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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과 같은 세례를 받은 우리는 공인(公人)입니다.(마3:13-17)
2024, 8/11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마3:13-17절 말씀으로“주님과 같은 세례를 받은 우리는 공인(公人)입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지난주가 가을로 들어간다는 입추고 이번 주 수요일이 말복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제 더위도 끝나간다는 이야기인데, 이번 주만 지나면 열대야도 사라지고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을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때가 되면 장마가 끝나고, 여름도 끝나고, 한 해도 끝나고 우리 인생도 끝나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인생이 끝나면 하나님 앞에 우리가 살아온 삶에 대한 판단을 받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거나 대가를 지불해야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라 천국이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평등하다고 말하는데, 천국은 공평한 곳이지 평등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어떤 고난을 만나도 불신앙의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신실한 신앙인의 모습만을 보여주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2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주님은 죄 없지만 우리를 위해 세례를 받으셨습니다.(14절)
둘째로, 구원받고 세례 받은 우리는 세상에서 공인(公人)입니다.(16-17절)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성경을 보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실 때 정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구원하신 것을 보면서 입이 다물어지질 않습니다.
그만큼 획기적이고 충격적인 방법이라는 건데, 그래서 다른 종교는 아예 이런 것을 상상조차도 하지 못해 흉내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구원의 방법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만큼 방대하고 어마무시하다는 뜻일 겁니다.
그런데 그 방법의 시작이 바로 예수님의 세례였습니다. 예수님의 세례가 바로 구원의 실마리를 푸는 열쇠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세례를 공생의 시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구원받고 세례 받아 하나님나라백성이 되었으니 우리는 공인입니다. 공적인 사람은 모든 언행이 사람들에게 노출되기 때문에 우리는 공인답게 신앙인에 걸 맞는 언행과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본문 말씀을 따라가면서 주님은 왜 세례를 받으셨고, 주님과 같은 세례를 받은 우리가 왜 공인인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주님은 죄 없지만 우리를 위해 세례를 받으셨습니다.(14절)
본문 1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아멘.
세례요한이 죄를 회개하는 백성들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 예수님도 세례를 받기 위해서 갈릴리나사렛을 출발하여 세례요한을 찾아와 세례를 베풀어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자 세례요한이‘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당신이 내게 세례를 받으려 하십니까?’이렇게 거부합니다.
이걸 볼 때 세례요한은 이미 주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례를 거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만나 것은 이 때가 처음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했을 때 엘리사벳을 만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엘리사벳의 복중에 있던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만나자 기뻐서 복중에서 뛰논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세례요한은 성령의 역사로 이미 복중에서부터 예수님이 누구며 어떤 일을 할 것인지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오늘 그의 이런 반응은 당연한 것입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 당연 것인데, 첫째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데 인간의 아들인 자기가 감히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이는 마치 4성 장군이 이등병에게 경례하고 심부름하는 것보다 더 쇼킹한 일입니다. 그래서 의로운 세례요한은 이를 거절했을 겁니다.
두 번째는 자기가 베푸는 세례는 죄인들이 죄를 회개하고 죄와 결별하는 의미로 주었는데, 예수님은 일단 죄가 없으신데다 정말 완벽하신 의인이자 하나님이신데, 그런 분에게 어떻게 세례를 베풀 수 있단 말입니까? 오히려 자기가 주님께 세례 받는 것이 맞겠지요. 그래서 거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주님은 죄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 세례를 받을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왜 굳이 세례를 받으려고 하셨을까요?
그렇습니다. 제가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듯이 주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우리 때문입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우리의 죄 덩어리를 뒤집어쓰시고 죽어야만 하는데, 그 죄를 뒤집어쓰는 작업이 바로 세례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례를 통해서 주님은 우리의 죄를 뒤집어썼고, 우리 대신 죄인이 된 겁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며, 완벽하게 의인이신데 세례라는 방법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전가시켜 예수님을 죄인으로 만든 것입니다.
마치 구약시대에 죄인이 양을 잡아끌고 하나님성전으로 올라가 그 양에게 안수하여 자기 죄를 양에게 전가시킨 후, 그 양을 잡아 그 피를 뿌림으로 자기의 죄를 사함 받은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에서 사용했던 안수하여 죄를 전가시킨 방법을 오늘 예수님께 그대로 시행했는데, 그게 바로 세례였습니다. 갈1:4절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 주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기꺼이 세례를 받고 죄인이 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나를 살리기 위해 하나님이신 당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도 모자라, 죄인의 탈까지 뒤집어쓰고 죽으심으로 대신 우리를 죽음에서 살려내신 것입니다.
이런 주님을 생각하면 우리는 정말 주님을 위해 어떤 희생과 헌신을 다해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께 다 드려도 그 은혜를 갚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말합니다.(빌3:8)
그만큼 주님의 은혜와 사랑은 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이겠지요.
어쨌든 세례요한도 어떻게 감히 주님께 세례를 베푸냐고 망설이다 15절에서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이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세례를 베풉니다.
이렇게 해서 주님은 사람들이 지옥가지 않고 영생을 누릴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요3:16절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오직 주님한분 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아담의 원죄로 인해 본래 죄와 사망의 늪에서 기쁨보다는 슬픔이,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이, 행복한 일보다는 불행한 일을 훨씬 더 많이 겪으면서 한평생 허우적거리다가 죽으면 지옥으로 끌려가야 하는 비참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그런 인생의 고해를 깨달은 수많은 선각자들이 이런 고통과 아픔 속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수많은 종교와 철학이 만들어냅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인(仁)과 예(禮)를 중요시하는 유교적 바탕에서 도덕과 철학이 생겨났고, 인도에서는 스스로 깨달아 해탈에 이르는 불교가 생겨났으며, 아라비아에서는 알라신에게 절대 복종하는 이슬람교가 생겨났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종교와 철학이 생겨나 나름대로 해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런 종교나 철학들 중에 그 어느 것도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대신 죽어준 종교나 철학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유머가 있는데, 어떤 사람이 급류에 빠져 허우적대며 떠내려가자 이를 본 공자는 윤리 도덕적 관점에서‘왜 조심하지 않고 물에 빠졌는가?’라며 나무랐고, 석가는 해탈의 경지에서‘스스로 깨닫고 살아 나오라’고 외쳤으며, 마호멧은‘인샬라’즉‘알라의 뜻대로’만을 중얼거리며 앉아있었답니다.
그때 갑자기 한 청년이 물에 뛰어들어 그 사람의 손을 잡고 물 밖으로 끌어내 목숨을 구했는데, 앞의 세 사람이 놀라서 쳐다보니 그가 바로 예수님이었답니다.
그럴듯하죠? 우리 주님은 우리가 죄와 사망의 급류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우리를 구하기 위해 직접 그 더러운 탁류 속에 뛰어들어 우리를 건져내셨습니다.
여러분!!! 남을 돕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돈과 정성을 희생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더구나 그 사람이 나와 원수지간이라면 이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여러분처럼 인성이 거의 주님 급이라면 가능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롬5:10절에서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주님은 우리가 아직 하나님과 원수였는데도 이 원수를 살리자고 하늘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만왕의 왕이시면서도 종의 몸을 입으셨고,(빌2:6-7) 죄가 없으시나 죄인이 되는 세례를 받아 우리 대신 하나님께 저주를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 주님은 하나님이면서도 우리를 구하시려고 철저히 우리와 동일한 모습이 되신 것도 모자라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고 말씀합니다.(히2:11) 사실 우리는 피를 나눈 형제라도, 아니 부모님이어도 가난하고 볼품없으면 학교도 못 오게 하고, 와도 체면 깎인다고 속된 말로 쪽팔린다고 아는 체도 하지 경우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가 아무리 돈 없이 가난하고, 생긴 것도 볼품없고, 사람들에게 천대받고 무시를 당해도 절대로 외면하지 않고 친구로 대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세례 받은 신앙인답게 우리의 어렵고 힘든 형제를 부끄러워 말고 섬길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둘째로, 구원받고 세례 받은 우리는 세상에서 공인(公人)입니다.(16-17절)
본문 16-17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아멘.
본 절은 주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주께서 세례를 받고 죄인이 되어 일시적으로 하나님께 버림받는 신세가 되셨지만, 하나님은 그런 그리스도를 위해 아담의 범죄이후로 닫혀있던 하늘 문을 여셨고, 동시에 성령이 비둘기같이 강림하셨으며, 계속해서 당신의 음성까지 들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이 자리가 얼마나 중요하고 중요했으면 지금까지 유례가 없었던 성부, 성자, 성령, 이 세분 하나님이 동시에 등장하셨겠습니까? 이것은 그만큼 우리의 구원사역이 하나님께 중요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까지 잡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공개적인 절차를 통해서 주님은 이 세상의 메시야로 선포되었고, 성령에 의해 그 구원사역을 이룰 수 있도록 능력까지 공급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세례는 지금까지의 사적인 생활을 마감하고, 이제부터는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야로서의 공생애, 공적생활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오늘 우리는 주님의 세례를 지켜보면서 오늘날 우리가 받는 세례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생각해봅니다. 여러분,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여기 계신 여러분도 거의 세례를 받으셨는데, 세례를 받기 전과 후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보통 이런 질문을 하면‘성찬식에 참여하게 된 것이 제일 큰 변화이고 좋은 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고, 또 술을 못 먹었는데 성찬식 때 마실 수 있어서 좋다며 포도주를 큰 잔에 부어주었으면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여러분!!! 성찬식은 주께서 잡히시던 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마지막 만찬을 행하실 때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주시며 이것은 나의 살과 피라면서 이것을 먹고 마시는 자는 내 살과 피를 먹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이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에게만 영생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께서 우리에게 세례를 베푸신 것은 단지 성찬식에 참여하라고 그런 게 아닙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백성과 이방인들이 하나님나라백성이 되려면 할례를 받았는데, 세례는 그 할례와 비슷한 것으로, 이는 과거의 죄악 된 생활을 청산하고 이제부터는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천국백성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롬6:3-11) 그러니까 세례는 우리의 시민권이 이 땅에서 천국으로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더구나 주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삼위 하나님이 함께 임재하셔서 세례를 보증하셨는데, 우리도 세례를 받을 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하여(마 28:19) 우리의 세례도 주님과 같은 급으로 그 권위를 높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주님과 같은 급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는 일찍이 주님께서 세례를 받고 메시야로서의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같은 세례를 받았으니 천국백성으로서 공인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갈3:27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합한 사람답게 즉 공적인 천국백성답게 생각하고 살아가시라는 것입니다.
공적인 삶은 내가 하는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보여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세례를 받은 순간부터 그리스도인으로서 공적인 인물이 되었으니 하나님과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여, 항상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부끄러움이 없이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마치 한 나라의 대사가 그 나라를 대표하여 공인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도 천국을 대표하는 공인으로서 천국복음을 전하고, 공동체를 돌보며, 형제들을 섬기는 그런 삶이 되어야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 복을 받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