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이선애
무진기행 외
무진 나루를 가본 적 있는가
그곳에서 소형생태체험선을 타고
철새를 관찰한 적 있는가
안개는 문학의 얼굴을 하고
문학관을 지웠다가 다시 쓰고 있었다
길을 지우고 말을 잃은 자리에서
새로운 길동무와 말동무가 생겨났다
새들의 입을 빌어
생각을 키우던 나무들이 걸어 나왔다
위치를 바꿔가며 수많은 안개 입자들이 태어나고
의외로 딱딱하고 숱이 많은 허공은
쉽사리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입술이 얼어붙고 눈앞이 캄캄한 시간
우리는 서로 이름을 바꿔 불렀고
술래 잡기는 계속되었다
삶의 여정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
스치듯 지나는 자기검열 상태다
더 이상 낡지 않겠다는 억지 부리지 않겠습니다
여태 버려둔 슬픈 꿈을 다시 꾸겠습니다
새 각오를 다짐할 때마다
스스로 빠져나올 공간도 생겼다
밤새도록 홀로 주고받던 수화를
안개의 책갈피에 끼워놓고 오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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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소리
득음정 홍매화가 목젖을 열 때쯤
나는 행선지를 허공에 띄우고 안절부절을 시작한다
손가락으로 허공을 찌르는 가녀린 비명
나이테가 몸에서 먼 가지일수록 위태로워
눈부신 소리를 낸다
어느 땐 부채로 얼굴을 가린 가객이
버선발로 뽑는 소리처럼 대청이 술렁이고
귀명창 나비들 감전된 듯
제 가슴을 꼴깍꼴깍 삼키는 소리
언제부턴가
내가 키우는 화분도 변성이 오는지
파대와 유파가 다른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무딘 가슴속 통로를 열고 들어오는 발소리
내 몸속에 잠든 지루한 계절을 깨우고
기척 없는 물과 불의 절정에서
들린다, 조용히 꽃대 밀어 올리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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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애|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방울을 울리며 낙타가 온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