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이 장을 하신 수동면은
조선 시절 사근역으로,
서울에서 남으로
전주-남원- 함양-진주로 가고,
서로 진주-함양-거창-합천-대구로 가는
요충지로,
경상우도 관도의 중요한 역이었습니다.
625때 북한군 6사단의 진격로 겸
주력 부대 後退路 이고,
임난 때, 진주에서 남원으로 향한
倭軍의 主 進擊路였습니다.
인구 400호의 면 소재지 사근 면 사무소
뒷산은 280m의 蓮花山으로
사근 山城이 있습니다.
정유재란시 진주성을 함락한 구로다 나가마사
5000군이 진격해 온 것을 명군 기병 1000,
조선군 500을 명 총병이 제 조상 정기룡 장군에
지휘권을 넘겨 줘서,
구로다 軍을 진주로 패퇴 시켰으나,
사근 산성을 사수하던
역졸 50여명,
의병 300여명은 어느 조선 여자의 배신으로
暗門으로 침투한 왜군과 교전하다,
전원 전사 했습니다.
역사에 무지한 지방 관료들이?
산성을 재건했으나,
4각 石材의 수원성 모조품이 되어,
엄청난 돈을 붓고,
城을 망쳐 놓았습니다.
원래는 산 부근 돌을 모아,
돌담을 쌓듯이 만든 城인데,
무지한 爲政者,
인간들이 망쳐 놓았습니다.
성안엔 작은 연못이 있어,
사철 물이 마르지 않아,
守城軍의 식수원이 되었고,
이 연못 밑으로 지하 수로가
4킬로 아래 남계천 부채지 쏘로 연결되었다는
傳說이 있어,
국교 시절,
명주실을 풀어 사실 여부를
점검하기도 했으나,
세월이 흘러,
수로가 바뀄는지?
실패했습니다.
충의공 정기룡 장군은
220전 무패의 육장이셨으나,
역사에 관심 없는 이들은
23전 23승 충무공만 알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님은 개전후, 상주 판관으로
명 받아,
상주에 도착하니 ...
이일이 대구 상주에서 敗戰해,
문경으로 달아났고,
성은 왜군이 점령 약탈 중이었습니다.
주변 10여 민병을 수습
야간에 성밖에서 수십개 횃불을 흔들게 하고,
단기 필마로 홀로 성내로 진격, 왜군을 도륙하여,
놀란 왜군 1000여명이 도망 가서
임란 최초로 공성에 성공하고,
200여 전투에서 승리했으나,
충무공은 임란의 명신
서애 유성룡 및 중신들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으나,
충의공은
소 전투, 유격전이 많고,
중앙에 빽이 없어,
승진이 늦었습니다.
公은
충무공 전사후,
차차기 3도 수군 통제사를
역임하셨습니다.
그러나,
명군 장령들과 參軍 들은 나름
정확히 장군들의 실력을 파악하여,
7년 전쟁중 참여한
수많은 명 조선 장령들 중에서,
明 皇帝의 8사품을 받은 이는
해군 이순신
육군 정기룡
두 분 밖에 없습니다 .........
to be cntinued;
山人 書.
첫댓글
한 5박 6일 여정으로,
경기 북부 자전거 旅行을
떠날까 합니다 ...
나의,
x 연대
x사단,
x군단,
戰車-砲兵 射擊場
遊擊場 등등
내 젊은 날의 꿈,
나라 위해 힘썼던 그 곳을 ...
차분히 時間을 갖고,
둘러 보려 합니다 ...
이 나라 운명은 90%
滅亡으로 가는 것이
人類 마지막 賢者? 武人?
이 山人 눈에는 보입니다 ...
1-6-5군단 戰線,
정기룡의 연화산을 본 後 ...
나는
이 나라 영영 떠나려 합니다 .......
지금 陸海空 안주에
말술 마셔도 ...
슬픈
山人 書.
어제 소주 7병 마시고,
친구가 보고 싶어,
코로나 땜에 전철 싫어,
巨金 들여,
택시로 ROTC 동기가 운영하는
종로 기원에 들러서
음주 바둑 疑問의 1패하고? .......
추억의 지하 음악 쌀롱에 들러,
한잔 샀다.
THOSE WERE THE DAYS,
YESTERDAY
回龍浦 등등
좋아하는 옛 노래
DJ에 신청하고,
그에 음료 맥주 各 1병
수고료를 지불했다 ....
날이 너무 덥고,
기본 음료 야영 장비 든
배낭 3-50킬로 메고,
2-300킬로 자전거 旅行은
무리라,
단풍철로 미루기로 했다 ...
지금 다시
陸海空 안주에 술
마니 마니 마시며,
이 글 올립니다 ........
죄송!!
山人 拜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