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
김병환
예술엔
오류 있어도
세월엔 착오가 없다
천명에
순종 못 하고
불혹을 그리워하나
고희를
지나고 나면
어르신 명사가 되어
남자는
노여움 속에
여자는 두려움 속에
얼굴엔
주름이 지고
머리엔 흰 눈 내린다
김병환 시인의 <천명>은 흘러가는 세월 앞에 서 있는 인간의 허무함과 그럼에도 받아들여야 하는 삶의 순리를 조용히 보듬는 시입니다.
‘예술엔 오류 있어도 세월엔 착오가 없다’라는 첫 구절처럼, 우리의 삶과 예술에는 숱한 시행착오와 아쉬움이 남지만 흐르는 시간만큼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비켜가지 않습니다. 마땅히 하늘의 뜻을 알아야 할 지천명을 지나 고희에 이르러서도, 마음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던 젊은 날(불혹)을 그리워하는 인간적인 서글픔이 깊은 울림을 줍니다.
나이가 들어 어르신이라 불리게 되어도 남자는 지나온 날에 대한 아쉬움과 노여움으로, 여자는 다가올 시간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음 한구석을 채우곤 합니다. 결국 얼굴에 짙게 가라앉는 주름과 머리 위에 하얗게 쌓이는 흰 눈은, 지나온 삶의 흔적이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세월의 아련한 훈장인 셈입니다.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단정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어, 삶의 후반부를 지나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묵상과 아련한 공감을 전해주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