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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불편한 이웃
우리 집엔 '다롱' 이라 불리는 작은 개가 있다. 낯모르는 사람이 집에 들어오면 어찌 강하게 경고하는지 주인이 손님에게 미안할 정도이다. 진돗개 피가 섞였다 들었는데--정말 '개다운' 개다.
게다가 따뜻한 정도 많은 편이다. 여름 날, 마당에 솟아난 잡초를 뽑느라 힘겨워 할 때면, 내 옆에 와서 최선을 다해 도와주기도 한다.
풀을 뜯는 다롱이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땐, '개 풀 뜯어먹는 소리하고 있네 !'라며 비아냥대는 세상 사람들 표현이 떠올라 그저 피식 웃었다. 하지만 내가 풀을 버리는 곳까지 자신이 뽑은 풀을 일부러 가지고 와서 뱉어 놓고, 제 맡은 자리(?)로 되돌아가 다시 열심히 뽑는 것을 보고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자주 되풀이 되다보니, 이제 우리 집 사람마저 다롱이 의 일손 돕기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어쩌다 우연히 발생한 '단순 행동'이 아니라 다롱이의 따뜻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의도적인 행동' 이었다.
이따금 널어놓은 빨래 중 손수건을 입에 물고 스카프처럼 흔들며 정열적으로 발레를 출 때도 있다. 깜짝 놀란 집사람이 달려 나가 꾸중하면-- 꼬리를 내리고 반성하는 빛이 역력하다.
꾸중을 듣고도 들은 둥 마는 둥 능글능글하면 같은 인간일지라도 눈에 거슬리는데, 다롱이는 모르고 저지른 단순한 실수에 대해 지나친 꾸중을 들어도 삐지는 것보다는 곧 바로 뉘우치고 반성을 하니까 천진난만하고 귀여워 보인다.
출근 때, 사람들은 '직장에 잘 다녀오라.' 인사하고 곧장 안으로 들어간다. 또 삐지 면 아예 안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다롱이 배웅은 정성이 가득 차 있다.
마당에서 대문까지 뻗어나 있는 길옆에 심은 장미나 동백 같은 꽃나무들이 차바퀴에 다칠세라 염려되어 조심스레 통과하게 만들려는 뜻인지--- 내 차가 마당에서 대문까지 30여 미터를 나가는 동안, 줄곧 차 앞에서 속도를 제한해준다.
제 영역임에 확실한 우리 집 울타리 부근을 허락 없이 옆집 고양이가 배회하거나 혹은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할만한 음식 찌꺼기가 길가에 놓여 있는 등등--- 이런 다급하거나 중요한 일만 없다면, 대문을 나선 후에도 동구 밖까지 약 100여 미터에 이르는 거리를 앞장서 달린다.
바쁠 땐, 그 정성이 상당히 짜증나게 만든다. 큰길에 이르러서야 '잘 다녀오라!'는 눈인사와 더불어 한쪽으로 비켜 서준다. 퇴근 때에도 내 차 소리를 듣고 아침에 헤어졌던 곳까지 마중 나오곤 한다. 사람이야 외출 때문에 마중 못해줄 때도 있지만, 다롱이 만은 마실갔다가도 내 차 소리를 들으면 곧바로 달려온다.
늦은 봄, 다롱이를 위해서 개집을 새로 정돈해 주었다. 바닥으로 사용한 판자가 지저분해서 태워버리고 불럭을 깔아주었다. 매끈하면서 습기가 올라오지 않아 여름 장마철에도 개운하다 좋아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새 집을 놔두고 항상 맨 땅위에서 잤다.
여름철에야 '탁 트여 시원한 밖이 좋아서' 라고 가볍게 넘겼는데, 쌀쌀한 늦가을 날에도 찬이슬을 맞으며 밖에서 자니 의아하게 느껴졌다. 더구나 , 새끼를 배어 해산때가 다가오니 내 자신이 더 초조해졌다.
어느 날 새벽, 산책을 가려고 뜰에 내려서는데 다롱이가 감나무 밑에 누워 있다가 나를 마중했다. 추석이후 마당에 자란 잔디를 깎아내어 그곳에 쌓아놓아 양탄자처럼 푹신 거리고 따뜻한 곳이었다. ' 저 녀석은 바닥이 부드럽고 따뜻한 곳을 찾는가 보구나 ! '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험삼아 그곳으로 개집(밑바닥이 없이 3면 벽과 지붕이 있는)을 옮겨 주었다. 그 뒤부터는 그곳에 들어가 잤다.
수행이 깊은 불교인에게 나타나는 신통력 중 하나인 타심통(他心通: 다른 인간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힘)엔 이르지 못했어도 견심통 ?(犬心通: 개 마음을 알아차리는 능력 )은 터득했나보다.
몸 풀 마땅한 장소가 다롱이에게 마련되어 정말 다행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 지난 일요일 오전, 한가롭게 책을 보고 있는데 , 막내가 "어어 ! 아빠 ! 다롱이 새끼 낳는 것 같아요."라고 외치며 다급하게 뛰어 나갔다. 뒤따라나가 보니 태가 아직 나오지 않아 갓 태어난 강아지가 어미 배에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다롱이는 집 주위를 마구 헤매고 있었다.
강아지는 땅에 씻기기도 하고 어미가 울타리로 심은 국화꽃밭 속으로 들어가면 가지에 부딪히기도 했다. 걱정이 되어 집 뒤 동산까지 뒤 따라 갔는데, 나무줄기에 탯줄이 걸려 그곳에서 태가 쏟아져 나왔다. 탯줄을 끊어주는 일이 당장 급한 행동이련만---- 다롱이는 새끼를 내팽개치고 열심히 집 주변만을 두리번거렸다.
자식 내 버리는 못된 인간들이 있기에 사람에겐 고아원이 필요하지만 개들은 모성애가 강해서 '개 고아원'은 필요 없다 생각해온 내 상식에 어긋나는 짓이었다. 그래서 새끼를 일단 주어서 집에 넣어주고 자세히 주위 상황을 관찰해보았다.
문제는 옆집에서 침략해온(?) 두 마리 개였다. 제집 앞에 놓여있는 밥을 빼앗아 먹는 것도 껄끄러울 터인데 그들이 제 집안까지 엿보니까 새끼 안전이 걱정되어 다른 조용한 곳을 찾아 나선 것 같았다.
그 개들을 몰아내려 했지만 , 주인이 아니라서 인지 술래잡기 놀이쯤으로 여기고 내 뜻을 묵살해 버렸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다소 서먹서먹한 옆 집 개 주인을 찾아 사정을 설명하고 부탁을 했다. 내 말을 다 듣고서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는 마지못해 개를 불러들였다. (우리 집은 대문이 없는 집이라서 다른 집의 개가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침략자들이 물러가고 출입구 앞에 짚을 수북이 쌓아 외부 시선으로부터 가려지자 제 집에 들어가 나머지 새끼를 낳기 시작했다. 오후 4시쯤 6번째로 검은 강아지를 낳고 마무리 지었다.
해산 후 , 다롱이와 내 역할이 서로 뒤바뀌어졌다. 이제 출, 퇴근 즈음에 문안 인사를 받는 것은 다롱이었다 ! 새끼들 건강을 점검해보고 어미가 멀리 떠나지 않도록 , 바로 집 앞에 먹이가 항상 있게 배려하는 것이 내 몫이었기 때문이다.
강아지들은 모두가 아무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 2주가 지나자 눈을 떴고 그 이후엔 밖으로 뒤뚱뒤뚱 걸어 나와 똥이나 오줌을 싸고 들어가곤 했다. 어미의 위생 교육이 철저한 가보다.
3주를 무사히 넘긴 날, 직장에서 돌아와 마당에 차를 세웠을 때였다. 여느 때와 달리 다롱이가 집밖에서 흥분상태로 뛰어 다니고 개 집안에서 강아지 우는소리가 나는데 단순한 욕구불만 표시가 아닌 신음 소리였다. 보호자로써 인정하기에 내가 새끼를 둘러보는 것에 대해 큰 경계심을 보이지 않던 다롱이가 이 때만큼은 출입구 앞에 버티고 서서 관찰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다행이 어미에게로 새끼들이 스스로 몰려와 젖을 빨기 시작해서 점검해볼 수 있었다. 5마리는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한 마리는 개집 깊숙한 곳에서 계속 울고 있었다. 다롱이를 밀치고 그 강아지를 손으로 집어 꺼내자 더욱 자지러지게 울었다.
자세히 보니 목 부근 털에 피가 묻어 있었다. 긴장해서 좀 더 꼼꼼히 살피자 아래배가 3cm 정도 찢어져 돼지 순대 비슷한 회색 피부막이 보였다.
내 주위에 와있던 짝이 놀라더니 ' 약 두 시간 전, 내가 집에 넣어주기 전부터 계속 울었는데 이렇게 심하게 다쳐서 그랬구나!' 고 말했다. 그녀 말을 듣고 사태를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다롱이 짖는 소리가 드세어 그녀가 밖을 보니 옆집 개 두 마리가 와 있고 다롱이가 그들을 쫓아내려 애 쓰고 있었다. 다롱이 혼자이다 는 것을 알아채고 물러나지 않는 그 침입자들의 교만함이 괘씸해서, 다롱이를 도와 몰아 내주려 그녀는 밖으로 나왔다. 그 때 강아지 한 마리가 개집에서 멀리 떨어진 마당에서 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시기 강아지들이란 어미가 있는 개집으로부터 반 경 2-30cm 이내에 머무는 법인데 ---이상 하지만 더 이상 깊이 생각해 보지 안하고 손으로 들어 개집에 넣어주었다 . '그 이후로 2시간가량이나 계속 울기에 그녀도 조금은 의아하게 여겼다' 고 말했다.
그녀 설명을 듣는 그 순간에도 옆 집 개들이 아직도 주위에서 맴도니까 다롱이도 집에 못 들어가고 마당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우둔한 옆집 개들 말 짓이 틀림없었다. 오랜 기간 주인에게 시달려오는 과정을 통해 주인을 닮아 잔인해졌다면 충분히 그럴 만 했다.
그 집엔 개가 4마리나 있었다. 그런데 이번 여름이후 연달아 3번 도둑 침입이 있었는데 개들이 짖지 않았다며 이웃집 남자는 투덜대곤 했다. '개답지 못한 놈들 -- 밥값도 못하다니--' 라고 담 너머까지 들리는 화난 그의 목소리 다음엔 항상 두들겨 맞고 깨갱대는 개들 비명소리가 뒤를 잇곤 했다.
먹이를 적게 주고 자주 두들겨 패야 개가 사나워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 개들은 모두가 바짝 여위었다. 때에 따라서는 개의 신음이 하루 종일 울리는 날도 있다. 아마 때리다 주인이 먼저 지치면 지속적으로 고통을 주는 어떤 방법( 예를 들면 고개도 못 움직이게 개 줄을 바짝 매어 놓는 등 )을 쓰나 보다.
직접 당하는 개의 고통에 비교될 수 야 없겠지만, 이웃에 사는 인간들도 상당한 고통을 받았다. 이따금 자랑삼아 시도 때도 없이 틀어놓는 그 집 고성능 전축이 내 뱉는 '쨍하고 해뜰 날 돌아온단다 ' 혹은 ' 앗싸, 호랑나비 한 마리가--' 라는 노래만큼이나 개들 신음소리는 그를 흥겹게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우리 가족은 모두가 고통스럽게 받아들였다.
그와 고샅길에서 마주친 어느 날, 지나가는 말로 '개가 병이 들었는지 너무 신음을 하는데 가축병원에 한번 데려가 보는 것이 어떠냐 ?' 말했다. 그는 다소 겸연쩍은지 도둑맞은 이야기와 우둔한 자기 집 개들에 대한 욕설을 지루하게 재방송했다. 그리고 '그 집의 개는 영리하던데 새끼 나면 한 마리 달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아무튼 그렇게 시달린 개들이 밖으로 내몰리면 가장 가까운 우리 집에 와서 염치 불구하고 다롱이 밥을 제 것 인양 허겁지겁 먹는다. 평소 다롱이는 그들을 보고도 못 본 척 너그럽게 내버려둔다.
그날도 처량한 모습으로 얻어먹으러 왔는데, 새끼 때문에 다롱이가 예전처럼 너그럽지 못했나 보다. 예민해진 어미가 가족방어를 위한 선제공격을 했을 법하다. 새끼들이 젖을 물고 있는 상태에서 집밖에 있는 침입자들을 향해 돌진하면, 젖에 주렁주렁 매달린 상태로 강아지들도 함께 딸려 나오다가 입구 부근에서 제 몸무게 때문에 어미 몸에서 떨어지기 마련이다.
배곯아 눈이 뒤집힌 옆 집 개에겐 그 어린 강아지가 고 단백질 고기 덩이로 보여 물고 가다가 어미의 호된 공격을 받았으리라.
상처가 아주 깊어 보여 난감했다. 새끼 낳게 되면 해부간이 번거로워, 다롱이가 수컷과 어울리는 것을 막아보려 온 가족이 안간힘을 써왔는데---. 우리 가족의 공동 감시의 빈틈을 노려 수컷과 밀회를 즐기다가 덜컥 임신을 해버렸나 보다.
태어난 생명이니 마지못해 키우는 판에 6km 넘게 떨어져 있는 가축병원까지 가서 예기치 못한 돈을 써야하니 떨떠름했지만 워낙 중상이라서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수의사는 전문인답게 침착하고 능숙했다. 그는 , 먼저 정확하게 상처를 보고 치료하려고 상처 부위 털을 깎아냈다.
상처는 상상을 초월했다 ! 털이 없는 아랫배에서 처음에 쉽게 찾아낸 3-4 cm 의 상처 이외에도, 털이 많은 엉덩이 부분에 또 두 군데 상처가 있는데 길이가 역시 3cm -4cm에 이르렀다. 피가 묻어있던 뒷 목덜미도 1cm 정도가 찢어져 있었다. 전체 몸길이가 22 cm 인데 그 정도 상처라면 누더기가 된 꼴이었다.
수의사가 수술할지 물었다. 흔해빠진 발발이 잡종이자 푸줏간 고기 덩어리처럼 너덜너덜 헤어진 강아지에게 돈 들여 수술하리라 기대하지 않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래서 우선 생존 가능성을 물었다. 가능성이 없다면 안락사를 부탁하려했다.
그런데 그의 말이 참 애매했다. '수술해봐야 알 수 있단다 ! ' 달리 말해서 수술비만 날릴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옆에서 아들이 내 표정을 살피는 눈치였다. 수술 쪽으로 결정을 내린 것은 모든 생명을 편애 없이 소중하게 여겨야한다는 가르침 때문이었지만 내 아들을 위하는 마음도 크게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수술을 결심하자 보호자 서약을 구두로 받았다. 3주밖에 안되어 마취 중에 죽어버릴 수 있는데 책임을 추궁하지 않겠다는--. ( 아마 값비싼 개라면 서면으로 좀 더 확실하게 다짐을 받았을 터인데--). 수술하다 죽어도 수의사는 수술비를 받겠지만, 살아날 가능성도 아주 낮고 또 살아나 보았자 우리 가족에게 짐이 될 뿐인 강아지를 살리기 위해 수술비를 들이자니 씁쓸해질 뿐이었다.
약 1시간에 걸친 대 수술 후 강아지는 회복실 (가로, 세로 40cm 정도 방)에 옮겨졌고, 또 30여분을 더 기다린 후에야 마취에서 깨어났다. 수술비는 5만원이었다. 내가 병원에 가면 의료 보험 혜택이 있어 약값까지 포함해서 7천원 정도면 충분했는데---!
그 부담은 그래도 견딜 만 했다. 수의사 주문이 까다로웠다. 병균이 침입하면 안 되니 어미가 상처를 핥지 못하게 떼어놓고, 조제해준 약을 제 때에 먹이고, 어미 대신 우유나 설탕물을 자주 먹이라는 것이었다. 또 수술 부위 털을 면도해서 추위를 타니까 따뜻한 곳(?)에 모시라는 명령도 있었다.
난감했다. 나는 동물들을 귀여워하는 편이다. 하지만 실내에 강아지를 두는 것은 내 생사가 걸린 문제이기도 했다.
2년 전, 개를 끔찍이 귀여워하는 처제가 강아지를 데리고 우리 집에 와 몇 일 지내고 간 이후, 나는 말로만 듣던 천식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잘 알게 되었다. 그것은 아예 숨을 못 쉬게 만드니 , 사람 목숨을 끊는데 있어서 심장 병 보다 더 빠르고 강력하다.
나는 긴급히 병원에 실려 가서 상당 기간 집중 치료를 받아야했다. 강아지를 위해서 따뜻한 실내에 두자면, 천식재발로 입원할 것을 각오해야했다. 전생에 무슨 한이 맺혔는지, 개의 편안함과 행복이 인간인 나의 고통이자 불행 이었다 !
집에 돌아와 처음엔 우선 신발 벗어두는 현관에 헌 옷을 깔고 두어 보았다. 거실보다야 춥지만 개집보다는 훨씬 따뜻한 곳이다. 그리고 어미를 불러들여 젖을 먹여보려 시도해보았는데-- 자꾸 새끼 상처를 핥으려 했다. '그 곳 치료는 내가 병원까지 데려가서 잘 해주었으니 너는 걱정 말고 젖만 주면 돼. 그 다음엔 춥지 않도록 네 따뜻한 몸으로 품고만 있어 줘 ! ' 라고 아무리 타일러도 막무가내였다.
젖줄 생각은 안하고 하지 말라는 일만 하려 고집을 피웠다. 아파 칭얼대면서도 어미를 보자 젖을 찾아 가슴 쪽을 향해 힘겹게 다가서는데 그 때마다 얄미울 정도로 새끼를 피해 몸을 틀어 댔다. '띨띨한 녀석 ! 제 새끼도 못 지켜서 큰 상처 입게 만들어 놓고---게다가 미련하게 제 고집만 피우다니---!' 라며 부화가 치밀기도 했다.
조급한 마음에 강제로 어미를 눕히고 새끼를 어미 젖 가까이 접근시키게 해보았지만 불가능했다. 나, 집사람, 막내아들 3명이 달라붙었지만 불가능했다. 마음이 안 움직이면 젖을 주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어미에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 밖으로 내 보냈다. 별수 없이 좀더 따뜻한 응접실로 그 강아지를 들여와야 했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헌 옷을 이불처럼 덮어주어도 강아지는 몸을 떨며 자주 칭얼댔다. 그 때마다 설탕물이나 우유를 수저로 떠 먹였다. '자주 먹이라' 는 지시를 가장 어렵게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일이 가장 쉬웠다.
밤새 낑낑대던 녀석이 2일 정도 지나자 칭얼대는 소리가 차츰 뜸해졌다. 몸동작도 하루가 다르게 부드러워지면서 라면 박스로 만들어준 제 집 주위를 더럽히지 아니하려고 먼 곳(?)까지 나와 똥 ,오줌을 배설했다. 뒤 이어 동서남북을 가리지 아니하고 활동 범위를 좀 더 넓혀 가면서 제 배설물로 열심히 영역을 표시하는 욕심을 보였다.
굴러 온 돌이 박힌 돌 차낸다는 말이 있듯이, 강아지가 서서히 응접실 전체를 제 영토로 만들어 가고 나는 오줌과 똥을 피하느라 한쪽으로 몰렸다. 2주정도 지나서 털이 상당히 자랐을 때엔---이제 나를 제 어미처럼 여기고 스스럼없이 먼저 다가와서 바지 가랑이나 양말을 물고 늘어지며 장난을 청했다.
그런데--- 요즈음 이웃집에서 다시 개를 풀어놓는다. 그리고 주인 닮아 능글능글한 그 개들이 예전처럼 먹이를 찾아 또 우리 집에 와서 다시 돌아다닌다. 5만원 수술비와 더불어 병원에 달려가거나, 응접실에서 키우는 고생, 오줌과 똥 치우는 일, 천식에 대한 걱정 등등이 머리 속에서 뱅뱅 맴돈다.
그 개들은 다롱이와 달리 반성할 줄을 모르기에, 몰아내려면 힘들어 짜증이 난다. 하지만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야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참아왔는데---. 어제 그 집의 개가 강아지들만 있는 다롱이 집 속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용기를 내어 그 집 대문을 다시 두드려 보았다.
낮잠을 자다가 나왔는지 푸석푸석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보자 오히려 내가 죄 지었거나 아쉬운 것처럼 저자세가 되어 부탁했다.
' 불편하시겠지만 개들을 얼마동안 만 더 집안에서 나오지 않게 해주면 고맙겠다.'고--
그의 얼굴에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 개가 사람처럼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하라고 자꾸 찾아와요? ' 라고 퉁명스럽게 되받고 그는 들어가 버렸다.
젖을 떼어 분양하는 시기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 욕심을 가지고 기다려온 영리한 강아지 새끼 선물 낌새'가 없어 보이자 심통을 부리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롱이에게 한 약속 - 우리 집 사정 때문에 네 새끼를 어쩔 수 없이 남의 집에 분양할 지라도 반드시 좋은 주인만을 골라서 주겠다-을 생각하면 그 집만큼은 절대로 줄 순 없다 !
참 불편한 이웃이다. 꼭 일본이나 미국만큼---!
* 이렇게 내가 불편하게 여기는 이읏을 훌륭하다 칭찬하며 의지하는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 또한 매우 불편하다!
* 제사 이곳에 올린 글 중 하나가 daum 관계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그 글을 읽으셨던 분들 ---- 과연 삭제조치를 당해야할 정도로 타인의 권리 침해로 보이던가요?
설령 비판적이다 할지라도 그 비판에 귀를 기울이는 대범함이 바로 선교가 아닐까요?
그 내용을 삭제할 정도라면 혹독한 독재 국가이지요 ! 그런 독재 사회를 바르다고 보는 기독교라면---- 선교로 세를 불리기는 커녕 자꾸 축소될 것 같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