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기쁘게 하려면 씨를 먼저 뿌리십시오
혜인스님
즉, 상대방의 비유를 맞추라 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다양한 중생의 종류가 있는데
생각이 없는 중생이나, 생각이 있는 중생이나,
모양이 없는 중생이나, 모양이 있는 중생이나,
제각기 취미가 다르고 사는 습성이 다릅니다.
보살은 한 중생이라도 그 뜻을 어기지 않고
일체중생의 뜻을 받들고 섬기는 부모님처럼,
내 몸처럼 받들며 순종하고 받들어야 합니다.
우리 중생들은 비유 맞추기가 힘듭니다.
부부가 몇 년 살다보면 고약한 성질만 드러나
상대방의 뜻을 거역하기 때문에 탈이 납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은
남의 비유를 잘 맞추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재물이 많다 할지라도 자기 고집을 버리고
남의 뜻을 맞출 줄 모르는 인생은 잘못 가는 것입니다.
모든 중생을 볼 때 항순중생을 실천하고 있으십니까. ‘
내가 이래 봐도, 네가 뭔데’라는 생각을 지워야 합니다.
무식한 사람이나 유식한 사람이나 모두가 부처입니다.
불자는 ‘중생이 곧 부처’라는 생각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 며느리가 소중한 줄 알아야 하고
며느리가 잘 왔다 생각할
때 시어머니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법당에 모셨다고 부처님이 아니라
내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가 부처님입니다.
부처님께 칭찬받고 중생에게 사랑받는 것은
중생을 사랑하면 부처님께 칭찬받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효입니다.
부처님이 눈물 흘린 것은 딱 한번입니다.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계실 때 길가를 지나가다
해골 무더기를 발견하는 순간 엎드려 절을 하자 제자들이
“부처님은 사생의 자부이신 인류의 스승이신데
해골에 인사를 올리시나이까”라고 묻자
부처님은 “여기 해골무더기가
바로 전생의 우리 부모님이라서 운다”고 말했습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는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묻자
제자들은 “이 세상에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는데
재물과 명예가 높으면 부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부처님은 게송을 읊습니다.
“이 세상에 부모님이 살아계심이 가장 귀한 부자이고,
부모님이 안계심이 가난일세.
부모님이 떠나심이 온 세상이 텅 비었네.
처자 사랑 깊어도 떠나고야 마네.
인간도 숲에 사는 새와 같아,
때가 되면 뿔뿔이 흩어지네.
아버지의 은혜 하늘에 비교하며
어머니 넓은 공덕 땅에 비할 소냐.
아버지 품어주고 어머니 젖주시니
그 하늘 그 땅에서 내 몸이 자라났네.
기저귀 빠느라 손발이 거칠고
자식위하노라 곱던 얼굴 주름졌네.
산 보다 높은 은혜를 어떻게 갚으리까.”
우리는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습니다.
여기 모인 대중들도 언젠가 위패에 이름 올릴 사람들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남아있는 생명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중요합니다.
기쁠 희(喜)자를 명심하십시오.
이 세상에 기쁜 것을 싫어하는 중생은 없습니다.
기쁜 것을 좋아하려면 씨를 뿌려야 열매가 열리듯
남을 기쁘게 하려면 씨를 먼저 뿌리십시오
모셔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