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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공경하는 가정이 되십시오
20: 12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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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6:1-4
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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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우리 사회는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란 만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인구 수의 7%이상을 차지하는 사회를 말하는데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 2000년대에 진입하면서 만 65세 이상의 인구 비중이 7,2%가 되어 정식으로 고령화 국가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금년 2005년에 들어서서는 소위 노령인구가 417만명으로 집계되어 총인구의 8,7%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노인들의 평균 수명 증가와 가임 여성들의 출산율 저하로 우리나라는 이제 전 세계에서 가장 급속한 속도로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201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인구 대비 노령인구 15%의 소위 초 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될 것을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런 노령화 사회현상이 촉진되면서 이미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노인들의 사회 보장 문제가 최대의 사회 현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논의의 뒤안길에서 아직도 논의되기를 기피하고 있는 최대의 숨겨진 또 하나의 사회 현안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소위 노인 학대의 문제입니다. 한국 보건 사회 연구원이 최근 전국 6대 대 도시의 12개 노인 종합 복지관을 이용하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전체 응답 노인의 8,2% 무려 10%에 가까운 노인들이 그들의 자녀 및 가족원으로부터 학대받고 있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이제 다음과 같은 사례들은 신문기사 제목들로 우리가 어렵지 않게 다반사로 접하는 뉴스들이 되었습니다. “반찬 투정 꾸짖는 아버지 살해한 20대 긴급체포”,“중풍 칠순 노모 살해한 50대 아들 영장”,“꾸중들은 손자 할머니 살해”,“치매 걸린 아버지 구타 살인”, “고부갈등 고민 아들 치매 80대 노모 강변에 고려장”, “용돈 거절당하자 어머니 폭행”, “집 팔게 인감 달라며 아버지 폭행 30대 영장”,“장가 보내주지 않는다며 아버지 폭행”--문제는 이런 존속 상해 및 살인 사건,노 부모 유기 사건등의 노인 학대 사건 사례들이 극히 일부 불효자들의 반 인륜적 패륜행위로 행해지는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노인 학대가 우리의 삶의 장에서 보편적으로 은밀하고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시대 못지 않은 빠른 사회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던 한 시대가 있었다면 바로 1세기의 로마제국 시대였다고 할수 있습니다. 소위 로마제국이 전 세계를 정복하며 가져온 팍스-로마나의 식민지 문화, 개방적인 로마 문화는 당시의 기존 전통 윤리에서 사람들을 해방하기 시작했고 가정붕괴가 촉진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에서 바울사도는 소아시아의 가장 로마적인 도시였던 에베소에서 복음을 받아드리고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들이 된 에베소 교회를 향해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특히 엡6장에서 바울은 부모를 향한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을 논하면서 이것은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고 가르칩니다. 무슨 말입니까?
본래 십계명은 두개의 돌판에 나뉘어 쓰여져 모세에게 전달된 것입니다. 첫 돌판에 1-4계명이, 둘째 돌판에 5-10계명이 쓰여졌던 것입니다. 첫째 돌판에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간이 지켜야 할 계명들(대신 윤리)을 기록하고 있다면 둘째 돌판에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지켜져야 할 계명들(대인 윤리)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5계명이 인간대 인간의 계명의 관점에서(둘째 돌판)는 첫째 계명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계명에 나타난 자녀들의 부모를 향한 의무를 요약하면서 이 의무를 다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축복에 의해 양적, 질적으로 행복한 웰빙 인생을 살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양적인 행복은 장수이고 질적인 행복은 잘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기 웰빙 인생을 살고 웰빙 가정을 만드는 법칙으로서의 자녀들의 부모 공경의 의무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부모 공경이 중요한 이유-무엇때문입니까?
첫째는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엡6:1에 “자녀들아 주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것이 옳다”는 말은 이것이 당연한 '자연의 법칙'(natural law)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왜 옳습니까? 창조주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에 자식들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을 허락하셨습니다. 따라서 자녀가 부모의 말을 따르는 것은 언제나 유익한 일입니다.
본래 여기서 사용된 ‘순종’이라는 단어는 “듣는다”는 말에서 나온 것입니다. 흔히 부모가 자녀들을 교훈하면서 “내 말 들어”하고 말합니다. 부모의 교훈의 충정이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녀가 부모의 말을 따르는 것은 자연의 순리이며 상식의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법칙은 인간의 세계만이 아닌 동물의 세계에서도 일반적인 원칙으로 통합니다. 어미는 갓 태어난 새끼를 돌보고 먹이를 주고 보호합니다. 어미는 또한 새끼들의 걷고 뛰고 나르고 싸우는 것을 가르칩니다. 이렇게 해서 어리고 약한 새끼들은 필요한 보호와 안내와 도움과 교육을 그의 어미들에게 받습니다. 새끼들이 어미의 말을 듣고 따르는 것은 생존을 위해 중요한 일입니다. 따라서 자녀들의 부모에 대한 순종은 자연질서의 규범으로 생존의 법칙으로 존중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전도자요 사회학자인 토니 캄폴로(Tony Campolo)의 글에 보면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그가 초등학교 2학년 시절 그가 살던 집은 복잡한 도시 한 복판이었고 유난히 횡단 도로가 많아서 어머니는 늘 옆집에 사는 6학년 누나에게 용돈을 주고 함께 학교로 가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누나가 옆에 동행하는 것을 창피하게 느낀 어린 토니는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엄마에게 누나에게 줄 그 용돈을 자기에게 주면 자기 혼자 걸어가겠다고 우겼다고 합니다. 마침내 허락을 얻어 낸 그는 자기 또래의 아이들보다는 일찍 학교에 혼자 등교하는 아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나중에 커서 중학생이 되었을 때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이 얼마나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독립적인 소년인가를 자랑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토니의 어머니가 조용히 미소를 흘리면서 이런 말을 하시더랍니다. “네가 그때 혼자 학교 가겠다고 독립 선언을 한후 너는 용돈도 생기고 자존심 세워서 편했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토니야, 그때부터 2년이상 이 엄마는 네가 학교 나설때마다 몸을 숨기고 너를 따라 다녔고 네가 학교에서 귀가할 시간이면 나도 학교 모퉁이에 있다가 너를 따라 집으로 왔단다. 혹시나 혹시나 네게 이 엄마가 필요할 때가 있을까 해서 말이야”이것이 바로 부모의 사랑입니다. 이런 부모의 사랑을 알고 이해하는 인생이라면 부모에게 순종함이 마땅하고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둘째는 이것이 신의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엡6:2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natural law)일 뿐 아니라 신의 계명 곧 신의 법칙(Divine law)이라는 것입니다.
왜 바울 사도는 부모 공경을 자연의 법칙 수준에서 끝나지 않고 신의 법칙임을 강조하고 있을까요?
본문에는 적어도 두가지 이유가 설명되고 있습니다.
☛한가지 이유는 이 명령이 우리의 행복을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표현을 빌리면 "약속이 있는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계명에는 없는 유일하게 이 계명에만 부연된 축복의 약속이 있습니다.
출20:12을 다시 읽어보십시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했습니다.
엡6:3에 의하면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고 행복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효도하면 자동적으로 장수한다는 약속으로 이해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유사한 건강과 상황이라면 부모와 축복된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의 인생의 행복의 질과 양이 그렇게 살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의 인생과 비교할수 없을 것을 언약하고 보증하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또 하나 신의 법칙으로서의 이 계명을 강조하는 이유로 바울 사도가 이 십계명의 제5계명을 재해석하면서 자연의 법칙으로서의 순종과 신의 법칙으로서의 공경을 구별하는 것을 유의해 보십시오.
정말 이 계명이 우리에게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부모의 말을 마지 못해 따르는 수준(순종)이 아닌 부모의 존재 그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공경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공경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에서 '카베드'(kabhed)라는 단어로 쓰여지는데 "무겁다", "무게를 둔다'는 뜻으로 부모의 가치를 존중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인간적인 윤리 수준을 넘어서는 마음으로 부모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경험하는 첫 번째 인간으로 그들에 대한 바른 태도를 통해 모든 인간에 대한 바른 태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에게 대한 바른 태도를 학습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 인간관계에서 실패를 거듭하는 사람들 혹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분들을 보면 부모와의 왜곡된 관계, 치유되지 못한 상처가 그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라도 부모님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그분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삶을 시작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도록 하셔야 합니다.
저는 오늘 이 메시지를 시작하면서 노인 학대의 이야기을 언급했습니다만 가장 잔인한 부모 학대, 노인학대는 부모앞에서 우리가 잘못된 인생을 사는 일입니다. 그것보다 더 부모의 가슴을 찢는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한동안 따뜻한 책으로 우리의 심금을 울렸던 이 철환씨의 책 “연탄길”에 보면 "먼 불빛"이라는 제목의 실화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현태란 이름을 가진 아들과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늘 사고치고 친구들과 패싸움하고 심지어 절도까지--아무리 타일러도 막무가내인 아들, 언제 교도소로 들어갈지 모르는 위태 위태한 자식의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마지막 충격 요법으로 아들이 교도소에 가기전 자신이 먼저 교도소에 가서라도 자식의 교도소 행을 막아보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느 날 귀금속 가게에 들어가 마음에 없는 도적질을 하는체 하고 쉽게 붙잡혀 교도소에 간후 면회 온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들아, 이 아버지를 용서해라. 사는게 너무 힘들어 아버지가 순간적으로 잘못을 저질렀다. 아버지가 이 모양이니 넌들 바른 길을 갈수가 있었겠니.--그러나 한가지 부탁이 있다. 너는 꿈에라도 이런 곳을 기웃거려서는 안된다. 교도소는 인간을 처참하게 만드는 곳이란다.” 그런데 이런 아버지를 면회하고 나오는 길에 어머니는 아들 현태를 붙잡고 통곡으로 절규하면서 폭탄 선언을 합니다. “현태야, 할 말이 있다. 네 아버진 도둑질 같은 거 하지 않았어. 정말이다. 이 엄마가 네 아버지를 안다. 네 아버지는 절대 그런 일 하실 분이 아니다. 너 때문에 일부러 그러신 거야. 교도소가 사람있을 곳 아니라는 걸 너에게 보여 주려고--생떼 같은 네 놈, 거기서 네 젊은 시절 다 보낼까봐서--네가 갈 그 곳에 미리 가셔서 네가 오는걸 막아 보시려고” 현태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이 충격, 이 아버지의 희생으로 아들 현태는 이 날부터 마음먹고 다시 태어나 새 인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검정고시 치르고 전문대학에 진학하여 새 인생의 길을 걷습니다. 작가는 이 이야기의 끝을 이런 말로 마무리 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스스로 어둠이 되었다. 빛을 거부했던 아들의 어둠속으로 들어와 끝내는 그르치고야 말 그의 인생앞에 불빛 하나를 밝혀 주었다. 어둔 밤바다 같은 인생에서 표류할 때마다 두고 두고 바라 볼 먼 불빛, 아버지, 아버지--.”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또 한 분의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모든 인류의 창조자이신 여러분과 저의 영원하신 아버지 말입니다.---그분 또한 당신의 자녀들이 죄를 범하고 지옥가시는 것을 막아 보시고자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대신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이 아니십니까? 그분이 스스로 어둠이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빛을 거부하고 살아가던 우리들의 어둠 속으로 들어와 끝내는 그르치고야 말 우리의 인생 앞에 불빛 하나를 밝혀 주신 것입니다. 어둔 밤바다 같은 인생에서 표류할 때마다 두고 두고 바라 볼 불빛이 되시고자--말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의 사랑은 바로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반영하는 작은 불빛들이십니다. 개혁자 말틴 루터는 "부모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들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조건 없는 희생이 무엇인지를 보게하시고 오직 우리의 유익,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신 참 사랑을 알게 된 우리들에게 이제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신 그분이 명하십니다.“네 부모를 공경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