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실내가 장판이면 실내화를 신을 필요가 없겠지만
마루로된 실내는 반드시 실내화를 신어야 합니다.
실내화를 신지 않으면 걷는 소리가 아랫층의 층간 소음이 되지만
실내화를 신으면 완충 효과로 인해 걷는 소리가 층간소음이 되지 않습니다.
실내화는 신발처럼 자신을 화려하게 드러내지 않지만
마루가 있는 아파트 실내 생활을 편안하게 합니다.
취향에 따라서 고급 실내화를 신기도 하지만
다이소의 실내화로도 실내화의 품격은 충분합니다.
낡은 실내화는 낡은 구두나 운동화처럼 외식의 도구가 아닌
소중한 자아를 위한 진실한 삶을 담았습니다.
낡은 구두를 신고 선거유세를 하고
구멍난 운동화를 신고 선거유세를 하는 것은 타락한 인성의 적폐, 그 증거일 것입니다.
요즘은 노숙자도 낡은 구두를 신지 않고
구멍난 운동화를 신지 않습니다.
감성팔이 시체팔이를 일삼는 좌파본색은
낡은 구두와 구멍난 운동화를 신고 선거 유세를 하는 폐포파립(敝袍破笠)의 청백리 탈을 쓴
표리부동한 외식의 극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에서 바리새인의 외식을 질타하였으며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고 엄히 책망하였습니다.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23:27-28)
진실과 거짓의 사각지대에서 양의 탈을 쓴 늑대 놀이는
정치인이든 종교인이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독사의 독을 가진 파멸의 늪이 아닐 수 없습니다.
☞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롬3:10-18)
낡은 구두나 구멍난 운동화와 같은 외식의 상징이 아닌 실내화는
현관문 밖으로 나간적이 없고 오직 저만이 누리는 삶의 동행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은총의 자유를 병들게 하는 외식과 탐심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는 심판의 첩경입니다.
어느 날 문덕 낡은 실내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버리기 전에 사진 한 컷을 남겼습니다.
그 동안 실내 생활을 편안하게 해주었던 실내화는
발처럼 삶의 지체가 되어 진실한 삶의 향취가 되었습니다.
때로는 주방의 일을 도와주고 청소를 하고 화장실을 드나들고....
무엇보다도 고지전 운동의 중력을 감당하였습니다.
애틋한 정서를 가진 낡은 실내화는
아름다운 삶의 문화, 그 동행이 되어 거짓없는 공간의 사랑과 진실이 되었습니다.
고지전 운동의 열정과 그 집념을 감내하였던 실내화는
낡은 모습 그대로 한 컷의 사진으로 남아 이렇게 소중한 카페의 글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