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인 제노(4.12)
제노(4.12)
성인명 제노 (Zeno)
축일 4월 12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활동지역 베로나(Verona)
활동연도 +372년경
같은이름 제노네
성 제노의 생애는 자세히 알 수 없고 다만 교황 성 대 그레고리오 1세(Gregorius I, 9월 3일)의 “대화집” 속에 나타나는 자료 등으로 그의 일면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교황 성 대 그레고리오에 따르면 그는 베로나의 주교로서 순교했다고 한다. 하지만 베로나의 옛 미사 경본에서 그를 ‘증거자’로 부르고 있고, 또 그와 동시대 사람인 밀라노(Milano)의 성 암브로시오(Ambrosius, 12월 7일) 주교가 자신의 편지에서 성 제노가 증거자로서 행복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표현한 점으로 보아 순교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아무튼 그는 전설에 따르면 로마제국의 속주인 북아프리카의 마우레타니아(Mauretania, 오늘날의 모로코 북부와 알제리 중서부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태어난 듯하다. 그의 라틴어 저술이나 인용문들을 살펴볼 때 훌륭한 교육을 받고 성장했음이 분명하다. 그는 362년경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361~363년 재위) 때 베로나의 여덟 번째 주교로 선출되었다.
주교로서 성 제노는 열정적이고 능력 있는 설교자로서 아리우스(Arius) 이단과 시민들 속에 남아 있는 미신의 잔재와 맞서 싸워 많은 군중을 개종시키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매년 이탈리아 북부의 수많은 이교도를 개종시켰고, 그들을 위해 더 큰 성당을 지어야 했다. 그리고 고트족의 침략으로 수많은 사람이 노예로 팔렸을 때 성 제노의 모범을 따라 많은 시민이 자선을 베풀었고, 그 결과 노예 속량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여 많은 이들을 구하였다. 성 제노는 언제나 가장 가난한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성 암브로시오에 따르면 그의 지도를 받고 일생을 하느님께 바친 동정녀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는 또한 교회 생활과 전례에도 관심이 많았고, 성찬례 후에 거행되는 공동 식사인 아가페(Agape)와 관련된 남용을 비판했으며, 장례 때에 큰 소리로 울어 미사를 중단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한다. 그는 372년경 4월 12일 주님 부활 대축일 무렵에 선종하여 베로나의 산 제노 마조레(San Zeno Maggiore) 성당에 묻혔다.
성 제노가 선종한 후 그의 설교와 전례에 관한 단편들을 모아 편찬하면서 그를 아리우스주의의 반대자이자 제1차 니케아(Nicaea) 공의회의 정통교리를 대표하는 신학자로 공인하였다. 또는 성 제노는 서방 교회에서 성모 마리아의 동정 교리를 강력히 주장하고 동정 생활을 장려한 최초의 인물 중 한 명으로, 그런 뜻에서 베로나에 최초의 여성 수도원 중 하나를 설립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성 제노는 베로나를 흐르는 아디제강(Adige R.)에서 낚시를 좋아하고 성직에 오르기 전 어부였을 수 있다는 전설에 따라 낚시하는 모습이나 물고기와 함께 묘사된다. 이는 사람 낚는 어부로서의 그의 역할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다. 옛 “로마 순교록”은 4월 12일 목록에서 베로나의 성 제노 주교가 박해의 폭풍 속에서도 큰 용기로 교회를 돌보고 갈리에누스(황제가 아닌 지역 귀족으로 추정) 시대에 순교의 영광을 안았다고 전해주었다. 하지만 순교에 대해서는 근거가 불확실하다. 그래서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베로나의 성 제노 주교의 노고와 설교를 통해 그 도시가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게 되었다고 기록하며 순교 여부는 언급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