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증함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는 때
에스라 9장 9절 – 11절 2024년 8월 25일 주일 오전 말씀지
세상이 온통 불법이 난무하고 예배당마다 가증한 것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습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음녀처럼 세상과 짝하고 있고 바벨론처럼 세상 영광에 사치에 빠진 자들이 많습니다. 그 가증한 일에 타락한 목사들이 육적인 장로들이 앞서고 있고 분별없는 교인들은 가증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 쫓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 막힌 것입니다. 결국 그 가증한 것들이 전쟁으로 인하여 불타고 무너지고 다 부숴지게 됩니다. 계17:5-
가증하다는 뜻은 괘씸하고 얄밉다는 것인데 분명 잘못한 것인데 뻔뻔한 것이며 양심이 화인맞은 자들입니다. 목사라면 겉(거룩 생활)과 속(성결한 마음)이 거룩해야 하건만 귀에 듣기 좋은 설교로 자기를 따르며 아멘 하며 무조건 따르는 교인 수가 많으니 높아져 세상 영광을 추구하고 물질 욕에 빠져있어 강단에서는 자기가 신(神) 인양 거룩한 척 깨끗한 척 자기가 성경을 다 깨달은 것처럼 효유(曉諭)하며 교인들에게 온갖 대접을 받다가 충이 먹어 죽은 헤롯 왕처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행12:22-
이런 자들이 갈수록 강단에 많이 서 있으니 말씀있는 산(생명의 양식을 풍족하게 나눠주는 아버지 집)으로 도망가지 않으면 미혹의 영에 사로 잡혀서 결국 그들의 하수인 노릇만 할 뿐입니다. 마24:15-
환난을 앞두고 더욱 가증한 자들이 나올 것이니 진리의 양식으로 분별하고 나타내어 한 사람이라도 잘못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선한 싸움 곧 생명 사역입니다. 오늘은 제사장, 레위인, 성가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을 아내로 며느리로 삼고 우상을 섬기면서 제사하는 가증한 일을 보고 기가 막혀 간절히 기도하시는 에스라를 나타내주셔서 진리로 자라난 자들도 세상과 예배당에 가증한 것들로 가득 채워지는 것을 보게 하사 할 일이 무엇인가? 나타내주시는 것입니다.
9절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복역하는 중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바벨론 왕을 몽둥이로 삼으사 유다를 때리신 것은 가증된 생활로 인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70년이라는 기간을 정하시고 노예 같은 포로 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에스라는 이제까지 되어진 모든 일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하신 것임을 다 알고 있습니다. 이제 그 포로 생활에서 버리지 않으시고 말씀하신대로 올라오게 하사 성전을 짓게 하신 역사를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내가 말씀을 받는 자리에 나오는 것도 하나님이 하신 역사입니다.
바사 열왕 앞에서 우리로 긍휼히 여김을 입고 소성하여 우리 하나님의 전을 세우게 하시며 바사 나라는 바벨론 제국을 쳐서 이기게 하신 나라입니다. 바벨론 나라로 사로잡혀 포로되게 하셨고 이제 약속하신 대로 본국에 다시 돌아가 성전을 짓게 하시려 기도하게 하시고 바사 나라에 왕인 고레스, 다리오, 아닥사스다 왕까지 차례대로 들어서 성전을 짓게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이 모두가 기도하게 하시고 이루신 일을 나타내주십니다.
그 퇴락한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을 주셨나이다 거룩 생활을 하지 못하고 육신으로만 사는 것이 성전이 무너진 것이요 퇴락(頹落)한 것입니다. 지긋 지긋한 포로 생활 중에 잘못을 깨닫고 다시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이 수리(修理)한 것입니다. 지금도 자신들의 몸이 성전인데 원죄를 이기지 못한 더러운 생활로 부숴진 것이 퇴락한 것인데 모르는 자들이 많은 것은 복음도 진리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고전3:17-
울을 주셨나이다 울은 울타리로 하나님께서 올라오게 하실 자들에게 기명(직분)들과 예물(감사 열매)을 가지고 1차와 2차로 도둑들과 대적자들의 위험에서 안전하게 가지고 오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 마음껏 왕노릇 영적 생활을 할수 있도록 도우신 것이 울을 주신 것입니다. 욥기1:10에 교만한 욥을 사단으로 치게 하실 때 사단은 욥의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 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라고 합니다. 오늘날 자기가 잘나서 잘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것이 바로 욥이 교만해진 것과 같습니다. 내가 교만해진 순간 하나님께서 둘러주신 울타리가 무너집니다. 사5:5-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울을 주신 것은 유다는 찬송하는 자요 예루살렘은 영원한 영광성을 바라보게 하신 자들은 울타리를 쳐서 언제나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울은 은혜를 베푸심이니 에스라를 다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은혜요 그 영광까지 얻게 하시는 것이 다 은혜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것을 얻게 하시려 하나님께서 울타리를 쳐주신 것입니다. 기도 중에 그의 신앙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또한 에스라 혼자만 올라온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으로 같이 올라오게 하신 것은 세워진 성전에 생명 양식을 공급하는 일에 동역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울을 쳐준 사람은 평안과 쉼이 있습니다. 시4:8-
지금도 함께 영광길을 가게 하시려고 돕는 사람들을 붙이시고 천사까지 동원하시고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것이 울타리를 치게 하신 것입니다. 다윗으로도 수없이 어려운 일을 당하게 하셨지만 하나님께서 울타리를 치사 나를 지켜주시니 두렵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시34:7-
이 말씀을 마4:6절에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 인용하였는데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지켜 주시겠지만 시험인 것을 알기 때문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사는 동안 수많은 위험을 만나지만 언제든 보호하시는 것은 울타리를 쳐주신 것입니다.
10절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배반하였사오니 살면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역사를 밝히 보고서도 배반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1.포로 생활 중에서도 2.올라오게 하실 때도 3.올라와서도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울타리까지 쳐주셨건만 방백들과 레위 사람과 제사장들 곧 직분자들이 또 하나님을 배반한 것입니다.
주의 계명은 가죽옷 구원을 입혀 산자가 되게 하셨고 애굽에서 나오게 하사 가나안에 들이사 기쁨과 감사로 거룩하게 살게 하시려 주신 계명인데 그 계명을 무시하고 아무 아내나 얻고 아무 며느리를 얻음으로 이방인들처럼 육만 위해 사는 자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여전히 나라를 잃었고 겨우 올라와 성전을 지었지만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계명을 범하고 있으니 도와달라고 불쌍히 여겨 달라 고 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때에도 고린도 교회는 이 교도인 들처럼 온갖 음행에 빠졌습니다. 그때에 그들을 사단에게 내어준다고 하셨고 고전5:5-
부지런히 따르다가 착한 양심을 쓰지 않는 후메네오(결혼의 신)와 알렉산더(원조자)가 더 이상 권면, 책망해도 듣지 않음으로 사단에게 내어준다고 하신 것입니다. 딤전1:20-
착한 양심은 복음의 아비인 사도 바울을 통해서 살림을 받았고 진리의 양식을 받아먹고 자라났다면 늘 고마움을 알고 감사의 마음으로 살면서 겸손하여 그 은혜에 보답하는 자리에 있어야 하건만 알고 있는 지식으로 교만해지고 자기가 앞서서 행하며 교인들을 사도 바울에게서 떨어져 자기들을 좇게 만든 사단의 역군들이라는 것입니다.
11절 전에 주께서 주의 종 선지자들로 명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얻으려 하는 땅은 더러운 땅이니 아브라함 때에 가나안을 주셨고 모세 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하셨는데 (출3:17) 선지자들로 가나안 땅을 더럽다고 하는 것은 그 가나안에 살고 있는 함의 후손 가나안 족속은 육신만 위하여 사는 자들인데 그들과 섞였으니 더럽다고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 자손들은 돌아갈 본향인 영광성을 바라보고 거룩하게 사는 자들로 육신은 물론이요 영적인 정조도 귀하게 여기는 후손들입니다. 그런데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그 백성들과 더불어 우상을 섬기고 육신의 정욕에 빠져 가증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선지자들로 더러운 땅이 라고 하신 것입니다. 실상 땅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자기의 육신의 정욕을 하나도 이기지 못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창기와 합하는 자들도 창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전6:16-
노아 때 왜? 홍수로 그 많은 사람들을 멸하셨나요? 소돔과 고모라가 왜? 불로 멸망을 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족속과 결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가나안 족속들은 유다의 아들 오난처럼 귀한 후손을 얻는 성관계를 육체의 쾌락 재미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38:9) 우리는 더러운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대로 사는 것은 참으로 더러운 것입니다. 우리 속에 날마다 올라오는 원죄의 역사는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인데 그것이 나를 더럽게 하는 것입니다. 마15:19-
이는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세상은 갈수록 더러운 정욕 가운데 더욱 빠져가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과 짝하고 목사는 우상되였고 장로들은 높은 자리에 앉았으니 온갖 더러운 것들이 예배당마다 가득한 것입니다. 이 더러운 것을 치우지 않으면 가증한 교회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가나안에 올라오게 하셨고 솔로몬 때에 성전을 짓게 하시고 마음껏 왕노릇하라고 하시는데 열왕 때에 그 성전을 더럽힘으로 인해 성전이 무너졌습니다. 다시 은혜를 베푸시고 올라오게 하셨으니 이제는 벽에 박힌 못과 같아야 하는데 흔들리는 자들이 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가증한 일은 잘못하면서도 도리어 뻔뻔한 태도입니다. 가증한 것으로 가득차고 있는 이때에 에스라처럼 기가 막혀서 울부짖는 기도를 하게 하십니다.
이 가에서 저 가까지 그 더러움으로 채웠음이라 하나님의 아들들이 거룩하게 살지 못하는 이 죄를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며 함께 올라온 자들로 거룩하게 살도록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가증하여 듣지 않음으로 더욱 더러움으로 가득해지고 있습니다. 계시록까지 받은 분들은 이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뿐이요 이제 하나님이 일하실 것입니다. 계22:11-
의(義)는 복음이 믿어지게 하신 의요 의로운 자들은 돈과 세상보다 하나님을, 하늘의 영광을 택하는 자들입니다. 이제 한말씀 한말씀을 양식으로 받아 그 양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들로 더 의를 행하게 하니 열매를 맺는 생활이 많아집니다. 거룩은 구별된 것입니다. 주일날은 무엇을 하는 날입니까? 늦게까지 잠자는 날입니까? 새벽부터 저녁까지 생명의 양식을 받고 마음껏 찬양하고 경배하며 영의 양식을 채우고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는 날이 많아지게 하십니다. 그러나 더러운 자는 육신만 생각하며 사는 자들이니 더욱 육체의 정욕에 빠져 살 뿐입니다. 결국 그 육체를 치시니 결국 고통 중에 떨어지는 것이요 영광성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글자로만 알면 교만해질 뿐입니다. 계2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