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천연의 교실 되어 사람을 키워온 초등학교 교정의 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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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10]
긴 방학을 마친 교정에 다시 활기가 들어찼습니다. 지난 여름이 혹독하게 지난 탓에 어느 해보다 길게 느껴진 방학이었습니다. 그 덕에 새 학기는 더 새롭게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새로 만나게 된 학생들의 밝은 얼굴들은 언제나 설렘을 가져옵니다. 긴 방학 동안 제가끔 자기에 알맞춤한 일들을 찾아 애썼던 학생들이 다시 교정에 모여 한 해의 결실을 맺으려 머리를 맞대야 하는 결실의 계절입니다.
학교, 그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너른 교정을 가지는 대학교 교정은 나무가 많아서 좋습니다. 저절로 자란 나무는 아니지만 학교 곳곳에는 솜씨 좋은 조경사의 손길을 거쳐 자라는 나무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대개의 대학교들은 산 아래 자리잡고 있어서, 여유를 내서 학교 뒷산을 오르면 자연 상태로 자라난 나무들까지 볼 수도 있지요. 그런 교정의 나무들이 좋아서, 저는 얼마 전에 제가 강의하는 학교의 대학신문에 '우리 학교의 나무들'이라는 연재물을 쓰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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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만 그런 건 아니겠지요. 어린 시절 다니던 학교에 대한 기억에도 필경 나무는 있습니다. 학교 교정의 나무를 이야기하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무가 바로 담양 대치리 한재초등학교의 느티나무입니다. 천연기념물 제284호인 이 느티나무는 생김새 하나만으로도 한번 본 뒤에는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초등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에 서 있는 그 늠름한 기세는 매우 뛰어난 나무라고 이야기할 만합니다.
규모도 그렇습니다. 대치리 느티나무는 키가 34미터, 줄기 둘레는 8.78미터나 되는 무척 큰 나무입니다. 키만으로는 우리나라의 모든 느티나무를 통틀어 가장 큰 나무이지 싶습니다. 물론 줄기 둘레에서는 9미터를 넘는 느티나무가 몇 그루 있으니, 전체적인 규모에서 가장 크다고 이야기하기는 조금 머뭇거려지긴 합니다. 그러나 키에 있어서만큼은 단연 최고입니다. 34미터라면 제가 흔히 비교하는 도시의 건물로 보았을 때, 12층 높이나 되는 겁니다. 이를테면 아파트 12층의 거실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면 나뭇가지의 꼭대기가 보일 정도라는 이야기입니다. 어마어마한 크기 아닌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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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한재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게는 이 나무가 오래 기억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단 생김새와 규모에서 어린 아이들을 압도하니까요. 게다가 워낙 큰 나무이니, 이 나무 그늘에서는 갖가지 일들이 벌어집니다. 아이들이 평소에 운동장에서 뛰어놀다가 땀을 식히는 정도는 예사이고, 때로는 나무 그늘에서 야외수업을 하기도 합니다. 특히 교실에서 옆 교실에 방해될 수도 있는 음악 수업처럼 소리를 수반하는 수업은 자주 이 나무 그늘로 옮겨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학교를 오래 전에 졸업한 동창생들에게도 이 나무는 어린 시절의 상징이자 큰 의미입니다. 동창생들은 학교에서 열리는 총동창회에 참석하게 되면 몇 가지 의식적인 행사를 하게 되지요. 그러면 대개는 사진 한 장씩 찍게 되잖아요. 그 사진의 배경은 학교 건물이 아니라 당연히 이 느티나무입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 뿐 아니라, 동창생들이 모교에 찾아 오면 누구나 느티나무의 안부부터 살피는 게 지당한 일이라는 게 이 학교 총동창회장님의 말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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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학교라 해도 무리가 없을 한재 초등학교는 비교적 오래 된 학교예요. 1920년에 대치동공립학교로 문을 연 뒤, 1946년에 한재국민학교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른 1백년 가까이 되는 역사를 가진 초등학교입니다. 이 학교를 졸업하고 이 마을에서 오래 살아온 마을 노인들을 이 나무 아래에서 뵈었습니다. 구순에 가까운 노인들이 나무 앞에 나오셨는데, 노인들은 한국전쟁 때 학교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나무를 추억해 내셨습니다.
전쟁 통에 학교 건물이 모두 불에 타 무너진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학교 수업은 계속 해야 했지요. 그때 아이들이 모여서 공부할 수 있는 자리가 없었어요. 학교 건물이 불에 타는 동안에도 불에 붙지 않고 잘 이겨낸 이 느티나무 그늘은 임시 교실로 더 없이 알맞춤했습니다. 여러 학급이 저마다 느티나무 그늘을 차지하려는 통에 당시 선생님들은 이른 아침부터 서두르셨다는 게, 이 학교 졸업생으로 이 마을에 살면서 학교를 지켜 본 노인들의 말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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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나무 그늘은 아이들을 올곧게 키우는 교실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다. 대치리 느티나무는 나이가 6백 살이 조금 넘었다고 합니다. 그의 나이를 그렇게 추정하는 근거는 이 나무를 두고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에 있습니다. 이 나무는 조선을 일으킨 태조 이성계가 전국의 이름난 명당을 돌아다니며 나라를 세울 생각으로 기도를 하던 중에 이 자리에 들러 기도를 하고, 자신이 기도를 올린 자리임을 표시하기 위해 손수 심은 나무라고 합니다.
정확히 남은 기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오래도록 나무에 전해오는 이야기입니다. 이성계가 심은 나무가 맞다면 나무의 나이는 620살 정도 되겠지요. 다른 느티나무의 생육 상태와 비교해 볼 때, 이 정도의 나이는 별 무리 없이 받아들일 만합니다. 그러니까 나무는 우리 역사의 아주 중요한 순간의 기억을 간직한 유서 깊은 나무인 겁니다. 그런 유서 깊은 나무 아래에서 아이들은 역사를 배우고 문화를 익히면서 자라나는 거죠. 나무는 아이들에게 더 없이 중요한 살아있는 교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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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이 자리에 들어 선 건 나무의 나이에 비하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입니다. 앞에 이야기했듯이 1백 년 전이니까요. 학교가 들어서기 전에도 나무는 마을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나무였음은 틀림없습니다. 마을에서 당산제를 올리는 당산나무로서 마을 사람들 모두가 소중하게 여기는 나무였지요. 뿐만 아니라, 워낙 훌륭한 자태의 나무인 탓에 이 마을 사람들에게 대치리 느티나무는 마을의 자랑이기까지 합니다.
[나무와 사람 이야기 (91) - 담양 대치리 느티나무] 신문 칼럼 원문 보기
위의 링크는 대치리 느티나무와 교실보다 더 교실같은 그 나무 아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노인들, 그리고 지금 교실처럼 그늘에 자연스레 드나드는 아이들과 학교 선생님들을 뵙고 돌아와 쓴 신문 칼럼입니다. 구순의 노인들과 아홉 살 아이들에게 똑같은 의미로 살아있는 나무에 대한 기억은 제게도 아마 특별하게 오래 기억되리라 생각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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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생명을 키우는 건 나무입니다. 나무는 사람처럼 지구상에 유일하게 직립한 생명체이기도 합니다. 누구는 걸음걸이에서 사유가 시작됐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보다는 걷는 사람의 곁에 사람과 같은 방향으로 우뚝 서 있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이 가는 길 앞을 막아 서서, 잠시 걸음을 멈추게도 하는 나무. 그는 바로 사람의 모든 사유를 시작하게 한 생명입니다. 나무는 곧 생명의 시작일 뿐 아니라, 모든 사유와 철학을 비롯하게 하는 출발점입니다.
사람은 나무를 심고 나무는 사람을 키웠습니다. 때로는 발걸음을 멈춘 사람에게 사유의 힘을 불어넣었고, 때로는 사람의 사람다움을 키우기 위한 교실이 되었지요. 처음부터 큰 나무에 기대어 배움터를 지은 담양 대치리 한재초등학교. 그 학교의 운동장 한 켠에 모든 생명의 스승처럼 의젓한 모습으로 서 있는 느티나무 한 그루에 경외의 마음을 담아 큰 인사를 올려야 할 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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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치열했던 탓일까요? 가을 바람 불어오자 벌써 지나간 모든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집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모든 것들, 그 모든 것들을 한번 더 생각하게 되는 바람결에 몸을 맡깁니다. 그래서 지금 이 바람에 살며시 나부끼는 나뭇잎 하나가 더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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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는 2-3년 전 여름에 이 나무를 보고 온 후 두고두고 생각이 났어요. 교문에 들어서서 나무를 본 순간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지요.
나무가 마치 학교 전체를 지붕처럼 뒤덮고 감싸듯이 서 있었어요. 크기도 크기지만 나무가 멋져서 더욱 놀랐습니다.
아이들과 동네 사람들의 쉼터라서 다정한 느낌까지 받고 왔지요. 학교 운동장에 그런 나무가 있다니 얼마나 부러웠는지요.
저 나무 한 그루가 전교생을 모두 품고도 남을 것 같아요.
학교마다 저런 나무 한 그루 있다면 아이들에게 엄청 많은 것을 가르칠 수 있겠지요. 자연을 사랑하는 말 정도는 너무 진부하게 들릴 테고요.
정말 보물 같은 나무입니다.
저 느티나무는 얼마나 많은 추억을 담고 있을까요? 세분의 어른과 참 잘 어울립니다.
말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엄청난 얘기를 풀어놓겠지요.^^
저 아래서 연주를 하다니 정말 멋진 생각입니다.
나무와 사람들.......아름다운 공존입니다.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광주근교의 한재초등학교 ...운동장에있는 느티나무 그늘아래서
남녀노소 누구나 쉬었다 갈 수 있는 보금자리같아요
생각만 해도 참 멋지고 좋은 학교라 짐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