰 서브프라임 대출 업체가 됨. 그들이 고속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취약한 노인 계층을 공략했기 때문이 아니라 주택 가격이 계속 오르면서 모기지 대출 상품이 대대적으로 증권화 되었기 때문. 투자은행이 모기지 대출 상품을 대거 사들인 후 증권화해서 판매하기 시작하자 대출 신청자에 대한 판단 기준은 하락했고, 따라서 신용 평가의 중요성도 감소.
- 이번 금융 위기에 커다란 책임을 져야하는 당사자는 물론 민간 금융 업체들. 그렇지만 브로커들도 부도덕하게 행동하지 않았는가? 순진한 퇴직 노인들을 잘못된 모기지 상품으로 인도하고, 거의 불법적인 일을 자행한 잘못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약탈적 대출 기준을 정해놓고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을 것. 브로커나 모기지 대출 업체는 다만 주택 보유자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었을 뿐이다. 미래는 생각하지 않고 저금리에 재융자를 원한 고객의 요구를 들어준 것뿐이다. 그렇다면 브로커는 과도한 부채 부담에 시달리는 고객에게 소비를 줄이고, 신용카드 빚을 먼저 갚고, 당장에라도 능력에 맞는 작은 집으로 옮기라는 조언을 했어야 옳은 것 아닌가? 그 고객을 다시 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아마 브로커 중 일부는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주선해 판매한 모기지 대출 상품은 이미 패키지에 묶여 투자 은행에 모두 팔렸고, 중개 수수료를 받은 브로커는 더 이상 그 대출 상품과 아무런 상관도 없게 되었다.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비관계자 간 거래의 특성상 브로커는 고객의 입장을 생각할 필요도, 고객의 미래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시장이 비이성적으로 과열되었고 주택 가격이 절대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당치 않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번 위기의 요인과 관련한 주장 중 가장 타당성 있는 것은 저소득층 가계의 주택 보유율을 올리겠다는 정부의 야심이 주택 분야로 거액이 쏟아져 들어오게 만들었고, 그것이 위기를 촉발한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 정부가 밀어붙여 제공한 대출이 전체 정크 모기지의 2/3를 차지했다. 이런 정크 모기지의 부도율은 우량 대출보다 9-15배까지 높다.
- 금융 분야의 성과는, 특히 최종 고객과 장기간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는 일회성 비관계자 간 거래 방식 하에서의 성과는 회사에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주었는지에 따라 평가한다. 보통 우리가 몸담고 있는 다른 분야에서는 자신이 하는 일이 개인적 또는 집단적으로 점검(우리는 과연 사회적으로 유익한 상품을 생산하는 데 기여하는가라고 자문하면서)하는데 금융 분야에서는 이런 작업은 드물다. 돈을 버는 것이야말로 금융 산업 종사자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이런 경쟁적 환경에서는 사소한 가격 왜곡이 금융 산업 전체를 궤도에서 이탈하게끔 만드는 큰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 많은 사람이 지나친 탐욕 때문에 위기가 발생한다고 주장. 그러나 탐욕(자기 이익)은 모든 종류의 비관계자 간 거래를 이끄는 힘이다. 자기 이익 추구는 과거에도 항상 있어왔고, 그런 점에서 이번 위기가 오로지 금융 산업의 탐욕 때문에 생겼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민간 금융계는 자신들이 늘 해오던 방식대로 노력했을 뿐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 불길을 조성한 것은 오히려 정부다. 외국 자본과 국내 자본이 쏟아져 들어와 서브프라임 대출에 기름을 부으면서 이 위기의 불길은 점점 더 거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