井
박산하
井을 누르자 문이열렸다 마당이 나오고 물소리가 났다 두레박이 어디갔지 , 엄마를 잊고 있었다
井을 기억한다 바닥을 파내려가면 흙을 덜어낸 만큼 꿈이 깊어졌을까 물소리가 난다며 환호하던
井에서 물고기 한 마리 따라 나왔다 끔속에선 마당을 뚫고 나오는 말들 간절한 소망은 물고기가 전해 주었다
모란, 칸나 피고 박새 울던 마당에 말들이 도톰해지고
어제까지 내가 한 말들은 다 우물에서 나왔을까 엄마의
우물을 잊고 있었다 탯줄로 이어진 물소리
공중이 가득하다 손가락 터치에 물이 콸콸 쏟아지는
井, 음계를 누르면 스타카토 물방울이 튀어오르고
이제 엄마가 없어도 井을 열어본다 낮은 음자리 물방울을 수국수국 피워내는 스스로 문을 닫지 못하는
2013년 천강문학상, 2014년 《서정과현실》을 통해 등단 시집 『고니의 물갈퀴를 빌려 쓰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샤갈, 모래톱에 서다』
시 읽기:
이 시는 ‘井(우물)’이라는 단일 이미지를 중심으로 기억· 언어 ·모성을 층층이 쌓는 입체적 구조를 지닌다. 핵심은 “누르는 행위”와 “열리는 깊이”의 대응이다. 첫 행 井 ' 누르자 문이 열렸다'에서 ‘井’은 우물이면서 동시에 터치 가능한 인터페이스, 기억을 호출하는 버튼,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통로로 변환된다. 현대적 감각과 원형적 상징이 한 지점에서 겹치며, 시는 현재와 기억의 심층을 동시에 열어 보인다. 긴 탯줄로 이어지는 모국어의 운명적 여성성 '엄마를 잊고 있었다 / 井을 기억한다'에서 기억의 전도가 일어난다. 정서의 대상은 사라지고, 그것을 매개하던 감각의 장치만 남는다. 이때 우물은 상실된 존재를 저장하고 호출하는 기억의 매개체로 기능한다. 파낼수록 깊어진다는 역설 속에서 우물은 결핍을 통해 꿈과 상상을 생성하는 기관으로 확장된다. 도톰한은 감각적 두꼐의 촉각 ,스타카토로 튀어오르는 음악적 청각으로 변주되는 감각의 혼성, 우물같은 심연에서 길어 올려진 언어의 현란한 물성을 가감없ㅇ드러낸다, 화자는 자신의 말이 이 깊은 층위에서 비롯되었음을 자각한다. 후반부, 우물은 소리와 리듬을 생성하는 장치로 전환되고, 마지막 연의 스스로 문을 닫지 못하는 ' 은 모성의 부재 이후에도 이어지는기억, 거시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말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풀어낸 작품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