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219/0821]우리는 왜 걷는가?
나라가 전염병으로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판국에, 우리 부부는 제주를 2박3일 다녀왔다. 산 사람은 살아 있기에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도 풀고 힐링도 해야 하지 않은가. 우거지상을 하고 ‘방콕’만 한다해서 될 일은 또 아니지 않은가. 지난 금요일 아침 7시 김포공항 비행기가 탐라국을 향해 부우웅 떴다. 언제 다녀왔을까? 비행기 타본 지도 오래다. 유난히 제주를 좋아하는 아내는 가기곧하면 무작정 걸었다. ‘걷기’에 필이 꽂힌 지 오래이다. 하루 10km는 걸어야 ‘직성’이 풀린다는데야 어찌 하겠는가. 걷는 게 만병통치약이라고도 하는데 나쁠 거야 없다. 나는 그저 하냥 따라다닐 도리밖에 없다.
공항에서 내려 렌터카를 타자마자 간 곳이 ‘삼다수 숲길’이다. 8.2km 가볍다. 나로서도 하루 1만5천걸음을 목표로 한 지 오래이기에, 인적이 거의 끊긴 제주숲속을 아내와 함께 걷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중년부부 소풍이라고 보면 된다. 서울-수도권 전염병 극성에서 잠시 탈출한 것만도 스트레스가 풀린 듯하다. 폭염이라지만 삼나무 큰 키가 그늘이 되어 얼마든지 걷겠다. 중턱에서 김밥(땡초해초김밥이 특히 맛있다) 몇 개로 점심을 때우다. 구좌읍 해안도로변 해녀의 집에서 저녁. 따돔회에 우럭매운탕. 술은 한 방울도 탐하지 말라는 아내의 명에 찍소리 못하고 밥만 먹다. 재수 젬병이다. 밤이다. 하도해수욕장 펜션의 오션뷰ocean view, 멋지다. 멀리 어선들의 불빛이 성채城砦같다. 신혼여행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 멋쩍어 피식 웃다. 허기야 신혼여행이면 무엇하랴? 첫날밤에도 그냥 잤는 걸. 천년 전의 신라를 읊어 유명한 어느 시인이 고백했듯이 ‘이제는 돌아와 내 누님같은 아내의 불두덩이에 손만 얹고’잠을 잘 뿐이다. 그게 약간은, 아니 솔차니 슬프다. 그 세월이 이리 짧은 것을 어이 하랴.
다음날 새벽 5시 반부터 해돋이 장관도 볼 겸 올레길 21코스(전체 12.2km)를 걷다. 올레길 속 오름이긴 한데 이름이 희한하다. 지미봉只未峰, 해발 450m 처음부터 끝까지 오르막길, 땀으로 범벅을 하다. 정상 360도 조망, 바람 한 점이 없어 숨이 막히다. 아무래도 완주는 못할 것같다. 숙소에서 쉬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맛있게 마시다. 오후 더위를 식히는 것은 동굴이 가장 나을 듯. 만장굴로 향하다. 세계지질공원 지정, 세계문화유산 등재, 세계 생물권 보전지역 등‘유네스코 3관왕’안내판이 요란하다. 캄캄한 동굴 안에서조차 마스크행렬이 줄을 잇는다. 참말로 보기 싫은 풍경이다. 어떻게 일거에 마스크 탈출을 할 수는 없는 것인가. 하루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예전이 그렇게 평화로운 세상, 살기 좋은 세상이었던지를 이제야 실감하는 우리 인간은 얼마나 우매한 존재인가.
성산포에서 20km 떨어졌을까? 은미네 식당이라는 허름한 식당이 있다. 강추하는 맛집. 제주를 올 때마다 이 집을 들렀다. 고등어구이, 갈치조림이 얼마나 맛있던지, 아들도 며느리도, 처가식구들도 감탄일색이었다. 제주에서 석 달간 무위도식하며 살았던 지인의 소개로 처음 알게 된 곳이다. 이번에는 우럭조림을 시켰다. 환상, 정말 최고닷! 내비가 작은 식당조차 안내해주는 참말로 좋아진 세상 21세기 대명천지에 ‘전염병 대란’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종교인 강증산이 예언한 병란病亂인 듯하다. 백신으로 없던 일처럼 되는 것일까? 모를 일이다.
해가 좀 기울고, 폭염이 기세를 꺾는 듯한 6시, 21코스 남은 구간을 걷기로 하다. 해안을 따라 하염없이 걷는데, 아아, 해가 저물었다. 고행을 사서 한다. 어둑어둑한 산길, 혼자서는 무서워서도 걸을 수 없는 길을 핸드폰 손전등으로 더듬더듬 길을 찾는다. 종점인 해녀박물관까지 8km. 아무리 올레길 마니아도 우리처럼 손전등으로 완주를 할까? 후회는 되어도, 혼자가 아닌 둘이기에 가능한 일. 마침내 해냈다. 9시. 돌아갈 차편이 없다. 토요일 불러도 오지 않는 택시들, 걸어서 돌아가야 할까? 난감하네-.
20여분 댕댕거리다 용케도 눈먼 택시가 멈춘다. 행운, 고마운 일이다. 잠이 달다. 새벽녘, 창문앞 전선에 제비 5마리가 앉아 지지배배 지지배배, 고전을 낭송한다.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이 구절을 빨리 여러 번 읽어보시라. 논어 위정편에 나온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게 진실로 아는 것이다’는 뜻이다. 모르는 것조차 안다고 설쳐대는 덜된 인간들 때문에 늘 문제다. 올 봄 우리집 처마에 들락거리는 것을 보고 다시는 못봤는데, 반갑다. 집을 지으면 똥받이를 만들어주고, 낙상하는 제비 새끼가 있으면 붕대도 감아주려 했는데. 누구처럼 복 받으려 멀쩡한 다리 분지를 생각은 없다. 모든 게 순리대로 사는 게 제일이거늘.
새벽잠이 주특기인 아내는 여행체질이다. 5시부터 깨우지 않았는데도 일어나 김치볶음밥을 만든다. ‘아점’용이다. 오늘은 절물휴양림 속에 있는 ‘장생의 숲길’11.1km를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길은 샤려니길이나 비자로 길보다 더 추천한다. 참말로 기분을 삼삼하게 만든다. 길어야 3시간 반. 벌써 세 번째 걷는 장생의 숲길. 한번 걸으면 수명이 3년은 늘어날 참인가. 아무래도 우리 부부, 이 길만 뻗치니 장수長壽할 듯하다. 끝부분에 절물오름을 올라도 좋다. 언젠가 우리 대가족 5쌍이 줄이어 걷다가 누군가 맨 앞에서 ‘이쪽 한번 뒤돌아보세요’하는 소리에 일제히 뒤를 돌아보는데 ‘찰칵’기념비적인 멋진 사진을 남겼었다. 가족여행 후 나는 사진과 범벅된 ‘꽃보다 가족-찬샘마을 최·강패밀리 제주여행기’이라는 소책자를 만들어 참가가족에게 나누어줬다. 세월이 흐르니 남는 건 사진뿐이더라. 그런데, 나나 아내는 사진 찍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머리와 마음 속에 차곡차곡 담을 뿐.
사흘 동안 족히 50km는 걸었을까? 우리는 걸으면서 무엇을 얻는 것일까? 한 달에 걸쳐 스페인 안데스산맥의 산티아고 800km를 걷고자 하는 아내의 꿈은 코로나 때문에 가능할 날이 오기는 올까? 나는 대안代案를 제시한다. 제주의 올레길도 ‘반타작’은 한 것같으니, 이제 지리산 둘레길 22구간 285km을 걷자. 한 달에 한번씩, 2년이면 되겠지. 그런 후 동해안 일주 해파랑길 50코스 총연장 770km를 걷자. ‘7학년’이 되기 전에 우리가 꼭 걸어야 할 ‘부부의 길’이다. 걸으면 무엇이 남기에 아무 생각없이 걷는 것일까? 절친이 얼마 전. “야, 너는 스토리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걷는 것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나는 “응. 걸어도 스토리가 막 생겨. 재밌어”라고 답했다. 올레길을 만든 ‘문화애국자’ 서명숙씨는 어떤 생각으로 그 길을 개척한 것일까? 모두들 잘 모르고 답변이 궁할 터이니, 무조건 한번 걸어보자.
오후 3시. 손자를 위하여 도로변에서 산 감귤과 오메기떡을 안고 비행기를 타긴 탔는데, 언제 온지도 모르게 달디 단 낮잠을 자다. 마지막 숨을 쉬고 갈 때는 그렇게 갔으면 좋겠다. 남은 가족들이야 가슴이 아프겠지만, 아무 생각없이, 어떤 고통도 없이 그렇게 가면 얼마나 좋을까. 더구나 둘이 꼬옥 손잡은 상태로.
또 가고 싶다, 언제 봐도 엑조틱exotic한, 매우 이국적인 우리나라 제주도. 또 걷고 싶다, 장생의숲길, 따래비오름, 노꼬메오름, 또 먹고 싶다, 은미네집 우럭조림. 아이고, 간만에 제주 한번 잘 다녀왔네. 힐링 한번 잘 했네. 제주도 만세닷! 우리나라 만세닷! 우리 부부 만세닷!
첫댓글 우리부부 예전엔 걷는 올레길도 없었는데도
참으로 많이다녔다
제주도 열번 넘게 간 후에 제주 물가가 장난이 아니게 비싸니 그돈으로 중국이나 다니자 그래서 중국만 4~50번쯤 가봤나?
태항산이 너무좋아 서너번 가봤고
두어달에 한번은 중국을 다녔는데
그나마 코로나 덕분에 중단되고 말았네
나이들어 제일 좋은건 역시 여행뿐이라 여기네ᆞ
친구 처럼 걷기는 지리산 둘레길을 거의 다 걸었는데 지금은 중단한걸 아쉽게만 여기네ᆞ
걷는다는게 이렇게 재미있고 소중할 줄 누가 알았었나?
'3보 이상 승차' 외치던 시절이 있었는데...
삶은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 시작한다는데,
함께 걷는 사람들...
부럽네. 부러워!