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화반의 즐거움
문인화에 몸을 담은 지 15년째다. 학생회관에서 시작하여 2년간 배우고 우석대학교 평생교육원으로 옮겨 계속했다. 그동안 그리고 버리기를 수 백 번했다. 조금씩 솜씨가 늘어 지방의 공모전에는 물론이고 국전에서 입선하기도 했다. 오래 그을린 덕으로 초대작가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계속 붓을 잡고 있다.
공부를 시작하는 10시가 되기 전에 모두 모인다. 모여앉아 커피부터 한잔씩 마신다. 선생님이 먼저 오셔서 커피 보트에 물을 끓여놓고 봉지커피를 뜯어 한잔씩 나누어 준다. 한자리에 앉아 지난 일주일간의 이야기로 담소를 나눈다. 회원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정에 넘친다. S회장의 구수한 입담에 옆에서 거드는 Y와 L의 맞장구가 감칠맛이 있다. 아마 이렇게 커피를 마시는 재미가 아니면 늦게 올지도 모른다.
문인화반의 분위기는 김치 맛 같다. 김치는 여러 가지 맛이 자기 맛을 죽여 가며 다른 맛과 어우러져야 제 맛이 난다. 풋풋한 배추냄새도 죽이고 비릿한 젓국냄새도 삭히며 고추의 매운 맛과 마늘, 파, 참깨 등이 곰삭아야 톡톡 튀는 김치 맛이 난다. 여러 사람이 모여 그림 그리는 분위기에 김치 맛 같은 어우러짐이 없다면 오래 참여하지 못했을 것이다. 회원은 현직에 있을 때에는 한 자리씩 맡아 구실을 다하여 국가와 사회발전에 이바지 한 역군들이다. 무엇을 했느냐, 어떤 지위에 있었느냐 등을 모두 버리고 순수한 문인화를 하는 정신으로 뭉치니 잘 어우러진다. 구수한 이야기를 잘하는 회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이. 그에 장단 맞춰 응대하는 사람 등이 분위기를 이끌어가니 잔잔한 재미가 있다. 자기의 빛깔을 죽여 가며 어우러지니 문인화의 아름다움이 풍겨나는 것이다.
문인화가 주된 배움이지만 서예도 한다. 문인화는 본래 서예에서 탄생 되었기에 서예도 같이 해야 하는 필수조건이다. 작품에는 화제도 써야하니 시서화(詩書畵)가 어우러져야 한다. 서체도 여러 가지 이니 고루 섭렵해야 화제를 쓸 수 있다. 문인화보다 서예가 더 어려워 몇 년은 글씨 쓰는 일에 몰두했다. 왕희지의 난정서를 보면 붓의 움직임이 보이는 듯하여 그에 매료되기도 했다. 하루에 12자씩 써서 모두 마쳤다. 회원들 모두 그림과 글씨를 반반씩 하는 셈이다.
다른 반은 개인 사물함이 없는데 우리 문인화반은 개인별로 문방사우를 넣어놓는 함이 있다. 먼저 차지하기도 했지만 오래 지속하니 베풀어주는 혜택이다. 내 사물함에도 문방사우가 들어 있어 아무 때라도 열쇠만 가지고 가면 된다.
12기가 되면 공부가 끝나고 점심을 같이 먹는다. 이 점심도 빼 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나는 농담처럼 말한다.
“점심 먹는 재미가 없으면 문인화반에 오지 않는다.”
배달 음식을 불러 탁자에 둘러 앉아 같이 먹는 맛은 입맛을 당긴다. 자장면을 먹는 때도 있고, 볶음밥, 잡채밥,을 부르기도 한다. 어떤 때는 돌솥밥을 시키기도 한다. 입맛이 없다가도 같이 어울려 먹으면 저절로 입맛이 생긴다. 정담을 나누며 식사하는 광경을 옆에서 본다면 아마 부럽기도 할 게다. 그러기를 15년이나 하고 있으니 나도 그 맛에 푹 빠졌지 싶다.
또 하나는 가르치는 선생님이 인격적으로 존경스럽다. 인품에서 풍겨 나오는 말씨는 물론이고 하나하나 짚어주는 정성이 지극하다. 그리고 금전에 욕심이 없다. 한번이라도 회원들이 사례를 하면 점심을 내어 답례를 한다. 여러 곳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배우지만 선생님이 점심을 사주는 곳은 문인화반 뿐이다. 그만큼 겸손하고 제자를 배려한다.
동료와 선생님이 마음에 맞으니 15년이 넘어도 그대로 이어온다.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허전하다. 전화로 확인하며 안부를 묻는다. 형제자매도 1년이면 몇 번밖에 만나지 못하는데 우리는 주마다 만나니 어떻게 보면 형제보다 나은 셈이다. 어쩌다 새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기도 하지만 오랜 회원은 그대로다. 늘그막에 이런 문인화반에 들어왔다는 게 행운이다. 내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 계속 참여하고 싶다.
( 2017. 1.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