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을 맞으며
▲ 김희선
온 국민의 얼굴에서 웃음을 앗아가 버렸던 잔인한 달 4월을 보내고 가정의 달이자 계절의 여왕이라 일컫는 5월을 맞았다.
5월의 달력을 살펴보니 1일은 근로자의 날, 5일은 어린이 날이자 입하立夏 6일은 석가탄신일, 8일이 어버이 날, 10일은 유권자의 날이자 바다식목일, 11일이 입양의 날, 15일은 가정의 날과 스승의 날, 18일은 민주화운동 기념일, 19일은 성년의 날이자 발명의 날, 20일이 세계인의 날, 21일은 부부의 날이자 소만小滿, 25일은 방제의 날, 31일은 바다의 날 등이 푸짐하게 들어 있다.
아직도 세월호 참사의 악몽이 가시지 않은 탓으로 계절의 변화 따위는 느낄 겨를도 없이 수많은 국민들이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는 가슴 아픈 현실이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추억과 욕정을 뒤섞고/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후략) T.S 엘리엇이 세계1차대전 후 발표한 시에서 표현한 잔인한 달 4월, 2014년 대한민국의 4월은 다시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끔찍하고도 참혹한 달이었다.
4월 15일 밤 9시경에 설레는 마음으로 수학여행 길에 오른 경기도 안산시의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포함한 탑승객 476명을 태우고 인천항을 출항해서 제주도로 가던 6800톤급 세월호가 이튿날 아침에 전남 진도앞 해상에서 침몰되는 참사가 발생해 174명이 구조되고 사망 213명, 89명이 실종상태라고 하니 타이타닉호 사고 이후 최대의 선박사고로 기록될 것 같다.
호미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 예견된 인재(人災)였기에 국민들의 의혹과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다고 들었다. 선박이 침몰되는 위급한 상황에서 승객들 구조에 목숨을 바쳐야 했을 선원들이 승객들에게는 선실에서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으라는 방송을 했으면서 자기들만 살겠다고 선장이란 사람은 팬티바람으로 탈출하고 선원들도 앞을 다투어 도망을 쳐버렸으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가슴까지 물이 차오르는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승객들을 구조하다가 꽃다운 청춘을 마감한 고 박지영 승무원, 자신의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던져주고 또 다른 친구를 구하려다 희생된 고 정차웅 학생, 10여명의 학생들을 구출하고 세월호에 함께 갇혀버린 고 최혜정 교사, 학생들을 비상구로 인도하고 더 많은 학생들을 구하려고 선실로 마지막 발걸음을 돌렸던 고 남윤철 교사, 커튼으로 밧줄을 묶어 20여명의 승객을 구해낸 김홍경씨, 부모와 오빠를 잃고 울고 있는 6살 어린이를 구출해낸 박호진군, 배가 90도로 기운 상황에서도 소방호스를 연결해서 학생들을 구하고 마지막에 간신히 탈출한 김동수씨 등은 세월호의 참사가 만들어낸 영웅들이다.
위급한 상황에서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구조에 최선을 다했어야 할 선원들은 도망치기에 급급한 반면 자신들의 목숨도 위태로운 마당에 다른 사람들을 먼저 구하려고 노력했던 영웅들의 쾌거가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가슴을 아리게 한다.
아직도 실종상태에 있는 이들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노란리본이 국내외에 물결치고 있는 5월에는 국민들의 가슴에 꿈과 희망을 안겨줄 좋은 일들만 있기를 바라면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수필가 김희선 씨는 1996년 〈문예사조〉로 등단했다. 수필집 〈저녁노을〉, 〈가을밤에 부르는 노래〉, 〈서리실 이야기〉, 〈고향에 사는 뜻은〉 등이 있으며 정읍예총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