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설렘
아무 의식 없이 빨아드리던 공기가 어느 순간 갑자기 차갑게 느껴질 때 하늘엔 어느새 아름다운 화산제가 내린다. 차곡차곡 쌓인 과거의 한 해를 전부 불사르고는 공기 중에 흩뿌려지며 내려오는 그 화산제는 수북이 쌓여 산 속 깊은 고철 가옥에 많은 이를 수감시킨다. 적잖은 현기를 곳곳에서 터트린다. 물론 보이지는 않지만. 안락하게 쳐져 있는 수많은 커튼들 속의 수많은 이들이 보일러를 때며 저도 모르게 내쉬는 짜증과 살짝은 들뜬 마음이 어느 산 속 작디작은 가옥 단지를 메우고, 채워 낸다.
정도 없고, 염려도 없는 화산제는 오랫동안 해먹은 햇살의 얼굴을 제멋대로 가린다, 그리고 계속 뿌려댄다. 그렇게 생태계 속 애벌레에 불과한 안식처의 짱 박혀 있는 개미와 그들 위에 군림하는 자신의 관계를 설파하듯 철저히 그들의 안식처를 우리로 바꾸어 낸다. 우리 속 개미들은 밖에 나가지도 못한 체 철창 넘어 풍경을 바라본다. 비참한 현제의 상황을 인지 한 것인지. 대충 보기에는 그저 다시 자기들의 여왕개미에게 헌신하러 발걸음을 옮기는 듯 보인다. 대부분은 나이를 좀 먹었다는 것인지 기계적이게 추위를 견딜 채비를 한다. 바닥을 때우고 침대 위 전기장판을 켠 채, 장롱 속 모셔두었던 아주 두꺼운 겨울 이불을 꺼내 장판 위에 살며시 덮어 온기를 보존한다. 발걸음을 돌이켜 커피 포트에 물을 올려 둔 체 이 날을 대비하여 준비한 어묵을 냉동실에서 꺼내 불 위 국물에 올려둔다. 오래 기다리기에는 아직 보일러가 따뜻하게 데펴지지 않았기에 살짝은 설익은 어묵을 대충 입에 쑤셔 넣고 포트 속 물을 보온병에 옮겨 담아 다시 방으로 돌아간다. 그 가는 길. 한 발자국 때며 차가운 공기 덕에 건조해진 피부의 미세한 갈라짐을 느낀다, 한 발자국 때며 오랜만에 발바닥의 온기가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한 발자국 때며 코와 목이 전하는 꺼슬한 감기기운을 느낀다, 한 발자국 때며 이제는 슬슬 달아 오르는 마룻바닥을 느낀다, 한 발자국 때며 ‘이번 겨울은 얼마나 추울지 이번 연말은…’ 하며 가벼운 질문을 던진다, 금세 발걸음을 재촉하여 자신이 예비하여 둔 도피처에 몸을 던진다. 덮어둔 이불을 슬쩍 들기만 하였는데 느껴지는 그 따스함이 장판에 몸이 닿기까지의 과정에 극한의 설렘을 느끼게 한다. 장판이 등에 닿고 이불은 머리 위 배개까지 닿는다. 잠시 후면 숨쉬기 버겁겠지만 일단은 이 갈망의 실현을 온몸으로 즐기기로 한다. 나도, 그들도, 이 고철 단지의 여러분들도 수동적이게 우리에 갇힌 체 자신들 만의 고치를 지어낸다. 이 화산재는 무슨 의미일까? 연말이라니 무슨 의미일까? 고치 속에서 느끼는 이름모를 불안감과 그에 상응하는 기대감은 무엇일까?
아직 잠을 자고 있던 나무늘보는 눈이 전부 그치고 서야 눈을 뜬다. 암막으로 쳐진 커튼 덕에 휴대폰을 잡아 키기 전까지는 자신이 나름 일찍 일어났다는 일말의 기대를 갖는다. 그 기대는 곧 철저히 부정당하고 기분은 잡쳐진다. 상한 기분은 이내 이상야릇한 괴리를 정신 속에 불러 일으킨다. 수심 깊은 바다에 빠진 것 같은 쾌쾌하고도 갑갑한 의문들이 정신의 내면에 각인 되어 있다. 잠시 화면을 보느라 옆으로 돌린 고개를 고독사한 홀애비 냄새나는 베개에 쳐 박고는 깊게 들이마시며 그 역겨운 냄새를 몸 전체에 이완시킨다. 먹먹한 감정을 상위하는 역함으로 상한 기분과 그로 인한 이유 모를 찜찜함을 덜어내기 위한 것이다. 눈을 감고 뜰 때마다 5분씩 흘러간다. 유일하게 공평한 시간을 나무늘보는 오늘도 처참하게 배설한다. 긴 시간이 흐른 느낌이다. 사실 전혀 그렇지 않지만. 아직도 잠을 자고 있는 듯 어물쩡한 움직임으로 창문을 연다. 사무치게 놀랐지만 최대한 태연한 척해본다. 그가 본 풍경은 하얗고 파랬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수북이 쌓여버린 올해의 마침표를 바라보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저 눈과 설렘에 절망감 섞은 그의 눈이 교차되는 듯하다. 그런 엇갈림이 창문 넘어의 세계와 방구석 고치의 찌꺼기들 속에 파묻혀 있는 자신과의 사이의 커다란 괴멸감을 심어 준다. 그 사이에는 어떤 것도 남지 않은 듯하다. 저 밖은 춥겠지만 이곳은 뜨거울 지경이다, 저 밖은 걷기도 힘들겠지만 이곳은 편안하게 누워 잠을 청할 수 있다, 저 밖은 열심히 돌아가겠지만 이곳은 항상 멈춰 있다, 저 밖은 환하겠지만 이곳은 어둡다. 이 둘을 분리 시키는 것은 투명한 창문 뿐이다. 이 늘보가 당장이라도 저편의 창문을 열어내면 눈과 눈의 엇갈림은 한순간의 마주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귀찮으니 그럴 수 없다, 하지만 추우니 그럴 수 없다. 그런 단순한 욕망을 따른 행동이 그를 짐승으로 만든 터이다. 그래서 늘보는 늦게 일어난다, 그래서 늘보는 기분을 잡친다, 그래서 늘보는 이상한 역겨움을 자신의 속에서 발견한다. 그건 버러지 같은 자신이다. 그래서 늘보는 자신만을 바라본다. 그 이유는 그런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여 새로운 도피의 고치를 짤 수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이라는 멋진 명패로 새로운 가면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 밤부터 오늘 오전까지 끝없이 내린 눈덩어리들이 쌓이고 쌓여 세상을 바꿀 대로 다 바꾼 후에야 이 늘보는 발견했다. 타인이 보면 안쓰러운 일이고 개인이 보면 절망적인 일이다. 그는 눈을 본 순간 설렘을 느꼈다. 조금이지만 몸이 달아오르고 동공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어느 순간 과거의 눈사람을 만들었던 경험을 떠올리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저 바깥에 펼쳐진 눈을 밟을 때 어느 깊이까지 발이 빠질지를 상상하며 심장이 빨라지는 것은 스스로 진단하였다. 연말의 감정과 겨울의 따뜻함을 느꼈다. 생각의 길을 뻗었다. 자신이 눈을 보았다는 것은 곧 겨울이 왔다는 것. 겨울이 왔다는 것은 곧 연말이 왔다는 것. 이 말인 즉슨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라는 것. 거기서 멈췄다. 자신이 기뻐한다는 것을, 요상한 흥분을 신체 기관으로 표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름다운 설렘을 느꼈다. 늘보는 질문했다. 어째서 일까. 내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자격은 무슨 의미일까. 아무튼 나는 설렘을 느낄 이유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유전적으로 감수성이 풍부한 것인가. 늘보는 이내 절망했다. 타인이 보기에는 어리둥절하고 안쓰러울지도 모른다. 그의 설렘은 그리움에서 나왔다. 과거를 기점으로 남아있는 유랑민 같은 설렘을 그는 자격도 없으면서 잠시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부끄러우면서도 이내 낙망했다. 저것은 내 것이 아니구나.
낙오 되어 떨어진 거지들은 과거의 영광을 곱씹으며 엄청난 과장을 더한다. 그의 주변에서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 그저 그럴 것이다. 그 이야기가 과장되었다는 생각은 조금이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낙오된 거지들에게는 엄청난 과장이 들어간 것이다. 세상의 톱니바퀴 아래서 낙오되어 뒹굴던 그들이 마치 자신도 하나의 부품으로 바퀴에 있던 척하는 것은 참으로 과장된 표현이 아닐 수가 없다. 그렇게 과장된 이야기로 과거를 긍정하고, 자신을 치켜 올려 봤자 결국 현재에는 자신과 자신이 바라보고 만지는 세상과의 감각적 교류 이상의 무언가의 교류를 바랄 수 없는 낙오자의 꼴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지하철역은 이제 그들의 도피처가 되지 못한다. 역 내부에 있던 그들은 출구로 나가는 계단으로 좌천 당하였고 이제는 저 멀리 약국 앞으로 좌천당했다. 당장 내일이라도 또 누군가의 의해 서라는 부동산에 의해 다른 곳으로 이사 갈지 모르는 것이 하찮은 낙오자의 입장인 것이다. 그들에게도 차가운 하늘의 침이 떨어진다. 사실 전혀 기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안 그래도 절벽 끝에 선 인생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 꾹꾹 눌러쓴 싸구려 털모자에 수분이 스며들어 정수리를 얼릴 생각에 낙오자들은 몸서리를 친다. 그들이 현재 세상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뿐이다. 말 수 없이 잔인한 하늘과 자연의 움직임을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 그들과 세상의 관계이다. 이따금씩 내리는 물줄기, 날씨가 선선 해지면 그 줄기는 얼어붙어 내리고, 간절히 기도하다 싶으면 태양볕 한번 내리쬐어주는 것이 그들을 향한 세상의 유일한 관심이자 반응이다.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은 거지들과 시선을 보내는 눈 사이의 공기에 막혀 사라져 버린다. 공기가 강한가? 아니다. 산재되어 있는 공기는 어떤 힘도 없다, 다만 사람들의 시선이 그 힘보다 더 약한 것일 뿐이다,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자본의 움직임도 그들을 배척한다. 잘난 판넬 속에 흰 이를 훤히 들어내고 웃고 있는 정치인들도 그들을 배제한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생은 그들을 초대하지 않는다. 토 나올 정도로 군중에 휩쓸리는 생각 없는 유인원들도 그들을 조금도 인식하지 않는다. 낙오자들은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갈망하는 동시에 선망하며, 욕하는 동시에 사랑한다. 다만 어떤 감정으로 나아가던 근처에도 갈 수 없다.
먼 곳에서 울리는 종소리와 본인들 머리 위에 쌓이는 하늘의 차가운 은총이 그들을 미치게 한다. 대충 12월이 왔겠 거니 싶었는데 지하철 전광판은 어느새 내년으로 향하고 있다. 횅하였던 광장에는 어느새 화려한 장식들로 무장한 초록색 트리가 발을 드렸다. 전에 자신에게 건넸던 위로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깨달은 것이다 아무리 광장에 사람이 차고 넘쳐도 나는 저들에게 없는 것이란 것을. 철저히 낙오되어 이름모를 녀석이 정체모를 곳에서 뒹굴고 있을 뿐이란 걸. 온 몸의 감각으로 느낀다. 그들의 미소가 보이고 동시에 웃음이 들린다. 길거리에는 포장마차가 자리 잡고 따스한 가정 냄새를 밖에 옮겨 놓았다. 그럴수록 그들의 입에는 씁쓸한 피 맛만 가득하다. 봉사하는 놈들이 나눠준 면장갑을 통해 오히려 더 기분 나쁜 수분이 손을 집어 삼키는 듯하다.
잠시 낙관적인 생각에 빠져본다. 과거의 감정을 꺼내 저 사람들과 이 풍경을 투영해본다. 설렘이 느껴진다. 나도 저렜나, 저럴 수 있었나. 이내 바지와 엉덩이골 사이의 벌려진 틈에 눈송이가 내려 앉는다. 꿈깨라는 하늘의 계시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과거의 설렘이 잠시 더 나와 함께 해준다는 것이다. 실존을 하지 않고 무너져 내렸지만, 연기로 나마 잠시 나의 감각과 기분을 휘감아 기분 좋은 환각에 빠뜨려준다. 빌어먹을 상황, 애틋하고 간지러운 감정. 그 사이에서 처절한 설렘을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