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사로운 봄볕에 마음이 채워진다. 봄마다 내리쬐는 봄볕이 ‘별스러우랴’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정류장 건널목에 선 앙상한 이팝나무를 보고서 허한 마음에 내리는 단비 같은 햇살이라는 것을 알았다. 봄볕은 마치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과 같아서 겨우내 얼었던 대지에 입김을 불어 넣고 살갗을 비벼서 움을 틔운다. 그런 봄기운을 받은 이팝나무는 길고도 묵직한 침묵에 잠겨있는 겨울 빗장을 풀어주는 생명의 전령이고, 여름이면 울창한 잎사귀로 정류장에 내리는 더위를 걷어주는 그늘이 된다.
정류장에는 낡은 간이의자가 무심하듯 자리하고 있다. 간이의자는 사람들이 차편을 기다리는 동안 쉬어가는 공간이자 사랑방이어서 그들의 사연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웃고 슬픈 얼굴에 비친 마음을 엿보기도 하고 서로 나누는 얘기를 귀동냥하여 속사정도 헤아릴 수 있었다. 또한 이팝나무가 싹을 틔우자 봄비를 재촉하며 얼른 자라라고 응원하였으리라. 왜냐하면 이팝나무가 꽃그늘을 드리우면 열매만큼이나 많은 사람이 오가며 허전한 간이의자에 더 머무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팝나무가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누가 일부러 심은 것이 아니라 홀씨를 물고 가던 새가 떨어뜨리지 않았을까 추측하였다. 거친 콘크리트 바닥에 치열하게 뿌리를 내린 이팝나무의 생명력은 남달랐다. 풀포기 같은 여린 묘목이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자랐다. 차들이 매일 질주하며 자신에게 몰아치는 바람을 견디었고, 때론 타는 가뭄에도 꿋꿋이 버티었다. 그 세월을 뒤로 하고 이제 어른 키를 훌쩍 넘어 차편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고, 하얀 쌀밥과 같은 꽃을 피우면 보는 이들의 마음이 넉넉해졌다.
정류장 노포 주인은 이팝나무꽃 필 무렵이면 궁핍한 시절이 생각난다고 하였다. 화장기 없는 주름진 얼굴에서 세월을 가늠하기 어려웠으나 눈대중으로는 손주 볼 나이가 넘은 것 같았다. 신세타령으로 늘어놓는 그의 인생살이는 시골길처럼 사연 또한 길고 굽이굽이 많았다. 그는 젊은 날 도시에 살 때 사고로 남편을 잃자 일곱 식구의 생계를 용달차에 의지한 채 시골 구석구석을 떠돌며 잡화물건을 팔았다고 했다. 요즘이야 땟거리 걱정 없는 세상이지만 살림살이가 곤궁한 시절에는 아이들이 배를 많이 곯았다고 했다. 그럴 때 쌀밥을 연상하는 이팝나무꽃을 볼라치면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의 끼니를 걱정했다고 했다.
봄비에 꽃이 피니 움츠렸던 몸과 마음이 들떴다. 해 질 녘이면 사람들은 정류장 점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점방은 술 한잔 걸칠 마땅한 가게가 없는 시골에서 선술집 같은 곳으로, 주민들이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들리는 참새방앗간이었다. 스스로 주모라는 주인 여자는 세파를 겪은 연륜으로 남정네들이 던지는 짓궂은 농담도 눙치며 큰누이처럼 편하게 대해주었다. 또 간혹 소심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치며 객기를 부려도 그러려니 하였다. 그처럼 시장바닥처럼 활기찬 점방은 이팝나무꽃과 같은 여유 때문인지 사람들의 억압된 자유가 고삐 풀린 듯하였다.
이팝나무꽃이 지고 보름쯤 지났을 즈음 정류장 점방에 들렀다. 그날 저녁은 장마처럼 내린 비로 쌀쌀한 물안개가 술을 당기게 하였다. 오랜만에 찾은 점방 문에는 이달까지만 장사한다는 종이가 압류딱지처럼 붙어 있었다. 최근 여러 건설공사장이 생기면서 철새처럼 찾아든 노동자들의 떠들썩한 소리에 그늘진 주인 여자는 침울한 얼굴을 애써 흐릿한 불빛 속에 감추었다. 평소 그답지 않은 어색한 분위기이었던 것은 머지않아 신도시가 들어서기 때문이었다. 곧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만 한다. 그는 방물장수처럼 떠돌다 이팝나무와 함께 뿌리 내리며 정붙이고 살던 이곳을 떠나기 싫었다.
사람들이 떠나면 정류장은 철거될 거라고 한다. 이팝나무도 도로 확장으로 잘려 나갈 것 같다. 그러면 이번 여름철에는 이팝나무 그늘에 앉아 장기를 두던 노인네들을 더는 보지 못할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이 보상받고 정든 땅을 떠났다. 개중에는 가까운 곳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잡으려 해도 가격대가 맞지 않아 먼 곳으로 떠난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중장비와 덤프트럭이 쉴 새 없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개발 속도를 내자 하루하루가 달라지고 있다. 우두커니 변해가는 주변 환경을 서운한 눈으로 바라보던 주인 여자는 어느 날 자신이 왔던 그 구불구불한 길로 다시 떠나갔다.
그는 또 어느 정류장을 따라 이팝나무 홀씨처럼 떠나갔을까. 봄볕이 지나간 시절에 대한 향수를 아지랑이처럼 떠올리게 한다. 이제는 시대의 유산이 되어버린 ‘1974. 10. 2. 새마을운동’이란 문구가 새겨진 허름한 담벼락과 슬레이트 지붕에 의지하며 넉넉함을 안겨준 이팝나무의 삶이 간단해 보이지 않았다. 정류장은 4차선 도로에 신호등을 갖추며 가로수들이 줄지어 섰고, 그가 집시여인처럼 떠나간 점방 자리는 제법 규모가 있는 상가 건물이 지어지고 있다. 낡은 나무 탁자와 삐걱거리는 철제 의자에 앉아 맥주 한잔으로 호사를 누렸던 나 같은 사람의 마음엔 점방은 쓸쓸한 빈터로 남아 있다.
이팝나무 홀씨는 바람결에 흩날려 어디론가 떠나갔겠지. 그 길은 사람들이 정류장을 오가며 걸었던 이팝나무 꽃길이었다. 그가 정류장을 떠날 때 이팝나무가 잎사귀에 이는 바람에 뭐라고 속삭였을까. 어깨를 나란히 한 지붕 사이로 솟은 굴뚝 연기가 이웃집 처마에 닿고, 아이들 웃음이 담벼락 덩굴을 타는 골목으로 보내달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러면 바람은 이팝나무에게 잇달아 대답했겠다. 머지않은 세월에 사람 향기 머금은 그곳으로 홀씨 되어 날아가서 사람들이 쉬어가는 꽃그늘을 만들라고. 이제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봄볕에 마음이 채워진 것은 휑한 겨울 같은 허한 삶에 사람 냄새가 그리웠기 때문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